0.
동네 편의점 앞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다른 소년을 때린다. 지나칠 수가 없다. 다가간다. 소년은 소년의 정강이를 찼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야!
때리던 소년이 나를 본다. 그리고 멈춘다. 나는 다가선다. 왜 때리니?
대답이 없다. 나는 다시 묻는다. 왜 때리니?
정말 그 대답이 듣고 싶었는지 당황한 건지, 나는 소년을 노려봤다. 그리고 연유를 물었다. 사실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를 겁박하고 때리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나. 묻는 나도 한심했지만, 우물거리는 녀석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맞고 있던 소년의 볼도 정강이도 벌겋다. 나는 괜찮냐고 물었다. 뭐가 괜찮겠냐마는. 그 순간 소년을 때리던 녀석이 갑자기 아파트 입구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실은 나도 잡을 의지가 없었다. 두통약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몽롱하기도 했고, 어지러웠다. 남아 있던 소년이 자기도 집에 가겠다고 했다. 고개를 숙이고 뭐라고 더 말한 것 같은데,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꿇어 소년과 눈을 마주했다. 아줌마 볼래? 집에 가서 씻고, 다음에는 친구가 때릴 때 그렇게 맞고 있으면 안돼. 소리라도 질러. 그리고 정 안되면 너도 저항해야 해. 그냥 일방적으로 맞으면 안돼.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아파트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이럴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가 없었다. 그저 답답했다.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게 엿같았다.
1.
그리고 골라도 참 잘 고른 책.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무거운 마음이 아예 바닥에 퍼질러졌다. 놀라운 책 선정이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지, 이렇게 잔잔하게 씹어서 쓰다니. 인간에 대한 혐오가 경지에 이르면 이런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특히 단편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읽는 동안, 꼭 내가 당하는 괴롭힘처럼 힘들었다. 루시엔이라는 여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 처럼 분노했다. 내 앞에 주인공 루시엔이 있었으면, 어쩌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같은 년!이라고.
2.
어떤 이들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나는 사람에게서 어떤 희망도 더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내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다니. 미친 짓이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했다. 기관차라니. 그럴리가. 어마어마한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건데 그런 건 없다. 그저 모든 게 끝장나는 것, 기관차고 나발이고 달리는 것을 그만 두는 것. 그저 끝장나 모든 것이 더는 어떤 복구도 희망도 불가능한 상태의 폐허가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혁명이자 구원인지 모르겠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 흉내를 내면서 사는 일이 고통이다. 우리는 우리와 어울리지 않고, 나는 우리와 어울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