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의 비극을 넘어 - 공유자원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엘리너 오스트롬 지음, 윤홍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홍합을 끓인 맑은 국물을 먹다가 뭔가 아쉽다 싶어 생각해보니 '민어'가 먹고 싶었던 거였다. 민어가 먹고 싶다고 생각하니 또 '서대'가 먹고 싶었고, 서대 생각을 하다보니 할머니가 양은 냄비에 졸여주었던 '황석어' 생각이 났다. 이렇게 줄기 없는 생각이 황석어로 끝이 났는데 그건 아마 오늘 비가 와서 그럴테고, 은행나무 잎들이 마구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이런 아름다운 가을날 나는 더는 황석어를 먹을 수 없다. 안잡히니까. 씨가 마른 것이다. 왜냐. 마구 잡았으니까. 왜 마구 잡았을까. 수산물은 특정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공유자원이니까. 공유자원. 사유재인 양식장의 홍합을 넘들이 마구 쓸어갈 수는 없지만, 저 어정쩡한 바다의 고기들은 중국어선, 한국어선, 베트남어선, 필리핀어선, 수없이 많은 나라의 어선들이 잡아간다. 아주 양껏. 마구. 공유자원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면 그걸 어쩌냐? 이렇게 물으면 단박에 돌아오는 답. 국가가 관리하거나 사유재로 만들면된다고. 그런데 그럴까? 국가가 관리하면 남획을 막을 수 있나? 사적재산으로 만들어 기업에게 넘기면 다 해결이 되나? 진짜로?

 

 

 

그 물음에 대해 다른 시각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국가나 시장이라는 이분법으로 뭐든 해결하려는 무식한 사람들에게 노!노!노! 를 살살 날려주는 책.

그러니까 저자 오스트롬은 '공유라는 체제 자체가 자원의 소진을 불러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 속에서 자원을 점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자원의 지속성, 공유의 지속성이 결정된다고 봤다. 내가 공유자원의 예로 그저 '황석어'를 가지고 와서 더 감이 안잡힐 수 있지만 공유자원은 이밖에도 무수하다. 비배제적이고 비경쟁적인 재화를 상상하면 된다. 예를 들면 항구의 '등대'도 공유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그러니까 외부의 행위자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자원에 접근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감시와 제재를 진행하는지를 살피지 않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을 무시하며 그저 소유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은 너무 성급하거나 꼼수를 부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맥락에서 공유자원 관리를 위해 제도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고 앞으로도 지속가능하며 심지어 성공적인 개발의 조건들을 조명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이 공동의 혹은 집합적 이익을 가질 때-그들이 어느 목적이나 목표를 공유하고 있을 때-비조직화된 행동은 공동의 이익을 전혀 증진시킬 수 없거나, 아니면 적절하게 증진시킬 수 없 을 것이다(85).

 

 

공유의 문제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대목은 조직화의 문제였다. 이는 독자적인 행동이 개인 또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때,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조직화'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 때문이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조직화’가 반드시 하나의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화는 하나의 프로세스라고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나온 산출물이 조직화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점이다.

    

여하간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조직화’를  프로세스라고 정의한 부분에 어쩌면 공유자원 관리에 대한 해답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주체들이 상정한 목적과 차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합류하고,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어떤 공통의 기반을 만들고 이행 가능한 제도들을 고안하지만, 결국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역동을 생산하게 하는 수많은 차이와 변화의 교집합을 만들어 내는 과정! 이 과정이야말로 제3섹터에서 생산해내야 하는 궁극적인 사회서비스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주어진 과제고.

 

이 책은 다른 경제학 책들과 다르게 수학적인 방법을 크게 사용하지 않고, 실증적인 자료들을 통해 공유자원 관리를 위한 '8가지 디자인 원리'를 밝힌다. 주류 경제학에서 보면 어쩌면 명료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내가 보기에는 논리적인 추론이 압권인 책이다.

 

'황석어'때문에 시작한 이야기가 길고 두서도 없다. 그렇지만 공유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명료한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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