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처럼 마지막도 아름다웠으면 싶은 것이 어찌 사랑에만 해당하는 일이겠는가. 명확한 성과를 기대한적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흔들어 깨우고, 지금 이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그 시작이 국회라는 곳이었기에 충분히 뜻깊었다. 적지 않은 시간 그곳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있어 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기대라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쩌냐. 저런 마무리를 기대했던 것은 아닌데.

 

 

세상이 달라졌다

 

정희성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차라리 다른 이유를 말했으면 조금은 편했으려나. 하기야 좀 편하다고 감동이 있었을리는 없다. 여하간 시인의 말처럼 이제 다시 벗들은 말수가 적어질테고 세상은 고요해질 것이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서 준비는 되어 있지만 여느 때보다 허황하다. 삼월은 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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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행동연구 - 제6판
백기복 지음 / 창민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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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만 소개되거나 심지어 그것도 없는 대학교재들도 많지만, 용어 찾아보기를 첨부한 교제들은 저자의 마음이 읽혀서 고맙고 또 유용하다. 이 책 역시 용어 찾아보기가 있어서 훨씬 이용하기 편리하며, 참고문헌 소개도 성실하다. 이만하면 훌륭한 교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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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특강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천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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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사적인 경제 권력`과 `국가의 강제적 권력`의 작동을 통해 설명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 두 권력의 조화와 대립은 `생활세계`의 질과 밀접하게 연동되기 때문이다. 즉, 국가의 역할이 차지하는 범위와 정도가 시장실패를 바로잡을 수도 있고, 막장으로 내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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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재계약을 할 때면 어김없이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리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세금은 어차피 세입자에게 돌려주어야 할 돈인데 그걸 뭐하러 그렇게 꼬박꼬박 올리는지, 추후 돌려줘야 할 돈이 부족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런 푸념을 하니 잘 아는 선배가 하는 말. "너는 한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어서 그 속내를 모르는거야, 돈을 굴려본 적이 없으니 그게 이해가 안가지."          그래. 나는 부자였던 적이 없다. 유년기에는 부모에게 얹혀 살았으니 그건 내것이 아니고, 지금은 말그대로 시장에서 노동력을 팔아야 쌀을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 역시 누군가 내 노동을 사야 가능한 교환이고.        

 

역시나 권력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부려본 적 없는 힘의 짜릿함을 알 수 없다. 그저 상상할뿐이다. 상상력도 일천해서 어느 지점 이상은 나아가지도 못한다. 그러니 국가라는 권력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너무 크고 너무 멀어서 도통 한눈에 볼 수도 없는 그것을.          그렇지만 적어도 국가의 권력이란 '폭력의 정당화'가 아니라 '폭력과 정의'를 구별해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배웠거나 믿는다. 물론 또다시 누군가 "너는 힘을 책으로 배워서 권력이라는 괴수의 이빨을 상상할 수 없지. 그 무엇이든 살아있는 것들의 목덜미를 한입 물었을 때, 이빨 사이로 번지는 그 비린내와 찰진 식감을 알 수 없지. 씹어본 적 없으니까. 그러니까 쉰소리는 그만하지"라고. 힘을 가져본 적 없으니 그래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힘에 의해, 권력에 의해 잘근잘근 씹혔던 사람이, 권력이라면 이제는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려야할 것 같은 사람이, 도리어 국가권력이란 '폭력과 정의'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은수미국회의원이 그 사람이다. 그녀는 그녀만의 자세로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10시간이 넘게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기막히게 어쩔 수 없는 인간들에게 이가 갈려 멸종을 고대하는 나에게 그녀는 힘을 쭉빼는 감기약과도 같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멸종을 고대하더라도 그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목소리가 닿는 곳에 함께 있겠노라고, 뭘 할 수는 없어도 그저 함께 있겠노라고, 어느 길목 어느 공원 딱 오십미터의 거리에서 나도 기다림의 자세를 취하겠노라고 다짐할 뿐이다.          긴 시간 들이마신 공기와 내뱉은 공기로 헛헛할 당신을 위해 허연의 시 한 편 보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세

 

허연

 

 위대한 건 기다림이다. 북극곰은 늙은 바다코끼리

가 뭍에 올라와 숨을 거둘 때까지 사흘 밤낮을 기다

린다. 파도가 오고 파도가 가고, 밤이 오고 밤이 가

고. 그는 한생이 끊어져가는 지루한 의식을 지켜보

며 시간을 잊는다.

 

 그는 기대가 어긋나도 흥분하지 않는다. 늙은 바

다코끼리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먼바다

로 나아갈 때. 그는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다시 살아난 바다코끼리도, 사흘 밤낮을 기다린

그도, 배를 곯고 있는 새끼들도, 모든 걸 지켜본 일

각고래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자세'일 뿐이다.

 

 기다림의 자세에서 극을 본다.

 

 근육과 눈빛과 하얀 입김

 백야의 시간은

 자세들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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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 외로운 오후다. 한강이 꽁꽁 얼었던 날도, 보름달이 덤벼들던 밤도, 무사히 살아냈는데 이건 또 뭔지. 겨울이 작정하고 버틴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바람은 아파트 담벼락에 부딪혀 더 거세게 윙윙거릴뿐인데 어쩐지 내 귀에는 '가기 싫다, 가기 싫다, 네 곁에서 너를 더 움츠리게 하고 싶었다, 벌벌 떨게 하고 싶었다'로 들린다. 택배를 받기 위해 열었던 현관문 틈으로 쏟아진 바람 한 줄기가 발목을 노린다. 귀도 멍멍한데 발목도 아프다. 이명인지 환청인지 그저 환상통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들뜬 혈통

 

허연

 

하늘에서 내리는 뭔가를 바라본다는 건

아주 먼 나라를 그리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들뜬 혈통을 가진 자들은

노래 없이도 노래로 가득하고

울음 없이도 울음으로 가득하다

 

짧지 않은 폭설의 밤

제발 나를 용서하기를

 

심장에 천천히 쌓이는 눈에게

파문처럼 쌓이는 눈에게

피신처에까지 쏟아지는 눈에게

부디 나를 용서하기를

 

아주 작은 아기 무덤에 쌓인 눈에게

지친 직박구리의 잔등에 쌓인 눈에게

나를 벌하지 말기를

 

폭설에 들뜬 혈통은

밤에 잠들지 못하는 혈통이어서

 

오늘 밤 밤새 눈은 내리고

자든지 죽든지

용서는 가깝지 않았다

 

더는 나쁜 인간으로 살지 않겠노라고 아무리 손을 털어도 뱉어 놓은 말들과 함부러 저질러 놓은 일들이 한꺼번에 날선 바람이 되어 달려드는 날이 있다. '뻔뻔하다고, 이제와서 이러면 웃긴다고, 네게 줄 구원이 있다면 북극곰 한 마리를 살리는 것이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고'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쩌면 매일이 그런 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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