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나. 온수행 7호선 지하철, 휴가철이라서인지 아니면 시간이 애매해서인지 빈자리가 있어 앉았다. 우리집에서 온수까지 대략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책을 읽기에는 아주 좋은 시간이다. 특히 앉아서 갈 수 있으면 맘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목적지가 멀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다.

오늘도 그렇게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옆에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더위 때문인지 연신 부채질을 하며 나를 흘끔거리시더니 이내 하시는 말씀. ˝학생이야?˝
참으로 난감할세. 반말로 물어서가 아니라 이 나이에 학생입니다,라고 대답하기가 참 민망하여 나는 할아버지를 찬찬히 봤다. 다시 할아버지 말씀하시길 ˝기집애들이 이런 시간에 앉아서 편하게 책이나 읽고, 시집이나 갔어?˝

음......일단 사실관계 정리 차원에서 나는 대답했다. ˝시집은 갔고, 지금은 학생입니다. 그런데.....왜 궁금하니? 그게?˝

내가 이 말을 함과 동시에 예상했던 건 할아버지의 욕설과 이에 맞서는 나의 집요한 비아냥이었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처음 그의 질문을 받았을 때 느낀 당혹감을 느끼셨는지, 아니면 내게서 살의를 느끼셨는지 잠깐 머뭇거렸다.

그리고 몇 초가 흐른 후 할아버지는 기대했던 욕설을 하더니 언능 지하철에서 하차하신다. 따라 내려서 끝장을 볼까 싶었으나, 나는 지금 예쁜 고등학생들에게 사회적 경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왜 협동해야 하는지, 인간은 결코 이기적인 판단만을 하지 않는다 등을 이야기 하러 가야한다.

슬프다. 밥법이가. 슬프다. 아이들에게 거는 나의 희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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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2016-07-2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 할아버지 참 진상이네. 근데 그 와중에 언니에게 사회적 경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왜 협동해야 하는지, 인간은 결코 이기적인 판단만을 하지 않는다 등을 들은 예쁜 고등학생들은 참 좋겠네요. 저도 들려주세요~

風流男兒 2016-07-3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숟가락 올려봅니다. 여튼, 진상은 으으..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팔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알라딘 중고서점 직원들이 책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뭐랄까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물론 나만 그럴 수도 있고. 그러니까 낙서의 유무, 책 자체의 손상 정도, 구입여부(증정품은 제외되는 것으로 알고 있음), 구간과 신간, 알라딘이 보유하고 있는 동일 서적의 양 등이 해당 기준으로 보인다. 더 많은 기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잘 모르겠으니 일단 이 정도. 물론 나는 지금 알라딘의 서적 매입 기준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방학을 맞아 어떤 퍼포먼스라도 하고 싶어 책장을 정리하고 더는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을 골라냈다. 책을 골라낸 후 알라딘에 팔 수 있는 책과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면 좋을 책을 나누는데, 기증으로 분류된 책들은 대체로 출판사에서  증정받은 책 혹은 선물로 받았으나 내 취향과는 먼 책들, 그리고 시집들이다. 기증에 해당하는 도서들은 내가 구매하지 않은 책이니 나도 그냥 내놓는게 자연스러운 것 같고, 시집이 기증물품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이건 정말 개인적인 이유이지만, 시가 돈으로 환산되는 어떤 느낌이 싫어서다. 쓰고 보니 더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여튼 그렇다. 그렇게 분류를 하고 나니 알라딘에 팔 수 있는 책이 많지는 않았다. 아참 이번에는 시집 한 권도 팔았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시집은 팔아도 될 것 같았다. 시인을 향한 나의 복수는 이렇게 극도로 쪼잔했다.

 

그렇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팔고, 천천히 알라딘 서가를 둘러보니, 오호~ 반가운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놀랐던 것은, 책 안쪽에 저자의 친필로 가늠할 수 있는 메모가 있었고, 그 메모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것. 그런데 이 책을 받은 사람은 왜 팔았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알라딘은 이런 메모가 있는 책을 매입하나? 그것도 궁금했다. 그래서 망상에 가까운 공상으로 나는 뭔가 이 책이 내게 발견된 이유를 애써서 찾고 싶어졌다. 혹시 아니?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따위에 내몰린 것이.........

 

그렇게 완벽한 몰입의 상태로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나는 이 책이 알라딘 서가에 꽂혀있는 이유를  발견했다. 단서는 저자의 글에서 찾았다.

책에서 읽은 다른 이의 말을 나의 언어로 둔갑시켜 차용하지 마세요. 다른 이의 말을 빌려서 내 욕망을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그런 좋은 말들은 듣고 난 뒤 씹어서 뱉어 버리세요.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도 여러분의 말이 아닙니다. 읽고 나서 버리던가, 남을 주던가, 아무튼 몸 밖으로 뱉어 버리세요(p.267) 

 

오호~이렇게 자연스럽게 멋있는 사람들을 보았나. 순전히 내 추측에 추측을 더했지만, 정말 저 말 때문에 책의 주인이 이 책을 팔았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퍼포먼스인지.  그리고 기계적인 줄 알았던 알라딘 도서매입 직원의 작은 실수(?) 또한 얼마나 즐거운 퍼포먼스인지. 인간이 그리는 무늬들이 이렇게 재미나다니. 정말 별 일도 아닌 일로 혼자 키득거리는 나는 이 밤이 참 좋네.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오랜만에 몰입하니 사는 일이 재미있네요. 정말. 

 

아참, 엄한 소리만 하다가 책 이야기를 못했다. 글을 읽으면서 EBS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현생인류의 어떤 한 종족의 남성이 야생에서 사냥감을 발견했을 때의 모습. 조용히 손에 쥔 연장을 꽉 움켜잡고 일격을 가하려는 모습. 눈빛에서 느껴지는 결기와 그 민첩한 손동작. 저자의 글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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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히틀러
막스 피카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어제 뉴스에 따르면 드론이 잠자리처럼 날아다니는 세상을 내가 살아생전에 겪을 판이다. 드론규제만 완화되면 침체된 글로벌 경제가 한방에 해결될 것 같으니, 아마존이 큰일한다 싶다. 여튼 택배도 드론으로 오고, 농약도 드론으로 뿌리고, 뭐 대충 안되는 것 빼고 다 될 듯하다.

이쯤에서 피카르트의 글을 꼭 옮기고 싶은 내 마음을 드론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열정이 없이 저질러진 잔혹한 범죄, 그 현장에 잊지 않았다고 착각하는 범죄의 경우 사람들은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도구가 어찌 죄책감을 알겠는가. 그저 우연처럼 범죄를 생산했을 따름이다. 도구는 얼마든지 달리도 쓰일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무슨 기계파괴 운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드론이 우리집 창문에 와서 서성이는 상상은 참으로 안하고 싶다. 더 나아가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는건 더 끔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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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소농, 문명의 뿌리 - 미국의 뿌리는 어떻게 뽑혔는가
웬델 베리 지음, 이승렬 옮김 / / 2016년 1월
평점 :


저자가 명확한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고 주장을 펼치는 대목들은 불편했지만, 저자가 사실관계를 과감하게 생략하면서까지 말하고 싶은 속내는 알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저자는 위기에 처한 지구라는 행성은 어떤 정신나간 몇몇이 별나거나 엄청난 일탈을 해서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수많은 개인들의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용적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진다, 트랜디하다 등등이 만들어낸 상황이 작금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실 농업의 위기를 입에 담고 싶었으나, 농업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어 욕만 나오는 상황이라서 자꾸 피하게 된다. 감정에 휘둘린 말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소음이다. 엄청난 소음에 내 목소리까지 더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튼 이 책에서 소개된 안데스 농업을 보면서 어떤 가능성들을 생각해볼 뿐이다. 인간이 인간이건 자연이건 외계인이건 뭣이 되었던간에 최선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종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안데스를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생각할 뿐이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의 대사처럼 뭣이 중헌지도 모르는 것들의 세상은 끔찍할 뿐이다. 더 나아가 본인의 삶을 성찰할 수 없고, 본인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망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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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어디쯤에 서있는지 물어본 적 없지만,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다. 읽히지 않는 글은 이제 읽지 않기로. 나는 그저 평범한 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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