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서울이 지긋지긋 하다가도 아름다운 한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에 터를 잡는데 도움을 준 무학대사가 고맙고 또 고맙다. 그는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릴 것이라 생각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물론 이 도시는 둘러보면 숨이 막히거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는 이 도시에서 자랐고 이 도시에 살고 있다. 이제는 삶의 실체가 되어버린 이 도시 안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저자는 보편화된 인권이라는 개념이 개인주의와 소유권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적 소유권과 이윤의 원리는 그 어떤 개념보다 우위에 놓이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현실에서 집단적 권리(노동자의 권리, 여성의 권리, 성소수자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등등)를 획득한다는 것은 때로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또 다른 형태의 집단적 권리로써 도시권을 호출한다. 이 아름다운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다면 도시권은 무엇인가? 역사 이래 도시권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었는가?

 

책에서 저자는 도시권이란 우리가 원하는 형태에 가깝게 도시를 재창조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이는 개인적 권리가 아니라 집단적 권리라고 정의한다. 물론 도시 형성과정에 한 번도 참여해 본 적 없이 그저 자본의 이동경로에 따라 내몰리려왔던 우리들에게(물론 자본의 이동경로를 편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 권리는 낯설기만 한다. 누구에게 가서 우리에게 도시권이 있다고 주장해야 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행사해야 할지 막연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최첨단 자본의 공습이 일상처럼 달려드는 서울을 바라보고, 서울을 살고 있는 나에게 도시권은 뭔가 솔깃하다. 진짜로 이게 가능하다면. 가능하다고 우리가 믿는다면. 뭐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 거지?

 

자본주의 체제아래서 도시 형성의 핵심 원리는 배제와 약탈이었다. 잘 아는 바 도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은 자본을 증식하고 증식된 자본이 또 다른 자본을 흡수하는 형태를 띠었다. 거의 운명적으로 약탈과 배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도시는 과잉자본을 끊임없이 흡수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살던 사람들에게서 도시권을 강탈하는 역할도 충실히 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지경에서 우리는 도시권으로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저자는 도시가 과잉자본의 생산을 끊임없이 자행했으니 그 과잉된 자본이 배출한 잉여생산물에 대한 이용과 민주적 관리를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도시권이 사적 이익집단에게 돌아가는 것을 최대한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하간 도시라는 공유자원을 다시 되찾아 오기 위해 좌파적 분석들이 실패했던 지점들을 확인하고(이 책에서는 엘리너 오스트롬의 분석에 대한 비판으로 이를 확인하고 있다), 여러가지 층위에서의 조직화와 정치 공세를 함께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늘 힘이 분산되어 있어 반자본주의 투쟁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서 또 다른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하간 나는 이 아름다운 강과 산을 곁에 두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불능력에 의해 고통받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은 다소 걸리겠고 진통도 있겠지만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내 상상 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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