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목사의 옥중서신을 읽으며 나는 이성복의 시를 떠올렸다.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무관하게 어떤 사람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에만 눈이 갔고, 그 짐이 한 사람의 등에 얹혀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만 마음이 끌린 셈이다.

짐을 진다는 것은 분명 힘이 들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내 경우 그 짐이 있어 중심을 잡을 때가 있었고, 그 짐이 있어 지리한 시간들을 견딘 적도 있었다. 허공에 걸린 줄을 타는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줄 위에 서는 것처럼 맨몸으로는 도리어 건널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삶이 시작되는 지점에 함께 존재한 죽음이라는 시간을 외면하거나 잊고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체구가 감당할 수 있는 물리적인 양보다 조금 더 나가는 짐보따리 하나 씩을 등에 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외롭고 쓸쓸한 죽음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아마도. 그렇게. 우리는 옥중에서 그리고 남해 금산에서도 짐을 내려놓지 않았던 것이다. 지독히 무섭고 외로워서.

 

편지 1

 

이성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

었나 생각해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

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