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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멜랑콜리아 - 상상 동물이 전하는 열여섯 가지 사랑의 코드
권혁웅 지음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권혁웅은 <몬스터 멜랑콜리아>의 글을 시작하며 괴물들(상상 동물들)을 통해 사랑의 논리를 짚어 보고자 한다,라고 썼다. 덧붙여 이 책을 롤랑 바르트가 쓴 <사랑의 단상>의 몬스터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시도도 근사하고 설명도 유쾌하다.
책은 사랑이라는 테마를 16개의 키워드(이름, 약속, 망각, 짝사랑, 유혹, 질투, 우연/필연 등등)로 분류하고, 각 키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몬스터(상상 동물)를 출현시키고 있다. 등장하는 괴물들 중 어떤 괴물들(몽쌍씨, 강시, 골룸, 좀비, 세이렌, 미노타우로스, 스핑크스, 프랑케인슈타인, 지킬과 하이드, 헐크, 도리언 그레이, 체셔 고양이, 구미호 등등)은 익히 알아서 반갑고,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 낯설어 더 반가운 괴물들도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초면인 괴물인데도 심정적으로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는데 당혹스럽다기 보다 '내 안에 너 있냐?' 라는 혼자말을 하며 찬찬히 그들의 운명과 사연에 몰입하고 또 마음으로 어루만졌다. 어쩌면 지구에는 실제하는 인구와 동일한 혹은 더 많은 수의 괴물들이 존재하는 지도 모를 일. 다들 가슴 속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그것들을 품고 사는 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여하튼 권혁웅의 장기인 몸의 감각을 더듬는 작업은 게다가 시인의 문장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이 책에서도 반짝인다. 물론 어떤 건 좀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건 매우 지엽적인 것이라 내 경우 무시했다. 시간의 특징을 들여다 보면서 서술한 [약속]이라는 키워드에는 우로보로스, 다 아이도 흐웨도, 요르뭉간드르, 지귀, 파프니르, 골룸 등의 괴물들이 출현하는데, <니벨룽겐의 반지>를 거쳐 톨킨의 판타지 소설 <호빗>과 <반지의 제왕>까지 이르는 사유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갖었던 [유혹]을 다룬 부분에는 그 유명한 이제는 너무 유명해 헐리웃 미녀가 연기까지 하는 세이렌(Seiren)이 등장하는데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유혹의 작동방법을 성찰하는 작가의 내공은 뛰어났다.
이 책의 테마는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들을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과 사유는, 또 한 번 강조하지만 그의 문장은 결코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책의 내용을 더 소개할까,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능력이 안되서 그건 빠르게 포기하고 다시 작가의 들어가는 말,을 좀 더 소개할까 한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괴물들이 보여 주는 것은 몸의 몸이며 사랑의 사랑이다. 모든 괴물은 순수한 멜랑콜리아를 구현한다, 라고 썼다. 그의 말 처럼 '한 몸이 되다', '반쪽이 되다', '가슴에 구멍이 나다'와 같은 비유들을 떠올리면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 동물들이 우리의 은유를 어떻게 몸소 실현하고 있는지 잘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유행가 가사의 '총 맞은 것처럼'은 멀고 먼 신화 속 [관흉국인]을 그대로 모셔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 뚫린 가슴이 급속도로 빠르게 채워지기도 하더라마는.
시베리아에서 계속 날선 바람을 보낼 예정이라면 추워질 일만 남은 시절이고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질 것은 분명하다.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고 오로지 따뜻한 방을 벗삼아 낡고 오래된 기억들을 들춰 볼 예정이라면 몬스터들의 멜랑콜리아를 곁들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이 목소리라면 에코야말로 고백의 정수다. 그러나 그녀는 제 고백의 내용을 채울 수가 없었다.(p.161)"라고 작가는 에코를 소개했다. 이 말이 그대로 내게 돌아왔다. 이 책의 리뷰가 그렇다. 그렇지만 또 무얼 어찌하겠는가. '좋소'라고 외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