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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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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하철에서 마이클 샌델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혹은 들고 있는 사람을 무려 다섯 명이나 보았다. 석 달 정도의 기간이었으니, 적지 않은 수,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체감하는 현장이었다. 어쩌면 역차별은 그렇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환호한다는 것 혹은 관심을 갖는 것, 어딘지 꺼림칙했다. 여튼 저자의 책, <왜 도덕인가?>는 그렇게 역차별을 감수하며 내 손에 있었다.  

마이클 샌댈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공동체주의 철학자로 분류되곤 하지만 그가 공동체주의에 무조건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폐쇄적인 공동체의 경우 공동체 자체에서 정의의 원칙을 찾는다면 그것을 정의라 말하기 힘든 부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도 그러하겠다. 그렇지만 내가 저자가 말하는 도덕적 가치나 선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라는 개념 역시 아직은 낯설다. 여전히 묻고 답을 찾으려 할 뿐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1부 도덕이란 무엇인가, 2부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찾아서, 3부 자유와 공동체를 말하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더 설득력이 있었다. 특히 잘 알려진 것처럼 그와 다른 입장에 서있는 롤스의 이론들을 조목조목 비교하고 분석하는 그의 태도는 올바름을 기반으로 한 공정함이 엿보였다. 왜 도덕인가,를 논하는 그의 목소리에 설득력이 실리는 자세였다. 

정치는 혹은 정부는 국민들의 삶과 죽음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권력은 쉽게 선을 넘기도 하는데,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제도는 진화해 왔다. 또한 제도의 진화에는 중요한 가정이 필요할 것인데, 그것이 바로 '도덕'일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세금을 받아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오로지 서비스만을 제공한다면 도덕적 기능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효과분석만 존재할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런 정부와 이런 체제를 꿈꿀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국민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살기 힘든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현실은 CEO를 수장으로 둔 시절이니 안타깝기만 하다. 참고로 효과적인 서비스 제공은 민간기업에 맡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말 그대로 효과적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악수(惡手)가 바로 한국의 현실인 셈이다.

" 통치와 상업주의가 지나치게 뒤섞이는 현상은 우려의 수준이다. 정치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면 정부 관리들은 대중문화와 광고, 오락 등을 이용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를 높이려 애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처럼 위장된 권위가 실패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확실하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하지만 국민은 고객이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단순히 국민들에게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올바르게 시행된 정치는, 국민들이 자신의 욕구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올바른지 판단한 후 그 욕구를 수정하도록 이끈다. 고객과 달리 국민은 때로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와 상업의 차이점이며 애국심과 브랜드 충성도의 차이이다." 

저자의 말처럼 국민들이 자신의 욕구를 판단하고 수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결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유의지는 반드시 정치를, 정부를, 모든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틀을 수반해야 한다.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틀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의지는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해석의 틀,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작동시킬 수 있는 해석의 틀이 '도덕'일 것이다. 이 책이 혹은 마이클 샌델이 뜨거운 까닭이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곧 '도덕'이 필요한 시절이 오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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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0-12-2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을 부르짖는 시대가 역설적으로 가장 부도덕한 시대였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웠죠. 빛과 그림자의 극명한 대립, 곧 도덕이 필요한 시절이 오리라고 한 굿바이 님의 예언은 어쩌면 맞아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나는 정의의 사자! 너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심판하겠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오를까요?...생각하면 재밌어지는데요. 저는 이 번 기회에(센델의 책의 붐을 타고) 사람들이 한발짝 더 정치에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좋은 삶이 목표인 공공의 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의 역할이 그만큼 요구되고 필요한 거잖아요. 우리 사회가 올바른 도덕성과 정치적 공간에서의 정의로 이어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데...그 넘의 냄비근성이라도 좋으니... 적어도 한번쯤은 생각을 해볼테니까요. 그 현장을 자주 목격하길 바랄 뿐입니다..ㅎㅎ

굿바이 2010-12-27 17:52   좋아요 0 | URL
다음 선거가 다가옵니다. 어느 주자가 어떤 아젠다로 깃발을 꼽을 지 궁금합니다. 판단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해야 할 텐데, 이럴 때 도덕이라는 잣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시민이 정치에만 열광하는 나라도 이상하지만, 정치의 영역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꽃도둑님의 말씀처럼 무엇의 영향이 되었건, 다들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현명한 판단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잘잘라 2010-12-2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 그러면 왠지 학교 수업시간, 교과서 제목에만 붙박혀 있는 느낌. 백퍼센트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낱말.. 뭔가 새로운 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굿바이 2010-12-29 12:55   좋아요 0 | URL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하네요.
음...도덕,말고 뭐가 있을까요? 더덕? 죄송합니다 ㅜ.ㅜ

잘잘라 2010-12-29 13:30   좋아요 0 | URL
더덕!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風流男兒 2010-12-29 17:54   좋아요 0 | URL
미더덕! (죄송해요 ㅠㅠ)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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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이 책 첫 페이지, 첫 문장이다. 글을 써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혹은 글이라는 것을 쓰려고 안간힘을 써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는 광폭의 공포가 있다면, 단연 그것은 글의 첫 문장이다. 그것은 우연이 흘러나올 수도 있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글의 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래의 여자>는 첫 문장으로 이미 손색이 없거나, 혹은 독자의 기대와 어긋나있다.  

행방불명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비밀스럽게 휴가를 떠난 남자는 해안가 사구에 이른다.  
모래땅에 살고 있는 곤충을 채집하기 위한 욕망이 그를 그곳으로 이끈다. 비옥한 땅을 포기하거나 혹은 그곳으로부터 밀려나 모래라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특이한 아웃사이더 곤충을 찾아내는 것이 이번 휴가의 목적이다. 아웃사이더 곤충 중에서도 그가 선택한 곤충은 [좀길앞잡이]이다.  

그러나 그가 만난 좀길앞잡이는 곤충이 아니라, 노인이었다. 노인은 그에게 친절하게도 길을 안내한다. 모래 구멍 속으로. 그리고 거기에는 기이한 여자가 있다. 그럴듯한 저주에 걸린 사람처럼 반복적으로 모래를 치우는 여자가 거기에 있다.   

모래 구멍 속에서, 좀 더 번듯한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던 그에게 강요된 것은 철저히 무의미한 노동이었다. 이해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방식의 노동은 그에게 탈출할 의지를 북돋지만 탈출은 쉽지않다. 불가능하다. 죽음이 아니고서는.

그곳이 어디이든 망루가 있고, 빅브라더가 존재하는 세상을 탈출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같은 소시민, 아니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래의 유동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정착하는 삶에 의문을 던졌던 그가 유동하는 모래속에 또 다시 정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답답함을 넘어 괴기스럽다. 그러나, 그 괴기스러움이 현실을 지탱하는 힘이다. 다시말해 부조리가 실존이다. 또한, 실존을 벗어나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배트맨이 지켜낼 수 있는 고담시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모래속에 갇힌 그를 구할 수 있는 배트맨, [절대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도드라진 조커, [절대악]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를 가둔 주민들은 그에게 담배도, 물도, 술도, 여자도 내어준다.  그럼에도 모래는, 그리고 그곳의 주민들은 그를 가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당신]들을 향해 끊임없이 발톱을 세우는 고만고만한 조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배트맨과 같은 존재를 기대하고 응원하지만, 우리는 우리 손으로 배트맨을 죽일 것이다. 그것이 실존이고 인간이다.

글의 결말에서 어떤 희망도 읽기 힘들다. 당연한 일이다. 모래의 여자, 모래의 남자는 모두 우리다. 따라서, 문제는 적이 아니라 체제다. 더 나아가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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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래의 여자-책부족 9월 독후감
    from 바느질하는 오후 2010-10-07 16:32 
    책부족의 독후감 동우님: http://blog.daum.net/hun0207/13291048 호호야님 향편님 : http://blog.aladin.co.kr/761379144/4163971 굿바이님 ; http://blog.aladin.co.kr/goodbye/4172306..
  2. 주홍글자-책부족의 9월 독후감
    from 바느질하는 오후 2010-10-10 19:06 
    책 부족의 독후감 동우님 : http://blog.daum.net/hun0207/13291046 호호야님: http://blog.daum.net/touchbytouch/16847419 향편님 : http://blog.aladin.co.kr/761379144/4163974 굿바이..
 
 
차좋아 2010-10-0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스토피아 세계로 보셨군요. 한가한 부락의 체계적 감시 시스템은 공포영화.ㅋ
한 소설이 이렇게 다양하게 읽히는 것도 참 재밌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구에서의 생활은 연상만으로 불쾌하죠. 모래밭을 종일 걷고 흘러내리는 모래를 퍼올리고 날리는 모래에 입 속이 서걱 거리고...웩

모래의 향편
군대 적. 모래에서 구보를 많이했는데 한 여름 땡볕, 모래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고역입니다. 모래는 한 낮의 볕에 달아올라 피부를 익힐 수 있을 만큼 뜨겁게 달아오르고, 게다가 바람마저 안부는 날이면.... 그 달아오른 소금공기를 마시며 뛰는 맛이란... 죽을 맛입니다ㅋ

수영장에서는 보통 50분 수영, 10분 뭍에서 휴식 이잖아요. 전투수영은 그 반대로
50분 모래수영, 10분 물 속에서 휴식입니다.
모래로 산을 쌓아서 그 모래 더미에 배를 깔고 허공에서 수영을 해요. 개구리처럼 다리와 팔을 허공에서 젓는 거에요. 등이 두꺼비 등짝처럼 수포가 부풀어오르고 다리나 팔이 당에 닿을라치면 사정 없이 워커 발이 날아들고... 그러다 10분 물속에 들어가면 천국이 따로 없지요 등짝이 소금물에 쓰린건 신경도 안 쓰입니다.
모래는요 그 자체로도 웩 이에요.

굿바이 2010-10-07 09:46   좋아요 0 | URL
군대에서 그런 훈련도 하셨구나.
모래수영이라는 건 상상도 안해봤는데, 짐작만해도 좀 끔직할 것 같아요.
저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또 어느 바닷가에서 자랐으니, 모래의 특성은 좀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몰랐던 부분이 훨씬~ 많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며, 좀 더 어릴적(?)에 읽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하간, 출중한 작가의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2010-10-06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7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라니아 2010-10-07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빅브라더, 망루.
이런 이미지 때문에 영화 이끼에 나오는 마을이 오버랩 되었던 소설입니다
사실 모래 벼랑 안의 집을 잘 그려낼 수 없어서
영화가 된다면 어떻게 이 집을 구상해 낼지 궁금하기도 하였어요.

오늘, 저는 이 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올렸고
그야말로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을요.

주홍글자는 이 여자가 마음에 안 들고 작가의 글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읽힙니다
이 작가가 요즘 나온 신인작가라면
어디가서 지방 신문 문학상이라도 받아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여주인공이 마음에 안 드는 걸 보니
굿바이님의 독서바이러스가 저에게도 전염이 된 듯.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뜻없음. ㅋㅋ

모래의 여자가 말한 모래 때문에 생기는 피부병을 말할 때
나는 그게 그저 작가의 상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한겨레21을 보니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의 아이들이 불결한 환경 때문에
진짜 모래벼룩이라는 곤충에 물려 손가락이 다 썩어 간다고 합니다

황당한 사건 황당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던 모래 마을이라는 것을
그저 소설적 장치라고 생각하지 않고
실지의 환경으로 생각해 보니 그 이상 끔찍할 수가 없습니다

소설속 상황은 좀 더 나았던 거죠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보다는.

굿바이 2010-10-08 11:56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런 몹쓸 병을 옮겼군요^^ 고백하자면, 주홍글자, 고문수준입니다.ㅋㅋ

아프리카 대륙, 서인도제도 그리고 중남미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모래나 흙의 오염과 각종 곤충의 출몰은 특히 가난한 국가의 어린이와 노인들에게 치명적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실은 재미없지만요, 말라리아, 이, 벼룩, 이런 해충이나 병에 관련한 신약 연구가 1% 이라면, 우울증, 다이어트, 수면장애, 노화방지와 관련한 신약 연구는 99%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병이나 죽음마저도 값이 다른 시절, 참으로 살아내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동우 2010-10-07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금동서를 통하여 시스템속에서만 존재하여야 할 인간, 환경속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의 조건.
'뫼비우스의 띠'
조세희의 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속의 '정의와 부정의'였겠지만.
모래구덩이 안팎의 뫼비우스의 띠라면 좀 더 근원적일듯. ㅎㅎ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호모 사피에스의 존재의 조건이라는.

사십이 아니된 굿바이님의 독서법으로서 당연 훌륭.
그 옛날 귀 따겁게 울렸던 실존주의의 정체, 그것으로서 읽은 나의 책읽기도 나름 개연성 충분하다는 자족 하나로.. 하하

굿바이 2010-10-08 12:01   좋아요 0 | URL
칭찬받는 일, 너무 드물어, 이리 좋을 수가 있을까요!!!!!

실존을 무시하고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절감하지만, 그 실존이 불편부당하기를 희망하는 저는 참으로 무지한 인간입니다.
조세희작가와의 비교, 쉽게 이해되는 비교인 듯 싶습니다. 역시 동우님의 독서는 따라갈 수 없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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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와장창! 깨진 유리창이 고속카메라를 돌리자 다시 창틀에 끼워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유리 조각들이 창이 있었던 공간으로 빨려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적잖은 위로를 받곤 했다.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고칠 수 있어_리플레이]같은 버튼이 존재할 것만 같아서였다. 물론, [고칠 수 있어_리플레이] 버튼이 언제 내 앞에 나타날지, 죽은 뒤에도 나타나지 않을지, 모든 것이 그저 나의 환각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데 레온 가족 -오스카, 롤라, 벨리시아, 아벨라르, 재클린, 아스트리드, 라 잉카-의 삶, 옴짝달싹하면 끝장나고, 옴짝달싹안해도 끝장나는 삶을 넘겨다 보며, 나는 계속해서 [고칠 수 있어_리플레이] 버튼을 찾고 있었다. 그들의 어느 시절, 그날의 어느 현장에 짜잔~하고 나타나서, 그들의 황당한 얼굴에 웃음으로 답하며 리플레이 버튼을 눌러 주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다고 할까. 그런데,

"롤라가 말했다. 우리 모두가 천만 명의 트루히요야." 

롤라가 말했다. 우리 모두가 천만 명의 트루히요,라고. 그렇다면 천만 명의 트루히요(이 인간은 어떤 역사학자나 저술가도 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을 정도로 궁극적인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우리의 사우론이자 아론, 다크사이드였고, 과거에도 앞으로도 영원할 독재자였으며, 너무나 기이하고, 너무나 변태인 데다 너무나 무시무시해 SF소설 작가가 지어내려도 지어내기 힘든 인물)가 뭔가 어긋나고 불리해지는 대목마다 리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세상은 과연 아름다울까. 알 수 없다. 아니, 어떻게든 기가막힌 세상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니, 어쩌면 완벽한 지.옥!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리.플.레.이! 그것이 어쩌면 데 레온 가족을, 데 레온 가족을 있게 한 또 다른 가족들을, 그 가족들을 있게 한 또 다른 가족의 선조와 선조들의 잠자리들을 염병할 저주, [푸쿠]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고칠 수 있어_리플레이] 따위를 꿈꾸는 나는 틀렸고 빌어먹었다. 나 역시 트루히요니까. 이웃을 밀고하고, 비밀경찰이 되어 철봉을 휘두르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나 역시 트루히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저주라고 말하겠지. 난 삶이라고 말하겠다. 삶이라고." 

롤라가 말했다. 어떤 이들이 저주라 말하는 것을 삶이라고. 그래, 그건 삶인지도 모른다. 리플레이!라고 외칠 수 있지만 리플레이 할 수 없는 것, 자신의 선택이건 주어진 것이건 꼼짝없이 살아내야 하는 것, 살아낼 사람은 꼭 살아내야 하고, 또 다음을 살아낼 사람도 살아내야 하는 것, 그것을 저주가 아니라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옳다. 벨리시아가 사탕수수밭에서 죽도록 구타당했지만 죽지않고 디아스포라가 되었던 것은 롤라와 오스카가 태어나기 위해서라는 것, 그렇게 태어난 롤라와 오스카는 죽도록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지만 또 그렇게 꼼짝할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오스카의 짧고 놀라운 삶이 또 그렇게 사탕수수밭에서 끝장났지만 그 꼴을 다 보고도 남은 사람들은 살아내야 한다는 것, 어떤 이들은 그것을 저주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삶이었다. 피가 흐르고 갈비뼈가 부러져도 살아내야 하는 것, 리플레이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런 것 따위를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것은 삶이었다. 따라서,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천재적인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니다, 오히려 동감할 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 권의 소설이 아니다. 인쇄된 활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뜨겁고, 가공된 이야기라 하기에는 인정하기 싫지만 너무 흔하다. 저주는 도처에 널려있고, 그것이 삶이라면, 널려있는 저주 만큼의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는 그저 소설일 수 없다. 찌질하거나, 분노하거나, 아름답거나, 뚱보이거나 한 누군가의 삶이다. 그렇지만, 또 한 편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한 권의 놀라운 소설이다. 나는 그것을 책의 마지막에서 엿본다. 그것은,  

"그는 이렇게 썼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오스카가 말했다. 이토록 아름답다고. 삶이 젠장! 이토록 아름답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의 찌질이 오스카는 삶을 놓았다. 사탕수수밭에서. 카리브해 열대에 위치한 달콤한 사탕수수밭에서. 삶으로부터 파이어!

이쯤되면 이것은 그저 소설이 아닌 소설이다. 꾀지지한 수도꼭지에서 철철 나오는 물처럼 놀랍고 능청맞은 소설이다.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소설이다. 오스카이도 한, 롤라이기도 한, 벨리시아이기도 한, 아벨라르이기도 한 독자들을 뜨끔거리게 하고, 웃게 하고, 결국 울리는. 그러니,  

나는 이렇게 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얄미운 소설을! 이 얄미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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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2010-09-30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에 나온 트루이효가 도미니카의 유명한 독재자가 맞나요? 그렇다면 얼핏 정치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용. 궁금하네요.

굿바이 2010-09-30 22:49   좋아요 0 | URL
네, 이분이 그놈(^^)이 맞습니다. 트루히요와 관련된 책도 꽤 많이 나와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번역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정치적이라면 정치적인 소설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그런 색을 띄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블리 2010-10-0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니 서재에서 내가 읽은 책 얘기가 나오니 좀 놀라워서 글 남겨요.
전 너무 모르는 세계인 도미니카 얘기라, 그 역사도 잘 몰라 방황하며 읽었는데 언닌 멋지게 정리했네요. 아무튼 이 책의 백미가 마지막 오스카의 깨달음 부분인건 확실한 듯. '화이어' 그 끝까지, 끝 이후의 글까지 찌질하지만 멋진 놈이었음. 짧고 놀라운 삶 맞음, 정말!

굿바이 2010-10-04 09:52   좋아요 0 | URL
그래? 블리가 읽은 책을 내가 안읽은거겠지, 암만!

찌질하지만 멋진 놈이었어. 어쩌면 찌질하지않은 그냥 멋진 놈일 수도 있고.
철들자 뭐한다고, 가끔 그런 깨달음이 내게도 올까 싶고, 그런 깨달음과 함께 저세상으로 가겠구나 싶고, 그래도 이왕이면 뭔가 아하~ 하는 탄성과 함께 이 세상 뜨면 좋겠다 싶어.

허리는 좀 어때? 날이 추워져서 걱정이다.

동우 2010-10-05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방금 트루히요를 검색해 보았더니, 굉장한 괴물이었군요.
"우리 모두가 천만명의 트루히요야."
이것도 굉장한 세리프입니다만, 굿바이님.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이 몇 소절의 세리프는 굉장한 감동입니다.

"고칠 수 있어" 리플레이같은 버튼이 존재할 것만 같은 누군가의 굉장한 생각, 이 소설 되우 재미있는 소설일거라는 확신.
그보다

굿바이 2010-10-06 09:26   좋아요 0 | URL
트루히요를 검색해 보셨어요?
역사를 탈탈 털어서 나쁜놈 줄세우면 랭킹 5위 안에는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아주 막강한 분이죠.

[고칠 수 있어_리플레이]버튼이 존재한다면 정말 제 인생에 두 장면 정도는 고치고 싶습니다. 물론 어림없는 일이고, 무지한 발상이지만 말입니다.
여하간 이 소재로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멜라니아 2010-10-0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ttp://blog.daum.net/namu-dal/15961784

여기 보세요
굿바이님, 긴급명령 떨어졌습니다
작전 수행 후 결과 보고 요망

굿바이 2010-10-06 09:26   좋아요 0 | URL
네, 확인했습니다.
 
테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5
토머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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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에너지를 측정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실험실 안에 낭만적 사랑에 감염된 두 남녀를 몰아넣고 현실적으로 이용가능한 장치를 모조리 사용해, 그들의 육체와 정신이 뿜어내는 기이한 기운들을 납득가능한 무엇인가로 치환해서 읽고 싶었다. 물론, 이런 결심이 자다가 일어나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이 어리석고 기괴한 실험을 하고야 말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는, 매번 누군가, 친구건, 선배건, 후배건, 내가 권장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말리기까지 한 연애로부터 고통받고, 그 고통을 나와 함께, 유독 나와 함께 나누려고 할 때,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때마다 나는 귀찮음을 넘어 매번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사랑따위가 실제하느냐? 실제하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얼마나 대단하냐? 그것이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에너지냐? 4천만의 사랑 에너지로 원자력 발전소 하나는 갈아치울 수 있냐? 뭐, 이런 비아냥거리는 물음을 달고 살았었다.  

그렇지만, 고백하자면, 난들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홍역처럼 무덤까지 따라간다는 그 사랑, 낭만적인 사랑의 기운을 피할 수 있었겠는가. 또 다시 고백하자면, 내앞에서 오만가지 추태를 부렸던 녀석들보다 그 끝이 난들 우아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는 정도와 할 수 없는 정도까지 땡겨와서 철저히, 누구보다도 나를 괴롭혔다.  

여튼, 이 책의 주인공, 테스, 그녀를 내 무릎에 올려놓고, 나는 낭만적 사랑에 대해 곱씹었다. 그냥 사랑도 아닌 낭만적 사랑! 자, 그럼 그냥 사랑이 아닌 낭만적 사랑이란 무엇인가? 여러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중에도 으뜸은 [나와 온전히 결합할 수 있는 타자가 이 지구상에 오직 한 사람만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낭만적 사랑은 지구를 탈탈 털어 나오는 단 한 사람과 오직 한 번만 나눌 수 있는 기가찬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오호~ 이런 무자비한 환상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마도 신화려나, 여튼 정확한 근원을 알 수 없으나, 이런 환상이 어떤 바이러스 보다 무섭게 떠돌고 있음은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낭만적 사랑의 결실을 결혼이라고 단정짓는 철딱서니 없음 역시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흠결없는 사랑, 낭만적 사랑을 지향하는 마음은 낭만이라는 단어로는 도무지 연상할 수 없는 무자비함을  품고 있다. 그것은 평생에 단 한 번 오직 그대여야 한다,는 미명하에 타자의 어떤 결함도 인정하지 않는 옹졸함과 유치함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나는 서로에게, 특히 여성에게 부과되는 순결에 대한 강박이 이 유치함과 맞물린다고 본다. 그러니, 낭만적 사랑을 꿈꾼 클레어가 테스의 고백을 듣고, 그렇게나 싸한 얼굴로 그녀를 떠난 것을 어찌 이해할 수 없겠는가. 그의 유치함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오히려 테스옆에 달라붙어 본인도 죽이고, 그녀도 죽이는 진상을 떨지 않고 일찌감치 짐싸서 떠나는 클레어에게 내심 박수를 치고 싶었다. 1라운드만 하고 끝내는 것, 그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기에 말이다. 

이제 알렉을 보자. 알렉은 모든 독자에게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갖고 싶은 여인을 강제로 취했고, 어느 정도 애원은 했다고 하지만 방치했고, 뒤늦게 나타나 다시 그녀를 자신의 삶에 끌어들여 테스를 죽음으로 인도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알렉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럴 수 있다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고, 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누구나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그것 자체가 열병이고 변덕스럽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인데, 사랑에 자꾸 도덕적인 무엇을 부과하려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책임졌단 말인가. 사랑이 연애로, 연애가 결혼으로, 결혼이 부부를 만든다는 공식은 적어도 19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도식이다. 오히려 그렇게 한 번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고 나를 온통 책임져 달라고 말하는 것이 염치없는 짓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순결을 거래하게 만드는 일은 아닐까 싶다. 뭔가 그 정도의 희귀한 상품쯤은 내주어야 내가 너를 평생 구제하겠노라. 뭐 이런. 

어쩌다가 이렇게 삐딱한 마음을 다 털어놓는지 나도 모르겠으나, 나는 알렉도, 테스도, 클레어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알렉은 끓어오는 열병으로서의 사랑을 어찌 할 수 없었고, 테스는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클레어가 더 좋은 것 같기는 하고, 클레어는 낭만적 사랑에 드리워진 흠결을 참을 수 없고.  

물론 작가가 테스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사랑만은 아니다. 종교, 사회, 교육, 자본, 노동자 계급에 대해 조목조목 건드리면서 끊임없이 아젠다를 던져주려고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끊임없이 테스의 아름다움을 부각하는 이유는 정녕 모르겠다. 아름다움이 무슨 희귀한 병도 아닌데, 그것이 비극을 이끌어낸 단초나 되는 것처럼 집요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안쓰럽기 까지 했다. 21세기,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은 순결에 대한 강박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이 더 심한 시절이다. 그런데 이런 고전, 지푸라기를 뒤집어 쓰고도 눈부신 아름다움이 있다고 노래하는 이 책, 아~ 이 책을 어쩌란 말이냐. 나는 무엇보다 테스의 아름다움이 목놓아 싫었노라고. 심지어 그 부모보다 싫었노라고 외치고 싶다. 아름다운 것은 이미 지상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불량스러운 암시.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천수를 누릴 것 같은 나의 삶은,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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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월의 책 &lt;테스&gt;-여성 순결에 대한 끈질긴 요망
    from 바느질하는 오후 2010-07-28 11:09 
    ◈ 7월의 책, 테스, 책부족의 독후감 호호야님 :http://blog.daum.net/touchbytouch/16847401 동우님: http://blog.daum.net/hun0207/13291038 굿바이님: http://blog.aladin.co.kr/go..
 
 
베티 2010-07-2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 천수를 누릴 것 같니? 우리 오래~살자!(미안 :D)

굿바이 2010-07-28 13:29   좋아요 0 | URL
닥치시오!!!! ㅎㅎㅎ

멜라니아 2010-07-28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생각하기로 아름다움은, 테스의 아름다움은 나스타샤킨스키 정도를 배역으로 정할 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사랑에 대한 일편단심에 있었다기 보다
사랑하고 몇 년 안 되어 빨리 죽었기 때문이라고 ... 이렇게 말하면 욕먹겠지요?

테스가 살았던 삶의 시간보다 두 배는 더 길게 살아가고 있는 저로서는
이이코, 제 삶에 아름다움 있어요, 제 사랑에 아름다움 있어요 할 수가 없어요
스무살 연애시절에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올라가는 배칸에서
바다로 뛰어 내렸던 연애라도 했어야 하였거늘
그때 그 나쁜 남자가 너무나 나쁜 남자라서 혼자만 그 바다 속에 수장 시키고
도망치다가 역시 잡혀 가지고 죽었으면 모를까
아니면 또 그외 여러 가지

여자팔자 뒤웅박팔자로다가 살다보니까 테스를 보고 있자니
괜히 제 자신 매우 비순수한 사람 같아져요
불쌍한 테스는 있고 악바리같이 살아있는 나는 그럼 모야모야!

굿바이 2010-07-28 14:58   좋아요 0 | URL
나스타샤킨스키!!!!! 우와~ 예전에 이 여배우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분을 알았어요. 그때 그 분이 제게 했던 말 "이것은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아이러니고, 긴장이며, 불가능에 관한 것이다." 한 명의 여배우를 두고 이런 빌어먹을 말을 했던 선배는 지금.... 사람과 결혼하여. 사람을 둘이나 낳고, 잘 살고 있답니다. :D

멜라니아님, 바다로 뛰어들긴 왜 뛰어듭니까요? 윤심덕양이랑 김우진군은....여튼 그렇게 안하신건 잘하신 겁니다. 지금 얼마나 보기좋게 살고 계신데요.

순수,라는 것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테스가 딱히 순수한 여인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시절이 그러했으니 그럴 수 있었던 것이겠죠. 그렇게 교육받고, 강요당하고 그러면 누군들 그러지 않겠어요.



백호 2010-07-2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에밀님의 블로그를 최근에 알게 되어 RSS-ing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네요. 행복하시길.

굿바이 2010-07-28 14:58   좋아요 0 | URL
아~ 도움이 되신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pjy 2010-07-28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5학년때 읽고는 그뒤로 전혀 다시읽기를 안했던 책인데...지금과 그때의 감성은 다르겠죠?설마^^; 아무래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굿바이 2010-07-30 10:41   좋아요 0 | URL
느낌이 굉장히 다르실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lo초우ve 2010-08-08 22:05   좋아요 0 | URL
저도 초등학교 4학년때 읽어보고 그 후로 전혀 생각을 못했던 책이네요..
우연히 들어왔다 댓글 남겨요
덕분에 저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

hohoya 2010-07-2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렉이 요즘 말하는 나쁜남자에 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알렉이 엔젤보다 표현방식이 거칠긴해도 그나마 세상의 단맛,쓴맛 다본 현실적인 사람이니까 오히려 더 좋은 남자라고도 생각했고요.
그르고 보니 테스의 나이가 한참 어렸겠군요,우리 아줌마같이 생각하고 느끼기엔 그녀가 한참이나 어렸겠어요.그녀의 나이에는 겉으로 보이는 상냥한 표정과 말씨에 우선 마음이 갔겠군요.

나스타샤 킨스키의 테스를 꼭 보고 싶어요.
조만간 dvd를 지를 듯..

굿바이 2010-07-30 10:43   좋아요 0 | URL
아~ 나쁜 남자....
요즘 그런 말이 유행하는 건 저도 알고 있는데, 왜, 나쁜 남자에 열광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게 관념상으로 그럴 것이다 하는 이미지만 있는 거겠죠? 실제로 나쁜 남자랑 살아라 그러면...좀 다를텐데.
저는 착한 사람이 좋아요. 그것도 저한테만 착한 사람이요. ㅋㅋㅋ

hohoya 2010-08-05 21: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게 바로 나쁜남자의 매력이랍니다.
모두에게 나쁜남자인 그 남자가 오로지 한사람-나에게만 착한 왕자님이 되어 주는 것.

웽스북스 2010-08-07 01:10   좋아요 0 | URL
그것이, 개념이, 잘생기면 나쁜남자 못생기면 나쁜놈이래요. 하하하.

동우 2010-07-30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설 한편 읽고난 느낌의 글조각들.
곰곰 읽어보면 내 생각과 그닥 다른바 없지만.

아, 굿바이님은.
구사하시는 언어랑, 표현하시는바 문장의 구조랑..등.
전에도 한번 굿바이님께 써 먹었던 말이지만.
그냥 "발칙합니다."

추장님도 글꾼 될 것이고, 굿바이님도 필경 글꾼 될겁니다.
그 예리한 감각들이나 잃지 마시기를.

굿바이 2010-07-31 02:43   좋아요 0 | URL
발칙한 굿바이로 아이디를 바꿀까요?ㅋㅋ

동우님처럼 좀.... 너그럽고, 넉넉해지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항상 남들에게는 태도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저는 정작 불량한 태도로 사는 것 같아요. 그게 글에도 그냥 들어나구요.

언제나 사람이 되려는지, 아니 언제쯤 어른이 그것도 멀쩡하고 넉넉한 품이 있는 어른이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는 일이 참...부끄럽습니다.

멜라니아 2010-07-31 12:3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
제가 보아하건대
허리가 가는 사람이 넉넉해지긴 쉽지 않을 것 같고
배둘레가 표준치를 넘어가면 인격이 나왔다는게 거짓말이 아닌듯 합니다
제 옆 사람을 봐도 그렇고 동우님을 봐도 그렇고..
앗. 이러면 동우님께 너무 솔직한????

차좋아 2010-08-08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소설을 읽는 듯... 사랑의 측정이라니 음 난 그런 생각을 한적 있었나? 생각은 안했는데 말로는 떠들었던 것 같고(저는 생각보다 말이 앞서서 ㅋㅋㅋ놀라운 능력~)

알렉이 생각만큼 나쁜 놈은 아닌 것 같긴 합니다. 어린 테스를 범해 테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거야 큰 잘 못이지만, 그것과 별게로 그 이후 분명하게 제안하고 분명하게 행동한 모습에서 그도 에인절 못지 않게 테스를 사랑했다고 여겨지네요. 다만 테스는 알렉을 싫어했지요.(어쩔 수 업시 그게 제일 중오하긴 합니다.)
교훈: 나 싫다는 여자 쫒지 마라. 그러다 죽는다.

테스의 부모보다 테스의 아름다움이 싫었다니... 그 지점에서 내가 아는 굿바이님을 분명히 만나네요 ㅎㅎ 난 예뻐서 좀 좋았는데 ㅎㅎㅎ

굿바이 2010-08-09 12:53   좋아요 0 | URL
차좋아님의 교훈 짱이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 싫었을까요? 생각해보면, 저도 참 싫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유도 가물가물하네요^^

그나저나 들켰어요. 저는 예쁜 여자 다 싫어요. 막 싫어요. 이건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저의 분노죠. 할 수만 있다면 조선팔도에 독사과라도 풀었으면 좋겠어요ㅋㅋㅋ 저 잡혀갈 것 같아요.

차좋아 2010-08-09 18:10   좋아요 0 | URL
앗 오해에요 오해!! 내가아는 굿바이님=이쁜 여자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 이건 아니구요~~~
이쁨만을 무기로 삼는 또 그것이 통하는 사회를 싫어한다 이 말인데,,,, 맞죠?? 알면서 왜 독사과를 풀고 그래요~ㅋㅋ
 
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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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언어와 만나면 몸이 먼저 긴장한다. 종종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행지에서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가 되곤 했다. 그렇게 낯선 언어는 나의 자존감쯤은 우습게 깔아뭉겠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주는 희열도 있었다. 타국의 언어를 감각으로 읽어내는 즐거움, 언어와 감각이 내밀하게 교차하는 지점을 알아채는 희열. 그렇지만, 희열의 순간은 짧고, 긴장과 무기력은 길었다. 마누엘 푸익의 언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렇지만, 작가의 언어가 낯설었다는 주장은 위증일 수 있다.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몰리나에게 나 역시 귀를 쫑긋 세웠고, 영화 이야기 중간중간 자신의 욕망을 재배치 하는 몰리나의 순진함에 깔깔거렸으니 말이다. 덧붙여 영화 속 주인공의 복장을 설명하는 부분들, 예를 들면 " 쟁반에 유방을 담아 갖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드레스 말이야" 와 같은 대목에서는 박장대소했다. 튜브 드레스를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할 수 도 있구나 싶었다. 또는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구두쇠야. 그런 사람은 자기 것을 주는 것도 싫어하거든"이라는 구절에서는 뜨끔을 넘어 화끈거렸다.  

또한 소설의 구조를 들여다 보면, 고립된 장소, 억압당하는 신분, 암울한 시대 상황, 그리고 비연속적인 요소들(등장한 영화들)이 중심 인물과 시간의 전개과정에서 구체화되고 삶의 문제들과 관계를 맺는 구조는, 거미줄처럼 유연하고 탄탄했다. 그러니까, 독서가 좀 심드렁했어요, 뭐 이렇게 풀 죽은 척 하는 것은 거짓이다. 차라리, 거미여인의 거미줄에 아뿔싸! 붙들렸는데, 왜 제가 거미여인의 먹이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도가 솔직한 심정이리라.  

솔직해 졌으니, 좀 더 이야기 하면, 나는 몰리나의 성적 취향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문적 지식은 아니더라도, 책에 언급된 몇 몇 정신 분석학자의 글도 이미 읽었고, 퀴어와 관련한 소설이나 영화도 여러 번 접했던 터라, 놀랄 것도 대단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몰리나가 [여성적인 것]이라 말하는 것들과 발렌틴이 [해방]이라고 언급한 대목에 더 마음이 쓰였다. 특히, 발렌틴 스스로 사회주의자요, 해방을 논하지만, 몰리나의 욕망이나 몰리나가 소개하는 대중문화를 억압하는 부분은 답답했다. 작품이 주는 답답함이 아니라, 실존이 주는 답답함이다. 더 나아가 그런 발렌틴의 의식이 몰리나의 헌신적인 태도(사랑이라고 쓰려니 좀 그렇다)에 의해 바뀌는 모습도 못마땅했다. 작품이 어깃장을 놓는 게 아니라, 헌신이나 희생으로 깨닫는 그 무엇, 요즘 표현으로 꽃이 지니까 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그런 고백들이 오버랩 되어서 못마땅했다.   

결국, 책을 읽는 시절에 부아가 돋는데, 눈흘김은 책에 보낸 셈이다. 사람 덜 된 것은 뭘 해도 이모양이다. 기약없지만, 시절이 좋아지면 다시 한 번 읽을 예정이다. 배배 꼬인 심사가 풀어지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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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부족 5월의 책 - 거미여인의 키스
    from 바느질하는 오후 2010-06-03 02:41 
    책부족 독후감 호호야님 : http://blog.daum.net/touchbytouch/16847377 쟁님 : http://blog.daum.net/zanygenie/52 동우님: http://blog.daum.net/hun0207/13291033 굿바이님: http://blog.aladdin.co.kr/good..
 
 
hohoya 2010-06-0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굿바이님의 독후감도 독후감이지만 태그가 더 멋져부러요.
사랑은 몰라도 선거는 해야죠.
그래야죠.
그 투표는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정치범 발렌틴을 위한 것이고 성적소수자인 몰리나를 위한 것이기에 내일 투표를 하러 갈 겁니다.

투표장에 부부가 따로따로 가거나 서로 먼산만 바라보다 도장을 어디에 찍을지 몰라 허둥댈까봐 멜라니아님 충고대로는 못할 망정 어쨋든 화해를 했답니다.
오로지 투표를 위해서 말이지요.

이 거미여인의 독후감을 쓸 당시 냉전중이었기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이제 화해도 하고 여유를 되찾고보니 다른 분들의 독후감이 더 잘 들어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왜 위대한지 몰랐고 사실 지금도 일말의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아마 영화에서는 더 잘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책뒤의 해설이 없었던들 그저 시시하다고 느꼈을런지도 모르겠어요.

굿바이 2010-06-03 14:00   좋아요 0 | URL
투표도 하고, 기도도 하고, 밤도 세웠는데, 어쩔 수 없음에 어쩔 수 없어하고 있습니다. 몇 몇 지인들과 통화를 하고, 결과 이후의 정국을 가늠도 해보지만 답답한 마음이 쉬이 풀리지가 않네요.

저도 거미여인은 영화로 볼까 생각 중이예요. 그리고 나자리노도 다시 찾아보려구요.^^

차좋아 2010-06-0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귀가 쫑끗 나도 나도 ㅋㅋ
사실은 더디게 읽었는데도 그래도 너무 재밌었어요.
거미여인의 거미줄에 걸린 기분마저도 좋더라고요.

저는 발렌틴의 의식이 몰리나의 작업(사랑이라고 하려니 좀 그렇네요ㅋ)에 넘어간 설정이 너무 좋았어요. 의식보다는 실존의 관계가 더 절박하잖아요^^

영화도 보고 싶네요. 저는 이야기가 궁금해 주석은 하나도 안읽었어요. 책 읽고 나중에 읽으려 했는데 지금은 또 마음이 안나네요~~

굿바이 2010-06-03 13:56   좋아요 0 | URL
몰리나의 작업에 혹시 향편님이 넘어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ㅋㅋ

사실, 그럴 수 있죠. 내가 좀 불편했던 것은, '희생'이나 '헌신'이런 것들일 꺼예요. 물론, 희생이나 헌신이 나쁘다는 게 아니예요. 나도 기꺼이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걸 다 정치적이라고 하는 건 아니예요. 그냥, 몰리나 스스로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성적인 것에 집착하는게 안쓰럽다고 할까요...

차좋아 2010-06-03 23:25   좋아요 0 | URL
넘어가고 싶었던게 아니라 넘어갔었어요 ㅋ

딱히 여자라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래 알았어 너 여자야~'하는 정도가 적당할 거 같네요. 세상에 둘 뿐이기도 하고요 ㅎ
발렌틴은 나중에 아주 폭 바진 듯 했지만, 그것도 그럴 수있겟다 싶어요. 어짜피 잘 모르니까...

동우 2010-06-02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몰리나의 성적취향에 관심없다는 굿바이님.

자존이 강하셔서 늘 그러시지요. 짐짓 스스로를 폄도 하시면서두루. ㅎㅎㅎ

그러면서도 적확한 지적.
'여성적인 것'과 '해방'

헌신이나 희생으로 깨닫는 그 무엇, 그 상투성이 싫으신 굿바이님.

책부족 굿바이님 없었더라면 팥고물없는 찐빵...
하하하

멜라니아 2010-06-03 02: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팥고물이 맛있는 찐빵.
민정이 와서 극찬했던 찐빵, 그 이름 인화당 찐빵을
서울의 굿바이님에게 보내 주고 싶은 후추장임다. ㅎㅎㅎ

굿바이 2010-06-03 13:09   좋아요 0 | URL
저 찐빵 완전 좋아해요, 헤헤^^

동우님,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 타인의 취향까지 신경쓰기에는 제 삶이 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같아요. 청룡열차 만큼요.

그리고 또 고백하자면, 저는 대중의 천박함이 싫어요. 그 무지함도 두렵구요.그래서, 대중을 향해 외치는 '해방'이 혹은 스스로 부르짖는 '해방'이 단어 그대로 읽히지가 않아요. 만약, 그것을 글자그대로 믿었더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았을 겁니다. 지금보다 더 어리석은 모습으로요.

아참, 저는 자존감 없어요. 뭔가 오해라구요!!!

추신: 다음에 뵈면 다들 찐빵먹어요~ㅋㅋㅋ

멜라니아 2010-06-03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쟁반에 유방을 담아 갖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드레스 가 튜브 드레스 라고 해요?
독후감을 읽다 보니 독서 내내, 제가 그 거미줄에 안 걸리려고 심드렁하니
책부족 숙제라서 걸린 척 한다는 태도였다는 걸 알겠어요
동우님이 독후감에서 다시 보는 문장은 분명 읽었던 것임에도 제 기억에 희미해져 있었고
튜브 드레스 이야기도 그래요.

그러니 저는 영 딴짓처럼 튜브 드레스를 상상하면서
그런 옷을 어떻게 하면 만들어 볼까 입어 볼까 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어요.

또한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구두쇠야. 그런 사람은 자기 것을 주는 것도 싫어하거든"이라는 구절에 밑줄을 긋고 싶은 것은
요새 새롭게 느끼는 바이고 하니, 책읽기 보다 독후감 읽기에서
이 책부족의 읽기는 더 흐믓하기까지 합니다.

거미여인은 지나갔고, 오늘 이 댓글을 쓰는 시간은 선거방송이 거의 끝마무리에 와 있는 떄인데
저는 발렌틴에는 동조하지 않더라도
게다가 민주 운동 같은 것엔 몸 담아 본 적도 없으면서

제가 찍은 사람이 도지사가 되어서 무척 기쁜 시간입니다
그를 응원하기 보다는 안 될 사람이 되어선 안 되기에
제 표를 라이벌인 그에게 주었던 바인데
선거 마지막 까지 제가 위험하다가 생각했던 사람이 계속 우위에 있자
이명박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한국의 대중이 싫어졌던 것처럼
이번에도 제주도민을 싫어할 마음을 먹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새벽 1시가 넘어 역전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눈을 의심하다가 2시가 되어서는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할 정도가 되었고
지금은 축하의(되어선 안 될 사람이 낙선한 것에 대한) 축배를
함께 들어 알딸딸한 상태입니다
매우 기분 좋습니다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몰리나이지만
그가 걸어놓은 상상의 거미줄에 들어가 행복해지고 싶은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굿바이 2010-06-03 12:57   좋아요 0 | URL
제가 사업이 좀 피면, 예쁜, 그리고 우아한 튜브드레스 선물해 드릴께요.^^

제주도 개표사항을 보면서, 멜라니아님이 떠올랐습니다. 참 답답하시겠구나 싶었는데, 막판에 역전이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당선자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투표는 "누군가를 당선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부적격자를 떨어뜨리기 위해 행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시면 어떨지 싶습니다.

뜬눈으로 보낸 밤입니다.
아쉬움도, 어슴프레한 희망도, 단단히 버티고 있는 절망도 보았습니다.
2년 뒤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그때는 지켜보는 사람에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신할까 합니다.

멜라니아 2010-06-04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사업이 좀 피면, 예쁜, 그리고 우아한 튜브드레스 선물해 드릴께요.^^

모두 이 말을 기억했다가 오리발 안 나오게 하십시다 ㅋㅎㅋㅎㅋㅎ
저는 드레스 값을 빵으로 때우기로 할까요? ㅎㅋㅎㅋ

어제 시청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청이 평평하고 안전하고 사람들이 착하게 살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아마, 제가 떨어뜨리고 싶었던 현 후보가 당선 되었다면
저ㅡㄴㄴ 시청에 걸어다니는 사람, 버스에 타고 가는 사람, 운전을 하는 사람
가게를 연 사람 ... 모두
저것들이 그 사람을 찍었단 말이야? 하면서 씩씩거리고 종내는
집에서 4년동안 안 나가려고 다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서울 시장은 아마도, 오세훈 씨를 좋아해서 찍고 한명숙씨는 좋아서 찍었다기 보다는
한명숙 씨에 비해 오세훈 씨 쪽이 분명하게 제시하거나 이익이 될 것 같은 인물이었다는 것에 비해
한씨 쪽은 불투명하고 원론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난 번 대통령 후보일 때 나와서 이야기 할 때도 그 점이 아쉬웠는데
사람 좋은 거 하고 정책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은 다르니

다음 대통령 선거엔 다른 인물이 민주당 후보여댜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ㅎㅎ
그리고 경기도 쪽은
유시민 씨가 좋아하는 쪽 그에게 기대하는 쪽도 많지만
그만큼 안티도 많이 거느리고 있어서.. ㅎㅎ
저도 유시민 씨 안 좋아하거든요. 정신은 좋을지 모르나 리더는 아니다고 봐요

멀리서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평가를 해 보는 겁니다

제주도에선 일단 안심입니다
아주 진보적이진 않아도 명예를 걸고 이번만 도지사를 하고 물러나겠다고 했으니
무리하게 나가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굿바이 2010-06-07 11:41   좋아요 0 | URL
오리발,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까이껏~ 뭐든 좀 풀리면^^

오세훈씨에게 현직 프리미엄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문제는 잘 배우고 잘 자란 분인데, 좀 느긋하고 차분하게 행정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죠. 개발 논리도 다 나쁜 것은 아니니까, 어떻게, 누구를 위해, 그리고 향후 발생가능한 일들을 다 고려해서 진행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한명숙씨도 행정은 잘 하리라 판단됩니다. 그렇지만, 좀 더 준비하고 고민했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한명숙씨의 인격을 믿고 투표를 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유시민씨는 이번 일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꼭 그래야 하구요. 그리고, 전화위복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라 믿구요. 고정관념 속에 존재하는 리더의 모습은 아닐 수 있겠지만, 새로운 리더의 모습을 제시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이번 결과는 그를 더욱 뼈아프게 해야 합니다.

토깽이민정 2010-06-05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수업시간에 읽었던 에세이 중에, 미국 여자동성애자가 미국내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여성과 남성간에는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일반인이 동성애자를 곁눈으로 보고 손가락질하는 것과는 달리 동성애자들사이에서도 남자들이 여자들을 자신의 아래에 있는 존재들로 본다라고 하는 글을 읽었었거든요.

억압을 받는 사람들끼리든, 혹은 해방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든
어디서든 또다른 억압이 존재하는 현실에대한 풍자.

저도 발렌틴의 '넌 아무것도 모르니 내가 가르쳐주는 것이 맞는 거야'하는 태도는 눈에 참 거슬렸어요. 몰리나가 스스로를 낮추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랄까.
그런데도 발렌틴이 결국 몰리나의 거미줄에 얽히는 결말이 웃기죠. 그런면에선.

몰리나의 헌신의 승리로 볼 수도 있지만,
순진하고 유도리없는 발렌틴이 '제꾀에 제가 당했다'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에요.ㅎㅎㅎ

굿바이 2010-06-07 11:29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뭔가 그들만의 연대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네. 미국은 드러난 숫자가 훨씬 많으니까 사회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근거가 더 많을텐데, 한국은 아직 미흡하다 싶어.

나는 몰리나의 헌신이 완전 짜증이었어. 이해하고 안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는 그 뭐랄까 헌신컴플렉스 같은 것들이 생각나서 말이야.
내 경우로 유추해 본다면, 분리불안이 원인이었던 것 같은데, 좀 나이를 먹으면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거든. 버려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려면 뭘 어찌해야 하는지 통 모르겠다.

그러니, 몰리나의 징징 엉기는 그 모습이 좋아 보일 수 없지, 나도 계속 저렇게 사는 건 아닌가 싶어서, 이건 화를 넘어 공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