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는 독감에 걸려 오늘 아니지 어제 학교에 가지 않았다. 22일에 포켓몬 신작 대개봉이라고 해서 카드 받아야 한다 해서 비오는데 무리해서 먼 영화관을 다녀온 탓인가 아니면 시험 전날 딱 하루 11시까지 공부한 탓일까 자책하다 1호네 반아이들이 이미 a형 독감으로 3명이나 결석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밤새 1호는 뒤척이며 괴로워하며 나 이러다 죽을 거 같다고 하며 날을 샜다, 나도 안타깝지만 딱히 할일이 없어 이런저런 책을 보며 주물러 달라고 하면 주물러 주고 물 먹여주고 그랬다. 이젠 어디 아픈지 말할 수도 있고 열도 38-39도 사이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냥 미친듯이 독감 종류 검색하고 타미플루 부작용을 검색했을 뿐이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결국 독감 판정 받고 학교 쉬고 해열제만 먹이며 쉬었다. 죽 조금 먹고 자고 공기계로 포켓몬 검색해서 누워서 보다 보노보노 보다 동생 기다리다 동생 와서 놀다 지금은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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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재우다 같이 9시에 잠들어 나와보니 <도깨비>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평일에나 볼까 했더니만 이런 행운이!
드문드문 봐서 어느 회인지 모르겠으나 <도깨비신부와 보물상자>도 <도깨비>에 나온다. 올해 2호 잘 때 많이 읽어준 책이다. 요즘은 2호가 눈이 많이 나빠져서 잘 자리에 책은 읽지 않고 그냥 누워 두런두런 얘기하다 잔다. 진작 이럴걸. 책을 안 읽는 애들도 아닌데 뭘 잘밤까지 그렇게 책을 읽어주었나 싶다.
드라마는 진짜 안 보려다 마늘 찧고 콩나물 다듬다가 <도깨비>를 보았다. 앞의 책에 이끌려 드라마를 보다보니 이건 뭐 공유니므 말이 안 되잖아.
계절은 딱 겨울이라 폴라티 자주 입지 긴 코트자락에 얼굴은 신비한 오각형에다 쌍커풀은 없고 눈빛은 깊은데 김고은이랑 티격태격할 때 눈빛 손짓 고개짓에 잔망잔망.
3월 초에 2호 책상 사러 가서 가구점에 붙은 화보 보며 이래서 팔리겠어 했던 과거의 나님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니? 커피프린스 보며 느끼하다 했던 몇십 년 전의 나님아 진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
게다가 애들 학교 보내고 만나는 류배우님(응팔 재방송한다. 맘아파 복습도 못하다 이제 다시 보기 시작. 열심히 일하다 류배우 장면 나오면 달려와 보기 꿀쨈)은 어쩌고.
온 나라가 샤머니즘에 사로잡힌 이들의 국정농단으로 초토화된 후 민간신앙?으로 위로받고 있다.
사고무친 천애의 고아인 지은탁이 도깨비신부이고 도깨비, 저승사자, 삼신할매 등 온갖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보살핌을 받는다.
지은탁과 김신이 메밀꽃을 들고 있던 바다를 보고 애들 어릴 때 자주 갔던 강릉이 가고 싶어졌다. 지은탁과 김신이 서 있던 메밀밭을 보니 봉평에 가고 싶어졌는데 실은 촬영지가 고창이란다. 언제 가봐야지.
광대 승천해서 보다가 딱 한 번 눈물을 찔끔한 장면은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려고 문을 연 순간 반려견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난 반려견을 키운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냥 막 뭉클했다. 내가 문을 연 순간 기다리고 있을 그 누군가가 떠올려졌다. 막 서럽고 벅차서 요나탄을 만났을 때 스코르빤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런 낭기열라에 들면 만나고 싶었던 소중한 사람들 다 만나고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고 한없이 부족한 나라는 존재는 온전해지는 걸까?
도깨비 끝나고 이어서 펼쳐든 <아무도 아닌>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 너와 내가 죽은 뒤에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안이 되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죽어서. 실리를 만날 것이다. 실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리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 도 없는 어떤 것, 어떤 상태로든 남아 있을 테고 내가 죽은 뒤, 실리와 나는 서로 그런 상태로, 그런 상태로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세계에 실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그러나 없다.
없다.
점차로 없고 점차로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그뿐이다.
황정은, <명실>, p.105
다 굳은 만년필촉을 미지근한 물에 녹이는 명실이 할머니였다니. 노트나 만년필이 필요하고 젤리를 씹는 사람이 할머니?
우리 할머니 오랜만에 나오셨네.
전에도 당혹스러웠고 다시 읽는 지금도 역시 그랬다. 잔등긁개나 접는 부채, 중절모, 양갱 등의 소품으로 우리는 노인을 한정한다.
애들 아빠 외할머니는 구순을 넘기셨다. 명절마다 방문하면 그래, 너희들이 누구?라고 하신다. 이제 할머니와 혈연관계로 연결되는 분들 말고는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혈연관계라도 아주 가까운 이들은 없다. 그 자손들 뿐. 그런데도 그 이름으로 자주 누군가를 부른다고 하신다.
나는 남았다. 얼마나 됐나. 얼마나 오래 남아 있었나.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그러실까.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잘 있지? 잘 있지?만 반복하신다. 거기 그렇게 사라지지 말고 있어 달라는 뜻으로 들려, 슬프다.
애들은 그때마다 집에 가고 싶어한다. 겨우 일 년에 한번 될까 말까 한 방문인데.
나도 그랬다. 우리 증조할머니도 구순을 넘기셨다. 난 시골집에 갈 때마다 마귀할멈이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며 울었다. 도시에서 살다 방문한 어린시절의 난 꽁꽁 얼은 자리끼와 거친 손등, 검버섯 등이 정말 낯설고 무서웠다. 고려청자빛 요강이 방구석에 놓여 있고 쥐오줌 자리로 얼룩진 천장이라는 배경도 내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그런 증조할머니도, 아빠도, 세종대왕도, 이순신(뜬금없지만 1, 2호가 천국이 있다면 만나고 싶단다)도 내 몸에서 넋이 분리되는 그 순간 만나게 되는 걸까? 그 넋은 어느 아름다운 곳으로 향할까? 아니면 온전히 소멸하는 것일까?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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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아니, 오늘이지)이고 온갖 대형교회와 성당에서 예배와 미사가 성대하게 거행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해 아들을 보내고 그 아들을 희생해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했다는 기독교의 정수는 한국인에게 얼마나 낯선 것일까?
병인박해 때부터 믿기 시작해 그 조상을 본받아 정통 신자라는 교인분 말씀을 들으며 난 그것을 실감했다. 예수님을 본받아도 아니고 병인박해 때 돌아가신 조상이라니.
평범한 신자가 기독교 사상을 서구처럼 체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건 공부하고 고민해서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