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017년의 마지막 날.
정말 특별할 것이 없는 평온한 하루여서 감사하다.
김보통 님이 추천한 <딱한번인. 생.>을 오전에 잠깐 읽은 것이 어제 나를 위해 쓴 시간이다.
왜 좋아하셨는지 알 것 같다.
평범 씨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일생을 어떻게 쓰는지 여러 수치로 나타내기도 하고, 그 사이사이 자신의 짧은 감상을 담아낸다. 쉬운 듯하면서 어렵고 가벼운 듯 하면서도 묵직한 책이다.
수필가 피천득 님이 새색시가 시집와서 김장 서른 번 하면 어느새 늙는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먹고 자고 울고 웃고 씻고 하는 걸 수량화하니 어쩐지 단촐하다.
일생 마실 수 있는 수돗물 값이 고작 8만8천 원이라니.
그밖에도 일생 먹을 수 있는 고기류인 닭 소 돼지 등도 수량화하니 참 하찮고 적다. 물론 누군가는 좀더 많이 먹기는 하겠지만 고작 그 정도 먹으려고 아등바등 사는 것이다.
내가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천국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누군가가 말했다지.
참 고운 마음, 고마운 마음.
예수님이 따로 없네.
갈수록 정말 아무것도 없을 거 같아서 이렇게 성당에 잘 못가나보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있고
솔직히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하면 많이 두렵다.
다들 '죽음'을 직면할 자신이 없어서 분주하게 사는듯하다.
다들이 아니고, 나.
바로 내 이야기이다.
'죽음'을 직면할 자신이 없어 분주하게 산다.
<소년이여, 요리하라!>는 그냥 애들 보며 읽으려 빌렸었고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은 예약 주문해두었다.
<알쓸신잡>을 끝부분만 잠깐 보았는데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추천하는 시간이 있었다.
작년에 읽은 책들 중 위의 책들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중년이 되어 부모님들은 편찮으시고 아이들 키우기도 녹록치 않은 누군가에게...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고 아이들은 아무 걱정없이 크는 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듯하다. 엄마들은 너무 힘들다보니 몇 번 만나지 않은 얄팍한 사이여도 자신의 힘듦을 가감없이 토로하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사실 속내를 잘 풀어놓는 편이 못 되고 내 힘듦을 이야기한다고 상대방의 고통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거의 듣는 쪽이다. 대개 병간호하는 이야기들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엉클어진 기억>은 성소수자이며 알츠하이머인 엄마를 두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사실 아무리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라 해도 버티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사이 감정의 유대가 적었던 가정이라면 어떨까? 이런 과정에서 인연을 끊게 된다.
허물어져가는 엄마를 기록으로 남기고 추억하는 따뜻함
닮고 싶다.
<두 여자 이야기>는 요즘 유행하는 많은 페미니즘 도서들보다 더 읽혔으면 좋겠는 그런 책이다.(물론 페미니즘 도서도 보긴 봐야 한다) 돌봄노동으로 쌓아올린 여성들의 시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병들고 늙거나 늙어서 병들거나 한다. 이런 과정 중에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생후 3년과 죽기 직전 몇 년은 꼼짝없이 식사와 대소변을 남의 힘을 빌려 처리해야만 한다. 사람은 혼자 태어나 혼자 죽는 게 아니라 태어나서 죽기까지 여럿의 도움이 필요하니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나 역시 언젠가는 약해질 것이고 막연한 그 시기가 가끔은 두렵다.
(화살기도로 가끔 죽을 복을 내려달라는 기도도 빼놓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신은 노후대비가 다 되었다고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만만해 하던데 얼마나 입바른 소리인지 나중에 깨닫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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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누구나 충분히 예뻐해주고 있으니 노인 분들에게 좀더 잘해야겠다, 는 작은 다짐도 해본다.
오늘 도서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본 할아버님이 다짜고짜 커피는 어디있냐고 물어보셨다. 근처 카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파는 데를 얘기하시는 건가요, 하고 다시 여쭈었다.
자판기를 원하시는듯해서 5층이라고 알려드렸다. 내리셔서 허둥지둥 하시는 게 보여 다시 불러서 구석진 곳을 가리켜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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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적은 일기.
어제는 애들 방학이어서 분주하게 보냈다. 애들도 한해를 보내며 자신들도 뭔가 정리를 하겠다며 포켓몬카드를 거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늘어놓고 자기들 나름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점심은 제대로 분식집 떡볶이를 먹는다 해서 비록 냉동이지만 김말이도 해주었다.
그 와중에 또 앞 동 친구들 비글남매들이 들이닥쳐서 남자애들은 게임을 하고 여자애들은 자전거를 타러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서 두 손을 꼭 잡고 돌아다니는 애들이 어쩐지 중학생 같고 귀여워 웃었다. 딸아이는 방학식 전날엔가 학교 장터에서 산 꾀돌이를 친구랑 한 알 한 알 아껴 나눠먹으며 또 까르르.
같이 있던 친구엄마가 공원에서 나와 우리 딸을 처음 보았을 때 인상을 말해주었다. 얼굴이 화끈달아오른다. 시골에서 막 나와 순박함을 벗지 못했을 때 누구라도 사귀어보겠다고 아이는 몇 살이고 남편은 뭐하고 먼저 줄줄 늘어놓던 시기였다.
이런 대화 중에 병중이신 엄마는 거의 시간마다 전화를 하셨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차분히 다시 전화했다. 딸아이는 내가 외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이면 무서워해서 아무도 없는 데서 조용히 걸 수 있을 때만 걸려고 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오히려 온화하게 대할 수 있었다. 불안이 날로 심해져서 30분 정도 차분히 진정시켜드렸다.
아이들 저녁시간에 애들아빠가 새해결심을 적어내라고 해서 딸아이는 웃으며 흔쾌히 모범답안을 적어내고 아들은 강력히 반발해서 중간에 나만 곤란했다.
수면시간을 조정하려 11시에 자려고 했는데 10시 정도에 잠들어 버려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더니 새해를 알리는 카톡이 몇 개 와 있다.
2018년에는 그냥 어쩐지 2017년보다는 평안할듯하다고 믿고 싶다.
<랩 걸>에서 저자가 기도했듯이 강해지길 기도하기보다 감사할 줄 아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