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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평점 :
<아만자>, <D.P. 개의 날>로 유명한 만화가 김보통 님이 대기업 사원, 백수, 습작기를 거치는 과정이 담담하게 담겨 있다.
평생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지 못했던 작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의 원을 쫓아 그리고 어느 정도는 자신의 바람대로 대기업에 입사해 한동안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불합리한 조직문화, 비인격적 대우에 질려버린다.
다들 회사 밖은 늑대나 이리가 출몰하는 곳이라고 겁을 주지만, 실은 안온한 그곳에서 양들은 털을 밀리며 그렇게 버티는 것이었다.
김보통은 회사를 관두고 무작정 따뜻한 데를 찾아 오키나와에 머문다. 그곳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을 것이라 생각하나 큰 성과는 없었고 돌아와서 퇴직금으로 작은 도서관을 해보려다 여러 현실적 문제에 부딪친다. 아마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아 도서관을 열었다 해도 잘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트위터에서 사람들 프로필을 무작정 그려주는 일을 하다가 최규석 작가와 연이 닿은 데부터 성공신화?가 시작된다. 김보통 님만의 소박한 그림체로 300여 명의 얼굴 사진이 나오는 페이지를 폈을 때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지만 인생을 건 모험, 도박이었다.
누군지 무척 궁금한 잘나가는 영화감독인 친구의 말도 쓰라리게 다가왔다. 어떤 패가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다 보여야 한다는 것.
다행히 보통의 패는 그 시점에서 적중했다.
행복하지는 않지만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그런 마음으로 묵묵히 오다가 이른 길이었다.
그런데 정말 평범? 보통? 인 사람들에게 이런 길이 펼쳐질지는 미지수이다. 작가는 그래도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 주시할 정도로 그림에 재능도 있었고 지겨웠다고는 하지만 대기업에서 4년이나 버티었던 근성? 도 있었다.
그래도 노력하면 나처럼 된다, 는 식이 아니라 담담하게 이렇게 지내다 어쩌다 잘 되었네요, 하는 투라서 잘 읽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백수였는데 오늘부터 만화가라고 소개하는 부분에서 찡했다.
인터뷰에 항상 고독이 탈을 쓰고 그랬는데도 김보통 치면 대기업 00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ㅋ
만화 그리기보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 어시를 더 쓰고 자신이 하는 말의 거의 반이 뻥이라는 작가를 오래 지켜보아야겠다.
그때
다행히 아직도 불행하진 않다, 면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