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경 - 중국 제왕학(帝王學)의 최고 명저
조유 지음, 곽성문 옮김 / 인간사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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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자집 총망라한 제왕학의 고전 [장단경]

 

 

 

책의 두께가 압도적이다.

게다가 제목도 생소하다.

자치통감에 비견되는 제왕학의 고전이라는 문구 덕분에 책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장단경이란 어떤 책인지, 에 관한 부분을 꼼꼼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장단경은 당나라 현종 시기에 활동했던 조유가 찬술한 책이라고 한다.

공자가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책은 저서, 저작 문헌이 아니라 편술한 것이다.

'작'과 '술'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 알지 못했던 것을 자기가 먼저 알고,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했던 것을 자기가 먼저 깨달아, 선지하고 선각한 사람으로서 알고 깨달은 바를 남에게 가르치고,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알고 깨닫게 만드니, 이로써 천하의 앎과 깨달음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 이를 일러 '작'이라고 한다. //이미 다른 사람이 알고 깨달은 바를 내가 엮어 더하고 빼기도 하고, 그 뜻이 오래 되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것을 내가 그 뜻을 밝혀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으로 남을 가르치거나 작자의 본래의 뜻을 다시 밝혀주는 것, 이를 일러 '술'이라 한다."-청, 초순. P.18

장단경은 약 19만자로 이뤄진 문헌인데, 그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저술과 기록에서 발췌, 인용해온 것이며, 조유 자신이 직접 지은 문자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1만여 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하니  이 책의 두께가 두꺼운 것이 확~ 이해가 된다.

장단경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하은주 시대부터 수,당의 천하통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역대 제왕들의 흥망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천하영웅들의 풍부한 일화는 덤이다.

요즘 책들에서 넓고 얕은 내용을 다룬 교양서적들이 넘쳐나고 이곳저곳에서 발췌해온 자기계발서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그것들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선진 시대에서 당대 중기에 이르는 각종 서적들을 초(抄)하거나 인용했는데 최소 113종 이라고 하니 대단하지 아니한가.

<춘추좌전>, <논어> 같은 경(經), <사기>, <전국책>, <삼국지> 같은 사(史), 병가, 도가, 법가, 묵가, 잡가, 음양가를 망라한 자(子), <논제자> 같은 집(集) 류의 서적들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현존 동일 서적에 나오지 않는 일문이나 <군서치요> 및 <예문류취>같은 데에도 나오지 않은 많은 원자료를 담고 있어 문헌학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한다.

비록 스스로의 저작은 아니나, 당시로서는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서촉의 한 은거 선비가 당대에 구할 수 있었던 110여 종의 전적을 일일이 참조하여, 천하를 경륜하는 근본 대법을 남긴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밝은 임금을 기다리며 그를 위해 한 부의 교양 서적을 준비했다 하겠는데, 지금은 어느 누가 그런 수고로움을 감내해낼 수 있을지...

 

독창적인 역발상, 사실의 반면과 이면을 들추어 '반면의 교훈'을 강조하는 논리로 큰 관심을 끈 이 책은 원래 <장단요술>, <유문경제장단경>, 혹은 <반경>으로 불리었다가 원래 편술 취지를 살리고 [장단경]의 가치와 진면목을 가리지 않기 위해 본래의 서명을 쓰게 되었다 한다.

 

[장단경] 64편의 내용은 '위정', '왕패', 그리고 '치병'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역사책 읽는 듯하기도 하고 사기 열전의 인물들을 만나는 느낌도 든다.

소소한 인물들보다는 역사책에 실릴 만큼 비중 있는 인물들을 다루면서 후대에 교훈을 남기려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역대 제왕들의 통치와 권모의 실제를 서술함으로써 경세제민의 실질적인 방도를 제시해준다 하겠다.

책을 읽는 이들이 자신의 처지에 맞게 입맛대로 읽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과거의 흘러간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울까, 고개를 홱 돌리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

시세의 변화에 맞게 적절한 방도를 모색하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다.

현실 문제에도 얼마든지 실천적으로 접근할 방법이 다각도로 제시되고 있으니 말이다.

 

연일 온나라를 들쑤시고 있는, 믿지 못할 먹거리, 생활용품 문제에 보란 듯이 던지고 싶은 말이 나온다.

'사이비'

평소 행실이 앞다르고 뒤 달랐던 사람들은 뜨끔할 일이다.

 

교활한 자가 지혜롭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혜롭지 않고, 어리석은 자가 정인군자처럼 보이지만 군자가 아니며, 우직한 자는 용감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용감하지 않다.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는 지혜로운 듯 보이고, 나라를 망친 신하는 충성스럽게 보인다.

가라지의 싹은 마치 벼이삭처럼 보이고 검은 소의 황색 무늬는 호랑이처럼 보이며, 백골은 상아처럼 보이고, 붉은 바탕에 흰무늬가 있는 돌은 옥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 즉 '사이비'인 것이다.(출전, [전국책]위책1)-67

 

한 장 한 장 꼼꼼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세태에 반영할 만한 문장들이 곳곳에 보인다.

읽다가 줄 치고, 읽다가 크게 동그라미 하고...

과거와 현실이 이렇게 겹쳐도 되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현명한 군주를 기다리며 현존하는 모든 서적들을 베껴 적었을 [장단경]의 지은이 조유의 심정이, [장단경]을 읽으며 또다시 과거와 현실을 대비해가며 밑줄치고 있는 내 심정과 같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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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울어도 되는 밤
헨 킴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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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품에서 다시 태어난 인어공주처럼 리셋! [실컷 울어도 되는 밤]

 

 

 

감정 노동을 하기 싫어서 일부러 순수의 세계인 동화 속으로 몰입해 본 기억이 있나요?

 귀여운 일러스트들을 한껏 구경하며 마음을 비워내려고 찾은 동화는 그러나 기대한 만큼의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덕분에 푸른 구릿빛 녹이 앉아 버린 청동거울처럼 우리 마음에도 모르는 사이에 때가 끼어버려서인지 동심의 눈으로 동화를 읽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고귀한 사랑만을 남긴 채 자신의 몸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인어공주 이야기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벅찬데, 거기에 지금 현재 우리의 처지를 이입시켜 새로운 변주를 만들어내니까요.

<물거품에서 다시 태어난 인어공주>라는 일러스트입니다.

다시 태어나면 이번 생에서는 꼭 행복해지리라는 보장을 해 주는 건가요?

물거품에서 다시 태어난 인어공주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환영해줄 수 없다는 구겨진 마음이 구석에서 조금씩 일어납니다.

인어공주가 다시 태어나서 기쁘다, 왕자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아라~

라는 마음은 맑고 깨끗한 아이의 마음이겠지요,

하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만은 않네요.

막장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 플롯에 길들여진 탓인지, 이미 다른 나라의 공주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 왕자에게 다시 인어공주가 나타난다면 그건 민폐 아냐?에서부터, 불륜녀가 될 참이냐? 아니면 본처를 쫓아낸 희대의 악녀가 될 참이냐? 그렇다면 평온한 가정에 분란 일으킬 테니 왕자 말고 다른 왕자를 고르면 어때? 그건 원작에서 너무 동떨어진 또 다른 얘기가 되는 건가? 까지

안 해도 될 걱정을 하면서 또 다시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나.

 

 

[실컷 울어도 되는 밤]이란 아트에세이에 나오는 한 컷 그림을 보고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네요.

 

 

 

어둡고 아름답게 뒤틀린 환상을 그린다는 일러스트레이터 HENN KIM의 작품집입니다.

흑과 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질리지 않게 오랜 시간 들여다 볼 수 있네요.

그림과 짧은 글의 조화도 일품입니다.

순수한 동화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면, 이 책은 현실에 낮과 밤을 살면서 많이 지친 어른들을 위한 아트에세이입니다.

감정노동에서 벗어나 있기 위해 동화를 들여다보다 도리어 감정노동에 더 시달리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늘어놓았는데요,

[실컷 울어도 되는 밤]은 폭발하고 싶은 감정들을 다독이는 대신 그저 보따리 풀어놓듯 스르르 감정을 끌러내 놓게 만듭니다.

그러니 쓸데없이 머리 굴리며 이야기를 확장시키지 않아도 되고 현실과 결부시켜 또 다른 걱정거리들을 만들어내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글과 그림을 보고 공감하면 될 뿐이지요.

 

저는 사실, 낮에 드라마를 보면서도  쉽게 감정이입해서 울기도 하고

잠에서 덜 깬 아침에도 남편의 꿈 이야기 들어주며 주르륵 눈물 흘리는 눈물 보따리인지라

꼭 밤에만 운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는 편입니다마는,

밤이라는 시간대가 가지고 있는 특성상, 밤에는 왠지 주르륵, 찔끔 보다는 줄줄줄~ 우는 게 더 어울린다 싶기도 합니다.

[실컷 울어도 되는 밤]에는 다양한 상황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현실을 한 번 비틀어 환상의 세계에 닿아 있는 느낌이 많이 나는 그림들로 사람들과의 공감을 도모하고 있는 듯해요.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 사람의 마음 속 책장에 다가간다는 의미로 해석한 그림이네요.

은유적 표현으로만 보던 것을 그림으로 보니 한 번에 확 다가옵니다.

철벽녀, 철벽남들은 남 앞에서 저렇게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이겠죠?

그렇다면 나는, 내 마음의 책장을, 내가 간직한 이야기 보따리들을 저렇게 숨겨두지 않고 활짝 열어보여주는 사람인가? 되짚어보게도 되네요.

 

 

 

좀 괴기스러울 수도 있는 그림이네요^^

오싹하지만 보면 볼수록 창의적인 그림.

 

 

 

가까워질수록 더 힘들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습니다.

가까이 가려 하면 할수록 가시는 더욱 서로를 찔러대겠지요.

은유로는 직관으로든 말로 하면 너무나 많은 낱말과 어절과 문장들이 소비되어야 할 상황을

그림 하나로 깨끗하게  관통하고 있네요.

 

 

 

이 그림 또한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그림입니다.

나쁜 기억을 지우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요?^^

요즘은 건조에 살균까지 기능이 더 추가되었으니 말이죠~~

세상이 좋아질수록 사람들의 정신도 더 맑아지는 건가요?

 

나를 죽이려는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101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아무 말도 못하겠어. -81

 

가끔 슬픔에 푹 빠져 버리는 것도 좋아.-71

 

내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일까?-43

 

짧은 글을 읽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일러스트를 그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림을 바로 보고 상황을 바로 이해할 수 있기에, 거기에 더해 확실한 공감을 할 수 있기에

감정노동의 정도가 많이 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탁기에 몸을 넣고 깨끗이 씻어낼 수는 없지만

[실컷 울어도 되는 밤]  속에 빠져 있는 동안만은

왠지 홀가분한 기분, 실컷 만끽할 수 있었네요.

괴로운 일들을 다리미로 싹 밀어버리는 그림, 빨래 건조대에 엎드려 눈물을 말려버리는 그림 등.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걸 보면 내 마음이 많이 움직인 것 같아요. 그림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많이 바빴을 내 마음. [실컷 울어도 되는 밤]을 쓰담쓰담하면서 나와 또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빌어봅니다.

물거품에서 다시 태어난 인어공주처럼 리셋!

 

#북폴리오#헨킴#헨 킴 개인전#미지에서의 여름(7/29_10/1)#아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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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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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여자의 독서]

 

지금껏 책을 읽어오면서 '여자의 독서'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책을 골라 읽느냐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는다'에 초점을 두어 온 것이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 지 5년차 되었나~
스스로 생각해도 '잡식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책읽기를 해왔다.

지나간 기록을 살펴보면 굳이 카테고리에 넣어서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중구난방으로 읽고 써 온 것이다.

[여자의 독서]를 읽고 나서, 이제까지의 내 책 읽기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읽고 쓴 것까지는 좋은데 그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느냐 하는 기본적인 반성에서부터, 도저히 '취향'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닥치는대로 읽기'가 남긴 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자괴감까지.

목적 없는 독서의 초라함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여자의 독서]는 여자가 쓴, 여자를 위한, 여성 작가의 책과 삶에 관한 이야기다.

목차를 훑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박경리의 토지,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거릿 미첼,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콰이어트 수잔 케인,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올란도 버지니아 울프 등등

모두 8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여성 작가의 책을 리뷰했다.

주제는 각기 8개의 코드를 담고 있다.

자존감, 삶과 꿈, 여성, 연대감, 긍지, 용기, 여신, 양성성.

 

저자 김진애는 800명 동기 중 유일한 여학생으로 서울대 공대의 '전설'로 통했던 이라 한다. 도시건축가, 국회의원을 거쳐 지금은 자유인으로 돌아와 공부와 저술에 힘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삶이 길러낸 독특한 시선으로 책읽기를 하면서 써모은 '리뷰'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도 강한 어조로 내 목소리를 싣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 속 리뷰들에는 한결같이 저돌적이고 씩씩하며 자신감 넘치는 말들이 가득하다.

살아온 날들의 이력이 고스란히 글에 녹아나는 느낌이다.

1남 6녀의 딸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건축, 도시 분야에서 일하면서 남성성이라는 옷을 입었던 저자는 '자매애'와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선입견에 시달렸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선입견은 그렇게 심하고, 틀렸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딸들이건 사회적 자매들이건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그 무엇을 할 용기를, 스스로 변화할 용기를, 그 무엇을 바꾸겠다고 나설 용기를 찾기 바란다...

우리 속에 있는 그 겁남, 그 분노, 그 두려움, 그 불안, 그 상처를 마주하고 딛고 이겨내며 새로워져보자.

우리 안에 있는 바람과 희망을 길어 올리고, 내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꼭 이루어낼 꿈을 꾸자.

그렇게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이 시간, 이 공간에 있는 존재의 뜻을 찾아내보자. '여자의 독서'를 통해서!-21

 

저자는 남성 작가의 책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쓰는 데 매혹되었다고 한다. 박경리, 한나 아렌트, 버지니아 울프, 제인 제이콥스, 정유정 등등...

여성의 시각과 감성, 여성의 현실과 이상, 여성의 심리와 행동, 여성의 상처와 고통, 여성의 불안과 꿈, 여성의 희망과 절망, 여성의 실패와 성공, 여성의 삶과 꿈을 섬세하게 다루는 여성 작가들의 책을 어찌 읽지 않겠느냐며...

 

여성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책에 들어갔다 나올 줄 안다며 여자의 독서는 특별하다는 말이

찌르르 울린다.

[여자의 독서]에 나오는 책을 찾아 읽는다고 내가 저자처럼 하루아침에 목소리를 드높이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

이 많은 여성 작가의 책을 읽고 당당하게 용기를 내라고 독려하는 '잔다르크' 같은 저자의 글을 읽고 나는  그저 약간의 자극을 받았을 뿐이다.

내가 책을 읽고 '아하'하는 순간이 어느 지점이었던가를 먼저 찾아봐야겠다.

그러다보면 나만의 필이 꽂히는 '카테고리'를 마련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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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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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보다 더 어두운 건...[개들이 식사할 시간]

 

 

 

선입견을 안고 작품을 읽어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기에 작가에 대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책을 읽었다.

알고 있는 건, 작가의 전작 작품 제목이 [하품은 맛있다], [신문물검역소] 라는 것 뿐.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모두 9개의 단편이 들어 있는 단편집인데 첫 번째 작품이 표제작이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장갑 아저씨, 라는 인물이 나온다. 장갑이라는 이름이 직업과의 연관성- 조만간 알게 되는데 그는, 과거  살인 전과자였고 지금은 불가촉천민 개도살자이다-에 힘입은 것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진짜 이름이 '장갑' 이었다. 이름 한 번 묘하게 잘 갖다 붙였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그 후에도 나오는 단편들에서 주인공의 이름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유들유들하면서도 넉살좋게 의붓아들을 '우리 아드님'이라 부르는 장갑 아저씨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밝은 대낮에 읽기엔 민망하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음습했다. 어머니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아들은 어찌하여 지금 현재, 장갑 아저씨에게 '병신'이라 놀림받으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가 재혼한 것도 놀라운데, 그 대상이 수십년 간 삼촌 숙모라 부르던 이웃지간 장갑 아저씨이며 어머니는 치매를 앓았다는 것까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칼을 갈고 도사견을 무정하게 해체하는 장갑 아저씨가 입밖으로 뱉어내는 말은 살 떨리는 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후 네 시, 개들도 배가 고플 시간이라며 은근하게 깔아놓는 한 마디가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한다.

 

 

어둠보다 내가 더 검었으므로 나는 두려울 것이 별로 없었다.-41

 

사람 새끼인 척 아양 떨면서 손바닥 핥는 놈은 싫고, 개이면 개같이 굴어야 하는 법이라며 직설적으로 소통하는 장갑 아저씨와 그 아저씨 앞에서는 그저 개밥 정도의 위상 밖에 얻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속시원히 하겠다, 라고 마음 먹은 듯,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거칠 것이 없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이 세상 이치를 다 까발려버리겠다~~

꽤나 강심장이 아니면 쉽게 엮으려들지 않을 법한 잔혹한 묘사 장면에 꽤나 아연실색했지만 이 또한 새로운 경지를 접하는 것이려니, 하며 다음 단편을 기대하게 된다.

 

 

<눈물>

30년 전 대기업 방수공장이 들어선 이래, 불상리라는 마을은 '불쌍리'로 통용된다. 방수공장에서 흘러나온 독극물 때문에 마을 주민 대부분이 암, 심근경색, 뇌졸중 등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고 그 사실을 눈감아 준다. 마을의 유일한 처녀였던 향순도 한량처럼 살다가 원치 않는 아이를 낳게 되는데, 이 아이가 세눈박이 딸이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은 진주와 흡사한 보석이어서 내다 팔면 바로 돈이 되었다. 우르르 합심하여 보상금을 받았을 때처럼,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눈물을 팔면 얻게 되는 용돈 한두푼 때문에 외지 사람들에게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눈물이 돈이 되는 것이었기에, 아이는 툭하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누군가 달려들어 몸을 꼬집거나 매운 돌팔매질을 했고, 뜨거운 물을 퍼붓거나 불에 달군 부지깽이를 들이댔다. 그 뿐인가? 생니도 집게로 부러뜨려버리는 것을...

 

방수공장 회장이 구속되자 마을에 기자와 공무원, 경찰들이 득시글거리자 특히 입단속을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소녀의 존재가 기자에게 드러나 버렸다.

기자는 소녀를 구출해 도시로 데려가지만 그것은 또다른 불행의 시작.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고 예전부터 돌고돌았던 구전동화에서처럼 입에서 보석이 튀어나오는 소녀는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식의 해피엔드는 없는 것이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단편들 또한 쉽게 드러내서 까발리기 어려운 종류의 비밀과 세상의 비정함이 팔할 이상은 차지하는 이야기들이다.

<핑거 스미스> 류의 퀴어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도 있고 청소년, 성인 불구하고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성매매 문제 등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상상력을 가미하여 되도록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읽을수록 입맛이 쓰다.

이렇게 밖으로 보이게 끌어올려 줄 터이니 좀 움직여보는 건 어때? 하는 듯이

독자를 도발한다.

그저 발끈하고 말 것인가, 목소리를 내어 용기있게 말하기 시작할 것인가.

알고 보면 이 사회에 건드리지 않고 묻어두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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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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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뱀파이어가 아니라 스파이다! [케미스트]

 

 

 

#시크릿 #에이전트 #스릴러#트와일라잇#스테프니메이어#다시로맨스 #북폴리오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접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새로운 이야기의 등장을 반가워할 것이다.

뱀파이어 종족과 늑대인간 종족 이야기로 판타지의 신기원을 열었기에 그녀의 스토리텔링을 의심할 이 없을 것은 명백하다.

이번에도 역시 이야기 전체에 피가 흐르기는 하지만 뱀파이어의 오싹함과는 차원이 다른 서늘하고도 뜨거운 피라는 점이 다르다.

줄리아나라는

실제 이름을 숨기고 케이시 혹은 알렉스 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예전에는 소속된 에이전트가 있어 훌륭한 케미스트로 활동했지만 이제는 소중한 동료를 잃은 채 도망다니는 신세다.

임시 거주지를 찾아 옮겨 다니며 가짜 신분증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외 그녀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면 다양한 화학 약품과 실험 장비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녀는 심문 전문가. 일명 '케미스트'였다.

 

케미스트는 기계다. 냉혹하고 끈질긴 괴물이 이제 풀려났다. -107

 

그녀는 CIA를 비롯한 다른 조직들의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 3년 전, 누군가 그녀가 속한 부서의 두 가지 자산을 제거하기로 했다. 바로 그녀와 그녀의 멘토 조지프 바나비 박사. 그녀는 살아남았지만 바나비 박사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도망자 신세로 숨어 지냈는데, 그들은 그녀를 네 번 찾아냈고 세 번 죽이려 했다.

 

 

 

그녀는 자는 동안 전기가 통하면 아이패드가 진동하게 설치하고 누군가 침입하면 하얀 가루가 유독한 가스로 활성화되는 트랩을 설치해놓은 채 방독면을 쓰고 잔다.

그 시스템을 그녀는 자신만의 거미줄~

이라고 부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낸 추적자는 그러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테러. 커다란 폭발물. 대규모의 학살.

누군가 대량 파괴 생물학 병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 언제 사용될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파악되었다. 그러니 그 누군가를 찾아라!!

엄청난 재난이 벌어진 뒤에 자신에게 그런 재난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녀는 살아가기 힘겨울 것이다. 추적자의 제안이 그녀에게 먹혀들었다!

 

알렉스라는 이름 아래 숨은 그녀는 추적자들이 제공한 정보대로 한 남자를 납치한다.

고등학교에서 역사와 영어를 가르치는 남자 대니얼이다. 그를 잡아 심문해야만 하는 의무를 띈 그녀는 그에게서 유죄의 증거를 찾아내려 한다.

 

그가 사이코는 아니길 바랐다. 진짜 자신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둠이 주는 해방감은 필요한 사람이기를.-100

 

알렉스는 대니얼을 밀어붙이며 심문하다가 불현듯 이 사람이 자기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직감한다.

묵한 대니얼은 그녀와 함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조작된 자료를 가지고 엉뚱한 사람을 찾아낸 알렉스에게 닥친 또 한 명의 비밀스런 남자.

 

그는 바로 대니얼의 쌍둥이 형제  케빈이었다.

케빈은 대니얼에게 있어 죽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은밀한 비밀 공작원이었던 것이다. 대니얼을 염려해 몸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둔 탓에 죽음이 임박한 대니얼을 구할 수 있었다. 이제 이들은 추적자의 진의를 파악해야 하고 신변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긴박하게 펼쳐지는 스파이들의 작전 속에서도 묘하게 피어나는 로맨스.

이것이 바로 스테프니 메이어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다.

알렉스는 공공의 안전이라는 대의 하에 잔혹한 행위들을 해왔던 추적자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한배를 타게 된 동료가 된 대니얼과 케빈.

첫만남의 순간부터 찌르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했던 알렉스와 대니얼은 생사를 왔다갔다하는 혼란 속에서 더욱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데...

시크릿 에이전트 스릴러, 라는 독특한 장르에 로맨스가 결합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로맨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스릴러를 가미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그들 사이에 피어난 사랑은 생명이 경시되는 스파이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펄떡이는 혈관에 거침없이 약물이 든 주사를 찔러 넣고 상대의 입에서 진실을 얻어내려는 냉혹한 케미스트의 면모만 있는 줄 알았더니~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가슴을 함께 가지고 있는 여자 주인공의 활약이 간만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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