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으로 와요 1
하라 히데노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유명한 [겨울 이야기]의 작가 하라 히데노리의 작품이다. [겨울 이야기]보다 나중 작품인 만큼 그림체가 [겨울 이야기] 때보다 훨씬 나아졌다. 특히 아야는 너무 이쁘다. 물론 그림체만 나아진 것은 아니다. 그의 탁월한 심리묘사는 작품을 단순한 로맨스물로 취급될 수 없도록 만든다.

만화는 처음 만난 남녀가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깨어나면서 시작된다.(역시 일본이다.) 둘은 자연스럽게 동거를 하는 사이가 되고, 서로의 꿈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마키오는 아야에 비하면 뒤쳐지긴 하나 사진 작가의 꿈을 잃지 않고, 아야는 실력있는 피아노 연주자로 인정받아 앨범까지 내게 된다.([내 집으로 와요(Come On A My House)]가 바로 그 앨범명이다.)

이렇게 순조로운 둘의 사이는 - 으레 그렇듯이 -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먼저 아야가 예전에 사랑했던 남자로 인해 삼각관계 비슷한 관계가 잠시 형성되는데, 아야가 마키오를 택하게 되는 것으로 해결이 된다. 다음으로 아야의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성공으로부터 마키오는 열등감 또는 위화감 같은 것을 느끼며 자책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아야가 연상인데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내가 마키오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이 들만큼 작가는 이 남녀의 심리를 잘 묘사해내고 있다. 둘의 사이가 아주 조금씩 벌어지는 것은 이 때부터다. 그러다 마키오도 성공적으로 사진 작가로 데뷰하게 되고, 찍는 사진마다 대성공을 거둔다.(-_-;)

그렇게 둘 다 성공했으니 그것으로 순조롭게 끝나는 걸까? 물론 아니다. 둘은 오히려 자신이 좇아왔던 바로 그 꿈 때문에 헤어지게 된다. 결정적으로 마키오가 아야와 일 둘 사이에서 일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 많이 했다. 결론은, 마키오가 아야를 정말정말로 사랑했다면 그렇게 쉽게 아야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거다. 그는 '잠시' 동안만 아야를 사랑했다. 그러다 사진 작가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자, 일에 대한 열정이 아야에 대한 사랑을 넘어섰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녀를 보낸 것이다.

아마도 마키오는 언젠가 일에 지칠 때, 다시 사랑을 찾게 될 것이다. 그게 꼭 아야라는 보장은 없다. 마키오와 아야의 사랑은, 적어도 마키오에게 있어서는, easy-come easy-go였다. 그러니 또 한 번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란 법도 없다. 사실 쉽게 시작된 그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계약 동거였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라 부르면 사랑인 건고, 계약 동거라고 부르면 계약 동거인 거고.

어딘지 씁쓸한 기분이 들게 된다. 엔딩 장면에서 떠나가는 아야 역시 같은 기분이었을까. 꿈이란 무엇인지, 일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많은 질문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과연 아다치 미츠루였다면 이런 만화를 그리지 못했을 거라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2001. 3.31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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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금렵구 1
유키 카오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완결이 나지 않은 만화는 리뷰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천사금렵구](이하 천금)은 엔딩이 그렇게까지 기대되는 작품은 아닌데,(지금까지의 전개로 볼 때 해피엔딩이 예상되기 때문)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 작품이다. 그래서 건방지게도 리뷰를 써본다.

난 하드보일드를 좋아하기에 순정은 되도록 보지 않는 편이다.(이건 내용의 문제이지 그림체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천금도 좀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는데, 3권까지 봤을 때 난 감동해서 죽는 줄 알았다. ㅠ.ㅠ 이건 1권부터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천사들이 떼거리로 등장하는 게 아닌가. 거기에 세츠나와 사라의 사랑 얘기를 비롯해서 전생과 관련된 비극적 사랑 얘기([판타스틱 게임]이 생각나는군.)가 또 떼거리로 등장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특히 키라의 아버지의 대한 사랑 얘기는 정말로... 찡했다.

그러나 3권을 넘어가며 스케일이(어디까지나 스토리상 스케일이) 너무 커지게 된다. 물론 그전에, 너무나 쉽게 세츠나와 사라는 근친상간을 저지른다. 그걸 전생이라는 이유로 돌려버리다니 너무 쉬운 선택이 아니었나 싶지만.. 암튼 그리고 나서는 복선과 '복선의 밝혀짐'의 연속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솔직히 정말 느리다. 또, 감동도 처음에 한 두번이나 받지, 비슷한 수법으로 복선과 복선의 밝혀짐이 계속 되면서 지겨운 느낌까지 받게 된다. 계속 반복되는 전생 얘기도 말이다.

그리고 그림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비유적으로 말하면 [X]보다는 낫지만 [바스타드]보다는 못하다. 순정체의 작가들은 스틸컷은 정말 잘 그린다. 정말로, 아름답게 그려낼 줄을 안다. 특히나 천금에서는 대사와 몇 개의 컷이 정말 '딱' 어울려서, 하나의 '시화' 수준의 경지에까지 다다른 부분도 자주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순정체의 작가들은 역동적인 장면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 느낌을 잘 살려내지 못한다고나 할까? (극단적이지만, [베르세르크]를 보라.) 천금은 나름대로 액션(전투)이 많은 작품인데, 솔직히 그런 컷을 보면 '흥'하고 비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그외에도, 역시 순정작가이기 때문인지 몬스터 디자인이나 메카닉 디자인 면에서도 많이 부족하다.

단점을 많이 지적하긴 했지만, 실은 천금은 스케일이 매우 클 뿐 아니라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다. 근친상간에서 시작해서 사랑, 전생, 신과 악마의 대립까지, 실로 많은 부분이 논란이 될 수 있다. 그 중 나는 신과 악마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천금 외에도 [베르세르크]나 [프리스트], [바스타드] 등을 보면, 이른바 '신'이라는 존재가 무지무지 '나쁜' 놈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기독교 중심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당당히 비판하는 발상인데, 작품을 보면 충분히 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 행위의 정당성이나 당위성 같은 것에 대해선, 만화책 리뷰에서 다룰 만한 내용이 아니므로 생략하겠다.(개인적으로는 이제 기독교의 시대는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은 죽었다.) 천사금렵구, 부족하지만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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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2006-01-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좀 어렸을 때 봤었는데,상당히 충격이었어요. 혹시 이 작가가 그린 백작 카인 시리즈는 보셨나요? 그것도 괜찮은 것 같던데,작가의 생각이 많이 투영된 건 천사금렵구인 듯 해요. 그림체도 상당히 고급스럽고,.

faai 2006-01-16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렸을 때(?) 보고 썼던 평이라, 지금 보니 많이 부끄럽네요--; 백작 카인은 천금 다음에 봤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매니악한 만화였죠;
 
그린힐 1
후루야 미노루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손에 들었다가 미노루 후루야의 이름을 보고 다 읽어버렸다. <이나중 탁구부>와 <크레이지 군단>을 어찌 잊겠는가. 역시나 1권을 붙잡자마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나중을 보고 역겹다는 사람들을 보곤 하는데, 이 시대의 인간들 사는 모습은 사실은 역겹다. 차마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웃을 수 없는 건 아닌지?

<그린힐>은 <이나중 탁구부>와 여러 모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만화이다. 성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이나중의 주인공들은 중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넘으면 안되는 선'을 넘지 못했다. 실은 알 건 다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그린힐의 대학생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모두 선(?)을 넘는다.(이런 하드코어(?)성은 <크레이지 군단>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이것은 단순히 중학생과 대학생의 신분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인인 주인공들로 하여금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작가의 장치일 것이다.

미노루 후루야 작품의 주인공들답게 그린힐의 주인공들 역시 자칭 불행한 자들이다. 그들은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울타리 밖에 있는' 인물들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변태성과 엽기성으로 가득찬 추남들이다. 당연히 그들은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들의 순수는 울타리 안에 묶여있지 않다. 어쩌면 정말로 추악한 것은 순수하지 못하고 위선적인 우리들이 아니겠는가. 미노루 후루야의 캐릭터들은 과장된 그림체와 어울려 놀라울 정도의 호소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아주 효과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들'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나중은 에피소드들이 다소 지겹게 느껴지고, 엔딩이 붕 떠버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이나중의 주인공들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진 게 도무지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에 비해 그린힐은 한 걸음 나아가, 캐릭터들이 아주 약간씩이나마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불행한' 자들이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끝부분에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순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처음에 스스로를 썩어있다고 생각하다가, 마지막에서는 '귀찮다'와 싸워이겨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세키구치는, 어떻게든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찾아 살아가려 하는 정말 멋진 녀석이 아니겠는가.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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