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영점 - 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투쟁 아우또노미아총서 44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 갈무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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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들과 이 책을 읽고난 후에 읽으면 좋을 책들이 있어 더 좋은 독서가 된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 책에서도 예외없이, 기존의 남자 작가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 부러 말하지 않았거나 혹은 놓친 것들‘에 대해서 냉철하게 꼬집어낸다.

세상 똑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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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악인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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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남동생은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었다. 뭐 이런 책이 있냐, 읽고나서 기분 너무 나빴다, 고 한거다. 그 말에 바로 처분할까 하다가, 남동생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독자이니,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단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음, 역시 남동생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건 확인하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여자 등장인물인 '요시노'는 부잣집 남자랑 사귄다고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데이트앱으로 남자를 만나놓고는, 길에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그런 요시노가 원하는 건, '마스오 게이고 같은 남자의 차에 타고 시원스레 하카타 거리를 내달리(p.50)'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남자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자랄까. 이 책이 국내에 나온 게 2008년이니, '요시다 슈이치'가 써낸 건 그 이전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론 '부자 남자 만나서 신분 상승하려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욕망에 있는 여자가 '부자 남자랑 사귄다'고 친구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는 건 도대체 이 여자 캐릭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게다가 동료중 한 명인 '마코' 역시, 짝사랑만 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생긴 남자랑 연애하다 헤어졌다'고 하는거다. 도대체 왜 이들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걸까. 요시노, 마코를 제외한 다른 친구는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고 거기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지만, 남자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게 꿈이다. 하아- 사람이 끼리끼리 만난다지만 어떻게 하나같이 여자들이 죄다 이런 캐릭터들인지... 어쩌면 하나같이 이래, 하나같이.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요시노가 살해당한다. 그녀가 사귄다고 주장했던 '마스오'가 살인범일지, 그녀에게 지독한 쾌락을 주는 '유이치'가 살인범일지 알 수 없다.



정확한 숫자는 밝히지 않았지만, 형사들은 그녀와 관계가 있는 몇몇 남자들을 이미 만나봤다고 말했다.

심심풀이 삼아 등록한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살해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사내들이다. 자기 자신도 그렇지만, 여자를 살해할 마음으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살해당했다.

창녀 하나가 사악한 손님을 만나 살해당했다고 하면 얼마간 틀에 박힌 스토리라는 느낌이라도 있을까. 그러나 살해당한 사람은 창녀가 아니다. 밝히진 않았지만, 견실하게 생명보험 영업을 하며 살았던 젊은 여성이다. 창녀인 척했지만 창녀가 아닌 아닌 여자였다. (p.166)



그전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안읽어본 게 아니었는데, 요시다 슈이치, 이런 사람이었던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생각하는 여자란 어떤건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견실하게 살았던 창녀가 아닌 젊은 여성'은 창녀보다 '더' 죽어서는 안되는가? 초반부터 '머릿속에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는데, 그러나 불쾌함은 책을 읽을수록 더해진다.



소설속에서 언제나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만 나와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혐오를 하는 인물, 나쁜 인물은 당연히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든간에, 우리는 그 안에서 '결국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읽어낼 수밖에 없고,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우리는 어떤 등장인물이든 소설 속의 캐릭터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건 그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내가 얼마전 읽은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를 싫다고 했던 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을 지켜가는 굳은 인물들의 입을 빌어 결국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 책, 《악인》이 싫은 건, 작가가 결국은 '꽃뱀에게 당하는 불쌍한 남자'들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진실한 사랑을 원했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 결국 그런 여자들이 남자를 지옥으로 떠밀어버려, 라는 얘기.



'하퍼 리'의 소설《앵무새 죽이기》에서 작가가 왜 하필이면 '거짓강간 신고'에 대해 얘기해야 했는지 유감이라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요시다 슈이치에 대해서라면 '왜 하필이면', 이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작가는 왜 하필이면 거짓으로 강간 신고를 하겠다는 여자를 그려냈는지, 그래서 남자로 하여금 그 여자를 죽이게 했는지, 천 번 생각해도 나는 너무 유감인거다. 이 책이 만약 지금 나왔다면, 그야말로 미투 폭로에 대한 가해자들의 변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소위 말해 '판결 나오기 전까지는 중립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바로 그 입장에 대한 이야기.






"우리? 알잖아, 우린 오래 전부터 여관 하는 거"라고 내뱉듯 말했다.

"여관 하는 게 어떻다고?"

"여관에는 여종업원이 많지."

게이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봤다. 아버지가 여관 종업원들을 데리고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 어땠을까? 그 여자들, 싫었을까? …… 그랬겠지, 분명히 싫어했겠지. 그런데 말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더라."

포장마차를 나오면서 게이고는 가게 주인에게 "잘 먹었습니다. 근데 맛은 영 아니네요." 라고 말했다.

그 순간, 포장마차에 있던 손님들의 손동작이 일시에 멈췄다. 껄끄러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쓰루다는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 실제로 그곳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만 많이 받는 포장마차였다.(p.114)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가는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이고는, 식당에서 할 말을 하는 남자다. 그래서 쓰루다는 그런 얘기를 들어놓고서도 '네가 잘못 생각했어' 라는 말이 아니라,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라고 말을 한다. 위의 장면에서 독자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가장 어이없는 건, 요시노가 살해된 이유다. 요시노는 게이고가 타라는 말에 게이고의 차에 타는데, 게이고는 그런 요시노에게 남자가 타란다고 타냐고 너같은 천박한 여자가 싫다며 한적한 밤에 그녀를 떠밀듯이 차에서 내쫓는다. 요시노와 만날 약속에 요시노를 기다리고 있던 유이치는 요시노가 자신이 뻔히 기다리는 앞에서 다른 남자 차를 타고 가는 것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고 요시노가 탄 차를 따라갔다가 그녀가 차에서 내쫓기는 걸 보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자 한다. 그런데 요시노는 그런 자기의 모습을 유이치가 본 게 싫어서 그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한다. 강간은 없었는데.



"살인자! 경찰에 신고할 거야! 성폭행했다고 신고할 거야! 여기까지 납치했다고! 납치해서 강간했다고! 우리 친척 중에 변호사도 있어! 우습게보지 마! 난 너 따위 남자랑 사귈 여자가 아니야! 살인자!"

요시노가 소리쳤다. 모두 다 거짓말인데도 유이치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떨렸고, 떨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p.345)



부자 남자 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했던 요시노는, 강간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할거라고 악을 쓰고, 그러다 살해당한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강간범으로 신고당하면 자신이 그 다음을 살아나갈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유이치는 그녀를 죽여버린다. 왜냐하면, 자기는 강간범이 아닌데, 자기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런 유이치를 사랑하게 된 여자는, 자수를 하겠다며 경찰서 앞까지 찾아간 유이치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한다. 결국 유이치는 자수를 하는 대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치며 보낸다. 유이치를 살인으로 유도한(?) 것도 여자고, 그런 유이치에게 삶의 기쁨을 주며 그러나 벌 받으러 가는 길을 막는 것도 여자고.



작가는 처음부터 왜 요시노를 그렇게 거짓말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서는, 그렇게 거짓말하다 살해당하게 만들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거짓말은 '성폭행당했다고 (거짓말)할거야!' 일까? 토할뻔했다. 혹여 거짓미투일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변명해주는 것 같았다.


일전에 '트레버 노아'가 자신의 토크쇼에서 관객들을 향해 '여기에 거짓 성폭행 신고를 당했던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 아마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중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이을 당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시다 슈이치는 대체 누구의 편에 서서 어떤 변명을 하고 있는가. 요시다 슈이치가 이 책을 통해 계속해 하는 말은, '응 나쁜 여자들 많아', '응 남자로 팔자 펴려는 여자들 있지', '응, 남자 엿먹이려고 거짓 성폭행 신고하는 사람 있어' 밖에 없다. 게다가 그녀가 성폭행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던 그 남자는 자신으로 하여금 신음 소리를 참지 못하게 했던 쾌락을 준 남자이고, 자신의 상반신 누드를 찍었기에 돈을 요구했던 남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를 이용하려는 나쁜년이 얼마나 해로운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소설은 도대체 왜 쓴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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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w 2020-04-2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이 이야기는 이 세상에 나쁜여자들많아! 만 외치는게 아니라 악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인데, 하나에만 꽂혀 생각하면 큰 줄기는 안보이나봅니다.

다락방 2020-04-28 15:55   좋아요 0 | URL
ㅎㅎ 님도 별 하나준 책 있던데, 별 하나 주면 큰 그림 못본건가요? sunshinew 님이야말로 이책을 제대로 읽으신건지 모르겠네요. 뭐, 어차피 소설은 읽는 자의 몫이니까요.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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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의 일정도 읽은 지금 그만 읽을까 고민하다 계속 읽는다.
딱 기다리고 있어라.
다 읽으면 진짜 대차게 까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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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소설은 도대체 왜 쓴건지 모르겠다.
    from 마지막 키스 2019-03-04 14:15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남동생은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었다. 뭐 이런 책이 있냐, 읽고나서 기분 너무 나빴다, 고 한거다. 그 말에 바로 처분할까 하다가, 남동생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독자이니,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단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음, 역시 남동생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건 확인하지 않았어도 됐을텐데...여자 등장인물인 '요시노'는 부잣집 남자랑 사귄다고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데이트앱
 
 
2019-02-28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2-28 12:53   좋아요 0 | URL
네네 조금 기다려 주세요. 다음 주 중에 받으실 수 있도록 보내드릴게요! :)
 
여성이라는 예술 - 우리는 각자의 슬픔에서 자란다 아르테 S 1
강성은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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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책은 의미는 있긴 하지만 시류에 편승한 기획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기획된 책이라서인지 글쓴이들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글쓰기도 아니었던 것 같다. 가독성이 떨어짐. 특히 박연준 글 보면서 ‘흠, 왜 이정도인 거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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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로 사는 건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일상의 사사로운 수많은 불편함에 노출되는 일이다. 게다가 아주 자주 모순에 맞닥뜨리게 되고. 친하게 지내는 남자사람들과 다투고 사이가 틀어지는 일들도 그렇고, 이성애 연애를 함에 있어서도 그렇다. 내가 이 남자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 나아가서, 내가 이 '남자'와 연애를 해도 되는 것인가.. 까지. 남자 앞에서 사랑받고 싶다, 예뻐보이고 싶다는 욕망은 나의 자연발생적인 것인가 이 세상이 내게 강요한 것인가 .. 한 인간이 완벽한 존재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주 나의 부족함에 고통스럽다.


이성애 앞에서의 갈등도 많겠지만 직장 내에서의 갈등은 또 어떠한가.


나는 오늘 이 갈등 앞에 처절하게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내가 하는 일은 페미니즘과 가장 거리가 먼 일이고, 성적대상화에 쉽게 오르내리는 직업군에 있다. 또한, 하아- 내가 그토록이나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늙고 돈많고 지위 있는 남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게다가 그 특징상 가부장제와 권력에 쩔어있어... 화를 참지 못하고 툭하면 소리 지르는 것이 특징인 사람....이세상 하등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존재. 있으면 그저 유해한 존재.. 그런 존재와 일하려다 보니 속이 타들어갈 때가 한두번이 아니고, '원래 저런 사람이다' 라고 무심히 넘기려고 해도,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무심할 수가 있어. 물론 예전보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야 훨씬 강해지고 단단해졌지만, 그렇다고 내가 늘상 잘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늙은 남자의 사소한 짜증이 나의 화를 너무나 불러일으켜. 내 스트레스를 지켜본 회사 동료가 '차장님같은 꼴페미가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하려고 하니 극과극의 상황에서 진짜 버티기 힘들겠어요' 라고 말한다. 하아-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이곳을 박차고 나가지 않는것인가...



지금으로서는 1년만, 길어도 2년만 더 버티자 싶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꿔 나가자고.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면 20년이상을 돈을 벌기 위해 일했다.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여자로서 일하는 것의 참담함'에 마주쳤는가. 게다가 '을로서의 참담함'까지...



그렇게 오늘은 상사 앞에서, 직업 앞에서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내가 바란 직업은 이게 아니었고, 내가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나는 이 일을 하는게 아니었다. 다만, 더 높은 연봉을 받아들이며 이 부서에 불려왔을 뿐인데, 그 연봉은 나의 스트레스 비용이었어.

이 부서로 옮김으로써 그리고 이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써 그간 들어온 무수한 말들도 생각난다. 일전에 구남친 중 한 명은 '니 직업에 대해 가족들한테 말하지 못했어, 그러면 너 예쁘고 날씬한 줄 알까봐' 라고 말을 했었고, 또 어떤 남자는 '그 직업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닌가 보네' 라고도 했었다. 그들도 세월만큼 더 늙었을텐데, 하등 쓸모없는 남자가 되어있겠지, 그 때처럼....



앞으로 일 년, 길면 이 년. 나는 무사히 이 날들을 참아낼 수 있을 것인가.

왜 참는 것은 내 몫이어야만 하는걸까. 내가 을이니까 그런건가...

출근길에 도넛츠를 잔뜩 사왔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늘 너무 힘드네. 여자인것도, 을인것도 힘들어...





어제 출글길에 읽었던 혁명의 영점에서 '우편주문 신부'라는 단어를 보았다. 어휴, 한숨부터 나오는데, 자, 우리 다같이 깊은 한 숨 쉬고 읽어보자.




특히 일부 아시아(태국, 한국, 필리핀) 지역에서 섹스산업과 섹스관광이 대중화되어, 베트남전 이후로 이런 국가들을 휴양 및 레크리에이션 지역으로 이용해 온 미군을 비롯한 국제 고객들에게 봉사 하고 있다. 1980년대 말 태국 한 곳에서만 5천2백만 명의 인구 중 백만 명의 여성들이 섹스산업에 종사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서 종종 노예에 가까운 조건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제3세계"또는 그사회주의 국가 출신 여성들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다.

1980년대에 국제적으로 성행했던 "우편주문 신부"라는 이름의 "밀매"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한 곳에서만 매년 약 3천5백 명의 남성들이 우편주문으로 여성을 선택하여 결혼한다. 신부들은 동남아시아나 남아메리카의 최빈지역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며, 러시아 같은 구사회주의 국가 출신 여성들 역시 이를 이민의 방법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1979년에는 7,759명의 필리핀 여성들이 이 방법을 이용해서 필리핀을 떠났다. "우편주문 신부"라는 이름의 밀매는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빈곤을,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과 미국 남성들의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이용한다. 이런 남성들은 고분고분한 아내를 원하고, 해당 국가에서 머물기 위해 자신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취약점을 쥐고 흔든다.(p.132-133)



이 페이지를 읽다가 구석에 작게 '버스데이 걸' 이라고 메모를 해두었다. 까먹지 않고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였는지 아니면 졸업 후였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아주 오래전에 '니콜 키드먼' 주연의 《버스데이 걸》이 바로 그 우편주문 신부가 나온 영화인 것 같은 기억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러시아 여자로 가장하고 신부가 되기 위해 주문되어온 여자, 그래서 할 줄 아는 말은 'yes' 밖에 없었는데, 알고보니 이 여자가 사실은 러시아 여자가 아니라 영어를 잘하는 여자였다... 뭐 이런 흐름이었던 것 같다.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이정도밖에 안나는데, 내 기억이 맞나 싶어 나는 니콜 키드먼을 검색창에 넣고 검색해 보았다.
















줄거리를 읽다보니, 맞아, 그러고보니 마지막에 남자가 살인 사건의 포로가 되는 것도 같았던 것도 같다..



[작품 소개]

평범한 소시민 존 버킹검은 근소한 차이로 과장 승진에서 누락되지만, 은행 금고 열쇠의 보관자로 임명된다. 언젠가 곤란에 처한 상황에서 훌륭하게 접객한 일도 있고, 소위 10년 근속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맡겨진 업무인 셈이다. 평소 말수가 적어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없다. 태어나 자란 곳에서 줄곧 생활하고 있어 주민들에게 인지도는 높지만, 적극성의 결여로 호감도는 낮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개척 정신은... ‘0에 가깝다. 런던에서 60킬로 정도 떨어진 교외 센트 올반즈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고, 현재 사귀는 여자 친구도 없다.

 

지극히 단조로운 나날을 보내던 존은 문득, 삶의 변화를 결심한다. 어찌 보면 비참할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론 용기있는 행동이기도 한 러시아로부터 사랑을"이란 웹 사이트를 통해 신부를 주문한 것이다. 모스크바발 236편으로 도착한 신부를 본 순간, 존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러시아 여성 나디아. 하지만, 황홀한 순간도 잠시. 그녀는 사이트에서 보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무조건 ‘YES’만을 중얼거리며, 연신 담배를 피워댈 뿐이다. 무엇보다도 대화를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존에게 나디아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날이 밝기 무섭게 그녀를 반품하려던 존은 갑작스레 덮쳐오는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녀의 현란한 바디랭귀지에 완전히 포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색다른 로맨스를 만들어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나디아의 생일을 맞아 러시아에서 사촌 오빠라는 유리와 그의 친구 알렉세이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무례하고 폭력적인 그들로 인해 존의 평화로운 일상은 뒤죽박죽이 된다. 급기야 참다못한 존의 집에서 나가달라는 요구가 엉뚱하게 꼬이면서, 두 사람은 나디아를 인질로 존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나디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10년간 근속해온 은행을 털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 존. 대체 나디아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시 위의 인용문이나 위 작품소개를 읽고 '여자들도 자기가 원하니까 신부로 팔려가겠다고 등록한 거 아니냐'라고 반박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런 거 어디가서 반박하지 말고 조용히, 구석에 찌그려저서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를 읽자. 모르면 막 말하면 안되고,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먼저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신부를 주문한 남자가 도착한 신부인 니콜 키드먼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 놀라며 좋아했던것 같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예뻤던 외모에 놀랐겠지. 만약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정말 있는 현실 그대로를 반영한 것이었다면 영화는 어땠을까. 우편으로 주문한 신부가 자기 생각과 달리 못생겼다면? 그랬다면 그들은 '반품'을 요청했을까?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에서는 신부를 주문한 남자가 착하고 순한 남자였던 걸로 나오고, 운좋게(?) 예쁜 여자를 신부로 맞아 들이게 나오는데, 나중에 사건이야 어떻게 흘러가든, 그러니까 인질이 되고 뭐 그렇든말든, 이 영화는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해서, 아니 미화라기 보다는 구라에 가깝지 않나... 머릿속 '신부 사기'로 만들어낸 영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 기억이 안나서 이렇게 얘기하지만, 막상 보고나면, '아 이것은 우편주문 신부라는 제도를 까기 위해 만든 영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것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인걸까? 아아, 기억이 안나 모르겠다.



영화속 주인공도 그렇고 그리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남자는 '여자 없이' 못사는걸까? 외롭고 힘들면 여자를 만나야만 하는걸까? 너무 혼자 못서는 거 아닌가? 외국에서 신부를 '사와서' 결혼하는 남자들은 정말 '사랑을 하고 싶었으나 짝을 찾지 못해'라기 보다는 집에서 밥 차려주고 아이 낳아줄 여자를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거야? 뭐 그렇게 잘난 씨라고 퍼뜨리길 원해. 밥 스스로 해먹으면 되잖아. 요즘 전기밥솥이 밥 맛있게 잘해준다. 먹자마자 설거지하면 설거지 쌓이지 않고.


그러고보면 오래전에도 '술마시자'고 전화하는 남자들 보면 '다른 여자애들 데리고 나와'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나 지금 내 친구들하고 술마시는데 너도 술마시면 다같이 이리로 와' 라고 했었고. 무수히 들었던 말 중에는 '남자끼리 영화를 왜 보러 가', '남자들끼리 어떻게 노래방을 가' 였는데, 남자끼리 영화도 못보고 노래방도 못가면 어디 가요? 안마방? 룸싸롱? 어휴.. 여자 만나 술마시는 거 말고는 문화생활을 전혀 안하니... 남자들끼리 영화도 못보고 노래방도 안가면... 뭐해? 술 마시는데 꼭 여자들 부르려고 하는 것도 '남자들끼리 술마시면 무슨 재미냐'는 거였는데 ㅎㅎ 니네는 니네끼리 만나서 술마시면 재미도 없는데 뭐하러 만나서 그렇게 술 많이 마시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들끼리 재미없으면 재미있는 다른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뭐 자기들끼리 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니, 여자 만나면 왜 갑자기 재미있어지는거야? 여혐을 스포츠로 즐기니까?




위에 인용한 우편 주문 신부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의 <6장 신국제노동분업에서 재생산과 여성주의 투쟁> 에 나온다. 책 한 권에 죄다 밑줄 긋고 싶을만큼 명징한 내용들로 가득한데, 실비아 페데리치님, 앞으로 님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책을 써주셔서 감사해요. 이토록이나 날카롭고 지성적인 여자분이라니, 나는 또 넘나 좋은 것이다.



언론은 우리가 그렇게 믿기를 바라지만, 끝나지 않는 전쟁, 학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난민으로 전락한 모든 사람들, 기근 등, 이 모든 것이 인종적, 정치적, 종교적 갈등을 강화한 극적인 빈곤화의 결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참혹한 상황은 그 무엇도 이윤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도와 토지관계의 사유화를 위해 필요한 보완장치이고 최근까지 토지와 자연자원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이를 빼앗아 다국적 기업들에게 넘기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다. (p.127)




몇 해전에 홍콩을 처음 갔을 때, 그곳에서 가사노동을 하던 외국인 여성들을 보고 엄청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다같이 바깥에서 한 데 모여 나와 쉬던 장면. 처음에는 그 장면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기사들을 보고 알게됐었다. 그리고 실비아 페데리치는 '신시아 인로'의 관찰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신시아 인로Cynthia Enloe 의 관찰처럼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이민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제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유럽, 미국, 캐나다의 정부들이 여성운동의 기원과 맞닿아 있는 가사노동위기를 해결하고, 수천 명의 여성들을 "해방시켜" 가외家外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그리 많지 않은 정도의 급료에 집을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며 음식을 만들고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필리핀 또는 멕시코 여성들 덕분에 많은 중산층 여성들이 생활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원치 않는 또는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노동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법"은 여성 내에 "하녀-주인여성"관계를 만들어내고, 이 관계는 가사노동을 둘러싼 편견, 즉 가사노동은 진정한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적게 지불해야 하고 가사노동에는 분명한 경계가 없다는 등등의 가정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는 점에서 상당히 문제적이다. 게다가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국가가 아닌) 여성이 재생산노동을 전담하게 되기 때문에 남성파트너와 가사노동분담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할 일이 사라지면서 가족 내 노동분업에 저항하는 투쟁이 약화된다. 이민자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가사노동자는 월급이 박한데다, 자신의 가족을 남겨두고 온 입장에서 다른 이들의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점에서 가사노동자로 취업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선택이다. (p.130-131)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내가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던 것들이 책을 읽다 보면 '아, 이게 그거였구나' 하고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경험들은 의미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 홍콩에 갔을 때 마주친 풍경들이 오래 남았고 그래서 오래 홍콩을 싫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홍콩만의 문제일까. 나는 세계 어디를 가도 빈부차를 눈앞에서 목격했더랬다. 싱가폴에서 호텔에 들어와 틀어둔 텔레비젼에서는 명품 광고를 해댔지만, 내가 바깥으로 나가서 만나는 풍경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물론, 그건 내가 이 나라에 오래 살면서 스스로 실감하는 바이기도 하고.


내가 살아가는 삶과 내가 보았던 나와는 다른 삶이 결국은 여성혐오라는 것에서 하나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빈곤이 어디에나 있듯 여성혐오도 어디에나 있으니까. 또한 빈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공격하는 대상이 바로 여성이니까.



꼭꼭 씹어가며 읽느라고 읽고 있지만, 내가 이 책을 좀 더 잘 읽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똑똑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것만 이렇게 더 잘 인식하게 될까. 그래도 똑똑한 여자들의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내가 세상의 모든 강간범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똑똑한 여자의 글을 읽고 쓰면서 그리고 또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내가 인용하면서 여성 작가가 한 번 더 언급된다. 그 말은 누가 한 말이야, 누가 그렇게 했는데, 라고 하는 것들의 많은 퍼센테이지를 여성들의 것으로 바꾸고 싶다. 결국은 그렇게 하는 것이 여성혐오에서도 더 멀어질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 든다. 알쓸신잡에 남자들만 수두룩하게 나왔던 것처럼, 그런 것들만 많이 보고 읽다보면 인용하는 것들이 죄다 남자들의 입을 빈 것이니까. 나는 세상에 더 많은 여자들의 생각과 사고가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좀 더 여성의 이야기를 읽고 말하여야 하고.



2월이 어느틈에 사흘 밖에 안남게 되었을까.

오늘 출근길도 그리고 회사에서도 너무 힘들어서, 얼른 가버려랴 2월, 했다. 그래도 가장 짧아 아쉬운 달인데, 이러면 안되는 거겠지. 남은 날들 잘 지내보자, 2월. 그리고 내가 이번 달 안에 혁명의 영점 다 읽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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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27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들어 알라딘에서 읽은 글 중에 제일 좋은 글이다...... 😍

다락방 2019-02-27 21:59   좋아요 1 | URL
아이쿠, 너무 근사한 칭찬이다! 🥰

2019-02-28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3-04 12:03   좋아요 0 | URL
지적해주신 부분 수정했습니다. ㅎㅎ
제가 걍 알라딘 창 열고 다다다닥 등록하기 때문에 제 오탈자를 넘겨버리기 일쑤에요. 앞으로도 많은 지적 부탁드려요.

심술 2019-03-0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보다 직급이 낮은 다락방님 사무실 사람들 가운데
다락방님을 ‘꼴페미‘라고 아무 걱정 없이 부르는 이들 비율이 문득 궁금해요.
몇 퍼쎈트인지 알 수 있나요?

다락방 2019-03-04 12:04   좋아요 0 | URL
아, 딱 두 명 밖에 안돼요. 평소 저랑 친하고 사적인 이야기 나누는 직원이 두 명밖에 없답니다. 다른 직원들과는 딱히 이런 얘기를 하진 않아요. 퍼센테이지는 그래서 의미 없을 것 같아요.

심술 2019-03-06 10:26   좋아요 0 | URL
잘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