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짜 짜장면 너무 먹고 싶었고 공부하러 가기는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친구가 '그냥 공부하자'고 했고, 나는 계속 '갈까말까' 갈등하다가, '일단 짜장면 먹는걸로' 나 혼자 쇼부를 치고, 다음일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짜장면을 먹으면 공부에 초큼 늦겠지만, 설사 늦으면 어때, 나 안가려다 가는건데...이러면서, 지하철 타러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중국집에 들어가서, '한 명이고 식사 할거예요' 얘기했더니, 네 여기 앉으세요, 하고 자리로 안내해줬다. 나는 가져다주는 메뉴판은 보지도 않고 짜장면 하나를 시켰고, 아아, 짜장면이 나오자 너무 좋아서 막 비볐는데, 짜장면은...참 이상도 하지, 짜장면 뭘까? 짜장면 신기한 게, 늘 너무 먹고 싶어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만드는데, 막상 먹으면 그에 비해 만족도가 크질 않아... 어디에서 먹어도 마찬가지. 짜장면은 먹기 전이 가장 맛있는 것 같다. 우어어어어 짜장면이다!! 하고 씐나서 비벼 먹으면, 어쩐지 만족도는 그에 못미치는... 그래서 항상 '아, 짜장면 먹으면 난 항상 이러니까 이걸 기억하자' 하고는, 다음 짜장면 먹을 때 포기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려 하지만, 다시 짜장면이 먹고 싶어지게 되면 어김없이, '그렇지만 먹고싶어!!!' 가 되어서 또 먹고, 그러고나면 '아아, 또 같은 실수를 저질렀네...' 하게 되는 것이다..
짜장면 뭘까...
아무튼, 짜장면을 먹고 나는 공부하러 갔다. 그런데 진짜 가기 싫었어. 너무 가기 싫어서... 가면 졸 것 같았고, 아아, 내 기분 왜이래, 왜이렇게 가기 싫지...그냥 온 몸이 다 축축 쳐지고, 짜장면은 생각보다 별로였고, 몸 너무 무겁고, 가방 너무 무겁고, 피곤하고, 졸립고, 졸 것 같고, 세상 다 귀찮고... 그냥 집에 갈까............. 이천번 갈등하다가, 아아, 졸면 안되니까 커피 사가지고 들어가자, 하고는 가져갔던 텀블러에 아메리카노를 사서는 강의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처음엔 집중을 못하고 바스락바스락 거렸는데, 나보다 먼저 와있던 친구는 집중을 잘하더라. 어쨌든 그렇게 강의를 듣는데, 어제 강의는 한채윤 쌤의 강의였고, 나는 한채윤 쌤의 강의가 처음이 아니다. 심드렁하게 듣는데, 와, 어느 순간부터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집중이 뽝- 되고, 서서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아, 오면 뭐라도 하나 알게 되고, 그것은 너무 좋다. 역시 와서 들으면 뭐라도 하나 더 생각하게 되고, 그거슨 넘나 소중해!!!
강의 내용중에 일부는 책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 있다 하셨는데, 나 아직 사두고 안읽은 사람.... 어제 강의 들으면서 이 책도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어제 강의에서는 종교와 정치, 그리고 여성혐오와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들이었는데, 과거의 자료부터 다 조사를 해서 연결지어 얘기하시는데, 아, 한채윤쌤 똑똑하다...멋져...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발언을 하셨다.
여러분이 개인으로 동성애를 싫다고 말하는 건 하셔도 됩니다, 물론 심상정이 얘기했던 것처럼, 정체성에 대해서 지지와 반대를 말한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개인이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발언하는 것이 왜 안되겠습니까, 그렇지만,
대통령이 그러면 안됩니다.
국회의원이 그러면 안됩니다.
공무원이 그러면 안됩니다.
교사가 그러면 안됩니다.
라고 하시는 거다. 이 말이, 강의를 듣고난 후라 그런지, 와, 너무 울림이 있는 거다. 순간 울컥, 하면서 너무 몰입이 됐고, 뭐랄까, 계속 공부하고 발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리고 한 개인에 대해서 그 사람의 혐오발언을 고쳐가려면 너무 힘이드니, 이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견고한 구조를 바꾸는 거 너무 힘들겠지만, 힘을 내고 싶어지는 거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여러명이 질문했는데, 그 중 한 분은 아주 나이가 많은 남자분이셨다. 저 분이 여기와서 이 강의를 듣고, 대한민국의 기독교의 동성애 반대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가진다는 게 또 나는 너무 좋았다. 좋다는 말은 적절한 말일까? 잘 모르겠다. 기독교와 정치의 역사를 우리에게 강의하기 의해 쌤도 계속 열심히 공부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와서 강의를 듣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니, 저사람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계속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아서, 어제의 강의는 그 자체로 너무 좋았다.
마지막에 쌤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지난번에 손아람 소설가가 말한 '말이 되는 편에 서겠다' 고 한 것과 통하는 말인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며 들었다. 당연한 말들인데, 그러니까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는 말, 이것이 또 나를 울컥하게 했지.
강의가 끝나고 나는 너무 감동을 받아서, 아아, 오늘 강의 너무 좋아서 쌤께 어떻게든 감사를 표현하고 싶어졌다. 책을 가져왔으면(게다가 저 위에 링크한 책 중 세 권이나 내가 가지고 있다고!!), 책에 싸인이라도 받을텐데, 나는 오기 싫었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안해왔고...아, 뭔가 드리고 싶다, 감사를 표현하고 싶어.... 하다가 퍼뜩! 프라하에서 사온 립밤 생각이 났다. 선물용으로 몇 개 사와서 엄마도 하나 드리고 여동생도 하나 주고 친구들 몇에게도 주었었는데, 하나는 따로 챙겨두었더랬다. 엄마 하나 더 드리려고. 그런데 그 생각 나서 얼른 그거 꺼내서, '어차피 엄마 하나 드렸으니까' 하고는 선생님께 다다다닥 달려가서 오늘 강의 잘 들었고, 너무 좋았다, 감사하다 말하며 선물이라고 드렸다. 쌤은 고맙다고 하셨는데, 나는 '쌤 강의 여러번 들었는데 오늘이 제일 좋았어요!' 라고 말했고, 쌤은 이에 '계속 발전하나봐요'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이런 뉘앙스) 로 대꾸해주셨다. 아, 너무 좋아. 계속 공부하는 분이셔. 흑흑 ㅠㅠ
수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업이 끝나고 나서,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또 집에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도, 나는 친구에게 '오늘 수업 듣자고 해줘서 고마워' 라고 말했다. 친구에게 오늘 강의 어땠냐고 물으니 친구도 너무 좋았다는 거다. 친구는 아마도 기존에 저 쌤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 오늘 이해가 더 쉬웠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는데, 그래서인지 아닌지, 나도 진짜 너무 좋았고, 와서 다행이라고, 진짜 수업 제끼자는 나를 말려줘서 고맙다고 얘기했다. 수업 같이 듣는 알라디너분도 끝난 후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그 분께도 어땠어요? 물으니, 그 분도 좋았다고 하시는 거다. 아아, 정말 좋다. 강의가 좋았고, 울림이 있어서 좋았는데, 이렇게 끝나고 나서 좋은 사람들과 오늘 강의 어땠어? 묻고 대답할 수 있으니 나는 정말이지 세상 행복한 거야... ㅠㅠ
집에 가서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서, 아아, 피곤하고 지치고 쳐지고 힘든 하루였는데, 진짜 녹초가 될 것 같았고 기분도 다운됐었는데, 지금 세상 편하고, 좋은 하루였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좋은 하루였어 진짜.
오늘은 퇴근 후에 엄마랑 스파게티에 와인 마실 거다. 스파게티 내가 만들거얏! 오뎅탕도 끓일 예정인데, 맛있게 끓여졌으면 좋겠어... 레시피 검색 좀 해봐야겠다. 후훗. 아 집에서 술을 마시면 진짜 얼마나 편한지.... 이런 시간이 너무 필요해. 엄마도 들떠서는 '삼겹살 사와서 구워먹을까?' 하시는데, 아니야 엄마 스파게티 먹자, 삼겹살 먹고 치울라면 너무 일이 커져, 했다. 엄다도 그래그래, 하셨어. 엄마, 내가 스파게티 해줄게, 소스도 사왔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면만 삶고 부어버리면 땡이여. 문제는 오뎅탕이닷..... 음............ 오뎅탕 맛있게 하고 싶은데, 하고 오늘 아침 식탁에서 밥 먹으며 말했더니, 엄마는 '엄마가 이따 무 사다 놓을게' 하셨다.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