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갑자기,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보고싶었다. 으앗, 블레이크 라이블리 보고싶다! 하는 마음이 되었는데, 그냥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넣고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는 씅에 안차서, 아아, 영화를 보자, 영화를!! 하고는 필모그라피를 보는데 마땅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는 거다. 그러다 누군가 그녀가 주연한 영화 《아델라인》이 좋다고 말하길래 그 영화의 줄거리를 보게 되었는데. 오,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주인공인 여주가 어떤 사고로 인해 시간이 가도 늙지 않는 병(?)에 걸리게 되고, 그에 대한 여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거였다. 나는 지금 상태 그대로 백년 이상을 살고 있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은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걸 본다는 것은 할 말이 되게 많지 않을까... 싶었던 것. 아아, 영화배우란 참 감사한 존재구나. 이미 헤어진 옛연인은 보고싶다고 볼 수 없고, 짝사랑하는 상대도 보고싶다고 볼 수 없는데, 영화배우는 볼 수 있다! 굿다운로더(네이버에서 천 원입니다, 여러분!!)로 영화만 다운 받으면 내가 보고싶은 배우를 볼 수가 있어! 그렇게 나는 아델라인을 보게 되었는데!!
아직 중간까지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나 혼자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딸까지도 이제 나이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나 혼자 쌩쌩하다. 이렇게 혼자 젊음을 유지하고 있노라니, 계속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봐야하는 일에 맞닥뜨린다. 최근엔 함께 살던 개도 사망했고... 그런 그녀가 사랑 혹은 연애를 시작하지 않으려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하지 않을까. 지금 그녀에게 반해 엄청 대시하고 있는 남자가 있는데, 아아 이들은 어떻게 될것인가.
그녀는 연말 파티에 참석한다. 오랜만의 파티 참석이었는데, 친구와 얘기하던 도중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게 된다. 이 느낌은 너무 강렬해서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게 되는데, 아아, 이게 바로 첫눈에 반한다는 거구나!! 싶었다. 아아, 살면서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은 아닐텐데, 얼마나 좋은가! 물론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이 반드시 뜨거운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반했는데 몇 번 만나보니 영 상태가 메롱인 사람일 수도 있지...
나는 사소한 몸짓이나 동작에 반하는데 익숙한 사람이고, 그래서 첫눈에 반해본 적도 물론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첫 눈에 상대에게 반했을 때 상대도 나에게 첫눈에 반했는가...하는 것. 사실, 그런 일은 좀처럼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인 것처럼, 내가 첫눈에 반했는데 상대도 나에게 첫눈에 반하는 건 진짜 어마어마한 기적이지.
그렇지만 처음 만나서는 아주 좋은 느낌, 서로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고 끌렸던 경험은 있는데, 후훗, 그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나에게 어찌나 대시를 하던지.... 너무 적극적이여서 내가 거부하는 게 너무 힘들었지. 아, 너무 처음부터 훅 들어오는 남자였어.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 예쁘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면서 왜그렇게 들이댔냐고 물었더랬다. 그러자 그는 몇 개의 이유를 얘기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거였다. 책을 많이 읽는 여자에 대한 일종의 로망 같은 게 그에게 있었던 것 같다. (칠봉아, 누나한테 홀딱 반했었니?)
나 역시 그렇다. 책을 읽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오래전 남자친구와는 함께 걷다가 까페 안의 책읽는 남자를 보고 내가 멈춰서 본 적이 있다. '멋지다, 책읽는 모습' 하고는. 옆의 남친 따위 안중에 없는..... ( ")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는 것도 좋고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을 보는 것도 좋다. 여자 남자 할 것없이 그냥 좋다. 책 읽는 모습은 이상하게 사랑스러워...
이 영화 아델라인에서, 여자는 남자와 파티에서 처음 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는 그를 도서관에서 처음 봤다고 말했다. 아델라인은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업무차 도서관에 들렀던 남자가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여자를 보았던 것. 아아, 내 마음은 어쩐지 너무 좋아!!
아아, 이 장면 보는데 그냥 막 너무 좋은 거다. 좋다..좋으다... 책읽는 여자도 너무 좋고, 그거 보고 반한 남자도 너무 좋아.....위의 장면은 그들의 두번째 데이트인데, 남자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한다. 여자가 알려준 주소지로 찾아가보니 남자는 요리를 하고 있었어... 그것도 너무 좋아...그래서 그가 한 요리를 가지고 와인을 마시는데, 아아, 나는 그 장면에서 이미 홀딱 반했는데, 그러니까 너무 완벽하지 않은가. 내가 바라는 게 진짜 딱 그거다. 멋진 남자, 맛있는 음식, 그리고 술.... 더 바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식사를 끝낸 후에 창가에 앉아 전망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망으로는 나이든 사람들의 댄스연습실이 보이고, 그는 그녀에게 '처음 봤을 때 책 읽고 있더라' 고 말을 하는 거다. 아 이거 진짜 너무 좋지 않나. 나는 이 영화 끝까지 보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냥 이런 장면들 때문에 아무때고 우울할 때 돌려봐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책 읽는 모습이 좋다고 말한 이 남자와 여자는, 그 밤을 함께 보내고 함께 아침을 맞는다.
나는 그냥 이렇게 이불 뒤집어쓰고 발가락 빼꼼 나와있는 이 장면도 사랑해. 내가 책 읽는 여자라는 걸 알고, 그 모습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하고.... 그리고 함께 아침을 맞는다.... 이야, 원더풀이다 진짜. 따봉이야...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 날 여자는 출근을 하고 남자가 자신에게 선물했던 책 중에 한 권을 꺼내어 혼자 식사를 하며 읽는다. 그 책은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였는데, 꽃을 준다면서 꽃 이름이 들어간 책을 세 권인가 선물해준거다. 초반에 등장하는 씬인데 저 제목들 다 외워야지, 했지만 기억나는 건 데이지 밀러 뿐이네..나중에 돌려봐야겠다. 어쨌든, 그녀가 혼자 책 읽는 장면이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좋다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진짜 짱이야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물론 그녀가 블레이크 라이블리라는 게 함정이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지 않았어도 어쨌든 너무 아름다울테니까. 그렇지만 저렇게 책 읽는 모습 너무 좋지 않나? 나는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데이지 밀러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데이지 밀러를 읽으면 마치 내가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될 것처럼!!!
마침 저 장면을 <서브웨이>에서 혼자 저녁을 먹으면서 보고 있었다. 아아 좋아 좋아 너무 좋아...했는데, 얼라리여, 어제 집에서 책을 읽는데는 또 책 읽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세상은 모두 한통속이야!!!
늘 일이 잘 풀리리란 보장도 없으니 아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책을 읽는 그녀를 바라보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정신없이 책을 읽는 그녀의 얼굴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p.330)
이 책에서는 책에 얽힌 모든 이야기, 책의 출판에 관련된 거라든가 작가에 관련된 것 그리고 책의 줄거리까지 시오리코 씨가 다이스케 군에게 얘기해준다. 다이스케 군이 책을 읽지 못하기 때문인데, 다이스케 군은 책을 읽지 못하지만, 시오리코 씨가 들려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걸 너무 좋아한다. 한 명은 책 읽기를 좋아하고 또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하는데, 다른 한 명은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좋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너무 완벽한 한 쌍이다!!
아, 정말이지, 책 읽는 거 너무 짱인것 같다!!!
책 읽는 여자 진짜 너무 짱이고, 그러니까 장바구니에 들어있는 책을 그냥 다 결제해야겠다. 데이지 밀러를 한 권 추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