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율라 비스'의 이 책, 《면역에 관하여》를 아직 사지도 읽지도 않았는데,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이미 많이 보아왔다. 어제는 마침 친구가 이 책을 읽고 감상을 써놨는데, 전문분야가 아니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써낸 이 책에 대해 많이 감동하고 있더라. 게다가 그걸 쓴 문체조차 좋다는 것. 깊이 있는 사고와 그걸 써내는 저자에게 꽤나 놀라움을 표현하는 친구의 리뷰를 보면서 이 작가에 대해 검색해봤는데, 저자는 역시 면역학에 대한 전공과는 관련이 없었고, 스스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책이 어떻길래, 옮긴이는  “한편으로는 과학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이며, 무엇보다도 밀도 높은 사고” 라고 표현한걸까. 






나는 친구의 그 감상, 저자에 대한 깊은 감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다이애너 개벌든'이 떠올랐다. 로맨스 소설이고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까지 한 《아웃랜더》의 저자다.



















책속의 여자주인공 '클레어'는 현재에서 과거로 슝- 하고 이동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며 살아가는 내용이다. 과거로 간 것이니만큼 현재와 같은 백신도, 약도 개발되지 않아, 병에 걸리거나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민간의학에 관해 수차례 나오는데, 그걸 멋지게 써냈을 뿐더러, 스코틀랜드의 역사까지 이야기하는 거다. 물론, 제이미와의 섹스도 이야- 뭐 말할것도 없고. 뭐든 박학다식한 사람은 섹스도 잘하는 것인가.. 책 속에서 클레어는 제이미보다 연상이고, 제이미는 아직 섹스를 해본적이 없는 남자인데, 어쨌든 그렇게 된다.


과거인만큼 인상적인 장면들이 몇장면 나오는데, 일전에도 이 책으로 언급한 적이 있지만, 클레어가 종아리 털을 미는 장면이었다. 이에 제이미는 왜 몸에 나있는 털을 미냐고 놀라는 거다. 클레어는 현재에서 늘 밀었던만큼 미는 거고. 또 인상적인 장면은, 동네에서 마녀라고 취급당하며 사형대에 오르게 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사형 당하기 직전의 그녀에게서 클레어는 예방주사 자국을 보게된다. 현재에서 이 과거로 빨려들어 오게된 건 자기 혼자만은 아니었던 것. 


아무튼 아주 치밀한 구성과 어마어마한 지식으로 무장한 로맨스 소설인데, 너무 멋있지 않나. 자, 이 작가의 어마어마한 약력을 보자.



다이애너 개벌든: 동물학 학사 학위, 해양생물학 석사 학위, 그리고 생태학 박사 학위과정을 밟았다. 작가가 되기 전까지 월트 디즈니를 위한 연작 만화를 쓰기도 했으며 12년간 대학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Voyager>, <Drums of Autumn> 등이 있으며, 국내 출간작으로는 <호박 속의 잠자리>의 전편인 <아웃랜더>가 있다. 현재 애리조나주의 스콧데일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작가는 또 있다! 얼마전 북콘서트에서 만난 윤김지영 쌤!! 와, 이분 책날개의 작가소개보고 내가 넘나 놀란것이다.


















윤김지영: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 프랑스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 학사와 석사를, 팡테옹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하였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로서 프랑스 현대철학 사상-데리다, 푸코, 들뢰즈-과 포스트 휴머니즘, 정신분석학 등을 넘나들며 여성철학의 계보학을 열어가고자 한다. <증오의 프리즘으로서의 일간베스트 현상 읽기>,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등 20편의 논문들이 있다.




이 분은 페미니즘 철학을 하시는 분인데, 누군가가 어떻게 페미니즘 철학을 공부하게 됐냐고 물었었다. 이 분은 본인의 어릴적 사적인 얘기를 하시면서, 자기는 자꾸 질문하는 아이였고, 그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철학이 답인 것 같았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책을 봤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프랑스에 가서 직접 공부하기로 했다, 하고는 프랑스로 슝- 날아가 철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딴 것이다. 우앙- 짱이다.. 그 생각을 스무살에 했다고 했는데, 와, 대박...



나는 요즘에야 답을 얻으려면 결국 철학에 닿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도 끊임없이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질문하고(이를테면, 비루한 육신이란 무엇인가.... 남자란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들에 답을 하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다보니, 결국, '철학을 공부하자'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러기까지 수십년 걸렸는데.... 스무살에 이미 거기에 대한 방법을 찾고 공부할 수 있다니.... 그래서 윤김지영 쌤은 보기에 나랑 같은 또래인 것 같던데, 저렇게 멋진 어떤 사람이 되어 있고, 나는 이렇게 ....그냥...... 여기에...................있으면서......................술마시고 ..............노래부르고........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님은 먼곳에~




흥얼흥을 ♪♬





아.. 어쨌든 이 똑똑한 여자들이 너무 근사하고 멋있어서 막 반해가지고, 나도 똑똑해지고 싶다!! 막 이렇게 되었는데, 요즘에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도 생각해봤다, 라고 했더니, 어제 술 같이 마신 친구가 대학원 가라고 엄청 뽐뿌질 하는 거다. 내가 대학원에 대해 관심이 그동안 1도 없어서 모르는데, 그거..대학교에서 공부 못했어도 가도 되나요? @.@



주변에 '나 대학원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 물었더니, 가라는 사람과 가지 말라는 사람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내가 사랑하는 남동생은 나에게 '구몬이나 해' 라고 말했다. 그래, 구몬!


그러니까 나는 요즘 겸손을 배우고 있다. 2017년 나의 키워드는 '겸.손.'




영어공부를 나도 구몬영어로 해볼까, 싶어서 지난 주에 레벨테스트를 받았더랬다. 그래봤자 문제집 푸는게 다이지만, 어쨌든 그걸 받아들고 풀기로 하면서 '흐음, 나 만점 받아서 더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 듣는 거 아닌가?' 같은 생각을 내가! 한 것이다. 그러고 시험지를 똭- 받아들었는데, 으응?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이러고 풀면서, '수동태로 바꾸시오' 에 맞닥뜨리자,



??????????????????????????????



이렇게 된것이었다. 읭? 이거 중학교때 배운 것 같은데...뭐지? 어떻게 하는거지? 1도 기억이 안나네? 그러면서 그래도 억지로 아무 단어나 써넣으면서, 그래도 내가 대학까지 나왔는데, 아니 그래도 응? 이거 다 못맞냐, 만점이다 만점, 아아, 공부할 필요도 없는데 구몬쌤 고생 시키는 거 아닌가, 같은 생각을 하게됐던 것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아니, 이렇게 영어 잘하시는데 왜 공부하려 하세요?' 같은 말을 당연히 들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어제, 레벨테스트 결과 나왔다며, 구몬 쌤은 


<be동사부터 시작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는 거다. 응? 비동사? 그건...너무 기초잖아???? 내가 왜??? 하고 있는데, 하하, 채점된 나의 테스트지를 똭- 보내주셨다. 결과는 이렇게 된 거시었던 거시었다...







틀린게 있는 면만 보내준다 하셨는데, 자, 이제 대망의 마지막! 수동태!!




샤라라랑~ 룰루랄라~ 빵점 빵점~~~~~~~~~~~~~~ 이 답안지를 받아들고서는 선생님께, 네, be 동사부터 주세요, 라고 말씀드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 이래놓고 대학원 생각한거야, 지금? 아아, 나는 겸손해진다. 대체 어디서 무슨 자신감으로 그토록 오만한 것이었나...


똑똑한 여자들 그렇게나 좋아했던 건, 내가 이렇게나 무식하기 때문이었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나저나 이래저래 살 책이 많네? 하루키 신간도 사야하고, 박준 신간도 사야하고, 면역에 관하여도 사야하고? 살 거 투성이구먼.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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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7-04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히라가나 다 외웠어요!!! 일본 맥주캔도 읽을줄 알죠! 으쓱. 뜻모른다는 게 함정.

다락방 2017-07-04 09:30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님 넘나 멋져요.... 전 고딩때 제2외국어 일어였고 항상 ‘수‘ 받았었는데, 언어라는 게 안하면 죄다 까먹는 거더라고요. 이제 히라가나 읽을 줄도 몰라요 ㅠㅠ

syo 2017-07-0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김지영 선생님은 소르본을 나오셨지만, 페이퍼 가운데 ˝흥얼흥을 8분16분˝ 이런 거 안되실걸요? 다락방님만 되는거임ㅎㅎㅎ

다락방 2017-07-04 11:1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흥이 많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식은 미천하나 흥은 많습니다. 흥얼흥얼 콧노래~ 잇힝~

단발머리 2017-07-0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라 비스.... 1977년생... 에서 저만 슬픈가요....
멋지고 근사한데.... 조금 슬픔.... ㅠㅠㅠ

다락방 2017-07-04 12:00   좋아요 0 | URL
앗. 저는 몇 년도에 태어난 것 까진 안봤는데, 지금 단발머리님의 댓글로 인해, 저 역시 슬퍼졌다고 합니다.


슬픔의 새드니스....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7-07-04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야 나는 세월을 다 어디다 썼나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프로필들이지만, 나만 하루를 48시간 줘도 저런 프로필 못가질거 같아요, 남은 시간 술먹거나 놀겠지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저분들이 글을 써서 저같이 어리석은 백성에게도 앎에 한켠을 쥐어주려고 하는군요 감동.

다락방 2017-07-04 13:3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휘모리님.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제가 저런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저렇게 공부를 열심히 할 사람도 아니지만, 한다해도 저만큼까지 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타고난 것도 어느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말씀하신대로, 똑똑한 분들이 글을 써주셔서 저희도 읽고 생각할 수가 있네요. 좋은 일입니다 흑흑 ㅜㅜ

2017-07-04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4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4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5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7-04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면역에 관하여> 굉장히 좋았아요ㅎ 기대이상이예요ㅎ 문체가 정말 좋아요^^
은유를 잘 활용하는 멋진 작가입니다ㅎ

다락방 2017-07-04 15:03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도 이리 말씀하시니(고양이라디오님 서재에서 본 것 같아요!!), 아아, 이번에 장바구니 털 때 반드시 넣어야 겠군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