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진은 여군이 군대내에서 받는 상당한 성차별을 옳지 못하다며 개선하려고 한다. 남자 군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쳐오더라도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용기가 있다. 책 곳곳에 군에서 당한 성차별과 성희롱이 언급되는데, 읽다보면 속이 터져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어진다. 물론 이건 군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아는 일화처럼, 1군 사령관이 술 마시는데 여군을 보내라고 한 일 같은 것은, 다른 남성들 집단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노래방 도우미는 대체 왜 필요하며,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아주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로부터 '술 마시게 친구들하고 같이와'라는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지 않던가? 왜 술마시는 자리에는 여자가 있어야 할까? 지들끼리 술 마시지도 못할거면서 술은 뭐하러 쳐마심?
그 모든 싸움의 과정은 고독했고 고단했음에 틀림없는데, 지금이라면 피우진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에 쓰여진대로라면 피우진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불평등한 것은 옳지 않으므로 평등해져야 한다 목소리를 낸건데, 페미니스트가 그거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위에 언급한 '술마시는데 여군보내라' 했던 1군 사령관은 나중에 합참의장까지 지냈다고 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개같은 짓을 해도 잘만 진급하는구나. 세상은 똥이구먼.
이 책 한권을 다 읽으니 몹시 지친다. 30년간 군에서 지내는 그녀의 삶이 진짜 얼마나 고단했을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옳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 대부분의 시간에 그녀는 혼자였다. 미움도 많이 받고 적도 많이 생기고, 게다가 상대는 남군이라는 다수이니... 나는 회식중에 여성비하 발언하는 남자 상사랑 말다툼 하는 것도 몹시 피곤한데, 피우진은 자기보다 직급 높은 사람에게 반항을 계속해대니, 아, 진짜 그 삶이 너무 고단하고 피곤했겠다 싶다.
군대라서 남녀 차별이 없을 거라는 건 나 혼자의 순진한 생가깅었다. 제도적으로 이미 여군은 남군을 보조하는 것으로만 정해져 있었다. 훈련소 시절이야 아직 보직이니 진급이니 하는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므로 그런 차별은 느끼지 못했지만 여군에 대한 이중적 시선은 이때부터 실감할 수가 있었다.
여군 후보생은 처음 선발하는 면접에서부터 단정함 이상의 미모를 주요 조건으로 따졌다. 앞에서 말한 파마머리 말고도 여군 후보생들은 일과 교육 시간에도 하의가 스커트인 정복을 입게 하였고, 내무반 밖에서는 꼭 화장하고 다니기를 요구했다.
마치 미스코리아라도 양성하듯 우아함과 신비성을 요구하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늘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화장하는 게 귀찮았지만 화장을 하라고 위에서 하도 지시가 내려와 후보생들은 빈 캐비닛에 루주 하나를 보관해 놓고는 아침마다 돌아가면서 발랐다. 후보생들이 맨 얼굴에 다른 화장은 하나도 안 하고 모두 똑같은 색의 루주만 칠한 채 학과 출장을 나가는 모습은 우리가 봐도 희극적이었다.
이렇게 여성성을 요구하는 한편 훈련이나 기타 화장실 사용, 목욕등 일반 생활에서는 여성에 대한 배려가 일절 없었다. 군대에 들어온 이상 남자와 똑같아야 한다면서도 여성만의 부드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동시에 요구 받았던 것이다. (p.46-47)
얼마전에 여자1이 자신의 남자사람친구로부터 소개팅을 받았다.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였고 횟집이었는데, 남자사람친구는 여자1에게, '뭐해, 새우 하나 까드려', '조개살 발라서 입에좀 넣어드리고' 같은 개소리를 했다는 거다. 밥먹다가 그 얘기 듣는데 나 진짜 너무 어이상실.... 내 남자사람 친구가 나에게 그런 개소리를 했다면 빈조개껍데기를 얼굴에 던져버렸을 거다. 지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처음 보는 남자에게 왜 새우를 까주고 조개살을 발라주라 시키는거지? 왜 함께 술마시는 여자는, '함께' 마시는 게 아니라 '남자 더 즐겁게' 술마시도록 도우라는거지?
이 책속의 1군 사령관도 그렇다. 얌전하게 술이나 쳐마실 것이지, 왜 여군들을 보내라는거야? 미친.... 여자 없어서 술을 못먹겠으면, 술을 마시지마!!
이 한권을 읽는데 시간도 얼마 안걸리는데 진짜 답답함이 오래간다. 남자들은 진짜 술마시는 거 못하게 해야 될 것 같다. 허구헌날 술핑계만 대버리니..지들 인격 문제인지도 모르고. 게다가 이 책속에도 부하여군 성추행,성폭행 반복적으로 하는 장교들 나오는데, 하아, 지금까지도 일어나서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다. 이놈의 인간들은 어쩌면 이렇게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있는지... 진짜 돈있고 나이든 남자들 너무 유해한 존재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해한 짐승들이야.....
아 책 읽으면서 너무 짜증이 나가지고 초콜렛을 막 먹었는데도 이 답답함이 가시지가 않네. -_-
개인적으로 나는 회식자리가 아주 싫었다. 내가 술을 못해서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 술을 안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술자리에 적응하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터득한다. 그래서 분위기 좋은 자리에서는 술 한잔 안 마시면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어울린다. 그런데 군대 회식은 질펀한 객기와 엄격한 상하 관계가 함께 작용되어 아주 곤혹스러웠다. 회식에 가면 여성은 무조건 최상급자 주위에 앉히려고 한다. 마치 접대부를 앉히는 식의 그런 일을 중간 간부들이 알아서 한다. (p.82)
어느 출판사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유명 작가 옆에 여직원들 앉히는 거. 이건 진짜 고질병이다. 어떻게 뿌리뽑냐...
하루는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비행학처의 처장이 술 마시고는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술 마시자고... 에휴... 피우진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난들 왜 상급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고 진급도 수월하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원리원칙이란 게 있다. 특히 조직은, 또 군이라는 특수 조직은 원리원칙이 철저해야 한다. 이를 무시한다면 조직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내가 처장의 방문에 문을 열어 주지 않은 것은 결코 여자의 입장에서만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라도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거절을 할 수 있다.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은데 상급자라는 권위만으로 아무 때나 술 마시고 쳐들어 올 수 있고, 하급자는 무조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게 바로 폭력이다. 이것은 남녀나 계급의 문제를 떠나 인간의 예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군이라는 조직은 이런 예의가 통용이 안 될 때가 너무나 많다. (p.145)
피우진이 그 속에서 그 부당함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쳐도 불의는 안된다고 항의했던 사람이기에, 예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앞으로 그녀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뭔가 이 답답함을 풀어내기 위해 다른 밝은 책을 좀 읽어야겠어....
마침 오늘 한 알라디너와 새벽 세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내가 뭐 참고할 게 있어서 새벽 세시를 집에서 가지고 나오기도 했지. 후훗.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나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와 줌파 라히리를 동시에 좋아하는 남자사람은, 나의 어떤 로망 같은 것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환상의 사람일 거라고, 그런 남자는 없다는 편견을 가져왔는데, 오늘 댓글을 나누면서 아아, 나의 생각 너무 편협했어...반성했다. 이 젊은 남자사람 알라디너는 내가 좋아하는 줌파 라히리의 단편, <섹시>를 좋아하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도 좋아한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세상엔 이런 남자사람도 있구나!!!
역시 알라딘이 좋아!!!!!!!!!!!!!!!!!!!!!!!!!!!!!!!!!!!!!!!!!!!!! 이런 남자사람도 있어!!!!!!!!!!!!!!!!!!!!!!!!!!!!!!!!!!!!!!!!!!!!!!! >.<
덕분에, 오만년만에 댓글놀이했다. 후후훗.
나는 어떻게든 버티리라 마음을 굳게 다지곤 했지만 속으로는 나도 가끔 아득했다. 나의 군인 정신은 나라를 위해서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적은 북쪽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남군이고 문서 쪼가리들이었다. (p.81)
남군들은 여군이 유별나게 굴지 않고 남자와 똑같이 생활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귀엽고 우아한 여성이기를 원한다. 그런 게 남성들의 일반적인 심리인지는 몰라도 나로서는 지금까지도 적응되지 않는 알다가도 모를 이중성이다. (p.95)
처음 여군 사관후보생에 지원하여 학과 시험에 합격한 후 면접을 치를 때가 생각난다. 면접 복장은 규정상 정장에 스커트를 입어야 했는데 나는 스커트 정장이 없어서 그냥 바지를 입고 갔다. 면접장에는 중령급 이상의 고급 장교들 5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바지를 입은 나를 보더니 왜 스커트를 안 입었느냐고 나무라고는 바지를 걷어 올려 보라고 했다. 흉터가 있는지, 각선미는 어떤지를 보는 것이었다. (p.97)
우리 여군은 단지 여라자른 이유로 그 어떤 특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군에 들어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멋진 군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결코 ‘치마‘를 내세우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여군들에게 ‘치마‘를 강요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군이 여군들에게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지 강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날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기어코 쓴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군 지휘부가 먼저 우리 여군에게 여성의 능력을 강요하지 말고 진정한 능력을 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하신 말씀은 사실 군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듣던 말입니다. 그러나 말은 늘 그렇지만 실제로 보면 군인으로서의 능력보다는 여성의 모습을 원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새삼스럽게 능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을 할 건 아니라는 거지요. 우리 여군들은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진정 능력을 원한다면 보여 줄 수 있습니다." (p.13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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