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실제 상담 사례들이 나온다.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를 얘기하고, 저자가 그에 대해 상담을 해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한결같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받고나면 대인관계를 원만히 할 수도 없고 자존감도 낮아진다, 그런데 그걸 단지 부모들의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지나친 경쟁사회가 부모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는 것이다. 한 개인의 잘못이라고 퉁치는 게 아니라, 지금 사회가 문제이고 이 사회가 부모를, 그리고 그들의 자식을 우울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일테지만, 그렇다면 이것은 대체 어떻게 고칠 수 있을 것인가. 괴로워하는 청춘들이 자기치유를 하려고 하고, 부모들과 대화를 하려고 한다해도, 사회가 병들어 있는 이상 답은 없지 않나. 이 사회를 바꿔나가야 하는데, 그건 또 무슨 수로 가능하단 말인가. 저자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책에서 언급되어 있는 바로는, 칠레에서 젊은이들이 데모를 해서 대학을 무상교육으로 바꿔놨다고 했는데, 궁극적으로 우리도 이렇게 연대해서 이런 식으로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 이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에선 불가능할것 같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리는 누구나 지나친 경쟁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공부를 시키는 것도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세상을 함께 살면서 '아이를 지나치게 공부시킬 순 없어, 이 나이땐 무조건 사랑받고 뛰어놀아야 해'를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현재 비혼이고, 앞으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런 나는, 사실 어릴때부터 아이에게 이것저것 배우게 하고 영어를 가르치고 하는 것들을 하는 것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가 그 상황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막상 그 위치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 역시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던 행위들을 스스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어린 아이에게 지나치게 공부하라는 윽박을 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성적이 나쁘면 너 이래서 대학은 어떻게 가냐고 정신적인 학대를 가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라고 하지만, 그 절대란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말인가.
당연히 내 조카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일곱 살, 네 살 어린 조카들. 일곱 살 조카는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고 집에서는 한글과 발레,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네 살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녀오고 집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여동생과 제부가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것은 아이가 좋아해서 시키고 있다는 걸 안다. 그들 부부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려고 시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대에 맞게 적응한 것일테고, 또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걸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것이기도 할것이다. 다 안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부모가 된다고 해도 여동생부부보다 더 잘할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김없이 여동생 부부는, 최선을 다해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과 별반 차이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동생부부도 다른 어떤 부모들처럼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이제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성적표를 받아오게 되면, 그 성적에 실망을 해서 아이에게 화를 낸다거나, 혹은 직접적인 화를 내지는 않아도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든가 하는 행위들.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이에게 좋은 어른 이란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왔고, 꾸준히 여동생 옆에서 내 생각을 말해왔다. 어떤 건 여동생이 듣기에 지나치게 이상적일 수도 있었을 것이고, 현실을 모르는 조언이랄 수도 있었겠지만, 또 어떤 때에는 여동생이 언니 말이 맞아, 라고 하면서 내 조언을 받아들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여동생의 옆에서 계속 내 의견을 말할 참이다.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되면 아마도 여동생이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것이고, 여동생과 나는 끊임없이 아이에게 더 좋은 방향을 의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매일 그들 곁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나의 조카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
답은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나왔다. 나는 아이들의 성적표와는 거리가 먼 곳에 있다. 아이들의 점수로 아이들을 판단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작고 소중한 존재의 탄생에 대해 감사하고, 아이가 혹여 아프기라도 하면, 다른 건 다 필요없고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사실을 잊고,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우수해지고 좀 더 좋은 점수를 받기를 기대하게 된다. 늘 좋은 사람,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한다고 해서 계속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조카들은 자라면서 가끔은 자신의 부모에게 실망하기도 할테고, 실망한 부모의 얼굴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와 싸우기도 할거고 속상해하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부모가 잘하고자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아이들과 다투고 실망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나는 조금 떨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선생님이나 부모가 설사 아이들의 점수에 실망한다고 해도,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나. 그러니 나는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다. 아, 이 위치란 얼마나 다행하고 좋은 것인지!
나는 아이들을 가끔 보면서 계속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특히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폭풍 칭찬을 해줄 것이다. 나는 아이가 거부하기 전까지 아이들을 안아줄 것이고 그 작은 머리통에 뽀뽀해줄 것이다. 아이들이 사달라고 하는 걸, 손 꼭 붙잡고 가서 사줄 것이고,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줄것이다. 눈을 맞추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의 말에 성심성의껏 리액션을 해줄 것이다. 내게 이것이 가능하다는 건 축복이다. 나는 만약 부모가 된다면, 다른 부모들보다 더 잔소리 심한 부모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모이기 때문에, 한걸음 떨어져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내 역할은 이것이구나. 아이들이 다른데서라면 몰라도, 이모에게 만큼은 자신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줄 수 있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내려가지 않도록, 내가 해줄것이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언제나 당당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다!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가.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갖고 있진 않다. 엄마와,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조카들이라면, 나의 무조건적 사랑이 가능하니, 나는 아이들에게 진짜 엄청난 사랑을 줄것이다!!!
이번 생에서 나의 역할은 이것이로구나, 생각했다. 나의 조카들을 무한한 애정으로 지켜봐 주는 일. 그리고 이 역할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잘할 자신이 있다. 사랑받는다는 게 어떤건지 확실히 알게 해줄게!!!
이번 생에서 나의 역할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 무조건적으로, 무한하게.
금요일 밤에 술을 마셨고 그래서 토요일에 늦잠을 자려고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늦잠을 못자겠더라. 아직 자고 있는 남동생 방에 노크하고 들어가 남동생 옆에 누워서는, 너 아침 안먹고 계속 잘거냐, 아침은 뭘 먹을거냐, 나는 뼈해장국이 먹고 싶다, 하면서 대꾸가 없는데도 계속 쫑알쫑알 댔더니, 남동생은 '저리좀 가...' 라고 했다...............흙 ㅜㅜ
너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하는 두 명의 남자사람 중 하나인데....왜 나더러 저리가라는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너무 사랑해서 나의 조카들도 나중에 '저리좀 가' 라고 하는 건 아닐까 ㅠㅠ
밤이 깊었다.
**덧. 이 책 [청춘 심리 상담] 읽고 싶으신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제가 읽었던 책 보내드리겠습니다. 깨끗해요. 딱 한 권 있으므로 딱 한 분만 가능합니다. ** (신청 완료되었습니다!)
정당한 비판인데도 기분이 나빠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인격적으로 오히려 후퇴한 사람은 장차 어떤 심리를 가질까? 사실 이런 사람도 무의식적으로는 상대방의 비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 탓에 정당한 비판에도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나치게 느껴서 그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이후 수치심등을 자극하는 비판을 애써 피하려 하고, 무의식적으로는 옳은 비판인데도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디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까지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심리가 견고해지면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는 폐쇄성을 띠고,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비판에 매우 신경질적이거나 공격적인 과민 반응을 한다. (p.170)
사실 죄책감만큼 견뎌내기 어려운 감정도 없다. 죄책감은 반성하고 사죄하면 제거할 수 있다. 그러려면 어머니가 연수 씨를 학대하는 데 반대하고, 나아가 그것을 멈추게 해야 한다. 그러나 두 아이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이런 고통ㅇ스러운 상황에서 죄책감을 덜려면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써서 현실을 왜곡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연수 씨의 언니와 남동생은 피해자인 연수 씨에게 `당해도 싼 아이`라는 편견을 뒤집어씌우고 그녀를 집안의 평화를 파괴하는 문제아로 낙인찍으면서 비난하기 시작한다. (p.181)
나약하고 비겁한 이들이 학대자와 한통속이 되어 학대자가 아닌 피학대자를 비난하는 일은 흔하다. 깡패들이 반복해서 약자를 패는 난동을 벌이는데도 이를 말리지 못하면, 결국 구경꾼들은 죄책감을 덜기 위해 `저것들 때문에 세상이 조용할 날이 없다`며 약자를 욕하다. 한국 사회에서 과거 군부독재 정권 아래 지역 차별 정책의 최대 피해자였던 전라도 사람들을 충청도나 강원도 사람들이 차별하고 욕했던 일이나 정권이 빨갱이나 종북 세력으로 낙인찍기 일쑤였던 민주화 세력을 국민 상당수가 비난하고 공격했던 일이 대표적인 예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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