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생일때문에도 책선물을 엄청 받았고 또 내가 그동안 사둔 것도 있고 해서, 진짜 읽지 못한 책들로 인해 숨도 못 쉴 지경이다. 사방에서 나를 압박해오는 느낌. 너무나, 너무나 읽지 않은 책들이 내 주변에 가득해, 아아, 이걸 대체 언제 읽나...하는 답답함.... 선물 받은 책들도 다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이고, 내가 산 책들도 다 내가 읽고 싶어서 산 책들이다. 그런데 어제, 자, 이제 무슨 책을 읽을까, 하고 책장 앞에 섰는데, 아아, 읽고 싶은 책이 하나도 없어....내가 읽고 싶다고 생각해서 사둔, 그렇게 선물 받은 이 많은 책들중에 왜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없지? 어째서? 왜 때문에?? 아아, 나는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을 떠올렸다. 거기, 내가 아직 사지 않은 바로 거기에 읽고 싶은 책이 있어. 당장 결제할까, 지금 당장???
그렇지만, 지금 내가 쌓아둔 책들도 다 그렇게 내게로 온 책이 아닌가.....
어쨌든 책장 앞에 가서는 책을 하나 골라서 빼들었다. 그리고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너무 신났다!
나는 항상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쉬운 책이 나오기를 바랐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 페미니즘을 좀 더 알고 싶은 사람들, 누가 됐든간에, '도대체 페미니즘이 뭔데?' 하는 궁금증으로 골라들었을 때,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쉽게 이해될만한, 그런 책. 누가 읽어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바로 그런 책. 그간 내가 여러 권의 페미니즘 책을 읽었고 또 읽고 있는데, 내 마음에 흡족한 그런 쉬운 책이 없는 거다. 용어들이 낯설거나 학술적으로 접근하거나 이미 페미니즘에 익숙한 사람들이 써둔 책은,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접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려울테고, 어려우면 읽다가 포기하기 십상인데, 이렇게 내 마음에 쏙드는 책이 없어. 실제로 그 좋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도 읽다가 포기한 사람들을 내가 봤다 ㅠㅠ 그래서 쉬운 책, 모두가 팔랑팔랑 넘길 수 있을만한 책, 을 간절히 바랐던 거다.
내가 원하는 이런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급기야 '내가 쓰자!'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냥 내가 쓰자, 내가 쉬운 책을 쓰는 거야,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책으로, 내가 쓰는 거야!!!
이 생각을 하는 나는 멋졌지만, 나는 내가 쓰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란 것을 또 바로 깨달아가지고 ㅋㅋㅋ 여태 못쓰고 있다. ㅋㅋㅋㅋㅋㅋ 내가 무슨 페미니즘 책을.... ㅋㅋㅋㅋㅋ 안돼, 그만둬, 무슨...됐어.... 이러고 급포기했는데, 아아, 벨 훅스 님은 정녕 짱이십니다! 어제 서문 읽다가 완전 빵터져서 좋아했다. 최고최고!!
내가 이 자그마한 안내서를, 20년 넘게 갈망하기만 하던 책을 마침내 쓰게 된 것은 이런 남자들-늙었거나 젊었거나 간에-을 위해서이고,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를 위해서이다. 이런 책이 나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서문, p.11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책이 나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나랑은 클라스가 다른 분이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짱 멋지심!! 아, 어제 자기전에 잠깐 봐야지 하고 들춰봤다가 너무 신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이 책을 절반쯤 읽은 지금, 이 책이 벨 훅스가 쓰고 싶었던 그런 쉬운 책이 아니라는 것은 함정... 페미니즘에 대해 처음 이 책을 집어드는 사람이 이 책의 책장을 잘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책이 나온게 2천년대 초반인데, 지금은 이것보다 접근이 더 쉬운 책들이 여러권 있다. 이 책은 그 책들 다음으로 읽는 게 좋을 듯하다.
아 너무 멋져, 벨 훅스!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책이 나오질 않아 자신이 직접 써버리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자기가 할 말은 자기가 해야 하는 게 진짜인듯하다. 가장 잘 전달되는 듯하고.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미 온건한 페미니즘이란 기준을 세운 사람과 또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식으로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만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얼마나 피로한가를 나는 최근에 여러차례 깨달았다. 그러다가 어제는 '이민경'의《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해를 시키려 노력한다’는 말, 묘하게 모순입니다. 이해란, 원래 시키는 게 아니라 하는 겁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21쪽)
내가 왜 그들을 이해'시켜야'하지? 내가 왜 거기에 일일이 대답하면서 이해시키려고 해야하지? 이해는 '하는'거지 '시키는'게 아니잖아? 이미 자기가 보는 것만 보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한테 말을 하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나는 피로를 느낀다. 그래서 이제는 피로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이해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시키려고 하다니, 너무 어리석었다. 이해시키려고 애쓰지 말고, 내버려두자. 피곤해... 누군가의 이해를 '돕는 건' 내 선의이고, 나는 피로하므로 그 선의를 택하지 않겠다.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과만 섞여 살아도 한 세상은 부족해...
읽을 책이 많아도 당장 읽을 책은 없는 것도 신기한데,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너무나 책을 읽고 싶은 것도 신기하다.
어제는 집에 가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너무나 지치고 피로해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진짜 1도 안났다. 그래서 멍때리다가 스맛폰만 들여다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했는데(you call it love!!), 오늘 회사에 출근해 내 앞에 쌓인 일들을 보노라니, 오, 너무나 책을 읽고 싶고 너무나 글을 쓰고 싶다. 요즘에는 알라딘 탈퇴를 많이 생각하는데, 이렇게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어떻게 나가버리나 싶다. 크- 여기에 너무 오래 있어서 뭘 어떻게 바꾸기가 참 거시기하다... 어쨌든, 일이 많을 때 글 쓰고 싶고 책 읽고 싶다는 게 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일을 해, 일을 하란 말이닷!!
아, 어쩐지 책도 한 바구니 사고, 페이퍼도 하나 써야, 그때야 비로소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야..
다시 처음의 《행복한 페미니즘》얘기로 돌아가서, 이 책이 절판이라 무척 아쉬운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나올 거다'라는 믿을 만한 소식을 접했다. 나의 정보원... ♡ (아, 물론 내가 이거 다시 내달라고 얘기했다 ㅋㅋㅋ 제일 멋진 건 나임 ㅋㅋㅋㅋㅋ)
노란색 색연필로 밑줄 그어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있는데, 밑줄긋기는 이 책을 다 읽으면 한 번에 올려야겠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오늘 할 일이 많아.
사무실이 주말에 이사를 하는데, 이사준비로 바쁘다. 어제도 퇴근후에 짐을 싸는데, 아아, 나에게는 왜 개인적인 짐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그리고 책들.......분명히 다 치웠었는데 왜 또 여기저기에 나의 책들은 쌓여있는가......왜지.....
그나저나 한여름에 이사라니...벌써부터 끔찍하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주소지도 바꿔야겠지....아 귀찮아.........
자, 이제 글은 썼으니, 장바구니 한 번 털러 가볼까. 그래야 일을 시작할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