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p.410-411)

















이 책을 읽으면서 '굳이 읽지 않아도 좋을 책이구먼'이라고 수차례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그런데 왜 읽고 싶어했었지?' 하고 갸웃했다. 애초에 표지부터 내가 좋아할만한 책이 아니라고 확실히 똭- 말해주고 있어서 관심도 안가졌었는데, 내가 왜 이 책을 사고 또 읽게 되었을까? 하고. 그러다가 저 인용문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 구절이었구나. 어딘가에서 이 구절을 봤던 거였어. 그래서 읽고 싶어했었구나, 했다.



중학생시절, 노트였나 편지지였나, 그런 싯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장점을 보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단점을 보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어디에서 본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오베라는 남자]에서 사랑에 빠지는 걸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비유는 적절하다고 본다. 크- 

처음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사랑에 빠지기 시작할 때는 비슷한 점을 보며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점들 때문에 당황해하기도 한다. 그 다른 점들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늘 어려워서 그럴 때 종종 싸우고 다투게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영화 [45년 후]에서 45년을 함께한 부부가 서로의 습관이나 서로가 물건을 놓아두는 방식, 자리등을 자연스레 익힌것처럼, 그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습관과 성향을 알게 되고, 저 사람의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알게 되며, 또 상대의 어느 부분은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집에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역시 마찬가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반짝반짝 빛나고 완벽하게 보이겠지만 사실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는 법. 부족하고 삐걱거리는 부분을 알고 적응해가는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단계일 것이다. 


나의 아빠는 매우 다정하시다. 사랑이 넘치시며 표현을 엄청 잘하신다. 아 사랑 좀 그만해, 라고 말할 정도로 애정 표현을 자주 하시는데, 아직까지도 매일 엄마와 수차례 통화를 하신다. 엄마와 아빠를 아는 이웃들은 '남편 잘만났다', '신랑 너무 좋다', 등의 말들로 부러워들 하시는데 그때마다 엄마와 나는 말한다.


"아..진짜 우리 아빠랑 일주일만 살아봐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텐데..."


라고.... (응?)



바깥에서 보는 나는 많은 부분을 드러내지 않는,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는 나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가장 많은 것을 보게 되는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은밀한 나의 단점들을 혹은 약점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작게는 엉덩이의 점부터, 크게는 변태 성향까지... 나의 정치적 성향이라든가 업무 스타일, 독서 스타일을 아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비밀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크- 이건 너무 낭만적이야. (응?)



'산드라 브라운'의 책, [당신과 눈뜨는 아침]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청자들은 당신이 완벽한 모습일 때만 보지요. 완벽하게 차려입고, 완벽하게 행복한, 모든 면에서 완벽할 때요. 하지만 난 당신이 지독히도 엉망일 때도 봐 왔어요. 당신이 일어나서 아침 커피 마시기 전이나 허름한 옷을 입고 단정치 못한 차림새로 집안을 어슬렁거릴 때라든가요. 당신이 복통을 일으켰을 대 대야에 구토를 해대는 당신 머리를 붙잡아 주기도 했어요. 당신의 더러운 양말도 빨고요." -산드라 브라운, [당신과 눈뜨는 아침], p.214-215



확실히 좋다. 그에게 '나만 아는 부분'이 생긴다는 건. 또 그만이 알 수 있는 나의 어떤 점들이 있다는 것. 그게 너무 좋아서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에서 '팅커'는 '아무도 모르는 걸 말해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말 근사한데요." 팅커가 말했다.
나는 내 커피잔을 건배하듯이 들어 올렸다.
"내가 교회에 간다는 걸 아는 사람은 몇 명 안돼요."
그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럼 당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걸 말해봐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팅커는 진지했다.
"아무도 모르는 것?" 내가 말했다.
"딱 하나면 돼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약속해요."
그는 자기 말을 증명하려는 듯이 심장 앞에서 성호를 그었다. -에이모 토울스, [우아한 연인], p.70



아 진짜 좋네. 연애하고 싶어진다. 나는 연애를 끊었는데...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참 뭐랄까, 뜻대로 움직이는 바가 아니라서, 빛바랜 벽이 싫어질 수도 있고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이 지긋지긋해질 수도 있다. 그러면 .. 그 집을 떠나서 새 집으로 가고 싶어진다.. 이사를 가고 싶어진다.....  


.

.

.

.

.

.

.

.

.




그만두자.

쓰다가 기운 빠짐.

안녕..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그에게 얼굴을 들어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보다 두 배 더 날 사랑해줘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오베는 두 번째로-또한 마지막으로-거짓말을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가 지금껏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p.232)

도요타.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통 선택할 차가 아니라고, 오베는 판매 대리점에서 아드리안에게 수없이 지적을 했다. 하지만 최소한 프랑스제는 아니었다. 오베는 차 가격을 거의 8천 크로나 깎고 그 가격에 겨울용 타이어까지 받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 이런 조건으로 도요타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베가 대리점에 갔을 때 그 빌어먹을 꼬마는 현대차를 보던 중이었으니까. 하마터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p.42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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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2016-06-0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다락방님! 연애를 왜 끊으셨어요?!! 연애하세요!! 저는 이미 결혼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연애를 해서 불행한 게 연애를 안해서 외로운 것보다는 나은 것 같더라고요. 하핫..^^;;;

다락방 2016-06-01 09:52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피오나님 댓글 읽으니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소설 [스타킹 훔쳐보기] 생각나네요. 거기에 그런 말이 나오거든요.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고 아파하는 게 낫다`고요. 오래된 격언이래요. ㅎㅎㅎㅎㅎ

얼마전에 친구랑도 얘기했는데요,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연애요. 그 친구도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이젠 연애 그만두고 고양이랑 재미있게 지내고 싶다고. 저도 연애 그만두고 친구들 만나서 먹고 마시고 수다 떨며 지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피오나 2016-06-01 10:08   좋아요 0 | URL
아이고...뭔가 슬프다...결혼은 안해도 괜찮은...혹은 안하는게 더 나은? ㅋㅋ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연애는 하세요...남자도..여자도..연애를 안하는 건 슬퍼요

다락방 2016-06-01 11:42   좋아요 0 | URL
(아 일하기 싫어서 미치겠네요.... 그래서 댓글 달러 왔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애를 하기에 이제는 기운이 딸려요 피오나님 ㅋㅋㅋㅋㅋ 미지근한 연애도 해봤고 뜨거운 연애도 해봤으니 이제는 그냥 쉬어도 될 것 같아요. 김이듬의 시, <겨울 휴관> 처럼요.

나는 쉬겠네/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북프리쿠키 2016-06-0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워낙 ˝전설의 고향˝에 단골영물이라 선입견이 많았어요~좀더 마음을 열어 알게되면 사랑스러울거 같아요ㅎ 참 연애끊게 주위에서 놔두시는 가봐요ㅋ 맘대로 끊게!!

다락방 2016-06-01 11:44   좋아요 0 | URL
저도 고양이 무서워하고 싫어했었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고양이 좋아하는 친구들이 되게 많아지고 항상 고양이 얘기 듣고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계속 목격하다보니 저도 이제 소세지 사서 가방에 쟁여뒀다가 길고양이 만나면 밥 주고 있어요. 뭐 늘 그러진 않지만 말예요. ㅋㅋㅋㅋㅋ

그러게요. 연애 끊게 주위에서 저를 놔두고 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요. 연애 끊게 주위에서 놔둔다는 말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6-0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이란 말이 왜 이리웃길까요
연애는 하셔야죠. 에로스를 회복해야 하거든요ㆍ에로스란 충동이자 용기이고이성이기에ㆍ남자가 싫으시면 여자는 어떠신지요?
저는 그럼이만
안녕

다락방 2016-06-01 11:45   좋아요 0 | URL
웃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어주셔서 감사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라고 쓴 거 맞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이소오님의 안녕도 웃기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는 이제 연애 안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이소오님, 안녕..

시이소오 2016-06-01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제가 상태가 괜찮으면 우리 연애합시다, 할텐데 상태가 안좋아요. 게다가 와이프도 있어서
다락방님
안녕...

다락방 2016-06-01 15:04   좋아요 1 | URL
하아-
연애합시다, 라는 말에 `그래요` 라고 대답했는데 한 달 후에 차였던 일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_-
아 속쓰려..

안녕..

건조기후 2016-06-0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그의 장점을 보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단점을 보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말 정말 좋네요. 저는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던 것 같아요. 단점에 끌려서 좋아하게 되었는데 의외의 장점을 보고 사랑하게 되었던. ㅎㅎㅎ

다락방 2016-06-01 15:03   좋아요 0 | URL
단점에 끌려서 좋아하고 장점을 보고 사랑하게 되었던 경우도 있었군요, 건조기후님. 크- 이런 얘기를 소주 없이 들어야 하다니...서운해.. ㅠㅠ
음 저는, 너무 좋아서 사귀게 됐는데 사귀고 나니까 계속 계속 더 좋아서 죽을 것 같았던 그런 경험도 있어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역시 감정적 소모가 너무 큰 일이라 연애는 안하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연애 안해! 끝!!

2016-06-01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1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1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6-01 15:39   좋아요 0 | URL
방금 막 신나서 등록했어요. 고맙습니다!! >.<

루쉰P 2016-06-02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구절 너무 좋아요 ㅠ.ㅠ 진짜 좋다...

여전히 다락방님의 글은 하루키 수필과 같은 맛을 주는 군요 ㅋ 읽을 때마다 재미집니다.

전 돈을 아껴서 기계식 키보드 청축을 샀어요 ㅋ 타자 치는 것처럼 감이 무지 좋아요. 그래서 이렇게 댓글을 다는데도 무쟈게 신나네요. 흠...고시원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는 데 키보드를 산다...뭔가 좀...

그리고 그 구절도 너무 좋아요. `그의 장점을 보고 좋아하고, 그의 단점을 보고 사랑하게 된다` 우훗 너무 좋아....
정말이지 이번 리뷰는 정확하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아요. 흠 좋다....

다락방 2016-06-03 08:47   좋아요 0 | URL
좋지요? 저도 저 구절 때문에 저 책을 사서 읽었던 것 같아요. 책은 제가 기대하는 만큼의 책은 아니었지만, 저 구절만큼은 다시 읽어도 좋더라고요. 힛.

아니, 하루키의 수필과 같은 맛을 준다 하시니, 진짜 고맙습니다. 저는 하루키 진짜 짱 좋아하거든요. 하루키 만세! 하루키 너무 좋아요. 우하하핫.

루쉰님, 고시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데 기계식 키보드 사는 게 뭐 어디가 어때서요? 그걸 사서 루쉰님이 감도 좋고 신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그건 제 역할을 다 해내고 있는 거고요. 사고 싶었고 또 잘 사용하고 있다면 전혀, 전혀 마음에 걸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어때요. 고시원에서 공부한다고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게다가 겨우 키보드일 뿐이라고요!! 설사 고시원에서 공부하면서 집을 열 채 샀다고 해도, 뭐 어때요? 돈 워리!


공부 열심히 하고 또 만나요!

무해한모리군 2016-06-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아까 하이드님 페이퍼에 `다정하고 섹시한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문구가 나왔는데, 우리는 여든까지는 거뜬하게 살거예요. 그런데 이쯤해서 그걸 포기하다니요... 안됩니다 안되요.

저 두배더 사랑하겠다는 말이야말로 거짓말이기 보다 친절함이네요.. 나에게 다정하고픈 사람 만나고 싶다~

다락방 2016-06-03 08:49   좋아요 0 | URL
두배 더 사랑해달라는 요구도 저는 무척 좋더라고요. 저는 사랑 앞에서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멋져요!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한 사람이요. 저도 나중에 혹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면(일단 지금은 끊었지만 ㅋㅋ), 두 배 더 사랑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참이에요. 히힛.

모리님, 우리가 서로에게 더 다정해집시다. 지금보다 더요. 다정한 거 너무 좋아요. 다정한 게 최고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