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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클레이본 ㅣ 스티븐 킹 걸작선 4
스티븐 킹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어떤 일들은 전혀 가혹하다 여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돌로레스가 남편 조를 죽인 일이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살인은 나쁜 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게 더 나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조가 그랬다. 조가 돌로레스를 '패는' 남편이어서가 아니다. 그것도 나쁘지만 그보다 더 나쁜 짓을 그는 저질렀고, 그래서 그의 살아있음이 누군가에게 내내 두려움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라면,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내보일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그렇게 옷의 먼지를 털듯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말끔하게 지워낼 수도 잊혀지는 종류의 일도 아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돌로레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갇혀 살아야 했으니까.
오래전에 스티븐 킹의 단편선을 한 권 읽고는 우앗, 너무 무서워서 나는 앞으로 스티븐 킹을 읽지 않을 거야, 라고 결심했더랬다. 그때의 그 공포라니! 기억하기로는 <옥수수밭 아이들>이 가장 무서웠다. <트럭>도 무서웠고, <금연 주식회사>도 무서웠고 ㅠㅠ 아아, 이 사람이 쓰는 소설을 나는 읽어낼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해서 이 책도 사두고 몇 년을 그냥 꽂아두기만 했는데, 하필이면 연휴끝인 어젯밤 집어 들었고, 아아, 스티븐 킹 아저씨가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게 쭉쭉 빨려들어가게 글을 써주셔서 ㅠㅠ, 아니, 그랬기 때문에!! 나는 새벽녘까지 책을 한 순간도 덮지 않고 다 읽어버리고 만것이다. 덕분에 세 시에 잤어요. ㅠㅠ 잠들기전에 이런 책을 읽으면 안되는데.. ㅠㅠ 오늘 아침에 내가 일어나기 힘들었겠어, 안힘들었겠어.
게다가 세 시에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잘 오지도 않았다. 이 책에서 느꼈던 공포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에. 무서워 ㅠㅠ 그래서 뽀송뽀송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자꾸 끄집어내야 했다.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킹 아저씨 작품을 이제부터 천천히 차근차근 다 읽어봐야겠다. 공포물은 좀 빼고 ㅜㅜ
곳곳에 명문들이 있다. 이런 문장들을 만나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의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자네는 항상 착한 아이였지. 남자 아이치고는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자네가 공정한 사람이라는 얘기야. 게다가 이제는 버젓한 남자가 됐어. 하지만 너무 으스대지는 말라고. 자네도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이 자랐으니까.빨래를 해 주고, 콧물을 닦아 주고, 자네가 잘못된 쪽을 향하고 있을 때 돌려세워 줄 여자가 항상 옆에 있었다는 얘기야. (p.16-17)
우리 아버지가 벌을 내리면 엄마는 그걸 받아들였어. 하지만 아버지나 엄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생각은 없어. 어쩌면 엄마는 남편의 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 아버지는 엄마를 벌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그러지 않았으면 항상 같이 일하는 남자들한테 얕잡아 보였을지도 몰라. 그때는 시절이 달랐으니까. 지금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하지만 말이야, 내가 애당초 얼간이처럼 조하고 결혼했다고 해서 그 인간이 그런 짓을 하는 것까지 참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남자가 여자한테 주먹질을 하는 거냐, 나무 상자에서 꺼낸 장작개비로 매질을 하는 건 절대 가정 바로잡기가 아냐. 그래서 나도 조 세인트 조지 같은 사람, 아니 그 어떤 남자라도 나한테 그런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거야. (p.98-99)
내가 어깨 너머로 돌아보니까 그 여편네가 좀 이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마치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가끔은 여자가 자기를 지탱하기 위해 못된 년이 되는 수밖에 없어."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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