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의 사진은 근사하지만 표지 자체는 좀 후졌다. 두꺼운 도화지 표지-이것도 아주 두껍지는 않아-에 종이 포장지로 한 겹 싼 느낌. 그래서 금세 구겨지고 낡기 쉽다. 전체적으로 약한 표지다. 흠..
나처럼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이든 소설가이든 시인이든, 그러니까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나는 이런 글을 쓸 순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하는 편인데, 우아한 글을 읽을 때도 그렇고 체계적인 글을 읽을 때도 그렇다. 아, 이런 글은 내가 쓸 수가 없겠어. 이렇게 우아하고 체계적인 글, 논리정연한 글을 쓸 순 없어, 이건 내 능력 밖의 일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지.
그러면서 나는 내 글이 감성 떨어지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좋게 말하면 감성이 묻어나고 나쁘게 말하면 감성이 흘러넘치는 글이라고 생각해온 거다.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한 글을 쓰고 싶은데 지나치게 기분파랄까.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한다. 뭔가 정리하고 쓰는 글이 아니라 쓰면서 정리가 되는 스타일이니까. 어쨌든 나는 내 글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감성으로도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이런 글을 본 것이다.
"네 이름을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 개의 별들이 얼음처럼 부서진다."
오래전 이렇게 시작하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서문에서
아니, 네 이름을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 개의 별들이 얼음처럼 부서진다......라니. 이야, 이건 내가 쓸 수 없는, 감히 생각해낼 수 없는 문장이다. 이런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그러나 사실 아름답다는 생각은 했으되, '좋다' 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좋다 혹은 싫다 고 말하기에는 뭣한, 그 중간지점 어디의, 약간 멘탈에 붕괴를 가져오는 문장이랄까. 아, 나는 결코 이런 문장을 쓸 수가 없어. 시인은 다른 건가... 그러니까 박연준은 장석주로부터 저런 문장이 담긴 메일을 받았단 거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박연준, 저런 메일을 받고 가만히 있었느냐, 하면, 그럴 리가!
먼 곳에서 나를 향해, 별들이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녁이 되자 슬퍼졌습니다.
무릎을 꿇고 '얼음을 주세요'란 제목으로 시를 썼지요.
그 시로 시인이 될 줄은 몰랐지만 시를 쓰던 순간,
파랗게 내가 곤두선 불꽃이 된 기분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 서문에서
이래서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있나보다. 별들이 얼음처럼 부서진다, 라는 메일을 나한테 보냈다면 내가 감히 얼음을 주세요 란 제목으로 시를 쓸 수 있었겠는가. 파랗게 곤두선 불꽃...같은 기분을 내가 느꼈을 리 없잖아? 그래서 장석주는 박연준에게 저런 메일을 보낸 것이고, 그래서 박연준은 얼음을 주세요란 시를 쓴 것이다. 내가 아니라서. 그 어디에도 내가 없어서. 그들은 장석주고 박연준이라서. 아...내가 될 수 없는, 내가 어울릴 수 없는 그들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좋게 쓰이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여기서는 진짜 그 말 밖에 생각이 안난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그러니까 나로 말하자면,
먼 곳에서 나를 향해, 별들이 걸어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그 누구로부터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고, 당연히 별들이 부서진다는 식의 메일을 보낸 이도 한 명도 없었던 거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고, 설사 앞으로 누군가 내게 네 이름을 발음하면 별들이 쏟아진다 는 식의 메일을 보낸다면, 음..... , 나는 답장 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연히 시도 쓸 수 없을 것 같고.
국문과를 들어가 다시 공부할까,
하는 생각을 몇 년전부터 지금까지 쭉 해오고 있다.
물론,
생각만 하고 있다.
들어가봤자 어차피 공부 안할 나임을 알기에.. ♪ 잘 알기에~ ♬ 어머님 용서하세요 그녀에겐 저밖에 없는데 그녈 버릴 수가 없어요~ ♪ 너의 몸이 낫는대로 어디 멀리 떠나자~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람은 궁극적으로 나에게 맞는 대화상대를 만나기 위하여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거 아닐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 결국 잘 맞는 대화상대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잘 맞는 것 같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도 금세 헤어지게 되는 경우는, 잘 맞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거나 혹은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맞춰주려고 했던 경우가 아닐까. 결국 대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치게 한다는 거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는 이 사람과 이별을 고하고 또 저 사람과 헤어지면서 자꾸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 결국 내 옆에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나와 대화가 가장 잘 통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얼마전에 [꽃보다 청춘]이란 프로를 잠깐 봤는데, 그전부터 본 게 아니라 각자의 캐릭터 파악이라든가 그 프로그램의 분위기라든가 하는 걸 내가 알순 없었지만, 오로라를 보고 들어와 다같이 감흥에 젖어, 그 늦은 밤, 한잔더? 를 외치고 침대에 내 명이 함께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물론 '너는 뮤지컬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하는 질문은 뭔가 설정스러워서 별로였지만, 그것은 티븨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일테고, 친근한 이와 함께 무려 오로라!! 를 보고 숙소로 돌아온다면, 그 침대 위에서 우리는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다. 그래서 말랑말랑 낭만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손을 잡고 누군가와 오로라를 보고 함께 숙소로 들어와 씻고 지친 몸을 침대에 철푸덕 얹어놓고서는, 준비되어 있는 술을 꺼내와서 홀짝이며, 긴긴밤 지쳐 잠들때까지 얘기를 하는 거다. 아, 너무 좋지 않은가! 그러고보면 나는 항상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서로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좋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가 좀전에 같은 경험을 했어! 그렇다면 우리에겐 같은 감정이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 쌓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 마음맞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지는 아래 사진이 좋았다.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보면서 이야기나누는 게 눈앞에 확 그려지지 않는가. 너무 좋은 거다. 이것은 내가 오래전에 한 번 페이퍼에도 언급했던 그 포치가 아닌가! 낮에도 밤에도 이른 아침에도 또 새벽에도, 저런 곳에 앉아 이야기나눌 수 있다면 뭐랄까, 삶이 굉장히 충족스런 느낌일 것 같다. 삶에 있어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느낌?
얼마전에 마음이 꽉 찬 느낌, 빈 틈이 없는 것 같은 충족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만약 저런 곳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 앉아서 뭔가를 먹고 마시며(반드시!!)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때는 삶 자체가 완벽하게 느껴질 것 같다. 아, 아름다운 인생..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아래 사진이다.
이런 사진은 그냥 내 스타일. 완전 사랑하는 사진. 스테이크를 구웠대...하아- 인생... 스파게티도 먹었대.. 아아. 와인과 맥주가 빠지지 않는 저녁이라니, 아, 도대체 이들은 얼마나 근사한 삶을 산거야! 저렇게 여러 병의 와인을 보노라니, 그들의 행복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뭐 실상 저 식탁에 마주앉아 서로 싸웠을지도 모르지만, 사진으로 보는 내게는 완벽하고 충족된 마음만이 전해진다. 내 로망이야. 술, 맛있는 안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과의 대화.
멋져...
그렇지만 이 책은 재미 없었다. 아하하하하. 지루했어 ㅠㅠ 박연준은 걸으면서 맞닥뜨리는 풍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장석주는 걷는다는 행위 그 자체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둘의 글 스타일도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스타일의 글 모두,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박연준은 앞으로 시로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연준과 장석주는 한 달간 시드니에서 살아보게 됐다. 호주에 집을 가지고 있는 지인이 오랜 시간 여행을 떠나면서 '여기서 늬들이 살아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했던 것. 그래서 훌쩍 그 먼 데로 날아가 그 집의 침실, 부엌, 욕실들을, 사용하던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되게 편하겠다. 뭣보다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가정집'인데 거기에 우리 둘밖에 없고(꺅!!), 게다가 그런 집을 구하는 험난한 과정 역시 생략되어 있었으니. 아, 이 얼마나 땡보..(응?)
나도 그렇게 한 번 지내보고 싶기는 했다. 먼 데서 한 달간 혹은 두 달간. 그냥 그 동네나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면서. 몇 시가 됐든 일어나서 푸짐한 아침(!)을 먹고 점심도 푸짐하게 먹고 저녁은 더 푸짐하게 먹고(!!), 술도 퍼마시고 랄라~
일단 회사를 때려쳐야해..
그리고 내가 그렇게 지낼거라면 나는 호텔이어도 좋겠다.
아, 저렇게 와인 쌓아두고 먹고싶다.. 저렇게 쌓아둔 와인병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와인 한 박스를 선물하며 청혼했다던 남녀가 떠오른다. 가장 이상적인 청혼방법인 것 같아... 그런데 그 책의 제목은 왜 맨날 생각이 안나지? 도리스와 .. 뭐였지? 찾아보고 와야겠다. 아, 힘들게 찾았다. [둘런과 모리스의 컬렉션] 이었다. 도리스는 개뿔..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_-
이 영화를 지루하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 보고난 후에는 가슴이 서늘해지더라. 그 웅장한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기분도 들고. 어휴, 자연이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울 수 있는지 정말 잘 보여준다고 할까. 양쪽으로는 절벽이며 가운데 길은 눈으로 가득 쌓였는데, 거기를 혼자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라니. 하아- 너무나 쓸쓸하고 고독해보여서, 아, 인간은 원래 이토록 외로운 존재인가, 하고 되게 추웠었다. 춥구나, 인생..
남자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는데, 그렇다면, 그 복수가 끝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목적이 있었으나 그 복적을 이룬 삶이라면, 그러면 그 후엔..무엇이 남는걸까?
서늘하다.
얼마전에 동생네 가족이 와있었을 때 나의 고모가 나의 조카들과 놀겠다며 오셨더랬다. 그때 칠 살 조카가 고모의 손을 잡고는 내 방으로 들어가며 '고모할머니, 내가 도서관에 데려다줄게요' 했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 꼬마가 도서관에 가봤다고, 내 방을 도서관이라고 부르더라. 자기는 도서관이랑 책 파는 데 말고는 이렇게 책 많은 데는 본 적이 없다며. 친구들 집에 놀러가봤지만 이렇게 책이 많지 않았단다. 나는 칠 살 조카와 네 살 조카를 앞에 두고, 너희들 자라면 이 책 다 줄게, 다 읽어, 했었더랬다. 어쨌든 고모를 내 방으로 데리고가길래 우리 엄마가 '거긴 왜, 이모방인데, 이모 없을 때 들어가지마' 했더니 칠 살 조카가 그러더란다.
이모가 나는 언제든지 들어오랬어.
하하하하하하하. 사실 내가 그렇게 말한 기억은 진짜 1도 안나. 그렇지만 틀리지 않아. 그래, 언제든 들어가렴. 그렇게 고모를 데리고 내 방에 들어가서는, 고모할머니, 도서관이야, 하면서는, '우리 엄마는 이 책을 제일 좋아해' 하면서 책 한 권을 꺼내 고모를 보여줬단다. 그게 이 책이었다.
여동생이 와있는 동안 내 책장에서 책을 몇 권 꺼내 봤는데 이 책이 참 좋았던가 보다. 언니 이 책 좋더라, 다 먹고싶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응 이거 내 힐링북이야, 이 책 들여다보면 막 힐링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아름다운 음식 사진 보면 힐링힐링... 책은 [simply italian] 이다. 물론, 설명은 읽지 않는다. 영어니까. 나는 그저 사진만 본다. 충분히, 충분히 영혼에 쉼이 찾아온다.
세상의 모든 음식들에게 축배를!
그리고 나, 여기 가보고 싶다.
록스The Rocks 거리를 먼저 둘러보았다. 금요일이라 'Friday foodie market'이 열리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브런치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구경만 했다. 돌바닥으로 이루어진 고풍스러운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책을 찾아보니 록스는 이민자들이 시드니에서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지역이라고 했다. (p.71, 박연준)
내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록스 거리의 friday foodie market 에 가보는 걸 넣어야겠다. 아... 얼마나 많은 음식이 거기 있는걸까?
일요일 저녁부터 침을 삼킬때 목구멍이 아팠는데 어제는 점점 더 심해지더라. 그래서 아 일찍 자야겠어, 하고는 열시부터 잤는데, 오늘 아침에 남동생이 '목은 좀 어때?' 하고 안부를 물어주었다. 응, 어제보다는 좀 나은데 그래도 아프네, 라고 답하면서, 매일 보는데도 이렇게 안부를 물어주는 동생이라니, 나는 참 좋다, 생각했다. 그 무슨 시에 그런 구절이 있었는데.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것이다, 라는 구절.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것이다.
페이퍼를 적다보니 '널 만지고 널 느끼고' 하는 신해철 노래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제목이 도무지 생각이 안나. 그래서 널 만지고 널 느끼고, 를 검색창에 넣어보니 김종국 이름만 나오더라. 아니야, 이거 신해철인데.. ㅠㅠ 그래서 남동생에게 물었다.
널 만지고 널 느끼고
이 가사 노래 뭐지?
나는 신해철이란 부연 설명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남동생으로부터 딩동- 답장이 날아들었다.
월광
아, 멋져 ㅠㅠ 감동 ㅠㅠ 넌 진짜 완벽해 ㅠㅠ 퍼펙트 ㅠㅠ
그렇지만 일전에 나도 똑같이 해준 적이 있다. 남동생이 회사에서 점심 먹고 어떻게 이야기가 팝송으로 흘러가서 얘기하다가 도중에 제목이 생각이 안나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거다. 누나, 이 노래 뭐지?
따라 따라라라 따라라~
이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사도 몰라서 정말 저랬다. 그런데 내가 바로 답해주었다.
시카고. 하드 투 세이 아임 소리.
아, 고마워! 하고 끊고서는 집에서 만나서 누나 진짜 대단하다, 했더랬다. 그걸 어떻게 알아들었냐,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튼 <월광> 이었다.
너의 눈빛 너의 몸짓 너는 내게 항상 친절해
너를 만지고 너를 느끼고 너를 구겨버리고 싶어
걷잡을수 없는 소유욕 채워지지 않는 지배욕
암세포처럼 지긋 지긋 하게 내 몸을 좀 먹어드는 외로움
나의 인격의 뒷면을 이해할수 없는 어둠을
거길 봐줘 만져줘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내 결점을 추악함을 나를 제발 혼자 두지마
아주 깊은 나락속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은 구르는 공위에 있는 것 같아
때론 살아 있는것 자체가 괴롭지
날 봐 이렇게 천천히 부숴지고 있는데 아주 천천히
끝없이 쉴곳을 찾아 헤메도는 내 영혼
난 그저 마음의 평화를 원했을 뿐인데
사랑은 천개의 날을 가진 날카로운 단검이 되어
너의 마음을 베고 찌르고 또 찌르고
자 이제 날 저주 하겠니 술기운에 뱉은 단어들
장난처럼 스치는 약속들
나이가 들수록 예전같지 않은 행동들
돌고 도는 기억속에 선명하게 낙인찍힌 윤리 도덕 규범 교육
그것들이 날 오려내고 색칠해서 맘대로 이상한걸 만들어 냈어
내 가죽을 벗겨줘 내 뱃살을 갈라줘
내 안에 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나도 궁금해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칠때 기억나지 않는 지난밤
내 마음을 언제나 감싸고 있는 이 어둠은 아직 날 놔주지 않고..
한 남자아이의 아버지는 작은 구슬 두 개에 `럭키`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수로에 부러 빠뜨렸다. 그는 아이가 두 개의 럭키를 찾을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와주었다. 얕은 물살에 흘러가는 두 개의 `럭키`를 찾는 것은 아이였지만 나 또한 눈으로 럭키를 쫓고 있었다.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구슬을 던지고 찾기를 반복했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럭키를 대신 찾아주기도 했다. 아이는 30분동안 럭키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는데 아이 아버지는 귀찮아하지도 않고 그 놀이에 동참했다. 보는 내가 다 귀찮았는데 말이다. 아이가 구슬을 찾을 때마다 외치는 "럭키!"라는 소리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아이는 그날 아버지 덕분에 얼마나 많은 행운을 거머쥔 걸까?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자라면서 `행운을 능동적으로 찾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때마다 옆에서 지켜주고, 응원해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p.63 박연준)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스튜와 빵, 샐러드와 베이컨 등 음식을 잔뜩 시켰다. 롱블랙도 두 잔 시켰다. 롱블랙은 에스프레소에 따뜻한 물을 섞어 마시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아메리카노와 비슷하다. 처음엔 이름이 근사해서 감탄했다. 내 멋대로 `긴 긴 밤` 이라고 의역도 해봤다. 긴 긴 밤 한 잔이요! 얼마나 멋진가? 밤을 한 잔 마시는 시간이라니. 커피 속에 기다란 검정도, 기다란 기차도, 기다란 밤도 넣어보며 홀짝였다. 이름이 중요한 법이다. 무엇이든 호명하고, 불러주고, 사랑해주는 순간 빛나게 된다. 완전히 달라진다. (p.70, 박연준)
"걷기는 `곳`안에서 무엇의 길을 트고, 시간 안에서 무엇을 구멍낸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신비한 결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비한 결속』은 사랑에 실패한 여자 주인공이 혼자 산과 바닷가를 하염없이 걷는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이다. 최소한으로 먹고, 최대한으로 걷는 일이 삶의 전부인 여자. 몸에는 지방 한 점이 없고, 눈빛은 수도승처럼 깊어진 여자. 갈망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걷고 또 걸었다. 목적 없이, 무작정 걸었다. 걷는 일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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