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책 속에 등장하는 나이든 주인공들에게 공감하면서, 아, 나도 나이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의 나는 확실히 젊은 주인공들을 좋아하고 또 공감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을 한 거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등장인물들에 마음이 움직인 걸 보노라니, 나도 세상 모든 책과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나이들어가고 있구나, 싶더라. 이 책 속의 남자 주인공은 62세이고, 이 남자가 잠시나마 화려한 시절을 보내게 해주는 여자는 44세이다. 

















나는 가끔 나의 노년을 생각한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내게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이 있다면 아마도 노년이 여유롭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고독하고 고되겠지. 그때에도 나는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을까, 아니면 나라에서 주는 적은 돈에 의지할까. 그러나 어떤 삶이었든, 그때가 되면 시간은 느리게 가지 않을까? 지금은 이렇게 출근하고 점심 먹고 퇴근하고 술마시고 씻고 자고 하느라 하루가 금세가고 그렇게 주중과 주말이 후딱 가고, 그렇게 한달이 가고 일 년이 가는등, 시간이 무척 빠르다. 내가 언제 이나이가 됐는지도 모르게 어마어마한 나이를 먹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그러니까 쉰이 되고 예순이 되면, 시간은 어떤 형태로 흐른다고 느껴질까? 여전히 빠르게 느껴지고 또 한 살 더 먹는게 안타깝기만 할까? 나는 죽음이 두려운데, 쉰이 되고 예순이 되면 더 두려워질까? 아니면 지금보다는 조금 초연해질까? 잘 모르겠다.




그는 다시금 뒤로 기대고 앉아서 고개를 젖히고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는다. 은퇴한 이래 묵직하게 걸려 있었던 시간이 삭제되었다. (p.205)



나의 직장생활은 얼마만큼 더 이어질까. 나는 여기에서 더 어떻게 나아갈까. 그 후의 삶은 어떻게 채워질까. 일을 그만두고 나면 어쩌면 나도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묵직하게 시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생활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묵직하게 걸려 있었던 시간, 이라는 문장을 읽고나니, 나도 뭔가 앞에 다가올 시간들이 묵직해지는 것만 같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나이든 등장인물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육십이세의 호지스도 그렇지만 사십사세의 제이니도 그렇다. 사실 사십사세는 많은 나이라기 보다는 이제 곧 내게 들이닥칠 나이인데, 그녀가 고된 결혼을 끝내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면서 '내가 얼마만에 섹스를 하는줄 아느냐'며 적극적인 자세가 될 때 뭔가 나도 덩달아 기뻐지는 거다. 좋았어! 가, 가, 고고씽! 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된달까. 


이 책에서 스티븐 킹은 사실 추리라든가 탐정의 일 같은 것을 잘 썼다고 보여지진 않는다. 추리를 무슨 그렇게 막 하는데 다 맞고 그래? 억지스러워.. 그렇지만 이 책 속에서 인물들은 살아있다. 육십이세의 은퇴한 형사가 비만이 되어간 것, 그렇게 심장에 무리가 온 것, 사십사세의 여자와 섹스를 하고서는 몇 번이나 이것은 꿈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 것, 그녀의 모습을 수시로 떠올리고 기억하던 것, 그리고 옆집의 제롬!! 제롬이 좋은 친구임은 분명하지만, 제롬이 좋은친구임을 알아보는 호지스가 나는 좋았다. 이렇게 말해주다니 참 좋다, 라는 느낌을 호지스는 수시로 받는 것이다. 나도 앞으로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가도, 늙어가도, 다정한 말 한마디에 기쁨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그러한 것처럼. 이렇게 말해주다니 참 좋네, 라고 생각하는 장점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뭔가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호지스는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잡는 데 자기보다 더 혈안이 돼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바로 홀리 기브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 그녀는 어쩌면 난생처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를 좋아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p.502)




호지스와 제롬과 홀리는 친구가 된다. 제롬은 대학입학을 앞둔 청소년이고 호지스는 62세, 홀리는 사십대인데, 그간 친구라든가 애인을 전혀 사귀지 않은 채로 살아왔던 사람이다. 강박증과 틱증상을 앓고 있던 홀리는 사십대 후반에야 비로소 엄마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할 수 있게된 데에는 제롬과 호지스의 역할이 크다. 나이도 성별도 인종도 다른 이 셋이 친구가 되어서는, 모든 사건이 끝나고나서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와인을 한 잔씩 할 수 있게되었다. 이게 너무 좋더라. 나도 지금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술 마시며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벗하게 될 사람들이 나보다 나이가 적어도 많아도 좋고 성별이 달라도 좋을 것이다. 인종이 달라도 좋................겠지만, 언어는 그쪽이 한국어를 쓰는 걸로......(  ") 나는 다정한 사이가 함께 술 마시는 게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







암튼 점심시간까지는 아직도 좀 남았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ㅠㅠ) 사과를 먹고 있다. 어제는 쭈꾸미에 소주를 먹었고 내일은 족발을 먹기로 했다. 금요일엔 청국장과 두루치기 먹어야지 ㅋㅋㅋㅋㅋㅋㅋ 토요일엔 프란세시냐! 아아- 삶이 풍족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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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7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5-09-15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들었더라..이 세상에서 행복이란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니.....절대 틀린 말이 아니에요...

다락방 2015-09-17 11:37   좋아요 0 | URL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메피스토님. 맛있는 거 먹을 때, 그리고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저는 어마어마한 만족감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좋은 사람과 맛있는 걸 먹는다면 그거야말로 행.복. 이겠죠. 헤헷. :)

blanca 2015-09-15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할머니가 된 모습이 궁금해요. 예전에는 절대로 나는 할머니가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스티븐 킹의 소설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 듯(그렇다고 해서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느꼈지만 채 표현 못했던 것들을 충실하게 끌어내는 맛이 있더라고요. 제발 건강하고 명랑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좋은 친구들과 함께.

다락방 2015-09-17 11:38   좋아요 0 | URL
저는 사랑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욕망하고, 그러는 와중에 맛있는 것 계속 잘 씹어먹고 책도 많이 읽고 영화 보다가 줄줄 눈물 흘리기도 하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해야겠죠? 블랑카님,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지내요. 쉰이 되고 예순이 되도 우리 계속 여기서 지금처럼 함께 읽고 수다 떨어요!!

moonnight 2015-09-16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노년의 제 모습을 생각해봐요. 남의 수발을 받아야 할 정도로 병들지 말았으면. 좋은 사람과, 아니면 혼자라도 술 한 잔 할 건강과 경제력은 가졌으면. 등등 생각이 많아져요ㅠㅠ; 지금 상황으로 보면 최대한 오래 일을 해야 하는데, 젊은이들을 위해 더 일찍 은퇴해야하는 압박을 느끼게되면 또 어찌하나 하는 걱정도요. 사는게 만만하지 않아요-_-;;;
사이드웨이. 저도 참 좋아해요^^

다락방 2015-09-17 11:39   좋아요 0 | URL
저도 남의 수발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약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데 과연 내 몸이 내 뜻대로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부터라도 운동하는 습관을 들여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꿋꿋하게 잘 지낼 수 있는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문나잇님. 그러기 위해서는 돈도 열심히 모아야겠죠. -0-
역시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산다는 건, 말씀하신 것처럼, 만만한 게 아닌가 봅니다. 훌쩍. ㅠㅠ

사이드웨이는 와인의 국보급 영화죠! >.<

재는재로 2015-09-16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가면서 저렇게 마음을 터놓고 지낼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큰 행복이죠 나이가 들면 학교친구 군대친구 다헤어지고 결국 남는 건 그저 비슷한 사람들뿐

다락방 2015-09-17 11:43   좋아요 0 | URL
결국 마음 맞는 사람,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사람을 옆에 두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제가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고 좋아하는 이들이 학교친구나 동네친구가 아니라 바깥에 나와 다른 관계를 시작하고나서부터거든요. 쉽게 말하면 알라딘을 하고부터... 그래서 제 의지로 만나게 된 친구들이 지금 제 옆에 있는 것 같아요.

감은빛 2015-09-1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이 들면 어디 조용한 시골 집에서 책 읽으면서 지내고 싶어요.
게으르게 쪼끄만 집앞 텃밭을 왔다갔다 하며 먹을 거리를 장만하고,
하늘이 맑으면 술 한 잔 마시며 책을 읽고,
하늘이 흐려도 술 한 잔 마시며 책을 읽고,
비가 오면 술 마시며 빗소리를 듣고,
눈이 오면 술 마시며 눈을 감상하며 살고 싶어요.

다락방 2015-09-17 11:44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감은빛님 댁에 가끔 놀러가서 날씨가 어떻든 어쨌든 술마셔야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가끔 감은빛님의 조용한 시골 집에 놀러가는 도시 할머니가 되겠습니다! 불끈!!! 감은빛님은 가끔 제가 있는 도시로 놀러오세요. 저는 저희 집에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두고 와인을 대접할게요. 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