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모두 굉장히 특별한 능력이라고 인정한다. 하나의 세계를 자신의 룰로 만들어내다니, 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하단 말인가. 그러나 그 멋지고 대단한 것이 내게 '좋은지'는 별개의 문제다. 나는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 그동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대단하다 말할 수 있고,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창조해낸 걸 보면 우와- 하고 탄성을 내지를 수 있지만, '그래서 좋아' 라고 내 마음을 주지는 못하겠다는 얘기다. 쉽게 예를 들자면, 내가 빈번하게 예로 들었던 영화 [아바타]가 그것인데, 감독이 만들어내고 보여준 세상은 분명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단한 세계임이 틀림없다. 저런 종을 만들고, 저런 세상을 만들고, 저런 비쥬얼을 만들고, 저런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그렇지만, 내게는 '거기까지'인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신비한 마법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에 큰 흥미가 없다. 그보다는 있을 법한 별 거 아닌 일들에 있어서 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는게 좋다. 그 사람이 성장하는 게 보이면 더 좋다. 이런 것들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나를 움직이게 하며 '아 참 좋다' 하게 된다. 내게는 누군가의 감정이, 생각이, 그로 인한 행동들이 이야기 거리가 된다.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를 기차에서 마주쳤을 때의 그 설레임 같은 것들, 레오의 답장을 기다리는 에미의 초조함 같은 것들, 나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여자를 사귀는 프라납 삼촌을 보는 엄마의 질투 같은 것들. 나에게 이야기는 바로 한 사람의 감정이었고, 사연이었으며, 행동이었다. 그래서,
이 책, 《민들레 소녀》가 재미없다. 표제작인 <민들레 소녀>부터 이 책에 실린 짧은 단편들중 그 어떤 것도 나는 이야기 속의 인물이 될 수가 없다. 나는 이야기속의 그 누군가가 될 수 없으면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면 통 재미가 없단 말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에서 나는 바깥에 존재하는 인물이며, 관찰하는 인물이며, 독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저 책일 뿐이다. 한 권의 책.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단하다 칭송받을지도 모를, 그냥 한 권의 책.
미안하다, 재미없다..
이런 나라서 미안하구나.
표제작 <민들레 소녀>를 기대했는데, 엥? 뭐여...하고 좀 시시해했다. 이건 '온다 리쿠'의 무슨 소설과 비슷하게 닮았는데..뭐더라. 《라이언 하트》였나..뭐, 그건그렇고. 실린 단편들중 <파란 모래의 지구>에서 아주 인상 깊은 이야기를 봤다.
다음 날 아침, 밖으로 나온 선장은 24개의 맥주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맥주나무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는 수확하기 직전의 과일처럼 맥주병들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몇 개의 맥주병은 제자리에 없었고, 갓 생긴 과수원 안에서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과수원의 테두리를 따라 솟아 있는 흙무더기들을 봐서 더 많은 씨앗이 심어진 모양이었다.
선장은 혼란스러워졌다. 아무리 지구의 흙이 다르다고 해도 어떻게 하룻밤 새 빈 병이 맥주나무로 자랄 수 있을까? (파란 모래의 지구, p.162-163)
그러니까 화성으로 돌아가기 전의 선원들은 선장의 허락을 받고 맥주를 마셨으며, 잠들기 전에 맥주병을 휙- 버린거다. 그런데 다음날 그 빈 맥주병이 떨어진 자리에 맥주나무가 자란 것. 우앙- 맥주나무래. 짱 멋지다. 이에 선장은 지구의 땅은 이런것인가, 하고 설레어하며 지폐를 묻는다. 그러나...지폐는 나무로 자라지 않는다. 결국 선장도 위스키를 심는데, 위스키는 나무가 되어 열리더라. 에헤라디여~
돈이 자라지 않으면 어떤가. 벌면 되지. 게다가 맥주도 위스키도 나무가 되어 열린다면, 그러면 술 사는 돈은 절약할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 나라면...맥주나 소주 나무가 아닌 와인 나무를 만들겠다. 움화화화핫. 그러면 와인 살 돈으로 양질의 안주를 사는거야. 움화화화핫. 아..삼겹살 먹고 싶다 ㅠㅠ
그리고 마지막의 단편에서 아주 찌질한 캐릭터를 만났다. 처녀상을 등반하는 남자 '마틴'이 바로 그인데, 그는 첫번째 책으로 세상을 들썩이게 할만한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러다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었고, 두번째 책은 첫번째 책으로 인한 기대로 조금 팔렸지만 세번째 책은 망해버렸다. 근데 그는 이걸 아내탓, 결혼탓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새 책은 최악이었다. 『내 사랑이여, 눈을 떠요!』에서 사람들을 열광시킨 그의 개성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설령 생각이 떠올라도 그는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런 저조한 기분을 만든 건 결혼이 일조했다고 생각했다. 뚜렷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결혼과 렐리아가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여겼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그는 렐리아가 신부로서 모든 걸 갖췄지만 부족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마틴은 그것이 무엇인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화강암의 여인, p.250)
이긍..찌질하다 찌질해. 못났다.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것에 대해 결혼과 아내 탓을 하다니. 찌질해.. 하여간 찌질한 인간들이 남탓 한다니깐. 이긍..
아, 근데 찌질로 따지자면 나도 거의 챔피언급이라 뭐 더이상 말할 게 없다. ㅠㅠ 누가 누굴 욕해. 내가 찌질한데 ㅠㅠ
아빠랑 애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엄태웅이 누나 엄정화한테 영상전화를 걸었다. 조카랑 함께 통화를 하고 나서 전화를 끊기 전, 엄정화가 엄태웅에게 그랬다.
"사랑해."
그런데 엄태웅은 이렇게 답했다.
"알았어."
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놈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한다는데 알았어가 뭐냐.
하긴, 내 남동생도 내가 사랑해, 라고 하면 '그래' 라고 답하곤 했지. 이놈들. ㅠㅠ
사랑해, 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모르는 머저리들.
늬들보다 소주가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