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여차저차해서 신경정신과에 방문한 일이 있었고, 그때 닥터는 내게 걸으면서 책을 읽지도 말고 영화도 보지 말라고 주의를 줬던 적이 있었다. 나는 네, 라고 답했고 나름 지키려고 생각했지만 그게 잘 되진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걸으면서 문자메세지를 보내다가 상대로부터 걸으면서 문자메세지 보내지 말라는 주의를 듣고는, 이제 꼭 멈춰서서 문자메세지를 보내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이 잘 안바뀌는지라, 토요일에 외출하면서 나는 책을 읽으며 지하철을 기다렸고, 책을 읽으면서 지하철을 탔고,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읽었고, 갈아타기 위해 내리고 또 타는 과정에서도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내려서는 대한극장이 나오는 1번 출구로 쭉쭉 나갔다. 나는 워낙에 길치랑 방향치인지라, 낯선 곳이라 느꼈지만 내가 언제 어디는 익숙했냐 싶어 그냥 계속 나갔다. 사람이 평소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리고 극장은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고....뭐여, 왜이래, 하고 걷는데 벽에 이정표가 그려졌는데, 거기에 '충무로'란 단어가 보이는 거다. 으응? 나는 충무로에 와있는데 왜 충무로 가는 노선을 표시해주는 거야? 원래 그랬나? 그러면서도 나는 병신같이 계속 걸었다. 걷다가 또 충무로를 가기 위해 4호선을 타야 한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아니 그러니까 왜, 충무로에서 충무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거지? 나는 멈춰 선다. 그리고 이 역이 충무로 역이 맞는지 확인해보려는데, 어디에도 역 표시가 없다. 계단을 오르면 1번 출구로 나가니 올라가서 볼까 하다가 간이매점 하시는 분께 여기가 어디에요? 물어볼까 하다가, 에라이, 이정표대로 되돌아 가보자 싶어 화살표가 끄는 대로 다시 '지하철 타는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야 비로소 내가 '동대문'에서 내렸음을 알게 된다. 하아- 두 시에 영화 시작이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나는 조금 일찍 내려 여유롭게 책을 읽기 위해 출발했었고, 충무로인줄 알고 내렸던 동대문 역에서도 내리자마자 벤치에 앉아 책을 조금 더 읽었던 터다. 시간이 촉박할 듯 한건 아니지만 몹시 지쳤다. 나란 인간, 대체 뭐야?

 

다시 표를 대고 들어가 지하철을 탄다. 친구에게 이러저러한 일로 다시 되돌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충무로 가는 열차를 탔어야 했는데, 반대 방향 열차를 탔다고 말했다. 그나마 한정거장 이라는 걸 알고 무조건 한정거장 가서 내린 거다. 하아- 다시 되돌아가는 길, 그리고 되돌아나와 대한극장으로 가면서 한숨이 나왔다. 나중에 저녁 먹을 때 친구는 내게, 영화 시작 전에 한숨을 너무 크게 쉬더라, 고 말했다. 하아- 나는, 나한테 너무 상처를 받았다. 나, 진짜 뭐냐. 그때, 닥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하철에 타면 그때만 책을 읽으라고, 걷는 동안에는 읽지 말라고, 큰일 난다고.

 

반대방향의 열차를 탄 것이 사실 그렇게 큰 일은 아니지만, 그런 조언을 들었으면서도 병신같은 짓을 한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실망했다. 히융- 으, 쓰다보니 그때의 지친 기분이 지금 다시 확- 올라와...싫어...

 

 

그때 내가 읽던 책은 이거였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그래서 읽다보니...저런 멍청이 같은 짓을.. Orz

 

이 책을 읽으면서는 《봄에 나는 없었다》와 《딸은 딸이다》에 조금 못미치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뒷부분을 다 읽고나니, 끝까지 읽고나니, 느낌이 달라졌다. '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도 어렴풋이 알게 됐달까. 이 책 속의 화자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고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고통스러워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는 모습에서 나는 '조조 모예스'의 책, 《미 비포 유》의 남자주인공을 떠올리기도 했다. 결국 이 책속의 화자 휴 노리스는 자신이 자살하기 위해 모아둔 약을 버렸던 것처럼, 미 비포유의 '윌'도 삶을 선택했다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더 불편하고 더 아픈 게 윌 쪽이긴 했지만, 그도 삶을 선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도 '다시 산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그 '좋다'는 기준은 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내 생각만 하고 그가 삶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거다.

 

 

별채에서 아득하게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와는 전혀 다른 여름밤의 삑삑대고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동물들이 제 할 일을 하면서 기어다니는 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저 멀리 부엉이 우는 소리‥‥‥

막연한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테리사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과거와 제니퍼는 빛나지만 실체가 없는 꿈 같았다. 그 꿈과 나 사이에는 고통과 암흑과 무기력의 늪이 있었고, 나는 이제야 겨우 거기서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단절은 확실했다. 내가 시작한 삶은 새로운 삶이었다. 이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새로운 휴 노리스는 누구이며 어떤 인간일까? 흥미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p.197-198) 

 

 

 

사람에게는 포지션에 따른 여러가지 모습이 있다. 같은 포지션을 가졌다해도 상대에 따라 또다른 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기적인 쌍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바보처럼 착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똑똑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식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차갑고 무심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모습들 중에 어떤 것이 나이고 어떤 것이 내가 아닌것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 모습 모두가 다 나인 것이다.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며 못되기도 했고 착하기도 한 것이 모두 나인 것이다. 이 모두가 진짜 나인 것이며 이 모두가 진짜 나인지 알 수 없기도 하다는 것이다.

 

휴 노리스에게는 이사벨라가 그랬다. 그는 자신이 보는 이사벨라와 사람들로부터 듣는 이사벨라가 다르다는 것에 크게 혼란스러워한다.

 

 

"정말 당황스러운 건, 누군가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사벨라만 해도 그래요. 앤 모돈트는 이사벨라가 똑똑하다고 했어요. 나는 전에 이사벨라를 바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나는 그녀의 두드러지는 성질 가운데 하나가 정직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하지만 카스레이크 부인은 이사벨라가 교활하다고 말하더군요. 교활이라니! 혐오스러운 단어예요. 또 존 게이브리얼은 이사벨라를 무례하고 거만하다고 말해요. 형수 ‥‥‥형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어요. 타인의 사적인 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으니까요. 아무튼‥‥‥사람에 따라 그렇게 다르게 보이는 인간의 진면목이란 대체 어떤 걸까요?

웬만해서는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 로버트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불쑥 말했다.

"그게 핵심이지 않을까? 한 인간이 상대에 따라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인다는 게? 사물도 마찬가지지. 나무나 바다도 그렇고. 두 화가가 세인트 루 항구를 그리더라도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을 내놓을걸." (p.153-154)

 

 

내일모레면 나이 마흔인데, 나는 아직까지도 내 자신을 잘 모르겠다. 내가 모르겠는 나의 어떤 면들을 이제야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하-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 새로이 발견되는 면들을 보며 내가 나한테 놀라는데, 이런 나에 대해서 누가 잘 알수 있을까. 내가 아직 나를 잘 모르듯이,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도 일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것일 테다. 사랑에 빠진 상대가 특별한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내가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처럼. 어차피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고나면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그놈이듯이, 사랑에 빠진 순간에는 '이 남자는 달라'가 아니라 이 남자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면을 보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토요일에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함께 먹고 마시면서, 우리는 관계에 대해 얘기했다. 아마 영화를 보고나서 더 할 말이 많았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나는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 자기가 얼마나 약한지, 아픈지, 힘이 드는지를 주구장창 얘기하는 걸 듣고 있는게 때로 힘이 들기도 한다고. 일대일의 관계에서 만나면 내가 말을 하고 또 네가 말을 하고가 균형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때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 힘든 애기를 들어주기만 하다가 돌아오게 된다고. 그럴 때 얼마나 지치는지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처음엔 힘을 내게 도와주려고 해보지만 반복되는 징징댐 앞에 더이상 듣기 싫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 나는 사람을 만나서 기빨린 채로 돌아오는 건 싫기 때문에, 주고받고가 적절히 이루어지는 관계를 원한다. 끊임없이 관심을 호소하는 사람들 앞에 겁나게 피곤해진다. 왜 저사람의 삶은 다른사람들의 삶보다 더 불행에 가까운가? 왜 그들은 항시 불행하다 말하는가? 그들은 정말 불행한가?

 

 

"난 제니퍼가 그 일에 대해 자책하길 바라지 않아요. 불행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고요."

"그녀는 그러라고 내버려둬요!" 테리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녀는 불행을 원해요. 그걸 모르겠어요?"

 

(‥‥)

 

"동화 같은 이야기는 그만해요. 제니퍼는 앉아서 매사에 어떻게 잘못됐는지 애태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불행을 곱씹기를 좋아하는 거라고요.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살아가길 원하는데, 안 될 이유 있나요?" (p.41-42)

 

 

나도 아프고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도 분명 있다. 우울하고 외로울 때가 있고, 그럴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의 한 마디 말이, 혹은 그 순간의 내 말을 들어주는 조용한 태도 같은 것들이 위로가 되고 또 그 시기를 버텨내고 견뎌내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힘들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궁극적으로 한 사람이 힘을 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빈번하게 한쪽만의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일방적인 청자가 되어줄 수만은 없다. 네가 힘든 만큼 나 역시도 언제나 이십사시간 행복한 채로, 에너지가 넘치는 채로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지친 상태로 한숨까지 쉬어가며 보기 시작해서였을까. 이 영화는 그냥 남녀간의 사랑 영화인데 중간에 나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눈물을 닦았다. 닦으면서도 나는 미쳤나..했다. 왜 이 장면에서..하고. 그러니까, 로지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자신의 단짝 친구인 알렉스와 미국에 공부하러 가기로 했는데, 덜컥 임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알렉스에겐 비밀로 한 채로 로지는, 호텔경영학을 배워 호텔의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한 채, 아기를 낳기를 선택한다. 낙태수술은 종교상의 이유로 선택할 수 없고, 아이를 키우자니 꿈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그녀는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기로 하는데, 막상 태어난 아이를 그녀는 보낼 수가 없었던 것. 이제 막 태어난 아이, 뱃속에 열달간 품고 있었던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결국 로지는, 그녀의 좋은 엄마가 되는 삶을 선택한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은 때때로 들곤 하는데, 케이티가 로지의 딸로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살아야 할 운명이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그녀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일상을 포기해야 했지만, 케이티를 낳았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그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알렉스에게 말한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로지가 이해되기도 하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품에 안는 로지를 보는 순간, 그때가 그렇게나 좋았던 거다. 울었어 ㅠㅠ 아마 나에게는 앞으로 결코 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저걸 해보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장면에서 했으니까.

 

 

로지와 알렉스는 어릴때부터 친구였다. 단짝 친구였고 그렇게 같이 성장해간다. 서로의 비밀을 알고 서로의 꿈을 안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서로 상대를 이성적인 마음으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상대가 나를 친구로만 생각한다고 알고 있으므로 그들은 각자 다른 연인들을 갖는다. 다른 사람과 잠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고, 다른 사람과 결혼도 하고. 그 과정들 속에서도 알렉스와 로지는 관계를 끊지 않는다. 그러나, 매번 엇갈린다. 이제는 고백해야 겠다고 생각해 달려가면, 항상 그때마다 상대에겐 다른 사람이 옆에 자리를 잡은 거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한다면 해피엔딩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로지와 알렉스는 결국 서로를 선택했다. 서로를 기다렸고, 그렇게 서로에게로 향한 채 결국은 마주서고 함께 하게 됐다. 그러나 그 긴 시간동안 그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결혼과 이혼하는 과정들이 그 사이에 그들에게 있었다.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들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일 수 있다. 결국은 너에게 오기 위해 나는 그동안 그 사람들과 그런 일들을 겪었는가봐, 하는 그런 거. 그렇지만 이 영화가 알렉스와 로지의 포옹과 키스로 끝난다고 해서 앞으로 그들의 삶이 포옹과 키스로 연결될 거란 보장은 없는 거다. 로지와 알렉스도 어쩌면, 시행착오 중일지도 모르니까. 그걸 대체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운명의 상대란 게 정말 있다면, 그 상대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시행착오는 그러나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되어 지금의 이 상대를 만날 수 있게 해준 건, 그 시행착오들 덕분이었을 테니까. 내가 당신을 만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었듯이, 당신 역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지금 우리가 서로의 운명이라 호들갑 떤다 한들 우리 역시 서로의 상대이기 보다는 시행착오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최종적으로 누군가를 만나 함께하기를 선택하며, 우리가 서로의 상대임을 확신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시행착오였을 것이다.

 

 

영화속에서 로지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결국 꿈에 그리던 호텔 사장이 된다. 바닷가 근처의 작은 호텔을 사서 수리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그 호텔로, 가장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든다. 사실 아버지의 유산으로 호텔을 살 수 있다니, 진짜 일이 너무 잘 풀리는구나 싶긴 하지만, 뭐, 영화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_- 나는 가만히 앉아서 꿈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 화딱지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저 꿈을 똑같이 나도 꾸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마음이 몰랑몰랑해졌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낯설고 먼 어느 나라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꿈. 그 미래에서 나는 조용히, 언제 찾아들지 모를, 아니 찾아올 확률보다는 찾아오지 않을 확률이 더 큰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했었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일흔이 되어서라도, 언젠가 한번은 그가 여기를 들러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그런 마음으로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읽고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싶어 찾아보았다. 아, 여기 있다! http://blog.aladin.co.kr/fallen77/5022039

 

 

크- 뭔가 갑자기...아흑-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렇지만 안터진다고, 나의 구원이 말했더랬지.

 

 

친구랑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역시 사랑은 타이밍, 이라고 얘기했는데, 금요일밤 여자 넷이 모여 술 마시고 깔깔대면서도 사랑은 타이밍, 이라고 했던 게 생각나 웃었다. 사랑은 타이밍! 크- 소주 마시고 싶네.

 

그리고 친구와 와인을 마시면서 영화속 댄스파티에 대해 말했다. 아흑 싫어. 나는 댄스 파티 같은 거 정말 싫다고. 친구도 그렇다고 했다. 트와일라잇 영화속에서 에드워드와 벨라 얘기도 잠깐 하다가, 우리는, '우리에게 댄스 파티에 같이 가자고 할 사람이 없을 텐데' 라는 공통적인 고민을 하게 됐고, 그랬을 때 나는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를 생각하니, 댄스파티 없는 우리나라 학교가 나에게는 더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ㅠㅠ 나는 수줍은 여인이라 남자에게 먼저 가서, 나의 댄스파트너가 되어주지 않겠냐는 말을 결코 하지 못했을 거고, 어쩌면 내게도 아무도 그런 말을 건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사실, 그럴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마도 다른 아이들이 댄스 파티에 가서 서로의 파트너와 깔깔대고 웃다가 저쪽 방에 들어가 서로의 몸을 탐험하는 그 시간에, 내 방에서 텔레비젼을 보며 캬라멜 팝콘만 잔뜩 먹고 있었을 것이다. 그 나이가 십대 후반쯤 됐을테니 아마도 술을 마시지는 못했을 것 같고, 세숫대야 한 가득 팝콘을 먹다가 목이 마르면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뭔가 처량해 좀 울다가, 아니야 나는 똑똑한 여자니까 하고 책을 보다가, 외로운 마음에 불을 끄고 야한 동영상을 좀 찾아 보다가, 욕구불만에 생크림 케익을 먹다가 아마 백키로를 찍게 되겠지................문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해져서 더 안에 처박혀 책만 파고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니, 그때부터 삼류 포르노 소설을 쓰는 거다. 그 소설이 대박 터져서 전격 영화화 되고, 나는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전신성형을 감행하여 드디어 문 밖으로 탈출.........

 

 

일요일 밤이다. 책이나 읽자꾸나.

 

 

토요일엔 여동생 가족들이 와서 어찌어찌하다가 나와 여동생, 첫째 조카와 둘째 조카가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여동생은 허니버터칩 먹어봤냐며, 먹어보라고 올 때 가져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두 개쯤 먹고 조카들 옆에서 잤다. 새벽에 조카와 나는 동시에 깼는데, 크- 혹시 자기 동생이 깰 새라 조용히 내게 속삭이더라.

 

이모, 허니버터칩 먹었어?

 

나는 응, 이라고 답하고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궁, 귀여운 나의 조카.

 

 

 

 

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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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은 그 여름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밤이었다. 사람들이 롱 반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휘스트 드라이브뿐만 아니라 가장假裝을 하고 댄스도 즐겼다.
내가 구경할 수 있게 테리사가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모두가 들떠 있었다. 게이브리얼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사람들 틈에서 말을 받아치거나 재치 있는 대답을 던지며 이야기하고 있엇다. 그는 유난히 쾌활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나는 그것이 게이브리얼의 영악한 면모라고 생각했다. 그의 전염성 있는 활력이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전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p.194)

"일이란 이미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그런데 지레 걱정하는 사람이 있죠‥‥‥"
그러는 것조차 이사벨라에게는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난 일을 가지고 고민하는 건‥‥‥그래요, 그건 들판에 산책을 나갔다가 소똥을 밟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 말은 산책하는 내내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안 밟았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길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앞을 잘 보지 않고 걸었기 때문이야, 하며 맨날 바보 같은 짓만 저지른다고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뜻이예요. 소똥은 이미 신발에 묻었고 그 사실에서 벗어날 수도 없으니 그 일을 마음속에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거긴 다른 것들이 있잖아요‥‥‥들판, 하늘, 울타리, 같이 걷는 사람‥‥‥거기 다 있잖아요. 다시 소똥을 떠올려야 하는 때는 집에 돌아와 신발을 닦아야 하는 순간밖에 없어요. 그때는 물론 다시 생각이 나겠죠‥‥‥" (p.259)

"그를 많이 좋아하죠, 밀리? 그렇죠?" 내가 물었다.
그녀의 갈색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그래요‥‥‥정말 그래요. 이제까지 전‥‥‥그런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나도 존 게이브리얼 같은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밀리 버트처럼 그에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분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할 거예요. 정말 그럴 거예요."
"그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그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그냥 내버려둬요." (p.264-265)

"`난 정말 바보짓을 했어`하면서 웃어넘기는 건 정말 마음이 강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예요. 마음이 약한 사람은 뭔가 지탱해줄 것이 있어야 해요. 그런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그저 어쩌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명백한 결점, 비극적인 죄악으로 보죠."
그녀가 불쑥 덧붙였다. "나는 악 자체가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아요. 이 세상의 해악은 약자들이 불러오는 거예요. 그들은 선의를 지니고 있고 아주 낭만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죠. 난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요. 그들이야말로 위험하니까. 암흑 같은 바다를 떠다니다 멀쩡한 배를 침몰시키는 표류선 같아요." (p.26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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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12-1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도 걸으면서 책 읽고 그랬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넘어지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냥 전철에서만 책을 읽어요. 대신 요즘은 걸으면서 오디오북 들어요. ^^ ㅋㅋ 점점 나이들어서 오디오북도 못 들어으면 왠지 슬플듯.

허니버터칩은 전 아직 못 먹었어요. 별로 궁금하지 않더라구요. ^^;;뭐, 찾아서 먹기 귀찮기도 하고 누가 한봉지 주면 그때나 먹어보려나???

다락방 2014-12-15 13:16   좋아요 0 | URL
위험하다는 거 뻔히 알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거 보면 왜저러나 싶으면서도 제가 그러고 있네요. 게다가 그 버릇을 버리지를 못하고..이젠 진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어요. 반대방향의 열차를 탄 게 한두번도 아니고, 사실 그다지 별 일이 아닌데, 그런데 토요일에는 진짜 엄청 스스로가 싫어지더라고요. 계속 말했어요. 내가 나한테 너무 상처를 받았어, 라고요. 히융.

허니버터칩은 저도 관심 없었는데, 먹어본 후에도 별로 관심 없네요. ㅎㅎ

마립간 2014-12-15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다고 내려야하는 역을 놓치는 일이 일 년 1~3번 정도 꼭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책을 너무 많이 읽지 말라는 충고를 받죠. 그러나 내가 책을 읽은 이유는 도피와 안식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는 한 독서는 계속되겠죠.

다락방 2014-12-15 13:18   좋아요 0 | URL
독서 자체를 금하진 않아도 되겠지만, 갈아타는 과정, 즉 걸으면서도 읽는 건 자제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일상에 피해를 주니까요. 뭐, 그렇게까지 큰 피해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말이죠. ㅠㅠ

아무개 2014-12-1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가끔 읽던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전철에서 내려서 역사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계속 책을 읽었던 적은 있지만, 걸어가면서 까지는 못읽겠던데요.
안그래도 잘 엎어지는데 책까지 읽다간...

2.흠...왠지 내가 기빨아 가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ㅠ..ㅠ

3.`너는 내 운명` 이라고 서로 속고 있는 동안이 사랑이겠죠.
한 쪽이라도 먼저 제정신이 든다면 뭐....

다락방 2014-12-15 13:22   좋아요 0 | URL
저도 역사안 의자에 앉아서 읽을 때가 더러 있어요. 한꺼번에 사람들 우르르 내리면 같이 올라가기 싫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람들 다 빠질 때까지 책을 읽을 때도 있답니다. 걸어가면서 읽다가 전봇대에 부딪힐뻔한 적도 있어요, 저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도 정신 못차리고 이게 무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봤자 또 반복되려나요...

기빨리는 거에 대해서는 만나서 얘기합시다. 뭐, 토요일에 친구한테 다 말해서 또 말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ㅠㅠ

저는 사실 사랑에 빠진 동안 `네가 내 운명이다` 라고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고요, 그보다는 일전에도 한 번 페이퍼에 쓴 적 있는데, 내 운명의 흐름에 있는 사람, 정도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길을 걸어갈지 모르지만, 그 과정속에 존재해야 했던 사람, 이라고 말이지요. 저는 사랑의 실패가 저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한다고 믿는 편이라, 시행착오들에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마찬가지로 저 역시 누군가에게 시행착오였을 수도 있다는 걸 기꺼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래도 물론, 서로의 시행착오는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때가 오기는 하는 것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14-12-15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역시 자주 그래요 ㅎ 부끄럽게도 삼국지를 25살에 처음 완독했는데 그때 몇번이나 출근길에 내릴 역을 지나쳐서 지각을 했어요 ㅎㅎㅎ

또다시 부끄럽게도 제 마음이 힘이 들면 어디론가 숨어요. 모두에게 연락을 끊고... 오히려 누군가에게 투덜투덜대는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말이 잘 나오지를 않아요... 그러다보니 숨어버려요. 아마도 저 역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은 아니겠구나 싶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함께인 순간이 짧더라도 삶에서 품고 살 인연을 갖는다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락방 2014-12-15 13:29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저 같은 경우에는 힘이 들고 고민이 되는걸 분위기에 따라 말하느냐 마느냐 결정하긴 하는데, 말한 후에 위안을 얻은 적도 많았어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상대가 억지로 끌어내려고 할 때, 굉장히 힘들게 머뭇거리다 시작해서는 줄줄줄 내뱉으며 후련한 적도 있었고요. 그러나 제가 말한 것보다 제가 듣는 게 더 많다고 저는 생각되어집니다. 제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또 단단하게 생각되기 때문에 의지하려고 하는 걸 수도 있을테고요. 저는 약한 사람에겐 힘이 되어주는 게 도리임을 알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제가 계속 힘을 줘야만 하는 관계라면, 저 역시 도망치고 싶어져요. 역시 제 살 길을 제가 잘 찾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 않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함께한 순간이 짧더라도 삶에서 품고 살 인연을 갖는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휘모리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결국 짧고 강하게 곁에 있다 멀어진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반면에 그런 사람이라면 놓치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때요, 휘모리님? 요즘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하루에도 열두번씩 지옥과 천국을 오락가락 하고 있어요.

무해한모리군 2014-12-15 14:32   좋아요 0 | URL
왠지 다락방님 댓글을 읽는데 눈물이 나요.
잘못지내나봐요.
지금은 겨울잠 자는 곰처럼 행동을 최소화해서 마음의 힘을 싾는 중이예요.

다락방 2014-12-16 10:53   좋아요 0 | URL
마음을 단단히 단련시켜요, 휘모리님.
그래야 이 추운 겨울을 잘 지낼 수 있지 않겠어요?
추운 겨울 단단히 버텨내고 나면 또 봄이 옵니다.
기운내요.

2014-12-15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6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4-12-1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댄스파티, 카라멜팝콘, 아이스크림, 구절구절 제 마음과 똑같네요.
저도 선택받지 못하는 그런 여자애였을 거예요. 파티는 싫은데...
그래도 드레스는 입고 싶어요.
어떻게 안 되겠어요?

다락방 2014-12-16 10:5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언젠가 제가 파티를 열겠습니다. 제가 여는 파티는 결코 댄스파티가 아닐 것입니다. 하하핫
그냥 먹고 마시자 파티가 되겠지요. 그때 드레스를 챙겨입고 오세요. 가슴과 등이 기이이이이이잎게 파인 드레스로요. 오케?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