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리 오코너가 책 이름인지 작가 이름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그냥 일단 보관함에 쑤셔 넣었다가, 이것이 현대세계문학단편선 시리즈라는 걸 알고는, 그 시리즈의 특성상, 아 그렇다면 플래너리 오코너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겠구나, 했다. 그렇게 보관함에 들어간 수많은 책들중의 하나로 이 책을 포함시킨 뒤, 나는 하던 독서로 다시 돌아와 책장을 넘겼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이 거였다.
이 책은 단편집인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저 책의 표지와 제목만 보고 나는 당연히 작가가 남자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책 날개를 보고서는 아, 의외로 여자로구나, 라고 생각하며 제일 처음의 단편을 읽기 시작했다. 단편 하나를 다 읽었을 때는 잠들기 직전이었는데, 하아- 욕이 나왔다. 너무 무서워서. 쉽게 말하면 '설마, 이러진 않겠지' 했던 것을 이 책에서는 '설마가 어딨어, 설마가!' 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달까. 단 한 편만 읽고도 너무 무서워서 악몽을 꿀 것 같았다. 다음편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두번째 이야기를 읽고 진짜 쌍욕 튀어나올 뻔 했다. 하아- 이렇게 계속 무섭다니, 나는 이제 어째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고민을 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 중도에 포기하고 다른 책을 꺼낼 것이냐 말 것이냐. 일단 자자. 라고 생각하고 잤다가 다음날 다른 단편들도 내처 더 읽어보기로 한다. 크- 역시나 무섭다. 아름답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 같은 건 이 책에서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는 일은 몹시도 힘겨웠다.
혹시라도 오해할까 하는 말인데 이 책이 그래서 엉망이라거나 나쁜 책이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나는 다만 이것이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거다. 일전에 읽었던 '사이먼 밴 부이'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도 내게는 엄청 무서웠다. 그 책 전반에 걸쳐 무서운 게 아니라 단 하나의 이야기가 무서웠는데, 아이가 엄마를 지하철 역에서 잃어버리는 거였다. 엄마와 아이중 한 명만 내리고 한 명은 지하철에 탄 채로, 아직 둘다 타거나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고 출발해버리는, 그래서 아이가 미아가 됐다고 말하는 이야기였다. 와- 나는 이게 너무나 무서워서 미쳐버릴 것 같은거다.
내게는 참을 수 없는, 견디기 몹시도 힘든 이야기들이 몇 있다. 위의 이야기가 그런것들 중 하나다. 나는 그 뒤로 내 여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외출을 한다고 할때마아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또한 내가 조카와 지하철을 타게 될 때는 탈때나 내릴 때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조카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다. 특히나 밤에 잠들기 전, 온갖 무서운 상상이 나를 파고든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까봐 나는 자기전에 한번씩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머리를 막 저어보기도 한다. 안돼, 이런건 안돼. 잊자, 생각하지마.
'안데슈 루슬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이 쓴 《비스트》는 읽고 싶어서 구매했지만, 초반 몇 장을 읽고 포기한 채 얼른 중고샵에 팔아버렸다. 성폭행범의 입장에서 희생자를 물색하고 타겟을 정하는 장면이 초반에 나오는데 진짜 돌아버릴 것 같은거다. 일전에 이 두 작가가 한 편이 되어 얼마나 좋은 책을 써냈는지를 알고 있으므로-《리뎀션》이 그것이다-, 끝까지 읽으면 아마 하고자 하는 이야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가 나올거라고 믿었지만, 그 믿음은 두려움 앞에 힘이 없었다. 나는 도무지 더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책장을 덮었다. 어떤 이야기들은 내게 몹시도 힘이 든다.
언급한 책들이 어떤 장면들에서 그러했다면,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실린 단편 모두가 그렇다. 이야기가 모두 힘들다, 모두. 네 개의 단편을 읽고 망설이다가 갑자기 퍼뜩, 내가 보관함에 넣었던 책, 《플래너리 오코너》가 생각났다. 어? 플래너리 오코너????? 그 작가 이 작가 아니야? 하고 나는 내 손에 있던 책의 작가 이름을 본다. 맞았다. 플래너리 오코너다. 제기랄. 이 작가의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이렇게 힘이 든데, 다른 하나를 또 사서 읽는 걸 할 수가 없다. 나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이름을 외운다. 나는 앞으로 이 작가를 피해갈 것이다. 그리고 보관함으로 달려간다. 최근에 넣었던 책, 《플래너리 오코너》를 삭제한다. 어휴, 나는 당신을 읽을 힘이 없습니다, 미안해요. 당신을 읽는 것은 다른 강한 사람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악한 사람에 비해 선한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악한 사람들 조차도 본래 악하게 태어난 게 아니라 상황이 악한 성향을 툭툭 건드려 내뱉게 했다고도 생각한다. 인간이 지구를 망치지만, 더 많은 인간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인간이 만든 제도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걸 뜯어 고치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갖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인간을 신뢰한다. -오빠 믿지?와는 다른 문제다. 오빠는 믿어서는 안돼.- 그래서 플래너리 오코너는 나와 대치지점에 서있는 것 같다. 우린 마주보고 서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싸우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거다. 이 책,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제목이 말하는 바 그대로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는 걸 계속, 거듭 얘기하고 있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고, 혹시나 싶어 한 줄기 희망을 가져볼라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마는, 그런 사람들과 그런 생활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나는 이 이야기가 작가가 과장되게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렇게 매번, 짓밟을 수 있을까. 하아- 너무 힘들다. 정말이지, 플래너리 오코너는, 좋은 사람은 없다니까!!!!!!!!!!!!!!!!!!!!!, 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있을 줄 알았지? 꿈 깨! 없어.
아마도 이 책은 인간에 대한 혹은 삶에 대한 희망이 그다지 없거나 모든 일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플래너리 오코너를 피해갈 것이다. 힘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쨌든 끝까지 다 읽긴 했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힘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헤드 씨는 나이를 먹는 것이 대단한 축복이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만이 삶을 차분히 이해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달에게 일러주고 싶었다. 적어도 그가 경험한 바로는 그랬다. (p.166)
요즘에는 내가 점점 더 예뻐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매일 한다. (응?) 나는 어떻게 나이들수록 예뻐지냐..라고.. ( ") 일전에 정식이가 '너는 삼십대 되고나서부터 포텐 터졌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후반에 이를수록 더, 더, 더, 더 멋져지는 것 같다. 삶에 있어서, 관계에 있어서, 여전히 나는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 될 수 있었던 건, 이만큼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도무지 건질만한 게 없었던 대학시절, 기억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이십대 중후반의 삶 같은 것들. 나는 내 젊음을 정말이지 길바닥에 그대로 패대기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겪고 나니, 나는 그때보다 나은 인간이 되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더라. 어떤 것들이 상대에게 실례인지는, 내가 실례를 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내가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 함부로 다가갔었기 때문에 깨닫게 된 건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한다면, 과거의 시기들을 거쳐 그나마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내 젊은(혹은 어린)시절이 딱히 좋을 게 없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시간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었던 시간일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분명 어떤 점에서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꼿꼿하고 도무지 꺽일줄 모르는 성정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어릴때나 지금이나 솔직한 성격임에도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말을 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신중해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론 사십대가 되고 오십대가 되어 지금의 나를 돌이켜봤을 때 어쩌면 이리도 어수룩할 수 있었을까,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십대의 나 보다는 지금의 내가 낫다.
부족한 게 있다면 색기...인데(응?), 나는 내 눈에서 분명히 색기를 보는데, 어제 대화중에 B는 내 눈은 '착한 눈' 이라는 거다. 하아- 상처받았어. 나 색기 있다고 바득바득 우기노라니 B 는 '그럼 나 안보이게 감춰놨나보다' 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눈에서 색기를 봤고, 그래서 남동생에게 '야 내 눈에 색기있지?' 라고 물었었는데, 그때 남동생은 '그건 색기가 아니라 똘끼지' 했었더랬다. 크- 내 눈에 색기는 나만 보는가 싶어, 오늘은 여러사람들에게 물었다. 회사 여자동료에게 물으니 착한 눈이란다. 색기는 없단다. 그렇지만 아이라인으로 만들어 보자며....정식이에게 물었더니 선한 눈이란다...물새 눈이라고....물새는..뭐여...여자친구 다른 두 명에게 물었더니 착한 눈...이란다..강아지 눈이라고...하아- 왜 아무도, 아무도 내 눈에 색기를 못보지? 왜 나만 보지? 나 고양이 눈 같지 않어? 했더니 '곰 눈 같다'고 여동생은 말했다. 하아- 이것만 있으면 완벽해질 것 같은데. 하아- 이래저래 갈 길이 멀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기전, 그러니까 아침 여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 회사 동료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오늘 점심 돈까스 먹자.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이렇게 계획적인 여자사람인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먹으러 갈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졸 하루 계획 다 짜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일 약속 모레 약속 글피 약속 있는데 이미 먹을거 다 정해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계획적이고 이성적인 여자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