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뜻하지 않은 바를 실행하게 되는 것이 삶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뭐, 이렇게 거창하게 썼지만 사실 내가 하려던 말은 이거다. 나는 정우성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터라 내가 볼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영화 《호우시절》을 봤다는 것.
지금은 활동하시지 않는 알라디너 '작게작게'님이 일전에 그런 페이퍼를 쓰신 적이 있었다. 로또 당첨을 바란다면 로또를 사야 한다는 것. 이 단순한 이치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나는 이 영화 호우시절을 보면서도 그 말을 떠올렸다. 로또 당첨을 바란다면 일단 로또를 사야하고, 이국에서의 로맨스를 꿈꾼다면 이국엘 가야 한다는 것. 중국 여자가 한국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미국에 갔었기에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남자가 중국 여자를 사랑하게 된 건 미국에서 그녀를 만났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내가 재이슨 스태덤과 사귀고 싶다면 여기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다. 여기를 내팽개치고 미국엘 가야한다. 가서, 재이슨 스태덤 앞에 내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 물론 드러낸다고 그와 내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건 아니다. 그건 당연하다. 그 뒤로도 헤쳐나가야 할 난관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가서 그의 앞에 나를 드러내야, 그 뒤를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옆에 젊고 아름다운 미녀가 있다면 나는 그의 옆에서 그의 손을 잡고 걸을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고, 설사 그의 옆에 아무도 없다 한들 내가 그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할 수 없지만, 일단 나는 그의 앞에 나를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 있고 그는 거기에 있다. 아, 가엾은 내 사랑, 한국에 갇혔네.
또한, 남자는 떡대다, 라는 걸 이 영화는 분명히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가 갑자기 만난 비에 비를 피하기 위해 한 가게의 처마 밑으로 들어갔는데 대화를 나누던 도중 여자가 추위를 느껴 살짝 떤다. 그때 떡대 좋은 정우성이 긴 팔로 여자의 어깨를 감싸는 것. 크- 남자는 떡대로구나! 저렇게 키가 크고 팔이 기니까 여자를 한 팔에 감쌀 수 있지. 하앍- 떡대는 진리야!! 그러나, 떡대는 진리라는 말은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 같다. 아무리 긴 팔을 가진 정우성이라도, 옆에 내가 서있었다면 한 팔로 감싸기는 부족했을 터. 일전에 우산 하나를 쓰고 나와 나란히 걷던 남동생이 '한 팔안에 들어오는 사이즈면 얼마나 좋냐, 비 안맞고' 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미안해.......그치만........우산 두개 쓰면 되잖아..........남동생과 나는 같이 버스를 탈 때마다, 자리가 좁다고 서로 난리다. 우리 둘의 떡대는 만만치 않은 것이다. 나는 어휴 좁아 저리 꺼져 라고 말하고 남동생도 누나 때문에 자리가 좁다 라고 말한다. 우린...좁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고 말하는 이 영화는 생각보다 좋다. 물론 어, 뭐랄까, 두 명의 캐릭터가 좀 별로이긴 한데, 둘이 너무 간만 보는 느낌이랄까.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고 사랑까지 느끼면서 상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 계속 발만 담그고 질척대는 느낌을 주기는 한다. 그러다가 감정을 확인하고 무르익긴 하지만, 또한 썸타는 그 과정 자체가 행복하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한 발 더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하니까. 썸타는 시간이 길면, 어떤 사람은 지치곤 한다. 지쳐 나가 떨어질지도 모르니 확실히 뽝- 가주는 게 ... 아니다, 뭐, 이건 성향의 문제이니 이쯤하고. 다시,
이 영화는 생각보다 좋다. 정우성이 이런 영화를 찍었구나, 하고 재미있게 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현빈'과 '탕웨이' 주연의 영화 《만추》를 떠올렸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마지막 장면으로 치자면 희망은 정우성 쪽에 더 있는데, 왜 내가 느끼는 희망은 탕웨이 쪽에 더 가는걸까. '기다리면, 온다'는 분명한 사실은 《호우시절》에 있는데, 왜 충만한 느낌은 《만추》가 줄까. 더 많이 웃었던 남자와 여자도 호우시절이고, 내가 더 많이 웃었던 것도 호우시절인데, 왜 다 보고나면 많이 웃었던 호우시절은, 가슴이 시릴까? 뭔가 휑- 하는데, 그게 대체 왜일까. 알 수가 없다.
정우성은 참 잘생긴 배우인데, 나는 왜 정우성한테 관심이 없을까, 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미녀와 미남은 처음 봤을 때 호감을 주지만, 나의 경우, 그사람의 생각이 더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확률이 절대적인 것 같다. 재이슨 스태덤의 캐릭터 매력은 《트랜스포터》에서 폭발했는데, 몇 번이나 말한 적이 있지만, 그 우락부락 강한 남자가 그 힘 센 손으로 여자의 얼굴을 감싸고 들여다보며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데서 나는 쑝간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런게 있어야 했다.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의 생각을 알고, 그 사람의 성향을 아는 것. 그게 나에게는 확실히 더 중요했다. 외모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디자인이 예쁘다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에 막 꽂히는 사람이 나는, 아닌 것이다. 예쁘거나 말거나, 나는 됐어. 물건은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사람은 '사고방식과 성향'에 의해 선택되는 것 같다. 내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 그것이 아마도 그간 내가 못생긴 남자들을 많이 만난 이유가 되는.........................건가.
여튼, 예쁜 여자는 뭘 입어도 예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냥 원피스와 그냥 카디건인데, 졸 이뻐.. 머리도 그냥 컷트 쳐서 대충 댕기는데 졸이뻐.... 쩝 -_-
그렇지만 이 여자의 신발은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다. 선물 받아도 안 신을 것 같은 신발을 그녀는 신고 있다.
아우- 근데 가슴에 바람이 분다. 웃으면서 기다리는데, 기다리면 나올텐데, 왜 바람이 불까?
이틀전 내가 잠들기 전에 들었던 노래.
얼마전에 친구에게 이 책이 좋다고 추천을 받았다. 친구의 인용문을 보고 나도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이 책은 품절 상태였다. 친구는 알라딘 품절센터에서 구했다고 했는데, 나는 혹시 출판사에 재고가 있는지 트윗에서 멘션을 보냈다. 출판사 쪽에서는 현재는 재고가 없고, 12월이 지나면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니 급하지 않다면 기다려보라는 답이 왔다. 그래, 기다려보자, 고 생각했는데 그런 후에 며칠 뒤 이 책이 택배로 도착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봉투에는 낯선 이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었고 일단 뜯어보니 이 책이 나와 놀랐던 터라, 누군가 내가 이걸 읽고싶어한 걸 아는 사람이 보냈는가 보구나, 했다. 일단 택배사에 전화를 해보니 그쪽에서 아는 정보도 내가 아는 정보와 같아 알 수가 없었다. 추천한 친구에게 혹시 네가 보냈니, 라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이런 깜짝 놀랄만한 일을 누가 대체 내게 한걸까. 나는 또다른 친구가 생각나 문자를 넣었다. 혹시 제게 사랑의 미래를 보내셨나요? 그 친구는 아니라고 답했다.
내 주소를 알고 보낸 이상 이 선물은 깜짝 선물은 될 수 있어도 깜짝 인물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터라, 나는 봉투에 쓰여진 낯선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저는 누구누구입니다, 이 책을 보내신 분이 누구신가요? 라고. 그 쪽에서는 자신은 판매자이며 보낸이는 *** 라고 답해주었다.
아!
이건, 내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뜻밖의 인물. 나는 너무나 놀라서 내게 책을 보낸 친구에게 대체 거기에서 어떻게 이걸 보낼 수 있었냐, 어떻게 한거냐 물었다. 그는 내게 <이 책을 선물하기 위해 전 세계를 뒤졌어> 라고 답해왔다. 후-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좋아서, (뭐가? 책이!), 이 책은 내 책장의 모든 책을 다 판다고 해도 팔지 않는 유일한 책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새로 책을 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띠지를 벗겨 버리는 일인데(띠지 싫어요!!), 이 책에 대해서라면 띠지 조차 소중하게 여겨야지. 나는 띠지를 벗겨서 책 사이에 끼워두었고,
까페에 들고 가 조금 읽고,
살짝, 한 귀퉁이에 선물 받은 날짜와 선물해준 이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십년쯤 지나면 조카에게 말해줘야지, 하고. 조카야 앉아보렴,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다. 이 책을 꺼내들고, 이 책에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어, 너에게만 말해줄게, 하고 말해야지. 헤헷. 그리고 덧붙여야지. 너도 전세계를 뒤져서 네가 갖고 싶은 걸 선물해주는 사람을 일생에 한번은 만나렴, 하고.
오늘 읽은 이 책에서는 이런 구절을 만났다.
어느 환한 봄날의 꽃그늘 아래서, 그가 지상에서 가장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을 때, 다만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그 시간은 완벽했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시간은 모든 모욕을 잊어버리고 조용히 닫혔다. '너'를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간절한 전언을 머금고 있었다. (p.41)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길, 이규리의 시도 떠올렸다. 내가 떠올린 시는 '많은 물' 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 그 시의 전문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많은 물
비가 차창을 뚫어버릴 듯 퍼붓는다
윈도브러시가 바삐 빗물을 밀어낸다
밀어낸 자리를 다시 밀고 오는 울음
저녁때쯤 길이 퉁퉁 불어 있겠다
차 안에 앉아서 비가 따닥따닥 떨어질 때마다
젖고, 아프고,
결국 젖게 하는 사람은
한때 비를 가려주었던 사람이다
삶에 물기를 원했지만 이토록
많은 물은 아니었다
윈도브러시는 물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밀어내고
있으므로
그 물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저렇게 밀려났던 아우성
그리고
아직 건너오지 못한 한사람
이따금 이렇게 퍼붓듯 비 오실 때
남아서 남아서
막무가내가 된다
차곡차곡, 비밀이 쌓이는 가을, 넘쳐 흐르는 빗물.
나는 가을의 노예, 비의 노예, 노래의 노예, 시의 노예.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노래합니다. I'm slave for you. 두구둥-
이따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백팔배를 해야겠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안깼어..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