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친구를 만나서 영화를 보고 삼겹살을 먹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에서 이들이 어찌나 레스토랑엘 자주 가고 와인을 자주 마시던지, 지금 당장 와인을 마시러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던거다. 할수없이 우리는 영화가 끝나고 메뉴를 삼겹살에서 스테이크로 바꾸었다. 다행히도 극장 바로 옆에 세븐 스프링스가 있었고, 영화표를 가지고 오면 15프로 할인도 해준다고 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스테이크를 고르려는데 모두 돌판에 나온다는 거다. 돌판에 나오는거는 애초에 나올때는 미디엄 레어로 나와도 먹다보면 완전 웰던이 되버리는데, 돌판 말고 그냥 접시에 나오는 건 없냐고 물었더니 한 종류가 있다고 손으로 가리키는데 완전 별로인거다. 할 수없이 돌판에 나오는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역시나 고기는 좋긴했지만 금세 다 익어버리고 말았다. 제발 레스토랑에서 돌판에 스테이크 좀 얹어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손님한테 선택하게 해주던가. 나는 돌판에 스테이크 나오는 게 진짜 화딱지가 난다. 버터가 얹어져 나오고 그 버터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는 건 기쁨이었지만, 어휴, 다 익어버린 스테이크는 진짜 뻐킹쉿이라니깐.

 

돌판에 스테이크 주지 마세요. 네?

 

 

오랜만에 간 세븐에서 들떠가지고 이음식 저음식 다 가져다 먹다가 친구가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스맛폰으로 알라딘에 들어왔더랬다. 그리고 로쟈님의 서재에서, 맙소사, 마태우스님의 새로운 책 소식을 알게된거다. 꺅 >.<

 

 

 

 

아니, 시비돌이님과 마태우스님은 언제 만나서 이런 책을 쓰게 되신걸까?

부디 대박나시기를 바라며 나도 얼른 몇 권 사서 주변에 쫙 선물해야겠다. 하핫.

거듭 재인쇄 들어가신다면 제 덕이라도 생각하셔도 될겁니다, 마태우스님!

여태 시비돌이님이 인터뷰했던 분들 중 이번 책의 주인공이 내가 가장 애정해마지 않는 인물이다. 아...신해철..도 있는데.....신해철과 마태우스님이라.....음.......

 

예전의 나는 거침없이 신해철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뭐 이렇게만 말하고 마치겠다.

 

아흑, 빨리 읽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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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투의 베란다쇼>의 웃긴 의사 '서민'의 유쾌한 인생 이야기. 강신주, 박원순, 표창원, 공지영 등 한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어 지승호가 서민을 만났다. 두 사람의 호흡은 아주 잘 맞았고, 그 결과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

자연인 서민과, 직업인 서민,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들이자 친구로서의 서민,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으로서의 서민, 개를 지극히 사랑하는 ‘개 아빠’로서의 서민까지……. 지승호는 물었고, 서민은 답했다. 덕분에 우리는 “월세 밀린 세입자처럼 조용히” 그러나 할 말은 하는 보기 드문 사람, 서민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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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러 갔었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그 연극이 불편했다. 연기를 한 배우들이 관객들 앞에서 과감하게 연극의 제목을 언급하며 보지 라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연극이 상영되는 내내 배우들의 연기가 불편했다. 세 배우 모두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했는데, 그 눈물은 인물의 공감에서 오는 눈물이 아니라, 눈물을 위한 눈물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야 연극을 몇 차례 본 적도 없으니 뭐라 말하기가 참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서 그 연극이 내게는 전혀 재미없게 느껴졌더랬다. 좀 더 극중 인물이 될 수 있는, 극중 인물이라 느껴지는게 무척 자연스러운 그런 나이 든 배우의 연기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래도 [버자이너 모놀로그]라는 내용만큼은 흥미가 생겼었는데, 그 작가의 다른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접했다. 독립적인 소녀들의 인터뷰 내용이라니, 나는 흥미롭게 읽으며 감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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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가 전하는 뜨거운 조언. 사회가 강요하는 ‘착한 소녀’를 벗어던지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세상을 향해 저항할 것을 소녀들에게 요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만난 십 대 소녀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준다. 따돌림에서부터 빈곤과 폭력,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겪는 각종 사회적 억압, 그리고 자아를 찾기 위한 저항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소녀들의 공격성, 감정과 욕망뿐만 아니라 그들을 억압하는 사회의 무게를 느끼게 될 것이다. 소녀들은 사회적이고도 개인적인 진실을 말함으로써 스스로의 목소리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저자는 이 목소리를 전하며 소녀들에게 감정을 당당히 말하고 직관을 따르며 자신의 판단에 따라 과감하게 행동할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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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먹는 도중 알라딘으로부터 문자가왔다. 내가 알림 신청한 《제스처 라이프》의 개정판이 나왔다는 거였다. 읭? 제스처 라이프라고? 내가 이런거 알림 신청해뒀었다고? 제목도 완전 생소한데?

 

이게 대체 뭔 책인가 싶어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안에서 검색해봤더니, 오호라, 이창래의 품절된 책이었던 거다. 앗. 맞아! 내가 이걸 읽어보고 싶어서 알림신청 해뒀었지! 다시 나온 제스처 라이프는 《척하는 삶》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흐음. 제목이 좀...거시기하다. 척하는 삶...이라니. 그러다가 그의 품절된 다른 책 《가족》도 새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쁜 마음으로 사리라~ 마음먹었다가, 이창래의 새로운 책을 사두고 읽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이 떠올라 멈추었다. 정신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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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이창래가 2004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장편소설로, 「타임」 선정 '당신이 놓쳤을 수도 있는 훌륭한 책 6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뉴욕의 롱아일랜드에서 평생을 살아온 50대 남자 불만투성이 제리 배틀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업을 물려받아 부족할 것 없이 살아 온 제리 배틀. 그리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게을리 살지도 않았다. 미국의 적당히 부유한 집안 자제들이 마땅히 누릴 만한 것들을 누리며 편안하게, 그리고 적당히 방탕하게 일평생을 살아온 제리 배틀은 은퇴 후에 무료한 일상을 보내다가 경비행기를 구입하여 비행하는 것으로 소일하며 산다.

그러나 아들 내외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물려받은 가업을 위태롭게 하고, 임신 중에 암 판정을 받은 딸은 치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양로원에 있던 아버지는 사라져 버리고, 아내와의 사별 후 만나 오랜 시간 동거해 온 동반자 리타는 그를 떠나려 한다.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로부터 늘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던 그는 50대 후반이 된 지금에서야 그 중심에 서게 된다.

작품 속에 그려지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중산층은 얼핏 화려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서 곪아 온,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롯된 영속적 가치에 대한 상실감과, 이미 해체된 옛 가족 구성원들이 받아 온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다. 2005년에 출간되었던 <가족>(전 2권)의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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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하는 삶》

이창래가 1999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로, 아니스필드-볼프 도서상을 비롯한 미 문단의 4개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국계 일본인이었으나 세계 2차 대전에 일본군 군의관으로 참전하여 한국인 위안부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었던 구로하타 지로는 전쟁이 끝난 뒤, 미국 뉴욕 근처의 베들리런으로 이민해 프랭클린 하타라는 이름으로 반평생을 살았다.

이제 70대 노인이 된 그가 들려주는 지나온 삶의 이야기들, 전쟁, 사랑, 이민, 그리고 현재 그가 가장 사랑하는 (미국 이민 후 입양했던) 한국계 딸 서니와의 이야기가 슬프고도 아름답게 그려진다. 2000년에 출간되었던 <제스처 라이프>의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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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아빠보다는 엄마랑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나는 아빠 육아가 참 좋다. 호감이 간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도 같이 성장한다고 믿는 나는, 그렇기에 아빠 육아는 아이들에게도 또 아빠들에게도 분명 더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줄거라 확신한다. 물론 아빠들은 아이들과 노는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아 당황하기도 할 것이고, 더 솔직해지자면 아이들과 함께 '노는' 방법을 몰라 난처할 거란 걸 안다. 가까이로는 나의 제부만 봐도,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걸 갖게 해주는 것, 하고 싶다고 하는 걸 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더 다정한 시선, 더 다정한 말투, 함께하는 더 많은 시간이 좋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방법을 모르는 아빠들에게는 그 말 자체가 어렵게 느껴질것이다. 어쨌든, 오늘 어제자 신문을 들춰보다 이 책의 소개글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넘겨보고 싶어졌다. 아마, 많이 웃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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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수백만 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세계 최고 아빠(World's Best Father)'의 이야기다. '딸바보' 아빠와 그의 딸 앨리스 비(Alice Bee)와의 이야기를 위트 넘치는 백여 장의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아낸 918일 동안의 기록이다.

책은 소소한 일상이 주는 즐거움은 작은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재기발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기의 우유에 집착하는 아빠를 위해 세계 최고 엄마는 아빠의 컵에 술을 선물하는가 하면, 퇴근길에 아내가 만들어줬던 마티니의 환상적인 맛을 기억한 아빠는 딸과 함께 아내의 퇴근을 기다리며 마티니를 (한가득) 준비해 놓는 등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가슴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려던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저자가 온 시간(많은 아빠들이 여가 시간을 딸에게 희생하는 것만으로도 부성애를 느낀다고 저자에게 고백했다고 한다)과 마음을 다 바친 사진에는 따뜻한 웃음이 스며들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아이와 나를 키워준 부모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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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생긴 후의 나는, 육아서에 관심이 좀 생겼다. 그래서 한두권씩 읽어보곤 하는데, 오늘 신간들을 검색하다 이런 책들을 알게됐다. 읽어본 책이 아니니 말하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책들의 소개글은 나를 무척 불편하게 했다. 저자는 엄마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와 화제를 몰고다니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은 마치 종교단체의 교주를 연상시키는 듯해서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지는거다. 물론 육아는 힘들고, 누군가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을 녹여내 다른 이들의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건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일이 맞고, 또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소개글과 저자의 블로그 또 리뷰들을 보니, 이 책이 가져올 결과가 그리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거다. 게다가 육아에 임하고 있는 엄마들은 매우 힘들고 약해져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 상황이 이 책의 인기에 더 날개를 달아준 게 아닌가 싶어지는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쉽게 읽히는 게 꼭 좋은 번역은 아닌것처럼, 어릴 적부터 유창한 책읽기를 할 수 있는 것, 그것도 영어로 된 책을 술술 잘 읽게 된 것이 '좋은 육아', '남들이 다 본받아야 할 육아'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건 이 책을 읽지 않고 책 소개글과 리뷰들, 저자의 블로그 글로 판단하고 말하는거다. 괜한 오지랖일테지만, 육아를 책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게 방법이 아니라는 걸 모든 엄마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는 저마다의 성향이 다르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방법이 내 아이에게도 좋은 방법일 리가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밥을 많이 먹고 배가 불러진 친구와 나는 알라딘 중고샵 종로점에 들렀다. 사고 싶은 책이 있나 검색도 해보고, 또 무엇이 새로 나왔나 둘러보던 나는, 내 옆에 서서 책 몇 권을 골라 들고 있던 제복 입은 남자에게 눈길이 갔다. 그의 손에 들고 있던 두 권의 책도 자기계발서였고 또 고르고 훑어보는 책들도 같은 종류였다. 나는 그가 입은 제복이 육군의 것인지 공군의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만, 그가 왜 저렇게 멋들어지게 제복을 입고 저런 책(?)만 고르는걸까, 내 입장에선 심히 안타까웠다. 그 책들을 읽으려하는, 고르는 그의 상황이나 취미 성격 같은게 분명 있겠지만, 그 책들 틈에 한 권의 소설책을 끼워 넣어주고 싶은거다. 나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소설을 한 권 찾아 그에게 추천해주고 싶었다. 얼른 소설 코너로 가 살펴봤는데 마땅한 책이 보이질 않았다. 초조해졌다. 그러다가 한창훈의 《그 남자의 연애사》가 눈에 띄었다. 그래, 이건 내가 찾던 '바로 그 책'이라기엔 좀 부족해 보이지만, 자기계발서만 읽는 젊은 남자가 소설이란 게 뭔지, 그것이 어떤 재미를 줄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에 나쁘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어 꺼내들었다.

 

꺼내들었지만 막상 그에게 다가가 그 책을 건네며 저기요, 이 책 한 번 꼭 읽어보세요, 라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용기를 낸다고 해도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나 나이 많은 여자가, 어쩌면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날지도 모르는데, 뚜벅뚜벅 다가와 책을 건네고 추천하는 일은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건방지고 재수없게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두고 돌아보니 그는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아쉬워졌다. 에잇, 그래도 그냥 건네볼 걸 그랬나, 하고.

 

 

 

가방엔 이미 책 한 권이 있었고 중고샵에서 책을 세 권을 더 사서 넣으니 가방이 엄청 무거워졌다. 그렇지만 배가 불러 우리는 동대문운동장역까지 걷기로 했고, 그렇게 걷다가 광장시장을 지나치게 됐는데, 나는 거기에서 처음으로 내 팔뚝만한 순대들을 보게됐다. 와- 저건 뭐냐. 저것이 진정 순대란 말이냐, 으윽.

구두를 신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걷다가 나는 이내 피곤해졌다. 중간에 친구랑 헤어져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파김치가 되어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스물다섯에 좋아했던 남자 H 가 떠올랐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겹쳐서.

 

그와 내가 종종 술을 마시던 곳이 종로여서 그랬는지 모를일이다. 그때의 나는 그를 좋아했는데, 함께 알고 지내던 여자후배 B가 내게 다가와 그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그를 더 먼저 알고 또 먼저 좋아했지만, 사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데 그 '먼저'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먼저' 마음을 토로한 B 때문에 나는 자연 나의 마음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도 인터넷 검색엔 영 재주가 없었다. 그당시 꽂힌 음악에 대해 궁금했던 나는, 그걸  어느 밴드의 멤버이던 H 에게 물어보고 싶었고, 그러나 H와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했던 B에게 물어봐달라 청했다. 그런데 다음날 H는 내게 다가와 '그 음악 락방씨가 궁금한거죠?' 라며 제목과 가수가 적힌 쪽지를 내게 내밀었다.  그 곡 리메이크 곡인데요, 라며 설명하던 그의 말들은 들리지 않았고, 내가 궁금해한거란 걸 그가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만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리고 어쩐지 이 일을 B에게 말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여자친구 네 명이서 술을 마시다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호출을 해보기로 했다. 누가 가장 먼저 전화를 받는지 내기를 하자는 거였다. 참, 이런건 이제 시켜도 못할텐데 그때는 왜 미친듯이 열중했을까. 여튼 우리 넷은 동시에 각자 마음에 두는 상대에게 호출을 했는데, 놀랍게도 내게 가장 먼저 전화가 왔다. 당시 우리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던 사이가 아니었던터라 꽤 놀라운 일이었는데, 나는 병신같이, 정말 병신같이, 전화기 너머의 그에게 '호출 잘못했어요' 라고 하고는 끊어버린거다. 그때 내 친구들의 야유란. 한결같이 나를 병신이라 욕들을 했고, 나도 이런 내가 병신같아서 하염없이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이제 연락도 만날 일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지 이년째쯤, 그당시 알고 지낸 다른 선배 한 명을 만나 오만년만에 술을 마시다가, 형 사실은 그때 내가 H를 좋아했었어요, 라고 말했더랬다. 그러자 선배는 내게 그때 진작 말을 하지 그랬냐며, H 도 나를 좋아했다는 거였다. 그때 당시 둘이 담배를 피다가, H가 선배에게 '형, 저 사실은 락방씨가 마음에 있어요' 라고 했다고. 이 말을 듣고 놀란 나는 아니 그럼 그때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냐고 했더니 선배는 내게 '너는 그녀석한테 전혀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랬지' 라고 하는거다. 아 쉬바..조낸 야속해 ㅠㅠ

 

 

여튼 어제 버스안에서 내내 그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H의 전화번호가 선명히 기억나는거다. 016 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그래, 십년도 넘게 지났지만 전화나 한 번 해볼까. 안부를 물어보자! 그렇지만 나와 동갑인 그가 지금 어떤 상황일 줄 알고 불시에 전화를 하나, 싶어지는거다. 주말밤인데 실례가 되는건 아닐까.  그래, 그 번호로 문자를 넣어보자, 싶어졌다가 아니 그 문자를 만약 다른 사람이 보고 뭔가 오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래, 버스에서 내리면 전화를 하자. 전화를 해서 일단 그의 이름 석자를 또박 또박 얘기해 그의 번호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맞다고 하면 내 이름을 밝힌 뒤, 혹시 주말밤인데 실례가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정중하게 묻자. 실례가 된다고 하면 죄송하다고 하고 끊자. 내 번호는 그에게 남으니 혹여라도 그가 궁금해지면 내게 다시 연락을 할 수도 있겠지. 만약 실례가 아니라며 조금이라도 반가워한다면, 그러면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어보자. 서점에 가면 내가 쓴 책이 있다고도 말해야지. 그래, 그게 좋겠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걸으면서 수화기를 들고 잠깐 멈칫 하다가 이내 번호를 눌렀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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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4-05-11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례자의 책을 가지고 쓴 단편이 재현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쉬워요.
알라딘 중고샵은 강남점이 맞아요? 동대문 운동장까지 어케 걸어가요..ㅎㅎ
마지막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마지막 장면 같아요. 너무 극적이에요!

다락방 2014-05-11 20:48   좋아요 0 | URL
종로점이었어요. 마노아님 댓글 덕분에 고칠 수 있었네요. 아니 강남점에서 동대문 운동장까지 걸어가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서울 대장정인가요 ㅎㅎㅎㅎㅎ 강남점이 저기서 왜 튀어나왔지.. 하아-

요즘엔 아주 많이 과거의 사람들을 생각하게 돼요. 아주 많이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주말 잘 보냈어요, 마노아님?

마노아 2014-05-11 21:06   좋아요 0 | URL
일용할 양식 때문에 승질이 났어요. 담에 만나면 우리 부장님 욕 좀 할게요. ㅋㅋㅋ

다락방 2014-05-11 21:33   좋아요 0 | URL
뒷담화는 삶의 엑기스! 얼마든지 해요, 얼마든지!!

유부만두 2014-05-1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010으로 바꿔서 다시 걸어봐요~

다락방 2014-05-12 08:46   좋아요 0 | URL
그 생각도 안한건 아니지만..뭐랄까..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제가 뭐 지금 갑자기 십년도 전에 좋아했던 사람에게 연락해서 뭘 해보자는 것도 아니고..그저 오래전에 알던 이사람, 잘 지내나 싶었던 거니까.. -0-

Forgettable. 2014-05-1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토요일에 종로에 있었는데!!!!!

다락방 2014-05-12 08:47   좋아요 0 | URL
오!
배터질것 같아서 뒤뚱뒤뚱 걷고 있는 나를 못봤습니까? ㅎㅎ

2014-05-12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2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3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3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조기후 2014-05-1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해철 넥스트 앨범 곧 나온다던데.. 그에 대한 애정도 확실히 예전같지 않지만 ㅋ 앨범이 기다려지긴 해요.
저 영화 어땠어요? 저거 볼까말까 고민하다 말다가 하고 있어요. ㅎㅎ

다락방 2014-05-12 12:42   좋아요 0 | URL
저 별로 재미없더라고요. 좀 지루하기도 하고.
전 요즘 왜 무슨 영화를 보든 무슨 책을 읽든 등장인물들이 다 외롭게만 느껴지죠? 외로워서 저러는구나, 하는것만 보여요. 왜이러죠? ㅠㅠ

그나저나 신해철 넥스트 앨범..이라고요? 오마이갓!

네꼬 2014-05-12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좀 조마조마했어요. 이렇게 결론 나서 다행이라고! (이 술꾼아!!)

말하기 조심스러워한 저 두 책 중 한 권(오른쪽)을 나는 읽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데, 정말 염려스러운 책이더이다. -_- 락방씨 안녕? 나랑도 고기 먹으러 (또) 가요.

다락방 2014-05-12 16:43   좋아요 1 | URL
앗 나 좀전에 네꼬님 서재에 댓글 달고 왔는데 ㅎㅎ

네꼬님이 읽은 책의 저자가 왼쪽 책도 쓴거에요. 새 책이 나왔더라고. '닥치고 군대육아'라니...아 정말.. ㅠㅠ 제목부터가 너무 슬퍼. 어떻게 저런 제목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ㅠㅠ 네꼬님이 저 책은 뭐하러 읽었담? 표지부터 네꼬님이나 내가 똭- 읽기 싫어할 스타일인데. 특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네꼬님이 저 책을 마음에 들어할 리 없다는 생각이 뽝- 드는데 말이지요!!

잘 왔어요!

무스탕 2014-05-12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자이너 모놀로그] 볼때 저 만났던거 생각나세요? 솔직히 전 그 연극 전혀 생각 안나요.
그날 다락방님 만났던것만 생각나요~♡

다락방 2014-05-13 09:01   좋아요 1 | URL
당근 무스탕님 만난거 기억하죠! 제가 자리 좁다 그래서 무스탕님이 제 자리를 더 넓게 만들어주셨잖아요. ㅋㅋㅋㅋㅋ 덩치가 커서 죄송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14-05-13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달달한 이야기. 조려가며 읽었네요! 다락방님, 저는 솔직히 <저지대> 분량을 보고 제가 결국 다 읽어내지 못하겠다, 나는 줌파 라히히의 단편을 좋아하지, 장편까지 좋아할 수 있을까, 했는데...

정말 고마워요.....다 읽었고 뭉클했어요....그리고 다 읽고 나니 다락방님을 좀 더 알 수 있겠다, 싶은 묘한 기분.
소설은 죽지 않았고, 이 작가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그런 성장하는 작가구나. 게다가 얼굴도 대책없이 이쁘구나, 진짜 부럽다, 했지요--;; 그리고 다락방님이 좋아하는 이창래의 소설을 한번 도전해 볼까 싶어요.
자, 추천해 주세요. 딱 한 권을 꼽으신다면 어떤 게 좋을까요?

다락방 2014-05-13 11:34   좋아요 1 | URL
저는 아직 이창래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단계에요. 제가 읽어본 거라곤 그의 책들중 딱 한 권 이거든요. 그게 《영원한 이방인》이에요. 이 책만 읽었는데, 만약 이 책을 블랑카님께서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이 책을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블랑카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생존자》는 아직 사두고 읽지 않았고요, 저 위에 링크한 책들은 아직 사지도 않았답니다. 하핫.

저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주변 사람들이 줌파의 단편이 더 좋다, 역시 줌파는 단편이다, 라고들 했는데 저는 아니더라고요. 물론 그녀의 단편을 사랑하지만 이 책, 《저지대》도 무척 좋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인물들의 외로움을 저에게 고스란히 느끼게 할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뭉클하게 읽으셨다니, 다행(?)이에요. 하핫

다락방 2014-05-13 11:35   좋아요 1 | URL
영원한 이방인 품절이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14-05-13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3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