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어제 읽은 책 『나였던 그 발랄한 아가씨는 어디 갔을까』 에서 요네하라 마리에 관련된 부분을 읽고 웃겨가지고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무얼 하나 더 사서 읽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인간의 머리회전도 같은 거야. 뇌수도 가장 멍청하고 유익한 뇌세포의 속도보다 빨리 회전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어. '알코올을 너무 섭취하면 뇌세포를 파괴한다. 그러니 음주는 적당해 해라.' 따위의 그럴듯한 논리를 늘어놓는 자들이 있는데, 물소 무리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때문에 파괴되는 건 가장 약하고 느린 뇌세포야. 말하자면, 매일 술을 마시면 느린 뇌세포를 파괴해주니까 결과적으로 뇌수 전체의 움직임은 빠르고 효과적으로 되는 거야."
"아버지, 머리 회전이 너무 빠르면 힘들잖아."
"그러니까 그걸 담배로 조절하는 거잖아."
-요네하라 마리, 『속담 인류학』중에서 (p.34)
인용된 책이 <속담 인류학> 이니, 그걸로 할까? 하하하하하.
저자 류민해는 이 책에서 각 에피소드마다 자신이 읽은 책의 인용을 덧붙여 얘기하는데, 요네하라 마리 부분에서도 그렇고, 어떤 책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일상과 곁들어 읽는게 더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루쉰도 궁금해져서 뭔가 좀 찾아 읽어봐야겠다. 사실 어떤 글들은 이미 그녀의 블로그에서도 읽었던 바 익숙한 것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으면서 역시 그 때처럼 애틋했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읽기 힘들었다고 해도 좋을, 그러면서 가장 많이 안도한 부분.
눈이 많이 온 날, 큰 아이를 잃고 헤매다가 다시 찾는 과정에서, 아이가 엄마를 보고 으앙, 울음을 터뜨리는 그 장면에서 어휴, 안도하고 힘들고를 반복했다. 조카가 생기고난 후 더더욱 나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엄마가 고통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진다.
이제 치카치카 안 한다고, 밥 먹을 때 딴짓하고 어린이집 갈때 꾸무럭거려서 맨날 지각한다고, 같은 반 아이들 다 쓰는 자기 이름 석 자 혼자 못 쓴다고 구박하지 말자.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 옆에만 있어준다면, 건강하게 이렇게 있어만 있어준다면 (그런데 이 부분은 이 책에서 가끔 보이는 오타인듯. '있어만 있어준다면' 이라니.) 그걸로 감사하잖아.
그렇게 집으로 올라오는 사이, 아이는 벌써 아까 일을 잊어버렸는지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고 나를 조른다. 그래, 만들자. 우리 진서가 이렇게 건강하게 웃어줄 수 있다면 이 추위쯤이야, 내 몸 힘든 것쯤이야. (pp.100-101)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여동생과 남동생과 조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백화점을 갔다가 밥을 먹고 조카가 뽀로로음료수를 사달라고 해서 데리고 식품 매장으로 간거다. 손을 꼭 잡고 식품매장엘 가고, 음료수를 선택했지만 계산할 때는 잠시 손을 놓아야 했다. 타미야, 잠깐만 그대로 서있어 어디가지말고, 라고 말하며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려는 그 찰나, 아이는 손을 놓자마자 부리나케 뛰었다. 아. 쓰다보니 또 눈물나. 나는 계산대 아주머니께 잠시만요, 라고 말하고 미친듯이 뛰어갔다. 아, 그 어린 아이가 얼마나 빠른지! 나는 이렇게 애가 타는데 얘는 매대사이를 돌아다니며 깔깔대고 웃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눈물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여튼 가까스로 아이를 붙잡았는데, 이런 우리가 걱정됐는지 매대에 서계시던 분도 잡았어요?(아니, 찾았어요? 였을지도) 라고 물으시며 나를 따라오셨다. 어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동생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척이나 겁나고 두려웠는데 ㅠㅠ 이런 부분을 읽는건 역시 너무나 힘들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떨어져 있으면서 두려움을 느낄 아이 때문에,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겁먹고 당황하는 엄마 때문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당연히 그런면에서 가장 무서움을 안겨줬던 이 책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는 엄마를 잃은 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가 엄마를 잃은 과정이 소름끼치는데,
아이와 엄마가 함께 지하철을 탔다. 내려야할 역에서 엄마가 먼저 내렸고, 아이가 내리지 않았다는 걸 안 순간 지하철안을 들여다보았고, 내리지 못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지하철 문은 이미 닫혔고,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지하철은 떠나버린 거다.
아, 너무나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무서웠다. 힘들어서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자꾸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닫힌 지하철문 사이, 그 경계, 그 안과밖으로 서서 눈이 마주치는 엄마와 아이. 이게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 땅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미치게 무서웠다. 엉엉. 쓰다가 또 울고싶어 ㅠㅠ 이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 뭔가 이걸 잊게 해줄 알약 같은게 있으면 먹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ㅠㅠ
아무것도 갖지 않고,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편할지도 모르겠다. 갖는 순간, 사랑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라나기 시작하고, 그 지점이 바로 나에게 약점이 생기는 부분이니까. 그렇기에 '옆에 있는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저자의 말이 아주 강하게 후려쳤다. 내가 와인을 마시면서 읽었기 때문에 그 말이 더 감성적으로 들린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식구들을, 친구들을, 그간 나를 거쳐갔던 애인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중 어떤이들은 여전히 옆에 있기 때문에 고맙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자란 아니지 애인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가 하는거니, 있는 동안에만 감사하면 될 일이지만, 내 식구들과 친구들은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쭉,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옆에 있다는 사실에 가끔 감사하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와인 한 잔을 마셔서 가슴속이 뜨거워지며 취기가 돌 때, 마침 친구들이 채팅창으로 일상적인 대화들을 보내왔고, 나는 그들에게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진심이었다. 물론 우리의 육체는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놓여있었지만.
그나저나, 육아가 더 쉬워지는 방법은 없는걸까?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돕는 일이니 어려운 게 당연한걸까?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