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라는 걸 해봤다. 집에서 주는 용돈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했고, 모두가 아는 돈 말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돈을 갖고 싶었다. 내가 비밀리에 쓸 수 있는 돈. [벼룩시장]을 뒤져 고등학생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냈고, 그렇게 친구와 나와 당시엔 중학생이었던 내 여동생은 <*** 영어교실>을 찾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그 영어교실의 사무실에서 받은 전화번호 리스트에 전화를 걸면 되었다. 멘트도 다 알려줬다. "자녀 영어 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계세요?" 라는. 이렇게 자기네 영어교실을 홍보하고 끌어들이는 게 우리 알바들이 해야할 일이었고, 그렇게 하루에 두 시간씩 일을 했으며 당연히 시간당 돈을 받았다. 그러다가 한 명이라도 영어교실 선생님과 상담을 원하면, 거기에 따라 이만원이라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며칠 뒤에는 내 여동생이 하는 통화를 녹음해 자기들이 들어보기도 했다. 잘 하고 있는지. 이 일이 내게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뭔가 부조리하게 느껴졌는데 항의할 수 없었다. 더 당혹스러운 건 전화통화할 때 전화를 받은 상대가 하는 말이었다.

 

우리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이 말에 나는 아무런 답을 준비하지 못했고 노상 얼버무려야 했다. 그리고 알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친구와 여동생과 나는 얘기했다.

 

그러게, 이 많은 전화번호들을 어떻게 알았지?

 

일주일이나 일했을까. 사무실 에서 우리를 알바로 고용했던 여자어른은 우리를 불러서 모두들 그만두라고 말했다. 회원을 모집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일주일간의 노동으로 나는 54,000원을 받았고, 친구와 여동생은 34,000원을 받았다. 정확한 금액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2만원을 더 받았다. 한 명을 모집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 시급 1,600원 이었다. 그 때 나는 '최저임금'이란게 뭔지도 몰랐다. 그저 주는대로 받았다. 편의점 일이란 게 서서 스캔으로 바코드만 찍어대며 계산해주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가장 기초적이고 쉬운 일이라는 걸 일하면서 깨달았다. 각종 매대를 청소해야했고, 음료수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 음료수들을 채워넣어야 했으며, 쓰레기를 버려야했고, 가장 끔찍했던 건 라면 국물을 버리는 일이었다. 손님들이 사발면을 먹고 라면 찌꺼기와 국물을 버리는 통을 비우는 일. 정말 지독한 냄새를 풍겼고 할 때마다 기분이 더러웠다.

 

 

반말을 듣고도 울컥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건 길어봐야 2주 정도다. 다른 행동들도 시간이 지나면 반말만큼이나 불쾌하게 느껴진다. 종업원이 손을 내밀고 있는데도 돈을 카운터에 던지는 것.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카운터에 담배 포장지나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리고 가는 것. 계산 중에 생각이 바뀌었다며 그대로 나가버리는 것. 진열대에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고 내버려 두는 것 등등. (p.160)

 

 

이 책 [인간의 조건] 의 저자 '한승태'도 편의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리고 손님들이 반말 하는 것을 기분 나쁘다고 적어두었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게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분명 손을 내밀고 있는데도 돈을 카운터에 던진다는 거다. 카운터에 던진 꼬깃해진 지폐와 구르다 멈춘 동전들을 집어 들면서 정말 처참한 기분이 된다. 내가 이 돈을 주워 가면서 일을 해야하나. 한 시간에 천육백원 벌자고. 어른들은 수시로 반말을 해댔다.

 

 

"저기요, 그런데 왜 반말하시는 거예요?"

"뭐?"

"왜 반말하시냐고요."

"허, 웃기는 놈일세. 니가 나보다 어리니까 어른이 당연히 반말하는거지."

나는 계산을 기다리던 내 또래의 남자를 가리켰다.

"그래요? 그럼 저기 저 손님도 훨씬 어려 보이네요. 저 사람한테도 야, 라고 해보세요."

"뭐 임마? 야, 너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고 나는 손님이고 그게 같아? 야, 안 사! 안 산다고! 카드 긁지 말고 그냥 내놔!" (pp.174-175)

 

 

어린 점원에게는 반말을 해도 된다는 룰은 대체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생긴걸까. 물론 반말만이 가장 나쁜 경험은 아니다. 한 여자손님이 한 바구니 가득 물건을 담았다 꺼내놓으며 계산을 해달라고 했다. 내 옆의 여자 알바애가 하나씩 계산을 하려는데 그 여자손님은(물론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자기 팔로 그 물건을 죄다 내 계산대 쪽으로 쓸어왔다. 그러면서 말했다. "언니, 언니가 계산해줘. 난 저 언니 싫어." 라고. 그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당혹스러우면서도 네, 하고 계산을 해줬던 내 모습이 씁쓸하게 겹쳐진다. 다른 알바생은 손님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다. 더워서 에어컨 바람을 쐬러 들어왔는데, 그 직원이 에어컨을 껐기 때문에 괘씸해서라고 했다. 그 때 휴무였던 나는 전화를 통해 우는 그 직원의 말을 듣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물건을 집어던지는 건 일쑤고 성희롱 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내가 일하던 편의점 근처의 일식집에서 주차관리를 하던 아저씨는 올 때마다 내 가슴을 가지고 농담을 해댔는데, 한 번은 요구르트를 사고서는 빨대로 내 가슴을 찔러놓고는 웃었다(성추행의 경험은 물론 이것이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며 유일무이한 것도 아니다). 너무 당황해서 그 아저씨 앞에서는 아무말도 못하고 말았는데 그 아저씨가 돌아가자마자 나는 카운터 밑에 주저 앉아서 펑펑 울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대응했을지 모르겠는데, 스무살의 나는 그 아저씨가 오면 슬며시 사무실로 들어가 숨었다. 마주치지 않는게 최선인 것 같았다. 내가 편의점에 온 다른 손님이었다면 그 아저씨는 빨대로 내 가슴을 찌를 생각을 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다닌 첫 직장에 첫 출근을 하던 날. 엄마랑 시장에 있는 옷가게에 가서 정장을 한 벌 사 입었다. 그리고 출근했는데 내게 주어진 첫 일은 사무실의 모든 컴퓨터 모니터를 닦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컴퓨터 그리고 일하는 컴퓨터 모두를 돌아다니면서 닦았다. 들어보니 나보다 먼저 입사한 남자 직원은 수천장의 서류를 서서 복사했다고 했다. 그것도 한장씩. 야, 첫 일이란 건 이런거구나, 뭔가 드럽지만, 해야 할 일이었겠지. 그렇게 넘겼었다.

 

그리고 지금의 직장에 들어왔는데 몇 년전에 회사에서 내게 부서를 옮길것을 제안했다. 당시는 회사 형편이 안좋아서 임금이 삭감된 때였는데, 내가 그 부서에 가는 순간 삭감된 연봉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며 게다가 연봉을 인상까지 해주는 조건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연봉은 해마다 고작해야 4~5프로를 인상해주었는데, 그보다 더 높은 퍼센테이지의 인상률을 제안했고, 나는 '스카웃' 됐다는 생각에 으쓱했다. 나를 데려오고 싶어서 안달들을 하는군. 그러나 이 생각은 며칠 가지 못했다. 내가 받을(은) 연봉은 금액상으로는 결코 크지 않다. 내 또래의 직장인들을 놓고 봤을 때 오히려 낮은 편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다니는 직장내에서는 높은 연봉에 속한다. 내가 이렇게 돈을 더 주면서 데려올만큼 가치있는 일꾼일까. 만약 내가 이 정도의 돈을 더 주고 데려올만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면 어떡하지. 날 데려오는 걸 후회하는 건 아닐까 등등 머릿속에 생각들이 넘쳐났다. 하지 않아도 좋을 쓸데없는 걱정들로 하루하루를 긴장된 채 보냈고, 그러다가 혹여 작은 실수라도 하나 하게 되면 자책도 그만큼 커졌다. 이렇게 병신 같은 나에게 이정도의 연봉은 과분하다고 생각할거야, 라며. 지옥같았다. 순간순간들이.

 

 

 

 

"씨발, 이게 진짜 무슨 ‥‥‥. 여친이 가지 말라고 졸라 말렸었는데. 정말 어른들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 봐요."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p.431)

 

 

 

그러나 자책과 염려는 싹 사라졌다. 맡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매일매일 지쳐갔고 퇴근후에는 압박감이 사라져 한숨부터 나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이 고충을 토로하노라면 상대가 누구든 내게 말했다. 남의 돈 버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쉽지 않다고.

 

 

"이 병신아! 그게 왜 남의 돈이야? 그게 어떻게 남의 돈이냐고! 한 달 일해 겨우 100만원 버는데도 그게 남의 돈이란 말이야? 100만 원 가지고 부동산 투기라도 하냐? 펀드라도 굴리냐? 씨발, 방세 내고 밥 먹고 교통카드 충전하고 나면 다 떨어질 돈 100만 원, 그게 남의 돈이란 말이야? 사람답게 살 권리는 전부 타고나는 거야. 그러면 사람답게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도 타고 나야 맞는 거 아냐? 그런데도 내가 나의 돈을 번 거야? 그게 어떻게 남의 돈이란 말이야? 빌어먹을, 그건 내 꺼라고! 처음부터 그건 내 돈이었단 말이야! 난 여태껏 남의 돈 같은 거 벌어본 적 없어! 단 한번도 없다고!" (p.432)

 

 

나는 내가 받게된 연봉이 남의 돈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 강도는 어마어마했으니까. 물론 내 성격과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내가 맡은 일을 맡았다면 나만큼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바로 나였다. 나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며 지내고 있었다. 매일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시간까지 이 압박과 스트레스를 버텨가는 일, 내가 받는 돈은 이런 내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대한 대가였다. 나는 남의 돈을 등치며 뺏어먹는 게 아니라, 내 정신적 고통과 감정적 노동을 그에 합당하게 지불하고 있었다. 아니, 언젠가부터는 그것이 더 넘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도 나는 내 땀과 시간을 거기에 투자했고 손님들에게 모욕적인 감정을 느낄 정도의 수치심을 견뎌내야 했다. 한시간에 천육백원은(물론 점점 인상했지만, 그래봤자 몇 백원씩..) 그 모든것들에 대한 대가였다. 나는 사장 주머니를 턴 게 아니었다. 첫 직장에서는 신입사원으로서는 높은 인센티브를 받았지만, 그 역시 겨울내내 밤을 새며 발에 습진 생기도록 일한 내 노동의 대가였다. 나는 첫 직장에서도 역시 사장의 주머니를 그냥 턴 게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의 돈을 가져오는 게 아니다. 그에 걸맞는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 모든 노동과 대가의 교류 사이에 흡족할만한 인간적인 대우는 없었다. 나는 매번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항의하거나 요구해야 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었고, 상사들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받을 때도 있었다. 드러워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뱉고, 사직서를 써서 책상 고무판 밑에 끼워두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건, 같은 조직내에서의 혹은 조직과 연결된 망들 사이에서의 '다른 선한 인간들' 때문이다.

 

 

 

그때 내가 길 위에서 미치지 안은 비결이 있다면 그건 내게(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호의를 품은 사람들이 나를 도울 수 있게 내버려 뒀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작업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 역시 비슷한 이유 덕분이었다. 어디서나 나를 자신의 날개 아래 품고서 돌봐준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투덜대는 것 말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빌어먹을 자식이란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항상 내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도와줬다. (p.436)

 

 

 

내게도 그랬다. 나 역시도 버티게 해주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마음 맞는 동료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편의점에서 일할 당시에는 롯데칠성 아저씨, 롯데아이스크림 아저씨, 샌드위치 아저씨, 남양우유 아저씨 들이 내게 잘해주었고 가끔 음료수며 우유 아이스크림을 박스로 넣어주기도 했다. 실론티 한 박스를 냉장고에 채워주며, 락방씨 실론티 좋아하니까 이건 발주수량에 없는거니까 바코드 찍지 말고 원할때마다 꺼내먹으라고, 이건 락방씨꺼라고. 이들 중 몇몇 아저씨들과는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응?) 한 손님은 영화표를 내밀며 저녁을 먹자고도 했다. 식사약속은 거절하면서도 나는 그가 주는 영화표는 낼름낼름 챙겨 영화를 봤다. 한 일식집 매니저 언니는 나를 가게로 불러 우동을 공짜로 주며 편의점에서 얼마를 받든 무조건 더 줄테니 자신의 가게에서 일해달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 이렇게 지척에두고 그럴 수 있겠냐고 했고, 그 매니저 언니는 자신이 편의점 사장님에게 말해줄테니 와주기만 하라고 했다. 나는 끝내 거절했지만 그 매니저 언니는 그 후에도 가끔 편의점에 들러서 내게 우유며 과자등을 사주고 가기도 했다. 치과, 대사관, 항공사등 알지 못했던 곳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들른다며 단골이 되었을 때에는 뿌듯해지기도 했다. 물론, 왜 학교 자판기보다 식혜가 비싼거냐고 화를 내는 대학생에게는 나도 참지 못해 마주 화내며 그럼 학교 가서 사 먹으라고 한 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왔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도 그리고 지금의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도 도무지 인간 같다 여겨지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힘이 되어주려고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돈을 벌며 '버텨야' 한다는 것은 몹시 씁쓸한 일이다. 게다가 그 '버티게' 해주는 게 회사의 구조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옆자리 동료이며 혹은 다른 사람들 이라는 사실도 역시 씁쓸한 일이다. 왜냐하면 회사의 구조적인 시스템 역시 '사람' 이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에는 사고방식의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휴일에 대한 것도 근무시간에 대한 것도 복리에 대한 것도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있다. 도무지 이걸 어떻게 해야 극복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전에 친구네 회사에서 노조를 결성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회사에서는 '그 사람들 다 잘라버리고 새로 사람 뽑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그러니 사람을 자르고 다시 뽑는 게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 되는 것이 회사의 입장일 것이다. 역시 씁쓸한 일이다.

 

 

 

 

 

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p.438)

 

 

이 사회가 굴러갈 수 있는 이유가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때문이기도 하고, 옆 자리의 동료들 때문이기도 하다면, 거기에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절실하다. 기업의 구조적인 시스템. 복리후생이 대단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도리를 갖춰야 하는 그 정도. 물론 돈을 내고 물건(혹은 서비스)을 사는 사람의 마음가짐 역시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 나는 손님이고 너는 종업원이기 때문에 너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내 권리이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업은 '이나마 해주는 것을 다행으로 알라'며 막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회사의 우두머리로 앉아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고, 그 머나먼 길을 가난한 자들은 지독하게 고생하며 묵묵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인간의 조건' 이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지만,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퀴닝(체스의 '졸'이 진영의 끝에 도달하면 여왕으로 변하는 것)' 이란 제목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다. 그 편이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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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3-08-2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한숨나온다..

네꼬 2013-08-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 정말 좋아요. 눈물 나오려고 해요. 락방 씨.

감은빛 2013-08-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편의점 야간 알바를 잠시 했어요.
업체 직영이었는데, 정직원들이 점장과 부점장으로 파견을 오고,
나머지는 알바들로 채웠어요.
그런데 알바 일하는 시간들 사이에 각각 2시간을 비워둬요.
먼저 일한 사람이 한 시간 늦게 퇴근하고,
뒤에 일할 사람이 한 시간 먼저 출근하도록 규정해두고요.
그럼 알바들은 매일 2시간(출퇴근시 각 1시간씩)동안 무급으로 일하게 되죠.
게다가 거기서도 15분 먼저 오고, 15분 뒤에 가도록 강요했어요.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억울하더군요.
그래서 따졌는데 합리적인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답만 돌아왔어요.

게다가 야간 일이라서 정말 뭐같은 손님들이 많았어요!
이런 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오래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 텔레마케팅(전화 판매)일도 여러번 했어요.
저는 대부분 시간제가 아닌 실제로 판매하거나,
회원 등록을 해야 거기서 돈을 받는 방식이었어요.

학원이나 교재 업체에서는 돈을 주고 매년 그 지방의 모든 학교 졸업 앨범을 사서 모아요.
앨범 맨 뒤에 나온 졸업생 연락처를 복사해서 계속 전화를 돌리는 겁니다.
전 심지어 학원 강사 시절에도 근처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전화를 돌렸어요.
원장이 매일 5명에게 전화하고 그 상담내용을 제출하도록 강요했거든요.

이 글 읽으니 여러 기억들이 스물스물 떠오르네요.

자작나무 2013-08-2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한 공포심에 쫓겨 어렵사리 취직을 하고 아껴가며 찔끔찔끔 돈을 모으지요. 아마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물려받거나 주입되어진 혹은 체득한 것이 아닐까... 살다가 가끔씩 그 거대한 공포심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니 그건 실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기도 합니다....만 오늘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찌질한 하루를 보내고 있군요. 평생 동알 놓여나지 못할 것같은 예감도 듭니다.
하고 싶은 말은 락방 과장님은 잘 살고 있다는 거예요. 힘들지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뭐래건 돈멘션잇 유아소뷰리풀 유아마이헤로인 아이러브유랍니다.

Mephistopheles 2013-08-26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오너들의 머릿 속은 회사 직원들을 바라보며

"이 월급 도둑놈들아!!!"

라는 생각을 80%이상들은 가지고 있을 껍니다..ㅋㅋㅋ

BRINY 2013-08-2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점원들에게 반말해도 된다는 룰->같은 직장에서도 나이가 적은 걸 확인하면 바로 반말하면서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편의점의 어린 점원들에게는 오죽 하겠습니까.

심야책방 2013-08-27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랑 오늘, 팟캐스트 벙커1 특강에서 '강신주의 다상담 -소비'를 들었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글을 보니 또 많은 생각이 드네요.

yamoo 2013-08-27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많은 알바를 했어요. 종류로 30개가 넘습니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만은 하지 않았네요...다락방님의 편의점 알바기를 보니, 참으로 거시기 합니다. 근데, 거의 모든 알바들은 인간대접 못받는 거 같다는..

가연 2013-08-28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글입니다. 그렇죠, 나는 손님이니까.. 그리고 너는 종업원이니까... 라는 말은 일순간 잔인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