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대부분, 내가 있는 사무실에는 내가 가장 먼저 출근을 한다. 손가락을 대고 출근확인을 한 뒤 문이 열리면 불을 켜고 가방을 내 자리에 가져다 둔 뒤 사무실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연다. 요즘에는 날씨가 더워서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푹푹 찌는 열기가 느껴져 창문을 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어 더운 공기가 좀 빠지게 두는 것인데, 어제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랬다. 출근해서 불을 키고 가방을 책상에 가져다 둔 뒤 창문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제는, 날도 맑았는데, 내가 연 창문으로 모래가 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사락사락 들어와서 사무실과 책상에 조금씩 천천히 쌓여가고, 그래서 내가 걷거나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서걱서걱 모래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입 안 가득 모래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아 물을 마시고 싶어졌고, 당장 샤워기의 찬 물을 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하게 씻어내고 싶었다. 내 몸 구석구석, 주름 하나하나에 들어가있는 모래를 다 털어내어 버리고 싶었다. 청소기로 바닥을 죄다 밀어야만 모래가 다 쓸릴 것 같았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곤충 채집을 떠났다가 모래 웅덩이에 갇힌다. 그 웅덩이 안 쪽에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에서 민박을 하라며 마을 사람들이 새끼줄을 내려주었던 것. 하루라도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모래 더미에 깔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그 집에 혼자 사는 여자는 매일 모래를 퍼내고, 지붕의 모래도 털어주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는 우산을 들고 밥과 반찬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남자는 하룻밤을 그곳에서 자고 다음날 숙박비를 주고 갈 계획이었는데, 오전 열한시경 일어나 그가 바깥으로 나가보았을 때는 새끼줄은 보이질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웅덩이 속에 가두어두고 모래 파내는 노동을 시킨다. 한 사람의 일 손이라도 급한 상황. 그들은 그를 그가 살던 곳으로 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나마 그 곳에 여자가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모래를 퍼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전부인 상황에서 그는 탈출을 꿈꾸는데, 그가 자신의 입장을 하소연하고 또 악을 쓰고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하는 그 모든 순간순간에 여자가 없었다면,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가 혼자였다면, 그는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그가 탈출할 수 있을까, 숨막히는 긴장감으로 몰입해서 보다가, 그렇지만 책의 가장 처음에 그가 몇 년간 실종되었다고 나오니 뻔하잖아, 하면서도 다시 그가 탈출하기를 바라다가, 그렇다면 그에게 교태를 부리며 옆구리를 찌르고 미소를 지었던 여자는 그의 추억을 안고 계속 모래를 퍼내야하나, 했다가...그가 모래의 늪에 빠져 살려달라고 말을 할 때의 그 굴욕적인 순간을, 살려주기만 하면 뭐든 시키는대로 하겠다는 그 부르짖음을, 어휴, 나였어도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겠다고, 분한 마음 반, 안타까운 마음 반, 그 상황에서는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생을 선택하는 대신 일상과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게된다.
그가 곤충채집을 가기 위해 회사에 사흘간 휴가를 내고 집을 나섰을 때, 그의 가슴속엔 기대가 가득했다. 희귀종을 발견하면 학명에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하는. 그는 결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오랜 시간을 모래 웅덩이에 갇혀 매일매일 모래를 퍼내며 살게 될 것이라고는. 책을 세워 툭툭 털면 오래가 스르르륵, 차르르 소리를 내며 떨어질 것만 같다.
문 밖을 나서면 어떤 일이 생길지, 누구를 우연한 기회에 어떤식으로 만나 내게 어떤 해프닝이 생기게 될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일이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도 역시 알 수 없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채 다가오는 새로운 삶을 수긍하며 받아들이게 될까, 포기하며 받아들이게 될까, 희망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모래가 나오는 책을 읽으니 당연하게도 이 영화 『피닉스』생각이 난다. 비행기 한 대가 사막으로 추락한다. 당연히 비행기는 망가졌고 그들은 이제 사막에서 그들을 누군가 구해주기까지 견뎌내야한다. 어디를 봐도 모래만 가득한 곳에서 이들 중 한 명은 기다리느니 자신이 이 곳을 탈출하겠다며 길을 떠나겠다고 한다. 그 때 누군가 그를 말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 언덕은 바뀐다, 그러니 목적지를 정해두어도 방향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모래 언덕이 형태를 바꾸고 모래 바람이 불어대도 걷던 방향으로 쭉 걸으면 결국은 어딘가 나오지 않겠느냐, 고 하자 그는 말한다. 사람의 다리는 짝짝이라 한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고, 결국 이정표 없이 감에 의지해 한 쪽으로 걷는다면, 짝짝이 다리로 인해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게 된다고. 그 때 그 상황을 상상하다 굉장히 무서웠던 기억이 나면서, 모래의 여자와 이 영화가 겹쳤다.
도처에 무서운 것 투성이구나.
모래에 대한 무서움 때문일까. 오늘 출근길에는 뜬금없이 영화 『킬러 엘리트』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킬러를 그만두고 초원에 살기 위해 재이슨 스태덤이 자신이 살 집을 짓던 일, 그런 그에게 말을 타고 다가온 여자.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나도 말 타고 재이슨 스태덤에게 가고 싶다. 재이슨 스태덤이 나와 함께 살 집을 지금 만들고 있는 중이면 좋겠다. 서태지의 집은 330평이라든가, 난 그정도는 필요도 없다. 작고 소박하게 지어놓고 매일밤 포치로 나가 달과 별을 보며 같이 와인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느즈막히 일어나 낮에는 말을 타고 달렸으면 좋겠다. 재이슨 스태덤과 말이라니. 윽.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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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이곳은 내겐 낯설기만 해
혼자 남은 이 방엔 너의 흔적뿐인 걸
BABY YES, YOU ARE
너를 붙잡아야 했어 보내지 말아야 했어
네가 했던 말들은 이제는 아프기만 해
모든 순간에 남아 나를 울게 만들어
BABY YES, YOU ARE
너를 붙잡아야 했어 보내지 말아야 했어
그대가 떠난 뒤에야 자존심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았어
한번 더 내 이름 불러줄 순 없나요
YOU WERE MY SAVIOR
YOU WERE MY SAVIOR
네가 없는 이곳은 내게는 낯설기만 해
함께 걷던 그 길엔 너의 흔적뿐인 걸
BABY YES, YOU ARE
너를 붙잡아야 했어 보내지 말아야 했어
그대가 떠난 뒤에야 자존심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았어
한번 더 내게 돌아와 줄 순 없나요
YOU WERE MY SAVIOR
YOU WERE MY SAVIOR
언 내 맘을 녹이며
스스로 얼음처럼 견고하던
나를 녹이며
그대가 내게 왔었지
안아주고 달래주던
기다리고 날 믿어주던
그대였었잖아
이렇게 가지 마
그대의 사랑 앞에 내 투정들이
얼마나 철없는 것인지 알았어
한번 더 내 이름 불러줄 순 없나요
YOU WERE MY SAVIOR
YOU WERE MY SAVIOR
YOU WERE MY S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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