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든의 여동생은 쉽게 사랑에 빠진다. 오빠의 직장 상사와 술을 마시고 섹스를 했고 그녀는 그에게 매일 연락한다.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는 일이 없고, 그녀의 음성 메세지에 대답해준 적이 없다. 그녀에게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부남이고 아이들도 있다. 하룻밤을 그녀와 보내고 난 뒤에는 다시 자신의 직장과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오빠가 보기에 여동생은 한심하기만 하다. 자신을 원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매달려 징징대는 꼴이라니. 그러면서 여동생에게 정신차리고 살라고 말한다. 나는 집이 있고 직장이 있지만 네게는 뭐가 있냐고. 나는 내 앞가림 하며 살고 있지만 너는 대체 사는게 그게 뭐냐고.
안정적인 직장과 집을 가지고 있지만 브랜든은 섹스 중독이다. 회사의 노트북엔 포르노를 다운받아 놓았고 집에 돌아가면 화상채팅으로 섹스를 한다. 여자를 불러 돈을 주고 섹스를 하고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길에서도 섹스를 한다. 여자를 부르지 않을 때는 화장실에 가 자위행위를 하는데, 회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건 그만의 은밀한 중독, 누구도 알지 못하는 중독이다. 술집에서 여자들에게 지저분하게 접근하는 건 그가 아니라 그의 직장 상사다. 그는 외려 점잖다. 말도 별로 없고 간혹 살짝 미소 짓는게 전부.
그런 그가 평범한 데이트를 하고자 시도하지만 그 평범한 데이트에서 오는 성관계에서는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만다.
어떤 상처가 그들에게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여동생 말대로,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상처 받은 사람들이다. 그 상처를 극복해내기 보다는 여전히 그걸로 인해 앓고 있는 사람들. 여자는 쉽게 사랑에 빠짐으로써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고, 남자는 섹스중독으로 매일을 견뎌낸다. 남자가 여자 둘을 불러 그들과 한 공간에서 격렬하게 섹스를 할 때 그의 눈빛은 한없이 공허하다. 세상에 저 눈동자보다 더 공허한 것이 있을까, 뚫어져라 정면을 바라보는, 관객인 나와 눈을 마주치는 그의 공허한 눈동자는 어쩐지 울고 싶게 만든다. 그 눈빛이 내내 기억나고 그래서 이 영화가 내내 기억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앞으로는.
영화속에서 그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한 밤에 조깅을 하는 장면이 있다. 아, 그 장면이 완전 멋있어서 반해버렸다. 멋진 남자는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멋지고 뛰는 모습도 근사하구나. 아니, 뛰어서 더 근사한지도. 사실은 19금스러운 얘기를 하나 덧붙이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영화속에서 그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캐리 멀리건의 헤어스타일이 너무 예뻐서 아, 나도 당장 미용실가서 저렇게 잘라달라고 할까, 라고 이백번은 넘게 생각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이효리처럼 앞머리 잘라달라고 했다가 절망한 기억이 떠올라, 이 역시 참기로 한다.



영화속에서 존 트라볼타는 전(前)영문과 교수 '바비'로 나온다. 그의 방엔 책이 가득하고, 그의 조교였다가 지금은 그와 함께 살며 그와 함께 알콜중독인 '로슨'은 그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바비가 대화도중 툭, 하나의 문장을 던지면 로슨은 그게 누구의 말인지 알아맞힌다. 이 영화속에는 그가 영문과 교수였던 만큼 대문호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헤밍웨이와 프로스트..밖에 지금 내가 기억을 못하겠는데;; 여튼 그렇다.
남자친구와 함께 살던 십대소녀인 퍼시(스칼렛 요한슨)는, 엄마가 돌아가셨단 말에 엄마의 집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엄마의 유언에 따라 바비, 로슨과 함께 살아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그녀가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바비와 로슨은 돕는다. 퍼시는 엄마가 늘 가지고 다녔다는 책을 읽는다. 빵을 먹으며 또 샌드위치를 먹으며 앉은 자리에서 그 책 한 권을 다 읽어낸다. 그 책은 바비가 엄마에게 준 책인데, 다 읽고 그에게 왜 우리 엄마에게 이 책을 준 거냐고 묻는다. 그 책은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이었다.
그는 이 책속에는 패배자들이 많이 나와서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 뿐만은 아니라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게 있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메세지를 적은 책을 선물했을 때, 그 책 속에는 선물한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이 들어있었을 테니, 나는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속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엄청 먹어댄다. 내가 기겁한 장면은 그녀가 티븨를 보면서 간식을 먹는 장면이었는데, 맙소사, 피넛버터의 뚜껑을 열고 거기에 숟가락을 푹 담궈 잔뜩 묻힌 뒤에 그 숟가락을 그대로 알초콜렛(아마도 엠엔엠즈 같은)봉지 속에 또 푹 담그는 거다. 그러면 그 숟가락에 초콜렛이 잔뜩 묻혀 나온다. 스칼렛 요한슨은 티븨를 보며 그 숟가락을 빨아 먹는거다. 와- 대단하다. 팝콘도 샌드위치도 빵도 엄청 먹어대는데, 그녀가 먹는 건 거의 나랑 맞짱 뜨는데, 그녀는 왜 스칼렛 요한슨이고 나는 왜 다락방인가...................................
그녀가 빵을 먹으며 책을 읽는 장면에서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빵을 사오고 싶어졌다. 그러나 시간은 새벽 한시반이었고, 하아- 나는 참으며 괴로워했다. 흑흑.
토요일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전날 포장해갔던 치킨을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사 둔 와인도 있으니 맥주만 조금 더 사가서 치킨을 따뜻하게 데워서는 와인과 함께 먹자, 고 생각했던 거다.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지하철안에서 남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동생은 토요일이면 거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가니 오늘도 아마 나갔겠지, 싶어 어디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집이란다. 오, 아직 안나갔네, 했더니 이따 밤에 약속이 있단다. 그렇구나 나는 한 시간 후 집에 도착할 예정이다, 라고 했는데 남동생으로부터 이런 문자가 날아들었다.
내가치킨먹어치웠다
상할까봐 ㅋ
하아- 이게 뭐야. 아 너무 허무해. 나는 답장을 보냈다.
그거 와인하고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놈의 돼지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후에 덧붙였다.
치킨 생각하며 지하철 탔는데
돼지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무 허무했다, 너무. 완전 허무해. 그 때의 내 눈빛을 누가 봤다면, 영화 [셰임]의 브랜든 눈빛보다 더 공허하다고 말했을거다.
결국 오리고기와 스파게티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셨다. 맥주 까지 마시고 기절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