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하트'의 작품은 『라스트 차일드』도 그랬지만, 대중적인 소재를 우아하게 다루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문학적'이라 표현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만으로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제대로 설명이 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이번 책 『아이언 하우스』에서도 '킬러'와 '살인' 그리고 '아동학대'를 얘기하는데 작품이 자극적으로만 흐르질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문장의 힘이 아닐까 한다. 소설을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며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 소설을 '더 아름답고 완벽하고 우아하게' 다듬어 주는 건 역시 '문장'이다. 아, 너무 거창하게 말했는데, 여튼 그러니까 결론은 이 소설은 좋다는거다. 거대 폭력단 소속 킬러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여자와 보통의 가족을 만들기 위해 폭력단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한다. 그러나 폭력단의 다른 조직원들은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이런 과정에서 살인과 납치가 일어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실 국내 소설중에 그 뭐지, 조직폭력배 나오는, 남자...뭐더라, 남자의 향기? 뭐 여튼 그게 생각나면서 흐음, 그냥 킬러 얘긴가, 하게 되는데, 그 뒤에 아주 끔찍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게 나중에 드러난다. 읽기 힘들만큼의 이야기. 중간 과정에서 눈물이 핑- 고이기도 하고. 뒤로 갈수록 오타가 무지하게 나와서 좀 짜증나는데, 그걸 제외하면 이 소설은 좋았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이 완전히 마음에 들어서. 이 냉혹하고 차분한 킬러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이 사랑하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던지는데, 아, 나는 원래 강한 남자를 좋아하고 그 강한 남자가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완전 쑝가서 이 남자가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자꾸 거슬리는 표현이 있다.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부르는 호칭. 원서에서 그 단어가 어떻게 표현될까 생각해봤다. honey, baby, darling 뭐 이것들 밖에 생각안나긴 하지만, 어쨌든 이 강하고 침착한 킬러가 자꾸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자기야' 라고 하는거다. 아놔...
그 표현이 나올때마다 나는 자꾸 멘붕에...
"물론이지, 자기야." (p.461)
"나잖아, 자기야."(p.460)
"악몽을 꿨어, 자기."(p.11)
아놔 .. 진짜 적응이 안 돼서리... 그러니까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완벽히 알 수는 없다. 근육이 우락부락하고 터프해 보인다고 해도, 그 사람이 실제 자신의 여자에게 어떤 연인일지는 내가 그 사람의 연인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거다. 냉혹한 킬러라고 해도 자신의 여자에게 살갑게 자기야~ 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게 머릿속에서 매치가 되질 않는거다. 그래, 나는 그를 잘 몰라, 그가 그의 여자에게 어떻게 대하는 지 내가 알 수가 없지, 그리고 터프한 남자라고 자기야, 라는 호칭을 쓰지 말란 법은 없잖아, 라고 아무리 스스로 달래보아도 자기, 가 튀어나올 때마다 아니, 근데 이노믄 시키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달링이나 허니로 바꿔봤다. 베이비로도 바꿔봤다. 그랬더니 나름 괜찮은거다. 물론이지, 달링. 이건 좀 괜찮은거다. 나는 번역을 모르지만 만약 허니나 베이비 달링이라고 써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번역 했을까? 흐음, 역시 '자기' 밖에 없나. 여튼 이건 순수하게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자기'는 내가 감당하기엔 좀 어려운 단어다. 물론 가장 감당하기 힘든 연인의 호칭은 '애기' 지만. 이건 진짜 최악이야.
이 호칭에 대한 문제를 빼면 이 책속의 남자 주인공인 마이클은 진짜 최고다. 내가 해줄게, 내가 있잖아, 나랑 있으면 안전해, 내가 당신을 지켜줄거야, 라는 말들은 사실 나는 '사랑해'라는 말보다 듣기가 좋다. 흐음. 나는 무슨 트라우마 있나? 여튼. 이 남자는 끝까지 매력있다. 그녀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 묵묵한 성정이, 진짜 완전 딱 어휴...
주말엔 매력적인 남자들로 가득찼으니, 마이클 말고도 나는 개츠비, 사실은 디카프리오를 만났다.
처음엔 영화 음악도 낯설고 뭐랄까, 여튼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은 마음에 좀 뾰로퉁했는데, 중간부터 달라졌다. 디카프리오가 과거에 장교로서 데이지를 만나 사랑하던 장면, 차 안에서 데이지를 쳐다보며 웃던 장면, 그 장면이 확- 내 마음속에 스민 탓이다. 아, 정말 근사했다. 그 표정과 눈빛이 정말 끝내줘서, 아, 나도 저 남자랑 사귀고 싶다, 하는 마음이 절로 든거다. 저렇게 나를 봐주는 남자랑, 저렇게 나를 보고 웃는 남자랑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든거다. 여자로 태어나서 한 번쯤은 저런 남자랑 사귀어봐야 되는거 아닌가, 비록 짧게 사귀다 헤어진다한들 평생 내가 추억해야 할 남자가 저런 남자라면, 오 그 인생은 멋진 인생이 아닌가 싶어진거다. '피츠제럴드의 개츠비'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개츠비'로 본다면 이 영화는 괜찮다.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일단, 디카프리오가 엄청 괜찮다. 세상에 디카프리오같은 남자가 존재하다니, 뭔가 엄청 다행스럽다. 스크린으로만 보지만, 그렇게라도 이런 남자가 존재함을 알게 되다니,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같이 숨쉬고 있어....
영화를 다 보고 친구랑 나오는데 친구가 디카프리오는 모델들만 사귄다고 했다.
그건 동양의 검은머리 노처녀를 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이젠 동양의 나이많은 여자를 한 번쯤 사귈때도 되지 않았나?
이런 시덥잖은 대화를 해가면서 극장을 나섰다.
어제는 남동생과 뒷동산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케이블에서는 오, 내가 사랑하는 남자 '재이슨 스태덤' 주연의 영화 『익스펜더블 2』가 나오고 있었다. 마침 아빠가 보고 계셨던 터라, 오, 저게 개봉한지도 몰랐는데 벌써 케이블에서 하네? 하고 주저앉아서 봤다.
참..영화가...진짜...욕나온다. 부끄러울 지경. 이들에게는 영웅이 되는게 지상최대의 목표이고 목적인가, 여튼 그 목적을 충실히 받을어 이 몇 명 안되는 올드한 남자들이 한 마을을 적의 손아귀로부터 구하고, 에헤라, 그 과정에서 다 죽여버린다. 아니, 적들이라도 그렇지 그렇게 무자비한 총질이라니..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이슨 스태덤의 맨 손 액션은 세계최강, 짱멋있어, 나를 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막 흥분해서 보고 있다가 재이슨 스태덤이 신부(priest)로 분해 액션을 할 때, 아, 나는 저 남자가 너무 좋아, 완전 멋져, 하니까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저 빡빡이?"
나는 응, 저 빡빡이, 라고 했다. 나는 저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라고. 그러자 엄마가 또 물었다.
"엄마보다 더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거침없이 응! 이라고 대답했다. 옆에서 아빠가 듣고 계시다가 참, 물어보는 엄마나 그렇다고 대답하는 딸년이나....라고 혀를 차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토요일 원래 계획은 이랬다.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저녁을 먹고 『앤젤스 셰어』를 보고 집으로 귀가. 원래는 영화를 보고 마지막에 저녁과 술을 함께 하는 편인데, 토요일에는 이래저래 시간이 안맞아서 어쩔 수 없이 저런 계획으로 예매를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친구랑 배고프다고 서로 찡얼대다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저녁 여섯시부터는 생맥주 한 잔을 시키면 한 잔을 더 준다는 게 아닌가. 얼씨구나, 더워 미치겠는데 일단 생맥주 한 잔씩 하자, 하고 우리 배고프니까 많이 먹자, 하고서는 수제버거와 스파게티와 케이준치킬샐러드를 시켰다. 허겁지겁 나온 음식들을 차례대로 먹다가 스파게티를 한 입 먹고서는 이건 와인하고 먹어야 한다며, 맥주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또 와인을 한 잔씩 시켰다. 결국 마치 설거지한듯 모든 접시들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와인잔과 맥주잔도 텅 비었을 때는, 우리가 레스토랑을 들어간 지 막 한 시간쯤 됐을 때였다. 우린 나른해졌다. 졸렸다. 이대로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취소하고, 결국 앤젤스 셰어를 다음에 보기로 미루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이 길 걸으면 헤어진다는데, 하고 친구가 말하고 나는 깔깔깔 웃고, 여기 걷는거 엄청 좋다고 막 이러다가 서소문청사인가, 거기 마당에 들어가서 잠깐 앉아 친구가 내려서 텀블러에 포장해 온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이 모든 순간들이 행복했다. 영화를 보고 걷고 커피를 마시고 배터지게 밥을 먹는 순간 순간들이.
아, 그러고보니, 『아이언 하우스』에서 마이클이 사랑하는 여자 '엘레나'는 나를 닮았다.(읭?)
엘레나는 흠 잡을 곳이 없는 미인이었지만 마이클이 그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엘레나는 작은 것들, 뽀송뽀송하고 서늘한 시트 사이로 들어가 눕거나, 새로운 음식을 맛보거나, 매번 기대에 찬 마음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 같은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으며, 그래서 색깔을 잃어버린 우중충한 무색의 세상에서 화려한 색깔로 빛나는 사람이었다.(p.17)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뭔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자신들 눈 앞에 가장 가까이 보이는 사물을 들고 나에게 던질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엘레나의 저런 면은 나같잖아? 움화화화화화화핫. 그렇지만 마이클이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가 정말 저래서일까? 그렇다면 왜 내가 아니라 엘레나지? 나도 저런 성격인데? 그건 그녀가 '흠 잡을 곳 없는 미인'이어서 그런거 아니야? 하여간..구라쟁이들.........
세상에 멋진 남자들이 많아서 신난다. 나는 멋진 남자가 등장할 때마다, 멋진 남자를 발견할 때마다 다 좋아할 수 있다. 이건 더 신나는 일이다. 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