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를 하면서 틀어둔 라디오에서는 April come she will 이 나왔다. 4월이다. 우연일까. 어제 자정을 넘겨 4월이 막 시작되는 그 때, 나는 이 책 속에서 4월을 만났다.


















황홀감뿐만 아니라 욕정도 느끼게 해주는 여인으로서의 데아, 베개 위에 머리를 얹어 놓고 있는 데아 등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공상적 유린 행위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것이 모독적 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강박 증세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것에서 발길을 돌리다가는 다시 돌아왔다. 순결에 대해 저지르는 위해(危害)행위 같앗다. 데아가 그에게는 구름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슈미즈 자락을 쳐들듯, 전율하면서 그 구름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었다. 때는 4월이었다. (p.544)



마지막의 '때는 4월이었다' 부분에 각주가 붙었다. 보통 주석을 넘겨버리는 나이지만, 왜 '때는 4월'에 붙어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거기엔 이런 설명이 있었다.


프랑스 문학에서 4월이 흔쾌한 사랑과 번식의 계절로 묘사된 것은 가장 유구한 전통이다. (p.544 각주)



오. 사랑과 번식의 계절, 4월이라니. 근사하다. 데아의 영혼을 사랑하던 그윈플레인이 이제 데아의 살을 사랑하게 되고 욕정을 품게된다. 거기엔 4월이란 변명의 여지가 존재한다. 그는 사랑의 포로가 됐다. 아니, 그는 데아를 알고부터 사랑에서 빠져나온 적이 없긴 했지만.



사람들은 왜 연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사로잡힌 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지만, 여인에게 사로잡히는 것은 거의 규칙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남자이건 그러한 정신 착란을 겪는다. 아름다운 여인, 그 얼마나 강력한 마녀인가! 사랑의 진정한 이름은 노예 상태이다.

남자는 한 여인의 영혼을 통해 포로가 된다. 그녀의 살을 통해서도 포로가 된다. 때로는 영혼보다 살을 통해 더욱 꼼짝 못하는 포로가 된다. 영혼이 정인이라면, 살은 안주인이다.  (pp.544-545)



이미 사랑의 포로가 된 그윈플레인에게 4월은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그를 사랑에 더 옭아맨다.



그윈플레인에게는 데아 이외의 다른 여인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유일한 여인이었다. 그를 원할 수 있는 유일한 여인이었다.

그윈플레인은 정체 모를 막연한 전율을 느꼈다. 무한에서 오는 생명의 항의였다.

거기에 무르익는 봄이 겹쳤다. 그는 까마득한 별들로부터 오는 이름 모를 영기(靈氣)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는 달콤한 불안에 감싸인 채 발길을 옮겼다. 한창 일에 열중하고 있는 수액의 떠도는 향기,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니는 매혹적인 발산체들, 멀리서 피어나고 있는 야간의 꽃들, 숨겨져 있는 작은 새둥지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모, 물과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뭇 사물이 뱉어 내는 한숨 소리, 시원함, 미지근함, 4월과 5월의 신비스러운 깨어남 등 그 모든 것은 광막하게 산재해 있는 성적 충동이며, 그것이 속삭이듯 관능적 쾌락을 살며시 제안한다.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더듬게 만드는 현기증 나는 도발이다. (pp.546-547)


하아. 나는 이게 이런 소설인 줄 몰랐어. 이렇게 사랑과 욕망에 대해 리얼하고 판타스틱하게 표현해내는 소설일 줄을 몰랐어. 위고님께 그만두시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사랑과 봄에 대해서, 그것이 불러오는 욕정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만두세요, 이제 그만하세요. 4월의 밤에 읽는 저같은 여자더러 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자, 그리고 4월은 다시 한 번 출현해 쐐기를 박는다.



우연의 간계가 그보다 더 완벽한 조치를 취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며, 유혹이 그토록 무르익도록 한 적도 없을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과, 한창 오르고 있던 만물의 수액(樹液)으로 인해 어수선해진 그윈플레인은, 마침 살에 대한 몽상에 잠겨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능히 제압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유구한 본질이, 지각생 장정, 나이 스물다섯이 되도록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그 장정 속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가장 혼란스러운 위기의 순간에 그에게 제안이 들어왔으며, 그의 앞에 문득, 스핑크스의 벗은 젖가슴이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젊음이란 하나의 경사면이다. 그윈플레인이 기울어 있는데, 그를 민 것이다. 누가? 계절이. 누가? 밤이. 누가? 그 여인이. 4월이 없다면 사람들은 훨씬 더 정숙할 것이다. 꽃 만발한 잡목 숲은 모두 공모자이다! 사랑은 절도범이고, 봄이라는 계절은 은닉자이다. (p.557)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아침에 출근하면서, 혹시 내가 자는 사이에 이 거리의 모든 꽃들이 앞다투어 피지는 않았을까 걱정됐다. 나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질 않았는데. 따뜻한 곳에 사는 친구들이 한 명씩 저마다 꽃이 피었다며 사진을 보내주는데, 그걸 볼 때마다 초조했다. 어쩌지, 이제 곧 여기도 필텐데 어쩌지. 나는 아직 지금 겨울인데. 하아- 그나저나 봄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겠지. 그래, 어디 한 번 맞아보자. 이번해에도 미쳐보자. 


게다가 이 책, 『웃는 남자』의 하권을 절반쯤 읽은 현재, 이야기가 완전히 색다르게 진행된다. 이런걸 반전이라 봐도 좋지 않을까, 하다가 그러나 이럴거라고 이미 상권에서 복선을 깔지 않았던가 했다. 아, 그러나 푹 빠져들어서 이런 이야기가 진행될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 진짜 대단한 책이다. 어서 빨리 뒤 이야기들을 읽고 싶다. 그윈플레인에게 다가온 새로운 유혹으로부터 그윈플레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리고 데아와 우르수스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아,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그저 이야기꾼이라면 나는 그저 심드렁했을텐데, 주인공의 입을 빌어낸 대사들로 충분히 그들의 심리가 짐작된다. 아, 진짜 대단한 소설이다.




아, 그나저나 4월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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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rather dance with you than talk with you
So why don't we just move into the other room
There's space for us to shake, and hey, I like this tune

Even if I could hear what you said
I doubt my reply would be interesting for you to hear
Because I haven't read a single book all year
And the only film I saw, I didn't like it at all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The music's too loud and the noise from the crowd
Increases the chance of misinterpretation
So let your hips do the talking
I'll make you laugh by acting like the guy who sings
And you'll make me smile by really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Getting into the swing...)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I'd rather dance than talk with you
I'd rather dance with you
I'd rather danc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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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3-04-0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하~~~ 나두 읽고 싶포라~~

어제밤에 다락방님의 밑에 페이퍼 '웃는 남자(상)'을 읽고, 오늘 아침에 '웃는 남자(하)' 페이퍼를 읽으니, 아,,, 나도 읽고 싶다.

남자는 한 여인의 영혼을 통해 포로가 된다. 그녀의 살을 통해서도 포로가 된다. 때로는 영혼보다 살을 통해 더욱 꼼짝 못하는 포로가 된다. 영혼이 정인이라면, 살은 안주인이다. (pp.544-545)

이 구절 너무 감각적인데요. 진짜 밤에 잠 안 오는 구절 맞아요. ㅋㅎㅎㅎㅎㅎ

어제밤에는 간만에 먼 데서(아프리카, 수원, 잠실)에서 놀러오신 손님들이 가시고 정리를 마친 뒤, '레 미제라블 2'권을 읽다가 고개를 떨구고 꿈나라에 다녀왔더니, 목이 너무 아파요.
근데, 아.... 웃는 남자라... 너무 재미있을거 같아요.

그나저나, 나 일빠~~ 이야호 만세!

다락방 2013-04-04 11:14   좋아요 0 | URL
오오, 단발머리님! 아프리카에서 오시는 손님도 있어요? 꺅 >.<
저는 아프리카에 친구도 없는데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오시는 손님도 있답니까? ㅎㅎㅎㅎ

웃는 남자 되게 재미있어요, 단발머리님. 아직도 어린아이같은 감성을 가지신 단발머리님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보실거에요. 위고가 대단하기도 하고 말이죠. 단발머리님은 웃는 남자 읽으시면서 정말 몇 번이고 감탄하실듯요!!

단발머리님이 일빠인게 저한테도 만세!! 입니다. 기뻐요, 무척. 히힛

2013-04-01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4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레사 2013-04-0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참다 못해 뒤를 미리 읽어보았어요. 다 읽고 나면, 아하 이 책 이런 것이었구나..사랑이야기인줄 알았다가, , 또 왕권과 신권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다가...다시 인간의 추함과 성서로움에 대한 이야기라는...그런 생각들이 연이어 달겨들더라고요..

다락방 2013-04-04 11:11   좋아요 0 | URL
오오 테레사님은 벌써 읽으신겁니까? 저는 아직 뒷부분 남아있어요. 요즘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할 게 많고 바빠서 정말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네요. 지하철에서도 딴짓하기에 바쁘고. 흐음. 저도 어서 빨리 다 읽고 싶어요!! 뒷부분 조금 남았어요.

라로 2013-04-0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봤어요~~~.ㅎㅎㅎㅎ 책을 읽고 싶었지만 주문하기엔 넘 늦었고,,,,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책이 읽어싶어지더군요,,그런데 책 읽을 시간은 없고,,일단 다락방님의 페이퍼로 요기를,, 다락방님~~~4월이에요!!!! 사랑과 번식의 계절~~~~많이 사랑하시는 4월 되시길!!^^

다락방 2013-04-04 11:11   좋아요 0 | URL
사랑과 번식의 계절 이라는 문구가 특히 확- 들어오네요. ㅋㅋㅋㅋㅋ 저도 사랑을 흠뻑 즐기는 4월을 보내야겠어요. 번식............은 빼고요. 하하하하핫.

나비님은 이 영화 어떠셨어요? 전 어쩐지 보기 싫어지고 있어요;;

비연 2013-04-0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둔 게 한참 전인데 아직 못 읽고 있는.. 근데 영화부터 개봉..ㅜ

다락방 2013-04-04 11:09   좋아요 0 | URL
비연님, 이 영화만큼은 특히나 더 책을 먼저 읽으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영화가 90분 밖에 안되더라고요...-_-

Kir 2013-04-0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는 남자>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그래서 러닝타임이 너무 짧은 게 불안했지만 영화를 봤는데...ㅜㅠ
영화는 어지간해서는 보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저랑 동행한 지인은 모두 이 영화를 본다면 지하에서 위고가 분노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테레사 2013-04-01 11:45   좋아요 0 | URL
흠...남자 주인공은 멋져 보이던데....그렇군요..전 안볼랍니다...

다락방 2013-04-04 11:07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 보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한건데요, 러닝타임이 90분인거 보고 이잉?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그래서 보기가 망설여져요. 대체 90분으로 뭘..했을까요? 점점 보기싫어지네요... 하아.

2013-04-01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4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3-04-0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pril come she will를 출근길 차 안에서 들었습니다. 만우절인데도 애들이 월요병에 지쳐서 그냥그냥 지나갔네요.

다락방 2013-04-04 11:07   좋아요 0 | URL
이 노래가 라임이 대단한 노래라는 거 아셨어요? 이근철이 얘기해주기 전까지 전 몰랐어요.

April come she will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May, she will stay,
Resting in my arms again

June, she´ll change her tune,
In restless walks she´ll prowl the night;
July, she will fly
And give no warning to her flight.

August, die she must,
The autumn winds blow chilly and cold;
September I´ll remember.
A love once new has now grown old.


각 월마다 라임이 살아있어요!! >.<

프레이야 2013-04-0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월이 없다면 사람들이 훨씬 더 정숙할 것이다...
프랑스문학에서 사월은 사랑의 계절로 더 의미를 두는군요. 웃는남자, 냉큼질러야겠어요. 땡스투유^^
빛나는 사월 보내세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3-04-04 11:05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정숙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4월이 있다는 게 너무나 근사하지 않아요, 프레이야님? 헤헷

프레이야님도 바람나는 4월 보내세요(응?)! 4월엔 바람 나는게 당연하다잖아요!! 히죽히죽 ^_____^

달사르 2013-04-0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4월에 바람이 나는 건 지극히 정상인 거네요? ㅎㅎㅎㅎ

세번째 단락..'살은 안주인이다' 부분까지 읽고 나니 외로운 처녀는 이 밤에 더 못 읽겠소! ㅎ

위고 소설. 멋지군요. 다락방님 다 읽으시는 거 보고 저도 따라..?

다락방 2013-04-04 11:04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봄에 미치는것이 당연하듯 4월에 바람 나는것도 당연한겁니다. 달사르님, 우리 봄이고 4월이니 바람납시다! ㅎㅎ

저도 야밤에 살은 안주인이다 읽고 제 살들을 한 번씩 쓰다음어 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로운 처녀에겐 확실히 가혹한 부분인듯요. ㅋㅋㅋ

관찰자 2013-04-0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은 <웃는 남자>에서 4월을 찾으셨구나.
저는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에서 4월을 찾았어요.

아무려나,
봄은 봄이네요^^

다락방 2013-04-04 11:03   좋아요 0 | URL
오, [댄스 댄스 댄스]의 어느 부분에서 4월을 찾으셨어요, 관찰자님?

날씨도 좋은데 저는 마치 겨울인듯 옷을 입어서 기분이 구려졌어요. 이제 봄처럼 입고 다녀야지.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