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어제 결국 새벽 세시가 넘도록 잠을 못이루고 있다가 알람이 울려서 아, 잠들었고 깼구나 싶었다. 눈이 잘 떠지지 않았고 충혈됐다. 하아. 집에 가고 싶어라. ㅠㅠ
(웬디님 댓글읽고 추가: 영화에 대한 어느정도의 스포일러를 생각없이 썼었다가 빼버림.)
어제는 개봉을 기다리던 영화,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봤다. 끝까지 재미있게 보다가 어, 이게 뭐지, 싶어졌다. 결국 내용이 불분명해진거다. 어누 부분에 대해서는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원이 도서관에서 과친구인 유람을 만나 '아무에게도 말하지마, 너만 알아야돼.' 라고 속삭이면서 교수와의 불륜을 고백하는 장면 같은거. 그 장면이 나는 제일 안타까웠거든. 세상에 비밀이란 없으니까. 둘만 아는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 비밀을 비밀로 유지하고 싶다면 나 혼자만 알아야 한다, 나 혼자만. 일단 누구에게든 입밖에 내는 순간 그 비밀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게다가 교수와의 불륜은 앞으로 그 학교를 다니며 공부해야할 해원에게, 그 학교에서 가르치며 돈을 벌어야 할 교수에게 엄청난 족쇄가 될테니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건드리는 데에 있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니까. 소문은 사람들 벼랑끝으로 몰고 가기도 하니까. 병신, 바보같이, 저걸 왜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는거야.
사람들은 누군가의 비밀을 아는것에 대해서 본인이 특별해졌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그사람의 비밀을 알지' 라고 곧잘 으스대며 말하기도 한다. 너는 그 비밀을 모르지? 나는 알아. 그리고는 곧 상대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나의 몫이라고 믿게 된다. 이런 내가 너에게만 알려줄게, 라며. 멍청한 일이다. 비밀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다. 입 밖에 내는 순간 끝장.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어쩌다보니 좀 좋아하게 됐는데(구스 반 산트 만큼은 아니다), 그가 그려내는 찌질한 인간들이 좋다. 그 찌질함이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좋다. 그래서 오글거리고 미쳐버릴것 같은 기분이 된다. 아, 저렇게 찌질하다니, 하지만 그렇게 오글거리는 건 내 자신안에 그런 찌질함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상수가 그려내는 키스는 에로틱하다기 보다 질펀하다. 충동적이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도 충동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홍상수가 간혹 영화에서 뜨악할만큼 감성적인 대사를 내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도 그랬다. 해원은 한 중고 책방에서 책을 둘러본다. 책방 주인은 나와서는
'주고 싶은 만큼만(지불하고 싶은 만큼만) 주고 (책을)가져가요' 라고 말한다. 이에 해원의 엄마인 김자옥은 '어머 정말요?' 라고 말하지만 해원은 이렇게 대응한다.
'그러면 내가 너무 드러나잖아요.'
아, 이 대사가 너무 좋았다. 그래, 내가 갖고 싶은 책을 가져가기 위해서 내가 알아서 돈을 내놓는건 나를 드러나게 하는 일이다. 내가 왜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야 하는가. 해원이 좋아진 순간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책방앞에서 책을 훑어보고 있는데, 그 책방에 손님으로 왔던 이혼남교수가 책방 주인과 똑같은 말을 한다. 주고 싶은 만큼만 주고 가져갈 수 있대요, 라고. 해원은 역시 똑같이 응수한다. 그러면 내가 너무 드러나잖아요, 라고. 그러자 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드러나지 않을 만큼만 주면 되잖아요.'
아...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이렇게 좋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전(前)영화를 봤던 사람이라면 웃으면서 등장을 반겼을 예진원과 유준상 커플의 대화도 그렇다. 유준상이 깃발에 대해 단순하지만 멋지다고 얘기하자 예지원은 이렇게 말한다.
'깃발 때문에 바람을 볼 수 있잖아' 라고.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홍상수 감독님, 그 섬세함에 놀랍니다.
영화를 다 보고 친구와 식사를 하고 알라딘중고샵엘 갔다. 오, 내가 그동안 주말에 갈 때마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어제는 많지 않았다. 연휴라 다들 놀러갔다와서 쉬는걸까. 나와 친구는 신나게 책을 골랐다. 게다가 중고샵에 가자마자 내가 사고 싶었던 책들이 팍팍팍 눈에 들어오는거다. 오, 나이쓰!
브론테님, 저 『보이지 않는 다리』 샀습니다. dreamout 님, 『목수의 연필』 샀습니다. 아른님, 저 중고샵에서 이만큼 건졌어요, 아른님도 엊그제 몇 권 가져오셨습니까? 하하하.
중고샵을 둘러보며 이렇게 여섯권의 책을 바구니에 넣고 돌아다니다가 김혜리의 『진심의 탐닉』이 보여 꺼내들었다. 일전에 얼음장수님께서 그 책에 신형철의 인터뷰가 실렸다고 댓글 달아주셨던게 생각났다. 아, 사야겠다. 그런데 내가 꺼내든 책은 너무 낡았다. 다른게 있나 싶어 검색해보니 이거 한 권뿐이다. 표지도 접히고 많이 낡아서 사고 싶지 않아..흑. 그래서 신형철의 부분만 서서 읽었다. 끝까지 읽지는 못했는데, 아, 역시,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의 '에티카'라는 말을 선택하면서 '윤리'라는 말의 정확한 내포에 대해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도덕과 혼동되지 않도록 한다든지.
누가 현재의 제게 문학이 뭐냐고 물으면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이 거기 들어 있죠. 예를 들어 누가 봐도 법적으로 범죄자고 경제적으로 금치산자고 도덕적으로는 패륜아인 한 사람이 있다고 쳐요. 세상의 어떤 판단 기준으로도 그를 구원할 수 없지만, 그의 내면에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맥락이 있을 테지요. 그 불가피함이 우리에게 중요한 진실 하나를 줄 텐데 그럼 누가 이 진실을 보존하고 구원해낼 수 있을까. 그게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한 인간이 실패를 뻔히 예감하면서 어떤 길을 걸어간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그가 '윤리적인' 인간임을 문학이 설명해줄 수 있다면 위대한 일이 아닌가 싶은 거죠. 오이디푸스도 그런 인물이고 성경도 전 그렇게 읽었어요. 행간에 예수의 고뇌가 슬쩍 드러나는 순간이 있어요. 병사에게 끌려가는 순간에 한 제자가 칼을 꺼내니 예수가 만류하며 "내가 지금 당장 아버찌께 얘기하면 열두 군단의 천사들이 나를 지켜주지 않겠느냐. 그러나 그리하면 어떤 사람이 스스로 죽어 세상을 구원한다는 예언이 실현되겠느냐"라고 하죠. 전율이 오는 대목이에요. 예수라는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메시아가 온다"는 구약의 서사가 있었어요. 한낱 목수의 아들이 "내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겠다"고 서사 안으로 들어가 죽음이라는 결말까지 뚜벅뚜벅 걸어가서 이야기를 종결지은 거예요. 그런 몰락이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 전율이고 감동이라 생각해요. (p.153)
누군가 죄를 지었다. 그 죄가 세상앞에 드러났다. 그 죄와 그 죄를 저지른 죄인에 대해 사람들이 비난하며 벌을 주기는 쉽다. 그러나 신형철이 말했듯 그의 내면의 불가피한 맥락이 있을 수 있었다고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죄인을 비난하기 보다는 그 죄를 짓게 만든 환경에 대해 바꿔야한다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환경을 혹은 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그런 죄는 덜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 '그의 내면의 불가피한 맥락'을 생각해보고 이해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게 문학이 아닌가.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글자를 읽어나가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되기도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니.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신형철은 그렇게 하도록 기꺼이 돕는 사람이다.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신경 쓰이게 하는 일들이 쓰나미로 터져서 가만있어도 절로 한 숨이 나오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체 내게 왜이래, 대상이 불분명한 원망을 해보기도 하고 목,금,토,일 나흘을 술로 꽐라가 되며 보냈다. 요즘의 나는 나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고 있는것 같다. 나는 누가 나를 사랑하는것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더 행복한 사람이고, 연애보다는 사람에 대해 더 흥미가 있는 사람인것 같다. 연애는 귀찮아, 이제는 추억만으로 살아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내 슬퍼졌다. 연애가 귀찮다니, 맙소사, 이렇게 늙어가는걸까? 라는 생각 때문에. 그러다가 아 몰라, 이렇게 늙어가는거면 할 수 없지, 다 귀찮아, 라고 생각하는데. 아, 나는 보고야 말았다. 현빈을, 티븨 광고속의 현빈을.
어므낫, 쟤가 저기서 뭐하는거야? 제대했어? 나는 깜놀해서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했다. 그러자 같이 티븨를 보던 여동생이 응 제대했잖아, 하는거다. 그러고보니 그랬던것 같다. 아, 어떡해. 심장이 벌렁거려, 어떡해, 너무 좋아! 나는 어쩔줄 모르고 이 말도 역시 소리내어 말해버렸고, 이런 나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현빈이 제대하는데 왜 니 가슴이 뛰냐?
아 몰라 미치겠어 막 뛰어. 아, 나는 연애가 귀찮은게 아니었어. 현빈 같은 남자가 없어서였어! 꺅 >.< 그 뒤로 현빈의 티븨광고를 또 봤다. 하아. 눈빛이 진짜 아 젠장. 나를 뜨겁게 만든다.
토요일에 같이 삼겹살을 먹은 알라디너와 이런 얘기를 하다가 아, 현빈이 알라디너였으면 좋겠다, 하고 말했다. 아,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새로 시작하는 알라디너. 책을 읽고 싶은데 아직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잘 모르는 그런 알라디너였으면 좋겠다고. 나는 친절하게 안내해줄 수 있는데. 한창훈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전혀 어렵지 않고 착착 감긴다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는 장르문학을 몇 권 추천해줘야지. 그리고는 코맥 매카시를, 로맹 가리를 추천해줘야지. 피츠제럴드의 컷 글라스 보울은 꼭 읽어보라고 해야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같이 읽어보자고 해야지. 레 미제라블을 읽을 때는 조용한 카페에 혼자 앉아 읽으라고도 말해줘야지. 그 때는 아무도 방해하게 두지 말아요, 해야지. 아니, 현빈이라면 카페에서 방해받겠지. 그렇담 우리집으로 오라고 해야지. 책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고 싶다면 전화하라고 해야지. 삼겹살을 먹으면서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주면서 우리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해야지. 그렇지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혹여라도 날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은 인간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웃으며 넘겨야지. 가끔은 책 읽는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해야지. 기차안에서 혹은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호텔방에서 각자의 침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자고 해야지. 혹여라도 눈빛이 마주친다면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야지, 시선을 다른데 두어야지. 나는 우리가 오래오래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말해야지. 몸이 뜨거워질라치면 바깥으로 뛰어나가야지. 호텔 주변을 몇 바퀴 뛰다 들어와야지. 오래오래 친구로 남아야지. 가슴을 뛰게 만드는 친구. 식상해지지도 지겨워지지도 말아야지, 계속 거기에 있게 두어야지.
현실의 연애보다는 언제나 내 상상쪽이 더 완벽하고 아름답다.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그건그렇고, 로맹 가리는 진짜 짱이다. 어제 새벽, 나는 로맹 가리를 읽었다. 그 얘기는 다음에...
좀전에 회사동료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어제 알라딘중고샵 종로점에 가서 책 두권을 사왔다며 사진을 보냈다. 나도 사진을 보냈다. 난 여섯권을 가져왔다고. 회사 동료와 알라딘 중고샵에 다녀온 얘길 할 수 있다니, 이건 쫌 좋다. 물론 그는 내게 좀 읽고 사라고 말했지만.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