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제노사이드


직업으로 몸에 익힌 기술이라곤 살인 기술밖에 없는 남자들은 무력한 기분 속에서 침묵했다. 예거는 500미터 앞에 있는 사람을 단 한 방의 총알로 처리할 수 잇었다. 적이 단말마의 비명조차 못 지르도록 등 뒤에서 신장을 한 번에 찔러 즉사시킬 수도 있었다. 아들 저스틴은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평화로운 사회에서는 있을 장소가 없는 아버지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으로 여기고 있었다. 저스틴의 순수한 존경심을 느낄 때마다 예거는 입맛이 썼다. 자기 스스로가 전투복으로 몸을 단단히 감싼 하찮은 사기꾼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p.120)

















아직 이 책의 절반밖에 읽지 못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새서 읽을까 하다가 오늘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새벽 한 시를 넘어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지하철안에서 읽으면서 회사 가기 싫다고 또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물론 그보다 더 많이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이 책을 지금 읽었을까. 조금 더 일찍 읽을걸. 조금 더 일찍 읽고 페이퍼를 쓸걸. 사람들에게-라고 해봤자 여기에 오는 사람이 전부겠지만- 이 책을 알릴걸, 하고. 이 책이 나온지도 그리고 내가 사둔지도 좀 되었으니 내가 좀 더 일찍 읽을 수도 있었을텐데. 내일이 선거날인데 내가 오늘 이 책을 읽어서 스스로가 야속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선거전에 투표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으니까. 마음이 급하다. 지금이라도 조금이나마 인용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지하자원 양으로 치자면 콩고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입니다. 우간다 군은 콩고 동부의 민족 간 살상을 부추겨서 치안 유지 명목으로 현지를 점령했습니다. 지금도 밀수 루트가 건재합니다. 그저 ‥‥‥우간다라는 나라를 이런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돌아버린 머리로 전쟁을 하자는 사람은 당연히 나라의 리더입니다. 국민이 아닙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일세. 어느 나라나 그렇지." (p.158)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세상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명분있는 전쟁이란 없다는 하루키의 말처럼, 그저 한 개인애게 묻는다면 그리고 한 나라에 살고있는 국민에게 묻는다면 그들중 아무도 전쟁을 원한다고 답을 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회에 그리고 이 나라에 속해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기술을 익히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훗날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익히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아왔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 정신적 충격에 휩싸인다는 걸 대한민국 서울의 보통사람인 나도 아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를까? 그래서 전쟁이 벌어지는걸까? 아니,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은걸 알고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때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는지를, 그것이 그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래서 그 감정까지 조절하려고 한다.




"살육 병기의 개발은 적을 얼마나 멀리, 보다 간단하게 대량의 희생자를 내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맨손으로 때려죽이는 것보다는 날붙이를, 그리고 총기류를, 포탄을, 폭격기를, 결국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이런 식으로. 거기다 미국의 경우 이건 나라를 지키는 기간산업 중에 하나가 되었어. 그래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

루벤스는 이런 연구를 접하고 나서 현재 일어나는 전쟁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意思)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었다. 백악관에서 만찬회에 출석하고 있는 대통령은 적이 흩뿌린 피를 뒤집어쓰지도, 육체를 파괴당한 전우가 내뱉는 단말마의 외침을 듣지도 않는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다. 군대 조직이 이러한 형태로 진화하고 과학 기술 덕에 병기가 개선되고 있는 이상, 근접전에서 살육이 격렬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전쟁의 의사결정자는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대규모 공중 폭격을 명령할 수 있는 셈이다.


(중략)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모든 정치적 투쟁을 승리한 인간은 정상의 범위에서 이탈한 호전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런 인간을 리더로 선출하는 시스템이 국민의 뜻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뽑힌 사람이야말로 집단의 의사를 체험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의 심리학은 권력자의 심리학이라고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pp.255-256)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국가의 리더를 투표로 뽑는다. 다수에 의해 뽑힌 사람이니만큼 그 사람은 다수의 뜻을 대표하게 된다. 모든것을 다수를 대신해 결정하게 된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투표해야 하는거다.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마음에 들지 않아. 최선이 없고 나는 차선을 선택하지 않겠어. 물론 나 역시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차선을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에 닥쳐오는게 최악일 수도 있다. 그럴때 최악의 경우를 뽑아놓은 사람들을 욕하면서 '나는 저 사람을 뽑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리더가 다수로 당선됐다는 것에서 그 '다수'는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의 표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다. 아무런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리더를 선택한 표가 '다수'가 된 것이다. 투표하지 않는다면, 내 의사와 반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마치 내 의사의 반영인것처럼 살아가야 하는것이다. 그 리더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그들을 투표한 사람들만 영향을 미친게 아니라 다른 표현을 하지 않은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의 영향도 있는 것이다.



돌아버린 머리로 전쟁을 하자는 사람은 당연히 나라의 리더입니다. 국민이 아닙니다, 라는 말을 더이상은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의 국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표를 하는것이 우선될 것이다. 심드렁하게 뒷짐지고 있다가는 언제까지고 '리더탓'이라는 말만 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수가 리더를 만드는 것임을 기억하자.




어서 퇴근하고 싶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이 책을 다 읽고 자고 싶다. 그리고 내일 투표하러 가야지. 설레인다. 설레이다가 그 틈 사이로 두려움이 파고들기도 한다. 자, 다시 설레이는 모드로 돌아가자. 코트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몇 분만 걸어가 도장을 꾹 찍고 돌아오면 우리는 지금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설레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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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12-1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치겠어요.
설레이고 두렵고 두렵고 설레이고 설레이고 두렵고 두럽고 설레이고. 이 감정이 무한반복이야.

제발.. 제발.. 오늘은 하나님 부처님 성모마리아님 이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기도합니다. 제발...

blanca 2012-12-1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다락방님, 저는 어떤 명분이든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선동하는 무리들에 분노를 느낍니다. 어디에선가도 비슷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나요. 전쟁을 결정하는 자들은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요. 내일 저녁 우리는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일단 투표장에 가서 꾸욱 찍고 올래요...

테레사 2012-12-1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다락방님....정말이지 두렵고 떨리고 설레이고...무한반복이라는 레와님의 말씀하고 같은 심정이에요.....우리에게도 새시대가 와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으면...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Kir 2012-12-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일이 오는 게 두렵고 무서운데 살짝 기대도 되고.... 마음도, 머리도 복잡합니다.

아무개 2012-12-1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어느 누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엄청난 변화나 희망이 생길꺼라고는 생각되지 않더라구요.
거의 모든 면에서 퇴행의 역사를 걷게 만든 현 정부의 실정때문에 엄청난 변화와 발전도 마치 제자리 걸을처럼 보일꺼 같기도 하고.....하긴 그녀가라면 10배속으로 뒤로 가게될지도 모르죠. 그게 참 불안한데 말입니다. 불안해요....

Mephistopheles 2012-12-18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사태만큼은 막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