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여러분을 고래들의 낯선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이 책에는 수학적 재능을 활용해 향유골(Physeter macrocephalus)의 문화를 연구하는 댈루지 대학교 생물학과의 할 화이트헤드 교수나, 자신의 1958년산 세스나 경비행기에 멕시코 연구자들을 태우고 멸종위기에 놓인 캘리포니아 만의 흰긴수염고래를 찾는 일을 돕는 환경 비행사 샌디 래넘과 같은, 오늘날 고래 연구 및 해양생태학의 거장 약 25인의 목소리가 빼곡하게 들어 있다. (머리말, p.9)
출근하는 동안의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작 40여페이지쯤을 읽어서 이 책이 재미있다 흥미롭다 말하긴 이르지만, 확실히 내가 우울해지긴 했다. 그래서 계속 읽을지를 고민하기 위해 책을 덮었다, 라기 보다는 강남역에 도착해서 책을 덮은거고.
이 책의 저자는 해양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작가 라고 한다. 저자는 고래를 관찰하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데리고 고래 관광선을 탄다. 그리고 고래에 대해 연구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을 만난다. 그녀가 만난 전문가들은 고래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을 멸종의 위기로부터 구해내고자 한다.
그래서 우울해졌다. 고래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 세상의 누군가는 고래를 연구하고 멸종위기로부터 구해내려고 한다니, 나는 여기서 뭐하고 사나 싶었던거다. 물론 내가 반드시 그들처럼 이 지구상의 어떤 생물들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대단히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뭐하나 싶었던거다. 의미는 꼭 고래를 살리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 누군가는 커피가 필요한 사람에게 커피를 건네면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미를 가질것이고, 누군가는 요리를 하면서 의미를 가질것이다. 누구나 어떤식으로는 다른이의 삶에 혹은 이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텐데, 나만, 내가 하는 일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내가 하는 일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가. 이 일로 나는 소주를 사 마시고 고기를 사 먹고 책을 사 읽지만, 그런데 내가 이렇게 먹고 사는 일 말고 대체 이 사회에 나는 어떤 쓸모가 있는가. 나는 내가 여기서 일함으로 인해서 이 회사에, 이 지역 사회에, 혹은 타인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 의미없는 삶을 사는걸로 여겨지는거다.
이건 위의 책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영화 『26년』을 보면서도 든 생각이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아픔을 누군가는 몸소 겪었고 누군가는 그 영향을 받았다. 세상에 알려야 할 일에 대해 누군가는 그걸 만화로 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영화로 만들어냈다. 나는 관람석에 앉아 그 영화를 보고 초반부터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자꾸만 영화속의 등장인물들 앞에 부끄러워졌다. 내가 그들과 같은 일을 결코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소심하니 앞에 나서서 어떤 일을 진행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작게는 어떻게든 무언가는 했어야 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프고 힘들고, 그래서 외면하기도 하고 정당화해보기도 했던 사람들을 화면으로 보노라니, 나는 뭐하고 사나, 싶은거다. 내가 반드시 그자리에서 혹은 그 일에 대해서 뭔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기 보다는, 내 삶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계속 시간을 살고 있나, 하는 생각.
나는 왜 사는걸까? 무엇 때문에 사는걸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울적하네. 금요일인데. 역시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걸까. 그러면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강남역에서 내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왔더니 눈발이 흩날리더라. 아우. 나는 반곱슬이라 젖으면 앞머리 스타일 완전 망가지는데. 가방에 있던 신문을 꺼내어 앞머리를 가려가며 사무실까지 걸어왔다. 그 사이에 눈발은 더 굵어졌다. 하아- 나는 정말이지 눈이 싫어....
그런데 저 책의 저자인 '엘린 켈지'는 전혀 짐작조차 못했겠지. 대한민국의 한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직업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되리라는 것을. 그런 일은 상상조차 못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