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대한 취향에 확신이 생기는 것도 같고 또 기대하는 바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고, 어떤 문장들일까를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맹세코 '어떤 음식이 나올까' 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책 속에서 음식 얘기가 나오면 흥분이 되고 내 빈약한 상상력은 저 나름대로의 능력을 발휘해 그 음식을 상상한다. 만날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맞닥뜨리는 그 반가움이란, 게다가 놀라움이란!
샌드위치는 메이플 시럽에 절여 구운 고기에서 저며 낸 게 분명한 두꺼운 햄과, 숙성한 체더치즈 조각을 얹고 허니 머스터드 소스를 친 갓 구운 크루아상으로 만든 것이었다. (p.96)
나는 햄버거보다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샌드위치는 가벼운 간식의 느낌을 주는데 햄버거는 무식한 끼니의 느낌을 준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햄버거를 안먹는 건 아니다. 맛있는 햄버거를 감탄하면서 먹는걸. 햄버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아마 더 맛있게 잘 먹을 것이다. 다만, 나는 햄과 치즈가 들어가고 양상치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더 좋아한다는 거다. 아..쓰는데 침나와;;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는 '두꺼운 햄' 에 꽂혀서 아아, 나는 이제 퇴근길에는 절대로 책을 읽지 않겠어, 하는 허무한 결심도 해봤다. 마트에 들러 햄을 사야할 것만같은 강박에 시달리고 만것이다. 나는 수제소세지는 싫지만(그 두꺼운 느낌에 '많이' 먹을수가 없다) 햄은 좋다. 두꺼운 햄, 두꺼운 햄 사가야지. 가만 있자, 어떻게 먹지? 식빵 사가서 샌드위치 해먹을까? 아니면 치즈랑 같이 사서 비스켓 위에 얹어 와인을 마시면서 안주로 먹을까? 아니야, 완전 두꺼운 김밥용햄을 사서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볶아서 먹을까? 아, 어떻게 먹지?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거지? 이 모든걸 다 해먹을까? 금요일 밤이잖아?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지하철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마트에 들러 햄을 사는 걸 포기할 수 있었다. 대신 조카의 손을 잡고 제과점에 들러 조카가 고른 단팥빵을 사들고 나왔다.
몇몇 문장들이 이상했던 기억이 나서(오타였는지 비문이었는지 지금 제대로 기억이 안나네) 별을 하나 다시 빼버렸는데(몇 번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도 군데 군데 접어놓고 생각할 만한 부분들은 있었다.
"이제 잊어도 된다." 가마슈가 조용히 말했다.
"그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꾸어야 할 악몽이야."
필립은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고, 가마슈는 사람들이 문제를 끌어안고 있으려 한다는 머나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필립을 안고 언제까지나 열네 살이지는 않을 거라고, 조금만 더 견뎌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p.322)
필립은 강한 아이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감추고 싶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를 살인자로 신고하기까지 한다. 물론, 아버지는 살인자가 아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꾹 눌러 참는다. 열네 살이 감당하기엔 아직 버거운 일일테니까. 만약 같은 비밀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나 역시 열네 살에 털어놓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나는 우리 부모님을 알기에 마흔네 살이 되어도 고백하지 못한채로 살아가게 될것이다. 내가 고백했을 때 드러날 아빠 엄마의 표정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것 같아서. 언제까지나 열네 살이지는 않을 거라고, 조금만 더 견뎌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는 가마슈 경감의 생각이 내게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래. 열네 살은 일 년 뿐이다. 지나간다. 조금만 더 견디면 지금보다는 나아질지 모른다.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가마슈 경감은 그 생각을 필립에게 말해주지 못한다. 말하는게 더 나은게 아닐까, 했다가 그래 말하지 않은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마슈는 그러지 않았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도 그 행동이 공격으로, 모욕으로 느껴질 것임을 아는 까닭이었다. (p.322)
나는 그 의도가 무언지 알고 뜻하는 바가 무언지 알지만, 열네 살 당사자가 듣기에 열네 살이 영원하지는 않을거라고, 지나갈거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면 자신의 열네 살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으니까. 선한 의도 라는 말 자체가 내 생각이니까. 듣는 이의 생각이 아니니까.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헛소리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시간은 그 사람이 원할 때만 치유하는 거지. 나는 아픈 사람의 경우에 시간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보았어. 그들은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사소한 일을 되새기고 곰곰 따져서 결국 재앙으로 만들어 버리지." (p.349)
상처를 잊는 것은 시간이 하는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상처를 곱씹고 또 곱씹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는것도 내가 하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는 일이 있고 잊혀지는 사람이 있는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란 것도 분명 존재하니까.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나도 그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부끄럽거나 아프거나 미칠듯한 기분이 되기도 하니까. 시간은 그 사람이 원할 때만 치유하는 거지, 라는 말은 오히려 위로다. 이제 내가 치유되길 원하기만 하면 되는거니까.
며칠전에 강남역에 생긴 알라딘 중고샵을 갔었다. 아주 넓고 책 읽을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책도 많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살 만한 소설책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빈 손으로 돌아왔는데, 토요일에 간 종로의 알라딘 중고샵에서는 책을 다섯 권이나 사서 들고 나왔다. 후아- 집에 가는데 얼마나 무겁던지...그나마 술에 잔뜩 취해있었기 때문에 술기운에 들고 갔다고 해야할 것 같다. 술은 때때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니까.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여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