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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 BBC 드라마 (2disc)
브라이언 퍼시벌 감독, 다니엘라 덴비 애쉬 외 출연 / 이엔이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19세기 산업혁명 시대 영국의 도시 밀튼에는 면직물 공장이 곳곳에 세워져있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수도 엄청나다. 각 공장의 공장장들은 지금의 공장장들과 별다를 바 없이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싶어하지만 직원들의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런 가운데 말보로 공장의 손튼 만큼은 그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더 비싼 기계를 들여놓고자 하고, 자신의 공장이 망하는 건 여러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임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꼿꼿하고 굳은 사람이다. 한 노동자에게는 어린 아들에게 반드시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하고, 고기를 구할 수 없는 직원들을 위해 고기를 대량으로 사들여 싼값에 공급하고자 하기도 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주인공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한 공장의 사장과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는데, 남자의 주장이 결국은 노동자들에게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자의 감정에 이끌려 그들에게 동정과 배려를 보이는 것 역시도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공장장이라면, 내가 하나의 큰 공장을 가진 사장이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내가 엄청나게 부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막연하게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언제고 불쑥 하게 되는 것이지만, 돈이 아주 많아서 큰 공장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 해보게 됐달까.
내가 한 공장의 사장이 된다면 그들에게 가급적 추가 근무는 시키고 싶지 않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취미생활과 여가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내가 한 공장의 사장이라면 직원 식당에서 아침과 점심과 저녁 모두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음식의 질은 최상으로 하고 싶다. 질 좋은 고기를 요리사가 쓰고 있는건지 나는 매일 그 식당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체크하고 싶다. 『그 숲에는 남자로 가득했네』에서 벌목꾼에게 먹음직스런 스테이크를 요리했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매일을, 윤기가 잘잘 흐르는 고기를 공급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직에 근무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일이고, 그들에게 영양 공급은 필수니까. 또한 내가 한 공장의 사장이 된다면 공단 내에 유치원과 유아원을 만들어 두고 좋은 선생님을 고용하고 싶다. 내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아침에 부랴부랴 서둘러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싶다. 출근하면서 아이들을 공단 내의 유치원에 맡겨두고 퇴근하면서 그들의 손을 잡고 퇴근하게 하고 싶다. 유치원에서는 역시 훌륭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나는 까다롭게 감시할 것이다. 또 내가 한 공장의 사장이 된다면 직원들이 감기같은 작은 고통에 돈 쓰는 것 조차 벌벌 떨지 않게 하고 싶다. 사실 병원을 하나 옆에 지어두고 직원들 누구나 아프면 무상으로 진료받을 수 있게 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너무 일이 커진다.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등을 모두 두려면 종합병원이 되야하고 그건 너무 광범위해서 오히려 휘청거리는 대기업이 되어버릴까 겁나니까. 그보다는 아파서 병원에 갔다면, 병원에서 진료받은 영수증을 청구하면 내 공장에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아픈건 죄가 아니고, 아프면 돈이 많이 드니까. 하다못해 틀니를 하더라도 공장에서 그 비용을 대주고 싶다. 아프지 마요, 그러나 당신들이 아프다면 돈 걱정은 하지 말아요, 하고. 더운 날에는 잠깐 짬을 내어 팥빙수를 먹을 시간을 주고 싶고, 추운 날에는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을 그들에게 주고 싶다. 나는 나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공장장이 되고 싶지 않다.
이 모든게 너무나 이상적인걸까? 이게 그렇게 어려운걸까? 내가 돈이 없기 때문에 막연히 헛된 공상을 하고 있는걸까? 나는 우리 회사만 생각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이상에 부합하는 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씁쓸해졌다.
게다가 이 드라마속의(원작이 있다)여자를 보는데 온 몸으로 부조리함이 느껴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여자주인공이 대체 이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가 내게 문제로 닥쳤던 것. 그녀는 교양있는 아가씨지만 이제부터는 제 한 몸 건사하기 위해 공장에 들어가 같이 노동을 하거나 혹은 공장 식당에 들어가 요리를 하던가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던거다. 그녀가 할 줄 아는게 없어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지금 당장은 이모와 함께 살고 있지만 다 큰 성인 여자가 언제까지고 이모와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헐, 재수 좋으면 길 가다 줍는 종이가 만원짜리인건가,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는다. 그녀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엄청난 부자가 됐다. 아무리 시대 상황이 교양있는 여자의 일자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상황이라 한다해도, 부모님 돌아가신 혼자 남겨진 성인 여자에게 갑자기 떨어진 엄청난 아빠친구의 유산이라니....어처구니 없었달까.
노동자들을 대변해서 그들에게 배려심을 가져야 한다는 여자와, 공장장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을 생각하는 남자의 말다툼을 보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였다. 둘 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이 꼿꼿한 남자가 여자가 떠나는 마차에 대고 '제발 뒤를 돌아봐' 하고 중얼거리는 것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DVD 는 마치 불법다운로드 한 듯 자막이 엉망이다. 자막의 맞춤법이 어떻게 이지경인지. 툭툭 거슬리는 단어들이 뻔질나게 나온다.
어쨌든 돈이 아주 많아져서 공장을 만들고 싶다. 제길, 이번 생에서는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