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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000 킬로미터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마누엘레 피오르 지음,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결국은 너에게 닿기 위해 나는 그들을 보냈던걸까, 그들로부터 떠나온걸까. 여기에서 저기로 또 저기에서 다시 여기로 내가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온 것은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을까. 내가 만났던 그 사람들로부터 내가 떠나온 그 장소들로부터 또 내가 떠나온 그 시간들로부터 내가 얻게 된 것은 결국엔 나에게 주어져야 했던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 너를 만났다는 것은 나에게 운명적으로 맺어진 것은 너라는 것을 뜻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너와 한없이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을까. 결국은 언제고 또 너를 떠나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에게 정착은 가능할까. 정착은 너에게 가능할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멈춰서서 더이상 어딘가로 가는것을,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 멈추면 우리는 행복할까? 떠나면 행복할까? 더이상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우리는 떠나고, 또 더이상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때쯤 우리는 돌아오는 걸까.
나를 봐주기를 그렇게 원했건만 이제는 나를 보지 말라고 말하게 되네. 이렇게 만든건 시간일까 공간일까.
이곳에서 우린 영원한 이방인이야. 또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우릴 이방인으로 보겠지.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우리는 유배자, 방황하는 영혼일 뿐이야. 피에로, 올바른 선택을 하게나. 아직 할 수 있을 때 말일세. (p.107)
꽃 피는 봄이라고 모두 미소짓기만 하는건 아닌것처럼 연둣빛과 노란빛과 핑크빛이 가득한 그림들이라고 해도 그 이야기들조차 그 빛깔인 건 아니야. 이제 나는 그걸 알아. 이 책을 보고 그걸 알아. 그래서 가슴이 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