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다! 이 책을 읽고 있다.
사실 어제 다른 책을 몇 장 시작하긴 했었는데, 이 책을 받아든 순간 아아 몰라몰라 이거 읽을거야,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오, 이런 작가가 우리에겐 꼭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지는 이런 기분. 물론 나는 아직 이 책의 극히 일부만을 읽었을 뿐이다. 지금 내가 멈춘 시점은 67페이지. 그러니까 67페이지 까지만 읽고 이 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한다는 것은 딱히 전반적으로 옳은 평가 ... 따위가 될 리가 없지만, 그러니까 이 책에 이런 부분이 나와서 .... 이러는거다.
전 세계 모든 여성들로부터 공히 느끼하다는 시청 소감을 불러일으키는 문봉식 의원은 꽃다운 스물다섯 살 이여진 양의 치마 속 다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여진은 죽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지만 뭐가 겁나서인지 별다른 저항을 하지는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찡그린 그녀에게 문봉식은 마치 시아버지가 사랑을 속삭이듯 이런 대사를 쳤다.
"너 아나운서 되려면 다 줘야 된다. 내가, 공중파 간부들 꽉 잡고 있어요." (pp.48-49)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이응준님아. 어쩌려고 이래요, 어쩌려고. 그렇지만 노하거나 분노하지 말것이며 겁먹지도 말것이니, 우리의 이응준님은 책의 시작 일러두기에서 이미 이렇게 밝힌 바 있다.
3.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의 어느 누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만약 비슷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오직 문학의 영역에서 발화된 정치 풍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즐기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여긴다면 이는 문학적 무지와 정신 병리적 망상이 분명하므로 조속한 학습과 치료의 병행을 권합니다. 개인이건 사회건 간에. (일러두기 中 에서)
그래, 이것은 문학의 영역에서 발화된 정치 풍자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즐길것이다. 나에게는 학습과 치료의 병행 따위는 필요없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버스 안에 앉아서 일러두기 읽다가 빵 터졌다. 아, 출근길에 웃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여! 이 책은 (다시 강조하지만 아직까지는!)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코미디이고 로맨스이며 정치풍자이고 간혹 과장되어 있는데, 할 말도 하고 있으며 문학적인 표현을 간간이 끼워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응준이잖아.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가 바로 그의 시집이라고. 이응준이잖아. 벚꽃 움트는 밤에 무릎 꿇는 이응준.
그래, 삶이란 확실한 게 하나도 없고 불행은 난데없이 들이닥치는데 태양은 아랑곳없이 이글거린다. (p.66)
아웅, 좋구나! 뭔가 랩으로 만들어서 읊조리고 다녀도 좋을 것 같은 문장 아닌가. 예! 삶이란 확실한 게 하나도 없고 (두구두구둥 음 치키) 불행은 난데없이 들이닥치는데 (세이 오오~~ 오오오~~~) 태양은 아랑곳없이 이글거리네~~ ♪
좋다. 신난다. 아 빨리 읽고싶어..그런데 나는 회사...지금도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이 짓을...( '') 아아아아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는 회사에서 다 읽고 오렴, 다 읽고 와도 너의 월급은 그대로 보장된단다, 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을 재미있다고 말해주겠어!!
어제, 자기전에 내 방 침대에서 남동생과 대화를 하다가, 남동생이 자신의 시야가 좁다는 얘기를 하길래 내가 그랬다.
"맞어. 니 시야 좁아. 넌 우물 안 프로그지."
그러자 남동생이 자지러지게 웃다가 나에게 말했다.
"우물 안도 영어로 해봐."
...............................할 수 없어 할 수 없어...............................난 우물 안을 영어로 알지 못해!................................말문이 막혔는데...........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남동생이 또 말했다.
"하아- 우물 안 프로그라니....난 누나의 영어가 부끄럽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난 별로 안부끄러워. 프로그도 모르는 사람 많을텐데 뭐. 하하하하하하하하. 게다가 우물 안 포그라고 하지 않고 프로그라고 하다니. 나름 쓸 만한 영어실력 아닌가! 망설이지 않고(0.2초간 멈칫하긴 했다. 프로그랑 포그랑 헷갈려서;;) 프로그를 내뱉었다고!
책상위에는 아침에 동료 직원이 준 호두파이와 햄치즈 샌드위치가 있다. 너무 신나서 미치겠다. 완전 행복이 절정에 올라 들끓고 있다. 삶이란 아름답지 않을때도 많지만, 가끔은 아름다울 때도 있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