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관련 페이퍼 열나 쓰고 있는데 검색하는 책이 죄다 검색이 안되서 신경질이 폭발하고 결국 그 페이퍼는 그대로 중단된 상태다. '요네스뵈'로 검색했는데 『스노우맨』이 검색 안된다니..orz
금요일에는 연차를 냈다. 나로서는 좀처럼 없는 일. 집에서는 회사 간다고 출근하는 그대로 나와서 나는 그대로 대전으로 향했다. 토요일에 대전에서 친구1과 친구2를 만나기로 했던터라, 나는 하루전에 미리 가 있는게 되는거였다. 호텔도 예약해두었다. 나는 그날, 나를 위해서 사치를 할 셈이었다. 혼자서 호텔에 가 시내의 전망을 구경하다가 홀딱 벗고 잠이 들었다가 영화도 한 편 봤다가 맛있는 것도 사먹을 예정이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텐데, 기차안에서도 왕복 네 시간인데, 책은 두 권을 챙기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흐음, 아니다 싶어 두꺼운 책을 한 권만 챙겼다. 영화는 무얼볼까 검색해보니 대전에서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전.혀. 상영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친구가 준 『나인 라이브즈』파일이 든 넷북을 가방에 챙겼다. 가방이 진짜 엄청나게 무거웠지만 다 내가 읽을거고 볼 거니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차안에서는 책을 딱 한 장, 정말로 딱 한 장 읽고 잤다. 내 옆자리에는 군발이가 앉았고 오오, 군발이라니, 조금 신났었는데 그냥 잤다. 정신없이 자다가 눈을 떴는데 기차가 막 정차하려고 한다. 여긴 어디지? 두리번 거리는데 기차의 바깥으로 보이는 나무나 산을 아무리 들여다봐봤자 거기가 어딘지 내가 알 턱이 없다. 할 수 없이 열차표의 도착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확인해본다. 오, 여기는 대전이다. 아우..자다가 지나칠뻔했어;; 옆을 보니 군발이도 이제야 일어나서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내려서 서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내가 가려는 호텔은 터미널 근처에 있는 호텔이었다. 아직 열 한시도 안 된 시간이고, 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만끽하기로 했던터라 터미널까지 걷기로 했다.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여행자의 모드가 되어서. 역에서 빠져나가 이정표를 찾기 전까지는 일단 방향을 알아야 했다. 마침 눈 앞에 경찰이 보인다. 우와. 젊고 잘생겼다. 나는 그에게 터미널의 방향을 묻고 자꾸만 자꾸만 말을건다. 몇 분 걸릴까요? 버스를 타면 얼마나 걸릴까요? 아쉽지만 그를 뒤로 하고 그가 일러준 방향대로 움직였다. 가방은 점점 무거워 지고 있었다. 중간에 또다시 사람들에게 방향을 물었다. 제대로 가는지 좀 불안했다. 그러다 이정표를 발견했다. 오, 됐다. 여태까지 제대로 왔고 이제부터는 저 이정표대로 가면 된다. 그렇게 사십여분 이상을 건너가서 드디어 터미널 발견. 우와. 신난다. 뭔가 해낸 기분이다. 혼자서 걸어서 이곳까지 찾아왔어. 이곳은 낯선 도시인데!! 대단하다!!
그리고 터미널에 들어가 둘러보았는데 오와- 여긴 뭐 엄청난 상가다. 극장도 서점도 모두 이 안에 있다. 마트도 있다. 나는 쫄면과 김밥을 사 먹은 뒤 크리스피크림 도넛에 들어갔다. 다른 커피숍도 많았지만 이곳의 분위기가 유독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미국영화에서 등장하는 다이너 같은 분위기랄까.
게다가 이 넓은 매장에 손님도 없어. 내가 전세낸 것 같다. 어쨌든 아까 책 한 장 읽었으니 좀 읽어볼까 싶었는데...졸립더라 ;; 그래서 수첩을 꺼내 낙서를 하다가 두 시가 되어 호텔에 체크인을 하러 가려고 일어섰다. 나는 장시간 호텔에 혼자 있을 예정이니, 밤까지 바깥으로 나오지 않을 생각이니 굶지 않을 만발의 준비를 하자. 아까 남겼던 김밥을 포장한게 이미 가방에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서 사발면과 오렌지쥬스를 샀다. 그리고 까페에 들러 샌드위치를 샀다. 내가 뭘 먹고 싶을지 모르니까 살 수 있는건 다 샀다. 사면서 웃겼다. 나는 왜..굶을 생각은 안하는가. 나는 왜 삶에 대한 애착이 이다지도 강한가..
그리고 호텔에 들어가서 발을 씻었다. 옷을 벗고 목욕가운을 입었다. 11층의 룸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내가 이 낯선곳에서 잘 수 있을까? 오, 잘 수 있었다. 나는 무려 두시간 반을 자고 일어났다. 사실 더 잘 수도 있었는데 넷북 가져온게 아까워서 영화를 봐야했다. 내가 얼마나 무거웠다고! 그래서 멍한채로 일어나 영화를 재생했다.
역시나 이 영화도 감독의 전작들처럼 좋았다. 그러나 이 영화도 또 『마더 앤 차일드』도,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것』을 이길 순 없었다. 그 영화는 진짜 짱인데!
어쨌든 이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인데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다른 이야기에서 다른 식으로 등장하면서 연결된다. 따로 떨어진, 그러나 연결된 영화. 한 편에서의 조연이었던 엄마가 다른 편에서는 주연인 여자가 되는 식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특히 여운이 많이 남는데, 십년전에 헤어진 옛 연인을 동네의 큰 마트에서 마주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오랜만에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그저 일상적인 안부만을 묻고 헤어지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질 않아 사실은 그동안 네 생각을 많이 했노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런 얘기를 왜 하냐며 여자와 남자는 웃었다 울었다 하게 되는데, 여자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늘 이런식이었다고. 날 보라고.
너랑 단지 5분있었을 뿐인데 내 인생이 허구로 느껴져.
아... 말문이 막혔다. 이럴땐 어떡하지. 그여자는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허구의 삶을 살아야 할텐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허구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는 걸 알게 되겠지. 알게 되지 않는다면 최면을 걸겠지. 그래, 돌이킬 순 없어, 이것이 내 삶이야.
이 영화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또한 오랫동안 보지 못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 둘이 모두 금요일 밤에 회사를 마치고 오기로 했다. 여자셋은 모두 벗은 육체위에 목욕가운을 걸치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와인을 마셨다. 새벽 다섯시까지. 울다가 웃으며 그 새벽을 맞았다. 오렌지와 청포도와 방울토마토와 치즈가 테이블에 있었다. 다음날은 예상대로 늦게 일어나서 밥을 먹고, 여자 셋이 할 수 있는 걸 했다. 셋이 나란히 앉아 네일아트하기. 영화 『금발이 너무해』처럼!
네일을 해주는 언니는 손톱이 길고 예뻐서 다른걸 해도 예쁠텐데 왜 원칼라를 하느냐고 했다(으쓱. 뿌듯). 사실 그라데이션을 하고싶었던 터라, 그래요? 그라데이션은 얼마에요? 하고 물었다. 삼만 삼천원이란다. 나는 그냥 원칼라로 해주세요, 라고 했다. 하아- 이렇게 비쌀줄은 몰랐다고! 영화에서 보고 생각했던것처럼 여자 셋이 나란히 앉아 네일을 하는건 유쾌하고 스트레스 풀리는 일은 아니었다. 지겨워 미칠뻔했다. 손을 말릴때는 지겨움이 극에 달해 그만 말리겠다고 했다. 아 지겨워...그리고 우리는 지쳐버렸다.
네일샵에 자리하기 전, 우리는 영화를 봤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 『맨 온 렛지』.
와- 이거 기대하지 않았는데 엄청 재미있다. 멋져 멋져. 나중엔 소리지르고 박수까지 쳤다. 역시 서민의 편은 서민이 되어주어야 한다. 서민이 서민의 편을 들어줘야 정의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거다. 더러운 부자에 맞서 싸우는 서민이 있다면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서민을 응원해주어야겠다. 함성도 질러주고. 이 영화에서 서민이 편이 되어주는 서민 할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기뻤다.
이 영화속에는 아름다운 여성 두 명이 등장하는데, 당연히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쁜데, 그 중에 동생(제이미 벨)의 여자친구는 몸매가 진짜 환상이다. 속옷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 그녀의 남자친구인 제이미 벨은 그녀에게 '넌 살아있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오와- 내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예술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예술로 느낀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임에는 틀림없다. 그 기분이 어떤건지 느껴보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 '')
호텔에 혼자 있는 동안, 나는 외롭지 않았다. 여자사람친구 1이 내게 말을 걸었고, 후버까페가 말을 걸었다. 남자사람친구1이 전화를 해왔고 이튿날에는 여자사람친구 2가 전화를 해왔다. 다들 내게 괜찮으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내가 거기에 혼자 있는걸 몰랐던 친구들이 어떻게 알고 그 시점에 그렇게 연락들을 했을까. 다들 연락도 잘 안하는 친구들인데. 나는 괜찮았다. 그리고 남자사람친구 2는 대전 근처에 결혼식에 왔었다며 토요일 밤에 나를 서울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서울까지 운전해가고 또 다시 자신이 사는 지방까지 가는 건 너무도 힘든일인것 같아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어야 했는데, 읽지 못한 책과 넷북이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이 떠오르자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기차표를 반환하고 그 친구의 차에 올라탔다. 집까지 정말 편안하게 왔다. 다 무거운 가방 때문이었다. 친구는 다음에 혼자 호텔에 가게 될때 자신을 부르라고 했다. 나는 남자사람 친구와 호텔에 둘이 있을수는 없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매력적이라 그건 위험한 일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80페이지쯤을 읽고 있는데 우와- 아직까지 엄청나게 재.미.없.다. 깜짝 놀랄정도로 재미가 없어서 내가 어떡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계속 읽을까 말까...처음으로 슈퍼바이백을 신청해봤는데, 하면서 괜히 구속당하는 건 아닐까 좀 걱정했는데, 우와, 아니야, 완전 잘했어, 팔아치우자, 잘 신청했어 싶다. 아직까지는. 조금 더 읽어보고 끝까지 읽을지를 결정해야겠다. 80페이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질지도 모를 일이니까. 제발 재미있어줘, 제발.
이제 곧 점심시간이다. 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