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때 읽었던 할리퀸 로맨스소설 중에 『개구리 연가』라는 작품이 있었다. 도시에서 아버지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는 여자가 친구의 집을 봐주기 위해 며칠간 시골에 머무르러 가는데, 그 옆집에 사는, 무슨일을 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어마어마한 부자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용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 시골 부자남자는 도시 여자를 믿을수가 없다. 도시 여자가 시골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은 후 아이를 버려둔 채 도시로 도망가버렸던 일을 목격했던 바, 도시 여자들은 다들 그럴거란 편견 때문에 쉽게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게다가 남자네 집에서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 중 한명은 둘 사이를 이간질한다. 여자는 남자와 사이가 좋아질만 하면 다시 다투게 되거나 서먹해지는 상황이 몹시 싫고 속이 상한다. 둘 사이가 다시 틀어져있던 어느날 밤, 남자는 그녀의 집에 찾아온다. 오해를 풀기 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여자는 남자에게 "우리 사이에 있는 먹구름이 걷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그때 (아마도)벽난로 앞에 서있던 남자는 여자의 그말을 듣고 "당신도 우리 사이에 떠도는 먹구름을 느끼고 있었냐"고 묻는다.
비단 남자와 여자 사이뿐만은 아니겠지만 나와 타인이 맺는 어떤 관계에 먹구름이 끼어 떠돌고 있다면, 그것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리고 그걸 내가 느끼고 있다면, 그 먹구름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도 느끼고 있을것이다. 우리는 그 먹구름을 느끼며 상대에게 쉬이 말을 걸지 못하고 있을수도 있고 혹은 그 먹구름을 내내 거기에 둔 채로 서로가 이제 몰랐던 사이인것 처럼 등을 돌릴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어떤 관계에서는 그 먹구름을 치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서로 간직한 채, 그러나 차마 용기를 내지는 못하고 있을수도 있다. 이 먹구름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걸 니가 좀 치워줘.
치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치우지 않을거라 결심했던 그 먹구름을, 혹여 상대도 내내 거기에 둔 채로 살고싶은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애써 무시하고 지냈다. 그런데 내가 견딜 수 없어서 그 먹구름을 걷어냈다. 그 먹구름을 걷어내면 그곳에 태풍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걷어냈다. 지금 당장은 서서히 햇빛이 그리고 햇볕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얼마나 갈까. 또다시 먹구름이 떠돌게되진 않을까. 이번엔 더 강한 허리케인이 오지 않을까. 알 수 없다.
다시 『개구리 연가』로 돌아가자면, 여자는 그 관계에 아프기도 했고 또 그곳을 떠나야 할 때가 되어서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가고난 후 남자는 내내 그녀를 그리워했다. 오해가 풀렸던 것도 같다. 어쨌든 그래서 남자는 도시로 그여자를 찾아간다. 여자가 일하는 병원에 가서 여자를 발견하고 그가 내뱉는 말은
"대체 왜그렇게 빨랫줄처럼 빼빼 마른거요?"
였다. 여자도 남자를 그리워하느라 힘들어서 빼빼마르게 된 것인데, 나는 먹구름을 걷어내는 여자는 될수 있을지언정 빨랫줄처럼 빼빼 마른 여자는 될 수 없다. 나는 내 주변에서도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혹은 남자와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가 너무 아파서 혹은 남자와 헤어지고 난 후에 절망해서 홀쭉해지거나 빼빼 마르게 된 여자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런 그녀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내가 남자 때문에 홀쭉해지거나 빼빼 마르게 되거나 하지는 않을것이다. 내가 죽기전에 해보고 싶은 몇가지 일들 중에 '빼빼 마르고 싶은'건 있지도 않다. 역시 여자는 육덕진게 짱인듯.
책을 읽고 있다. 수첩에 포스트잇이 준비되어있고, 그 수첩은 가방안에 준비되어 있어서 꺼내기가 번거로워 그냥 책의 한쪽 귀퉁이를 접어버렸는데, 그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자일즈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 그녀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멜린다의 기분에만 유독 신경을 썼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그녀를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원칙에 저항하고 본성을 어길 수는 없었다. "아니." 그는 침울해지고 거의 비탄에 잠긴 채,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안 갈래." (p.64)
아무리 상대를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내 자신의 원칙에 저항할 수 없는 자일즈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상대를 좋아해도 내 모든것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하지 못할 몇가지의 것들을 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 내가 계속 나일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나는 사랑에 빠진다해도 포기하는 것이 거의 없긴하지만, 나를 바꾸려고 하거나 나의 어떤것들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사람과는 사랑에 빠지지도 않지만, 어쨌든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차선책을 선택하지 않을것이다. 존 쿳시가 『슬로우맨』에서 그랬던것 처럼. 나는 최선책이 아니라면 갖지 않을것이다.
사실, 이 책속에서 가장 먼저 책의 귀퉁이가 접힌 부분은 이 문장이있는 페이지였다.
커버데일 가족은 참견꾼들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선의를 품고 다른 사람 일에 끼어들었다.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이 아니라면, 자일즈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들은 자일즈가 본능적으로 아는 사실, 이기심이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임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p.62)
나 역시 그동안 '선하다'는 의도아래 상대에게 오히려 더 불쾌함을 주었던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선한 의도를 품고 있는 행동들이 불쾌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서 이제는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잘 되고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선한 의도라는 것이 모든것의 가장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한 의도여도 타인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고 타인에게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다. 선한 의도라는 기준은 철저하게 '내가 살아온 입장'에서의 의도였기 때문에. 이 책속에서처럼 함부로 '그녀는 외로울거야' 라는 짐작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일즈가 그런 말에 '혼자 있는걸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라고 대응한 것처럼, 상대는 내가 선택한 삶에 만족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르니까.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의 것인데, 내가 세워둔 행복의 기준대로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나의 행복은 당신의 행복과 다르다, 는 것을 잊지말자.
나의 가방속에는 포스트잇이 준비된 수첩만 들어있는 건 아니다. 초콜렛도 들어있다. 언제 어디서든 굶어죽을 수는 없다는 신념아래(읭?), 내 가방 속에는 간혹 초콜렛이 들어있곤 한다.
으응? 방금 문자메세지가 왔다. 애인이 보낸 택배가 오늘 도착한단다. 뭐지? 육포인가? 전에 준 육포는 다 먹었냐고 묻길래 장난하냐고, 다음날 바로 다 없어졌다고 대답했더니 또 보내주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부끄럽지만, 애인은 이미 나와 애인이 되기 이전에 육포를 한박스 보내 나를 꼬신(?) 전력이 있다. 육포 한박스에 내가 정신이 나가버린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물론 그날 정신이 '다' 나갔던 것은 아니다. 애인이 되고 나서도 육포 한박스를 싣고 와서 내게 또 주고 간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날 돌아가는 그에게 그중에 두 봉지를 꺼내 주기도 했었다. 아마도 그는 나를 육포로 붙잡아둘 작정인가보다.
아아, 육포로 붙잡히는 나라니, 나란 인간은 얼마나 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