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생각이 많았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은 밤이었다.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오늘 아침엔 다섯시 넘어서 깨버렸는데, 나는 늘 새벽에 한차례 이상씩 깨고, 내가 새벽에 깬다는 사실을 좋아하고 그것을 즐기지만, 다섯시와 여섯시 사이에 깨는건 곤란하다. '다시 잠들기' 힘든 시간이라서. 아 짜증나..
한시간 가량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출근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되서 침대에서 빠져나오고 라디오를 켰다. 머리를 감고 방으로 돌아오니 라디오에서는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 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노라 존스의 목소리도 좋아하고, 노라 존스의 다른 노래들의 분위기도 꽤 좋아하지만 이 노래만큼은 참 싫다. 한때 이 노래가 여기저기서 막 들려왔을때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왜 어딜가나 이 노래인가 싶어서. 그러다가 오래전에 알던 동료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연인과 섹스를 할때면 반드시 이 노래를 틀어놓는다고 했다. 이게 연애중에는 이 노래만 나오면 므흣해지는 기분이었는데, 이별하고 난 후에는 고통스럽노라고 말했다. 그렇겠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기분일까? 이제는 이 노래를 들어도 그 친구는 별다른 감흥이 없을까? 잠깐 갸웃했다.
그리고 출근길에 책을 읽는데, 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이런 문장을 봤다. 갈 곳이 없는 사람 세명이 주인공들의 집에 함께 살겠다고 들어오는데, 그 세명중의 한명인 남자에게 주인공 중 한명이 하는 얘기다.
"아니야! 아무튼 당신은 돌아가. 그렇게 밥값이 많이 들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같이 살겠다니." (p.155)
밥값이 많이 들 것 같은 얼굴
밥값이 많이 들 것 같은 얼굴
밥값이 많이 들 것 같은 얼굴
밥값이 많이 들 것 같은 얼굴 !!!!!
하아- 나는 그 부분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만약 내가 직장도 잃고 돈도 잃고 그리고 어쩌다가 머무를 곳마저 없게 되었을 때, 그때 누군가의 집에 노크하고 여기서 당분간 살게 해줘, 라고 말을 하게 된다면, 그때 내 얼굴은 거부 당할 얼굴이겠구나 싶어졌다. 밥값이 많이 들 것 같은 얼굴.... 이니까. 안그래도 어제 거울을 보다가 어엇, 왜이렇게 얼굴이 포동포동하지? 하고 놀랐었는데, 새삼 어제 놀란것 뿐이지 늘 이런 얼굴이긴 했다.
밥값이 많이 들 것 같은 얼굴, 이라니. 아, 너무 충격적이고 슬픈 말이다. 그리고 이 책도 슬프다. 빚더미로부터, 사채업자들로부터 자꾸만 도망쳐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힘이 든다. 언제까지 그리고 대체 어디까지 도망쳐야 할까, 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된다. 왜 해외로 도망가지 않지? 다른 나라로 가는거, 그거 힘든 일일까? 국내에서 자꾸만 도망치면 어디든 나타날텐데, 그 사람들은 사람 풀면 그런것 쯤 쉽게 알 수 있을텐데. 언제나 수상한 사람을 보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그런 삶이, 누군가 나타나면 다시 짐 싸들고 도망쳐야 하는 그런 삶이, 대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걸까. 그들과 맞서 싸우는게 가능하기나 할까? 아직 절반정도 밖에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은 한장한장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힘들다. 답답하다.
에잇. 책이나 사야겠다.
쳇. 그런데 이제는 꼬꼬면을 두개밖에 안주네. 흥.
앗. 11:47 주문하려고 보니 꼬꼬면 증정 행사 끝났나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