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이것은 좋았던 것들에 대한 혹은 여전히 좋은것들에 대한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것은 얼마나 기쁜일인지. L 은 [로드]를 읽고 '올해 내가 읽은 가장 좋은 영미권 소설'이라며 내게 문자를 보내왔었고, K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정말 좋았다며 쪽지를 보냈다. 그런가 하면 C는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책을 읽고나서 내게 메세지를 보냈고, ㅈ 는 [포기의 순간]을 읽는 중에 무척 좋다고 문자를 보냈다. ㄷ 님과 ㄲ 님은 [모두 다 예쁜 말들]을 읽고 정말 아름답다고 포스팅을 하고, K 역시 [모두 다 예쁜 말들]이 무척 좋다며 쪽지를 보냈었다. H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말투를 흉내내 내게 말을 걸고, E 는 내가 말한 영화를 보고 정말 좋았다면서 메세지를 보낸다. 정말이지 모두 다 예쁜 사람들. 나는 이런 순간들이 무척이나 좋다. 그래서 더 책을 보고 싶고 더 영화를 보고 싶어진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싫어하는 경우도 더러 생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미워지거나 싫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나는 어느 정도의 관심(혹은 호감)을 가진 남자사람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그저 가벼운 로맨스'라고 말하는 순간 그에 대해 가졌던 내 호감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 나의 애정은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나누어 줄 정도로 충분하진 않으니까.
L 에게, C 에게 이승우의 [칼]을 보내야지. 히죽히죽. 후버까페에게도 보내야지. 쪽지도 쓸거야. 일단, [칼]만 읽어보라고. 다른 단편들은 읽고 싶은것들만 읽되, [칼]은 꼭 좀 읽어달라고, 실망하지 않을거라고.
어제는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을 원서로 보고 싶은 욕망이 정말이지 하늘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것을 '읽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가지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던거다. 그래서 알라딘을 검색했는데 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고, 피츠제럴드의 어떤 단편집들이 검색되기는 하는데, 그 안에 목차가 없어서 [겨울 꿈]이 있는지 없는지 도무지 모르겠는거다. 그래서 하늘에 닿았던 내 욕망은 암흑속으로 빠졌다. 하아- 어쨌든 이건 또 검색 해봐야겠다. 아마존까지 뒤져주겠어!
오늘 아침에는 김성재의 [말하자면]을 들었다. 갑자기 불쑥, 생각이 나서.
너의 뒤에선 항상 너를 쳐다봐, 너의 앞에선 항상 땅을 쳐다봐, 하는데 가사가 완전 좋은거다. 물론 너의 앞에선 항상 땅을 쳐다보는 건 좀 병신같지만... 사람이 사람의 눈을 봐야지 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땅을 보는가. 그건 좀 병신같다. 수줍은 마음에 뒤에서 나를 쳐다보는 건 괜찮지만, 그래도 내 앞에선 땅을 보는 남자라면 될것도 안되겠다. 병신.. 그래도 좋다. 우리 우연히 스쳐 지날때마다 서로 반갑게 지나쳐갈때마다 넌 알지 못했니 너무나도 자주였던 걸 말이야, 라는 가사를 듣노라니 하하하하 중학교때 국어선생님 좋아하던게 생각나네. 쉬는시간마다 나가서 복도에 서 있었는데. 나 좀 보라고. 하하하하. 그때 국어선생님의 나이가 삼십대 중반이었는데, 오, 지금의 내 나이대구나. 그때 내가 보기에 선생님은 엄청나게 어른 남자였는데... 오늘아침에는 김성재의 말하자면을 반복해서 들었다. 어쩌면 어제 읽은 박정대의 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읽은 박정대의 시는 이것이었다.
붉은 별
오늘 밤엔 별이 붉어 나는 담배를 피운다
아니 담배를 피우다 보니 별이 붉어졌다
붉은 별,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의 심장에 밤새 떠 있는 별
누구나 가슴속에 붉은 별이 하나쯤은 떠 있지 않을까. 밤새.
이번주에는 월요일부터 어제까지 아주 일이 많았다. 출근해서 퇴근할때까지 미친듯이 일만 했다. 온 몸이 지쳐서 흐느적거리도록. 게다가 엊그제부터 재채기를 하루에 이천번씩(물론 과장포함)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고, 재채기를 이천번씩 하고 집에 돌아가면 나는 녹초가 되어있다. 어제 퇴근 전, 나는 녹초가 된 나의 몸과 마음을 좀 쉬게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엽서를 하나 꺼내서 박정대의 시, [붉은 별]을 적었다. 물론 시집을 보고 적었다. 우표를 붙여야지.
엊그제는 집에 좀 늦게 들어갔다. 남동생은 아직 들어오기 전이었다. 열두시쯤 나는 잠이 들었는데, 한시쯤 뒤척이며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려는 순간 인기척이 들리더니 내 방불이 켜지고 이내 다시 꺼졌다. 나는 누구야, 하고 돌아보았는데 남동생이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나 들어와서 자고 있나 본거야?
응, 이라고 말하고 남동생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나도 이내 다시 잠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자꾸만 생각나는거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나도 간혹 남동생이 늦은 귀가를 할때 남동생의 방에 들어가 불을 켜보곤 한다. 닫혀 있을때는 노크를 해보고 열려 있을 때는 불을 켜본다. 이녀석, 들어와서 자고 있나. 그런데 엊그제는 남동생이 나를 궁금해했다. 너무 좋아서 다음날도 자꾸만 생각하다가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너, 어제 새벽에 나 들어와서 자고있나 확인하려고 불 켜봤지? ㅎㅎ] 하고. 자꾸자꾸 확인하고 싶어서. 그랬더니 남동생에게선 [그렇지 뭐 ㅎㅎ]라는 답장이 왔다. 나는 정말 너무 좋아서 또 문자를 보냈다.
아 귀여워. 사랑해.
그 뒤로는 아무런 답도 오질 않았다............
좋았던 순간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까 자꾸만 웃음이 난다. 어쩐지 오늘은, 내가 웃는걸 본다면 누군가 한명쯤은 아주 예쁘게 웃는다고 말해줄 것 같은, 그런 날이다.
아, 맞다.(추가)
재이슨 스태덤의 새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다. 꺅 >.< 제목은 [킬러엘리트]란다. 좀 구리구나, 제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