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을 보는 극장안에서, 그 어두운 곳에서 나는, 영화란게 세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영화가 이 세상에 존재해서 고맙다고.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듯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때로는 그들의 문화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또 때로는 그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기도 하면서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할 수 있다니. 새삼 영화의 존재가 고마웠다. 게다가 『그을린 사랑』이런 영화를 만들어주는 감독과 배우들에 대해서도 더할나위없이 고마웠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해줘서 고맙다고.
『인 어 베러 월드』에 대해서는, 일전에 40자평에서도 '올해 최고의 영화'라 밝힌바 있는데, 아, 정말 보는 내내 힘들었다. 작고 어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 내가 알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잘못되어가는 것 같은 아이를 보는 어른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식탁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 말고 대체 무얼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속에는 분노하는 두 어린 아이가 나온다. 그들의 분노는 같다. 그러나 그들이 분노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 두아이가 다르게 대응하는데 그 두 아이중 한명에게 니가 옳아, 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다. 분노하고 거기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 폭력을 쓰는 것이 막연하게나마 옳은일은 아니라고 느낀다는 것,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어른 보다는 어린 아이쪽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고,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완전해진다. 그래, 용서를 말하는 것은 아직 그들이 어린 아이들이기에 가능하다. 자신의 고집이 확고히 자리잡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감히 확신하는 어른들에게는 선뜻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결말, 그래서 감독은 어린 아이들을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보낸것이 아닐까. 아직 이 아이들은 가능해요, 이 아이들은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일말의 죄책감과 양심이 남아있죠,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는 아직은 용서를 말할 수가 있어요.
글은 어떠한가. 나는 현재 이 책 『알리스』를 읽으면서 글이란 것에 그전보다 더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다. 대체 글이란 무엇인가. 한 단어가 품고있는 뜻에 대해서 세상 모두가 다 같이 알고있다. 그러나 그것이 문장으로 만들어지면서 건조한 문체가 나오기도 하고 살랑거리는 문장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 책, 『알리스』는 각자 다른 다섯명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알리스와 연관있는 사람들의 죽음. 젊거나 혹은 늙은 사람들의 죽음. 그런데 이 죽음을 말하는데 결코 요란하지도 격렬하지도 않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 책에서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아주 덤덤히 얘기하고 있다. 죽음은 늘 옆에 있던 일상인것처럼. 그들의 죽음앞에 비통해하고 침통해하고 펑펑 울었다고 쓰지 않는데도 그들의 죽음이 가볍게 느껴지질 않는다. 이 책이 내게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은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글이란 걸 처음 읽는 것처럼 아, 정말 낯설고 매력적이란 생각을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같은 단어로 다른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 문장들이 가진 뜻은 서늘하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다. 서로 전혀 모르는 단어가 아닌데도. 정말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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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있었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미햐와 알리스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들도 역시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는 무엇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알리스는 이제 이별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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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햐와 알리스라는 이름, 한때, 사라지다, 남아있다, 끝나다, 이별. 이 모든 단어들중에 뜻을 모르는 단어가 없다. 그런데 이것과 똑같은 단어들로 이렇게 쓸수도 있는게 아닌가.
미햐와 알리스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들도 사라져 버린걸까? 한때 있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걸까? 그래, 모든 것이 끝났다. 알리스는 이제 이별을 해도 좋을테지.
같은 단어들로 조금 더 슬프고 더 체념하는 감정적인 문장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쓴 그대로의 문체대로 읽는 것은 설레이고 떨리는 일이다. 그들이 그 문장속에 숨겨놓은 감정을 잡아내는 그 일이. 아, 정말 글이란게, 책이란게 너무 좋다. 영화가 존재하는게 고마운 것처럼 책이 존재하는 게 고맙다. 아주 고마운 일이다.
노래도 마찬가지. 엊그제 출근길, 버스안에서는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step by step」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 누구나 다 따라부르던 그 노래. 나는 살짝 웃었는데, 오후에 잠깐 들었던 라디오에서는, 한번도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던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 우연히 듣는 오래된 이 노래가 정말 좋은거다. 엄청! 음원사야겠다. 그런데 음원 구매가 가능한 곡일까?
No use pretending things can still be right
There's really nothing more to say
I'll get along without your kiss goodnight
Just close the door and walk away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I don't wanna start with someone new
Cause I couldn't bear to see it end
Just like me and you
No I never wanna feel the pain
Of rememberin' how it used to be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Just like you and me
At first we thought that love was here to stay
The summer made it seem so right
But like the sun we watched it fade away
From morning into lonely night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I don't wanna start with someone new
Cause I couldn't bear to see it end
Just like me and you
No I never wanna feel the pain
Of rememberin' how it used to be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Just like you and me
이제 겨우 아침 아홉시인데, 맥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햇볕은 쨍쨍, 그리고 매미가 울고 있다.
그래,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