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의 추억

알라딘을 어떻게 처음 알게 됐는지 쓰다보니까 구질구질 길어져서 그냥 바로 첫구매의 추억으로 패쓰해보자면, 나는 내가 언제쯤 첫 구매를 했는지 완전 기억이 안나는 거였다. 어쨌든 그래서 나의 계정을 들어가보니 첫구매는 2003년 10월 17일 이었고 총 결재금액은 52,160원 이었으며, 리스트에 포함된 책은 다음과 같다. 

 

 

 

 

 

저 책들은 사두고 다 읽었는데, 『파리가 잡은 범인』이란 책을 보니 새삼 웃기다. 저 책이 웃기다는게 아니라  소설들과 에세이들 사이로 혼자 '튀게' 들어가 있는 것 같달까. 그 당시 CSI 를 즐겨보시던 타 블로거 때문에 알게 된 책인데, 책 소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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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법 곤충학 책도 읽는 여자. --V 

휘성의 2집앨범이라니, 저거 내가 들을라고 산건가.. 음.. 그런것도 같다. 

사실 알라딘을 알기 전에는 영풍문고에서 주문하거나(이건 몇번 안된다) 직접 서점에 나가서 책을 샀었다. 그러나 그 책들을 몇권 안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또 그로부터도 한참 지나고 나서부터야 비로소 책 '구매'가 시작됐으니까. 그전까지는 동네 책 대여점에서 빌려 읽었었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도, 『양을 쫓는 모험』도,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도,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모든 소설들도 다 책 대여점에서 빌려읽었었다. 시드니 셀던의 소설들도, 공지영의 소설들도, 대체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안나는 『모딜리아니 스캔들』이란 제목의 책도 다 빌려 읽었더랬다. 내가 내 돈 주고 책을 사서 본다는 것은 내게 꽤 늦게 일어난 일인데 -사실 나는 모든게 다 늦다-, 알라딘을 시작한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보는게 맞을거다. 나는 게다가 꽤 충성스런 사람이라 알라딘 말고는 다른데는 가지도 않고 가격 비교도 안한다. ㅎㅎ 남들이 더 싸다고 다른데 알려줘도 안간다. 귀찮어.. 어쩌다 YES24에 가서 구매하는건 알라딘엔 없고 예스엔 있을 경우, 의 일이다.  

첫 구매 한달 후인 2003년 11월 21일 두번째 주문이 있었다. 이런 책들이었다. 

 

 

 

 

『소유』는 현재 개정판으로 새로 나와 있고, 『트리스트란과 별공주 이베인』역시 『스타더스트』란 제목을 달고 개정판으로 나와있어서 내가 이때 샀던 책들은 품절이다. 이 책들도 다 읽은걸 보니, 이 당시의 나는 사 둔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을 사는, 그런 착실한 독서인이었는가 보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왜, 지금은 사두고 안읽은 책을 쌓아두게 된걸까...언제부터 그렇게 된걸까.. 

여전히 나는 내가 구독하는 신문의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북섹션에서 책을 고른다. 그러나 블로그를 하면서 부터는 책을 고를 수 있는 범위가 아주 넓어졌다. 나는 사람들의 리뷰에 감동을 받아서 책을 구입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누군가 얘기한 어떤 부분 때문에 충동적으로 책을 사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바로 어제 주문 같은 경우가 그러한데, 지인의 블로그를 갔다가, '이언 매큐언은 이제 안읽을테야'라고 했던 결심을 무너뜨리고 『체실 비치에서』를 장바구니에 담았고, 알라딘에서 모두가 신형철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아웃오브안중으로 흥, 거리며 거들떠도 안봤다가, 지인의 블로그에서 '신형철이 코맥 매카시를 언급할 때'라는 그 문장을 보고 오, 왜, 코맥 매카시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길래, 싶어서 그게 너무 궁금해서 장바구니에 담았고 바로 주문을 눌러버렸다. 아, 이런식..정말 좋지 않아..자꾸 쌓여, 자꾸...블로그를 그만두면 책 구매도 멈추게 될까?

 

 

 

 

 

나의 계정에 들어가서 첫 주문을 살펴보다가 문득 내가 서재에 처음 글을 쓴게 언제인지 찾아보니 그건 2003년 10월 04일 이었고, 음반 리뷰였다. 지금은 챙피해서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리뷰라 그당시 쓴건 죄다 가려놨더라. 하하하하. 글 되게 못쓰는구나... 이런걸 어떻게 리뷰라고 올려놨을까. 얼굴이 빨개지지만, 그렇다고 참 지우기도 뭣하다. 이렇게 찌질한 글을 쓰는 나도 분명 나인걸. 그 음반은 역시나, 지금은 품절된, 사라 코너의 1집이었다. 

 

 

 

2003년이면 8년전이고, 햇수로 나는 9년간 여기에 있다. 오, 대단하다. 멋지다. 그때도 좋아했던 하루키를, 닐 게이먼을, 샐린저를 여전히 나는 좋아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크고 강하고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무기력하게 빠져들곤 하는데, 사실, 나야말로 내가 반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인 것 같다.  

어제 남동생과 대화를 하다가 남동생이 세상에서 박한별이 제일 이쁜것 같다며, 세븐을 없애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세븐이 없어도 박한별이 널 볼일은 없을거라고, 결코 널 좋아하지는 않을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박한별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내가 나타나서 도와주면 나한테 반하지 않겠어?' 란다. 얘야, 너는 여자가 위험에 처할때 도망가는 스타일이잖아. 너 내가 위험에 처하면 도망갈테니 나더러도 알아서 도망가라며, 라고 했더니 남동생은 '박한별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누나는 위험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잖아. 

나는 위험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나는 강한 사람이고, 꽤 충성스럽다. 새삼 듬직하고 근사하게 느껴진다. 멋져.. 내가 이런 사람이라 다행이다. 

 

치즈가 아주 아주 가득 들어가서 한입 깨물면 쭉쭉 늘어지는 그런 돈까스를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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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7-0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댓글 일빠로 남겨요. 아니 일빠가 아니라 최근엔 댓글 자체가 뜸했었지만요.
다락방님다운 페이퍼, 태그엔 특히 공감하고요.^^
나의 계정 들어가서 확인해봐야겠어요.ㅋㅋ

다락방 2011-07-07 13:06   좋아요 0 | URL
제가 이런 결론으로 가려고 했던건 아닌데 쓰다보니까 이렇게 되버리더라구요. 하하하하. 저란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네꼬 2011-07-0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첫 리뷰나 페이퍼 따위는 안 읽으려고요;; 근데 다락님 진짜 멋지다. 친구 되길 잘했어요. 내 친구 중엔 법 곤충학 책을 읽는 여자가 있다!

네꼬 2011-07-07 10:04   좋아요 0 | URL
근데 어째 태그는 꼭 내가 쓴 것 같다. ㅎㅎ

다락방 2011-07-07 13:08   좋아요 0 | URL
전 옛날 리뷰 읽다가 기절했어요. 뭐 이따위의 글들을 떡하니 사람들 보라고 올려놨냐 싶더라구요. 부끄러워요 부끄러워. 하아- 읽지 말아야 겠어요. 그런데 읽다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여전히 남자를 좋아하고 야한걸 좋아하고, 뭐 그랬더라구요. -0-

저기 근데 네꼬님...좀 정정해줘요. 법 곤충학책을 '읽는' 여자라기 보다는 사실상, '한 번 읽어본' 여자에 불과해요. ㅎㅎㅎㅎㅎ

웽스북스 2011-07-0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봐요 이봐. 원글을 능가하게 멋진 먼댓글을 쓰는 건 반칙이라고요!!!!

전 2권을 가지고 있고 2권을 읽었어요. 맞혀봐요. 흥흥.
읽은 2권과 가지고 있는 2권은 다른 책이고요. ㅋㅋㅋ

다락방 2011-07-07 13:12   좋아요 0 | URL
저도 써놓고 이러면 안되는데..생각했어요. 또 너무 멋지게 썼더라고. 뭐 썼다하면 멋지니까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억지로 노력해도 안되는게 글 안멋지게 쓰기인것 같더라구요. =3=3=3=3=3

일단 가지고 있는 두권은 [소유] 랑 [멋진 징조들]
읽은 두권은 [느낌의 공동체]와 [오만과 편견] 이요.

나 어쩐지 정답..일것 같아.........

웽스북스 2011-07-08 01:42   좋아요 0 | URL
첫구매에서만.....말한건데......ㅋㅋㅋㅋㅋ

다락방 2011-07-08 09:42   좋아요 0 | URL
재도전.

오만과 편견, 호밀밭의 파수꾼 은 읽었고 우천염천, 향수는 가지고 있다.

맞죠, 맞죠?

꼬마요정 2011-07-07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다락방님~ 다락방님은 위험에 빠져도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어요. 특유의 위트와 유머와 또 섬세하고 긴 손가락을 사용해서요~^^(뭔말???) 블로그를 그만둬도 책은 계속 사게 될거고, 그러면 다시 블로그로 들어올거고, 또 책을 사게 되고.. 흐흐.. 결론은 다락방님은 여기서 못 나가신다는 거죠~^^

다락방 2011-07-08 09:43   좋아요 0 | URL
섬세하고 긴 손가락...은 글쎄 아니라니깐요. ㅠㅠ 뭔가 오해가... ㅠㅠ
저는 블로그질과 책사기의 수렁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까요? 하아- 그러면 집에 계속 계속 책이 쌓일까요? 힘겨운 일이에요. 흑흑.

2011-07-07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8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11-07-0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저랑 알라딘 가입 동기네요 -_- 저도 2003년... 저는 12월 첫구매

다락방 2011-07-08 09:44   좋아요 0 | URL
흐음..기쁘지 않아요? 우리가 알라딘 가입 동기라는게? 그런데 표정은 왜그래요? 싫어요? 흥!

moonnight 2011-07-07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02년 첫 구매했네요. 파리가 잡은 범인. 저도 읽었어요. >.< 다락방님 멋진 거 맞아요. ^^

다락방 2011-07-08 09:45   좋아요 0 | URL
우아ㅏㅏㅏㅏㅏㅏㅏ 문나잇님도 파리가 잡은 범인을 읽으셨군요!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제 주변에 또있다니. 꺅 >.<
문나잇님도 짱 멋져요!! ♡

달사르 2011-07-07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년이라..어마하게 긴 시간이로군요.
ㅎㅎㅎ 9년 정도 지나면 초창기에 썼던 글들이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저도 앞으로 9년쯤 여기서 보낸 뒤에 그런 느낌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9년이라는 커다란 시간이 주는 느낌에 다락방님이 괜히 멋져, 보입니다요.

앗..제목에 이미..ㅎㅎ 본인이 이미 알고 계셨어. ㅎㅎ

다락방 2011-07-08 09:46   좋아요 0 | URL
9년 정도 지나기도 지났지만 그때 글 진짜 읽어줄 수 없게 썼더라구요. 어려서 그랬나..뭐 사실 그렇게 어린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요즘엔 젊은 사람들도 글 진짜 잘 쓰던데... 전 왜 그모양이었나 몰라요.

네, 저는 제가 멋진 걸 아는 여자사람 입니다. ㅋㅋㅋㅋㅋ

jongheuk 2011-07-0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의 파수꾼은 아직도 읽어 보지 못한 책이예요. 오래전부터 다락방님이 입이 닳도록 칭찬했는데.. 꼭 읽어 봐야 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다락방 2011-07-10 20:32   좋아요 0 | URL
네, 종혁씨 읽어봐요. 이 책은 사실 저처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것 같지만,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정말로요. 패이버릿 ㅠㅠ

은오 2023-06-10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거 2021년 글이래도 믿겠어요 ㅋㅋㅋㅋㅋ 제목부터 너무 다락방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