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가 좋다. 여행이란것에 통 흥미가 없지만 만약 내가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큰 도시로 여행을 가고 싶다. 큰 도시로 여행을 가서 큰 상점들을 둘러보고 큰 빌딩 사이를 걸어보며 깨끗한 숙소에서 묵고 싶다. 나이 들면 전원생활을 꿈꾸게 된다는데, 나는 그럴일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전원생활을 꿈꾸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다. 나는 도시가 편안하다. 도시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일전에 시골에 내려갔다가-그래봤자 경기도 안성- 까페도, 밥집도 찾아보기가 힘들어서 꽤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걷는 길 양쪽 옆으로는 풀들이 가득했고 사람은 드문드문 서 있었다. 게다가 빌어먹을, 수많은 잠자리들이 내 주변에서 날아다니며 가끔 나에게 돌진했다. 아, 싫어. 버스를 타고 두시간쯤 걸려 왔으니 차도 한잔 마시고 좀 쉬다가 돌아가려고 했는데 나는 어서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남부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안도했다. 이미 내눈에 익숙한 까페와 빵집 그리고 음식점들. 그리고 길에는 분주하게 오가는 많은 사람들. 지하철 역. 숱하게 돌아다니는 버스와 택시들. 하아- 편안해졌다.
나는 음식점에 들어가 돈까스덮밥을 시켜 먹었고, 까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카카오톡으로 친구와 수다를 떨었으며 조금, 책을 읽기도 했다. 이제야 내가 좀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내가 시골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주말부부를 제안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난 여기서 살테니 넌 거기서 살고 그러다가 주말에만 만나자. 주말에 바쁘고 피곤하면 한주나 두주쯤은 건너뛰자. 그렇게. 물론, 그 시골남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내가 좀 많이 양보할 생각도 있긴 하지만. 이왕이면 뉴욕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기꺼이 거주지를 옮겨 줄 의향이 있다. 가족들에게도 말했더니 다들 가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제 뉴욕에 남자만 있으면 된다. ( '')
그런 내가, 이런 내가, 이 책을 읽고는 생각을 바꿨다.
숲, 숲이라니! 집을 찾아보기 힘들고 지하철도 택시도 없는 숲이라니. 높다란 빌딩이 없고 패스트푸드점도 까페도 없는 숲이라니. 곰이 나올지도 모르고 개구리가 팔짝 뛰어다닐지도 모르고 메뚜기가 날아오를지도 모를 숲이라니. 아, 그런 숲에 내가 살고 싶어하다니. 내가 이렇게 되다니. 그런 숲이 가장 완벽한 장소라는 생각마저 들다니!
여자는 도시에서 수줍고 소심하게 살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하고 언니집에 얹혀 살면서 취업에 대한 부담감과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할줄 아는 거라고는 요리가 전부였는데, 우연히 동물원에서 벌목꾼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그 숲으로 짐을 싸서 달려간다. 그리고 거기에, 오, 벌목꾼 60명이 있었다. 신체 건장한 벌목꾼들.
벌목 [伐木][명사] 멧갓이나 숲의 나무를 벰. ‘나무 베기’로 순화
벌목꾼 [伐木꾼][명사] 벌목을 생업으로 삼는 일꾼. (출처: Daum 국어사전)
무려, 나무를 베는 남자들이다. 떡 벌어진 어깨와 구릿빛 피부가 연상되지 않는가. 튼튼한 팔과 다리의 근육은? 이마로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은? 무엇이든 다 먹어치울 것 같은 식욕은? 넘치는 듯한 에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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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초록색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눈빛은 길들이기 힘든 거친 야생마를 떠오르게 했다. (p.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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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거친..야생마..
그런 남자들 육십명이 그녀가 해주는 밥을 먹는다. 그녀는 부주방장이며, 그 숲에서 유일한 여자. 육십명(예순명이라고 쓰면 안된다. 그럼 느낌이 안산다. 반드시 육십명이라고 해야한다.)의 남자들 때문에 나는 이제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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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놓치면 안 될 구경거리가 있어. 요리사의 마음을 아주 뿌듯하게 해주는 광경이지."
미트볼(주방장의 별명이다:다락방주)이 흐뭇한 듯 웃으며 내게 따라오라고 했다. 취사장 현관으로 나간 미트볼은 강철 막대로 만든 트라이앵글이 매달려 있는 들보 뒤로 갔다. 그리고 큰 대못을 집어 들더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폼으로 트라이앵글을 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교회 종소리 같기도 하고 정글 속에서 나는 리듬 같기도 했다. 미트볼은 과장스런 몸짓으로 팔을 휘두르며 계속 트라이앵글을 쳤다. 하지만 나는 마냥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트라이앵글을 치는 소리가 나자마자 벌목공들의 숙소들 문이 활짝 열렸다. 마치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문을 열어젖히고 쏟아져 나온듯한 60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쿵쾅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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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 소리에 맞춰 (식사하기 위해)집합하는 육십명의 건장한 남자들...아, 어찌나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나는 대전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잠시 책장을 탁, 하고 덮으며 아 좋구나..좋다..했다. 그런데 이 벌목꾼들 육십명이 밥 먹을때만 우르르 몰려나오는 건 아니다. 벌목꾼 한명의 아들이 물에 빠져 긴급하게 구해야 했을 때 또 트라이앵글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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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사장 현관으로 돌아가서 미친 듯 트라이앵글을 쳤다. 오두막에서 벌목공들이 쏟아져 나왔다. 손에 카드(트럼프:다락방주)를 든 채 나온 사람도 있었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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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 아. 져. 나. 오. 는. 벌. 목. 공. 들.
숲은, 그 순간 내게 가장 완전한 장소였다. 지상 낙원이며 천국이었다. 그래, 숲이다. 숲으로 가자. 벌목공들이 가득한 숲으로 가자. 나는 요리를 할 수 없으니 주방 보조를 하자. 감자껍질을 벗겨내고 양파를 써는 일을 하자. 계란을 깨는 일이라든가.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내리는 일들. 내가 할만한 일은 얼마든지 있을거다. 그걸 하자. 육십명이다, 육십명. 완벽한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그러니까 바다 하리를 닮은 벌목공 한명과 나는 사랑에 빠지는거다. 어쩔 수 없이. 그래서 그와 나는 딸 둘 아들 둘을 낳는거다. 숲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 나와 바다 하리가 낳은 아이 넷은 육십명 벌목공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나는 주방 보조를 하면서 부주방장이 되고,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점점 더 뚱뚱해진다. 그러나 바다 하리는 뚱뚱해서 뒤뚱뒤뚱 걷는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고 여전히 튼튼하게 나무를 벤다. 아 아름다운 스토리. 그러나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나는 아이들에게 학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육십명 벌목공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로 나온다. 아이들에겐 좋은 학교를 찾아줬지만, 도시에서 육덕진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말수가 적어지고 우두커니 혼자 앉아있는 일이 많아지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아진다. 그렇게 폭삭 늙어간다. 새드 엔딩...
그렇다면 해피엔딩으로 가볼까. 나는 도도한 여자인지라 육십명 벌목공들중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대여섯명의 벌목공들이 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나는 굴하지 않고 도도하고 시니컬하게 요리에만 열중한다. 그러다가 재이슨 스태덤처럼 생긴 벌목꾼 한명에게 자꾸만 마음이 간다. 육십명 남자들 틈에 혼자 있으면서 분란을 일으킬 수 없는터라 나는 그 일을 그만두고 숲에서 빠져나와 도시에 정착한다. 그리고 새로운 거주지를 정하고 새로운 일을 찾으며 종종 그 숲과 재이슨 스태덤을 그리워한다. 간신히 직장 잡기에 성공하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 혼자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 우리 앞에 서서 한참을 호랑이를 지켜보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돌아보니 재이슨 스태덤(을 닮은 벌목꾼). 아니, 여긴 어떻게? 당신이 맹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시간 날때마다 동물원의 맹수 우리 앞을 찾아다녔죠, 라고 그가 말한다. 나는 호랑이를 보며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다시 포장해서 쓰레기통에 넣은뒤에 그에게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해피 엔딩...
스테이크 먹고싶다. 미디엄으로 익힌 스테이크. ㅠㅠ 와인도 함께. ㅠㅠ 아니면 중간쯤 익힌 소고기를 소주와 함께. ㅠㅠ 먹고싶다. ㅠㅠ 뱃속이 뜨거워졌으면 좋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