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문자메세지였다. 문자메세지의 사라짐. 오전에 외근을 나가야 했고, 밧데리를 교체했다. 그리고 전원을 켰다. 택시를 타고 도곡동이요, 라고 말하고 갑자기 메신저에서 사라진 나를 궁금해할 친구에게 외근중이라는 말을 문자메세지로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텅, 비어 있었다. 터엉-. 나는 화들짝 놀라서 다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했지만 역시나 문자메세지함은 깨끗했다.
삼천개 이상의 문자메세지가 들어있었다. 물론, 그 중의 절반은 내가 보낸것이고 또 그 중에 몇개는 카드회사에서 승인한 내역이며, 또 몇개는 택배가 오늘 도착할거라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그것들은 다 필요없다. 안보여도 아쉬울 거 하나 없다. 그러나, 정말 간직하고 싶은 문자메세지가 있었다. 그날 아침에 받은 메세지를 포함해서. 내가 간직하고 싶은 어떤이의 문자는 삼천개중 삼십개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 내용이랄 것이 뭐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것들이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에 패닉에 빠졌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고, 택시를 타고 찾아가서 이것 좀 살려줄 수 있겠느냐 물었다. 이것 저것 다 해보더니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뭔가를 밧데리를 교체하면서 터치했던건가. 사라진 삼천개의 문자메세지는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중에 삼십개만이라도 돌릴 수 있기를 원했는데. 점심을 먹을때까지도 나는 패닉에 빠졌다. 제기랄.
- 업무상의 사고를 퇴근때 발견했다. 아 신경질나. 해결할려고 하니 이미 여섯시가 넘었다. 에라이, 내일 두고보자 하고 컴퓨터를 껐다. 오전에 온 알라딘택배박스를 뜯지 않았었는데 뜯었다. 거기에선 일곱권의 책이 나왔고, 그중에 이런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포기하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하하하하. 웃겨. 내가 이런 책을 읽다니.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안에서 읽는 이 책은 쉽고 재미있었다.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는 별 의미는 없었다.
아직 절반 밖에 읽지 않았지만. 나는 이 책 다음에는 이 책을 읽을 생각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닐지도 모르고.
- 동료와 저녁을 먹고 던킨도넛츠에 들렸다. 나는 커피 한잔에 글레이즈드를 꼭 먹고 싶었다. 그런데 진열장에 글레이즈드는 없었다.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내내 쳐다보다가 아무 도넛이나 하나 골라 계산대 앞에 서서 계산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계산대 옆의 글레이즈드 셋트 박스가 보이길래 그걸 슬쩍 열어봤다. 그 안에는 글레이즈드가 있었다.
이거 낱개로도 팔아요?
아르바이트 청년은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이걸로 바꿔주세요, 라고 나는 얘기했다. 바꿔서 계산을 하면서 나는 그에게 왜 이것은 진열장에 진열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셋트포장도 판매하기 때문에 알려드리려고 꺼내둔거에요, 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못먹을 뻔 했잖아요!
옆에 서있던 내 동료와 아르바이트 청년이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진동벨이 울리기를 기다렸다가 진동벨이 울리자 커피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평소에는 그러지 않는데, 그냥, 나도 모르게, 그 청년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이유도 없이 씨익 웃어주었다. 그러자 그 청년도 마주 웃어주었다.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으이크. 이 청년 어쩌나. 나하고 사랑에 빠지겠네. 어린데. 혹시 상사병 걸리는거 아니야? 집에 가서도 내 생각 하면 어떡하지? 전경린의 황진이 보니까 상사병으로 죽기도 하던데, 이 청년, 괜찮으려나? 내가 잘못했어. 내가 이러는게 아니었어. 웃어주지 말걸.
- 저장되어 있지 않은, 그러나 낯설지 않은 번호로부터 문자메세지가 왔다. 누구더라 누구더라 생각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너는 누구냐, 라고 되묻는 답장을 보냈다. 보내는 순간 누구인지 생각나면서 보내지 말걸, 하는 생각을 했다. 젠장. 몇년전에 만나던 남자였다. 그다지 나쁜 기억을 가진 남자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는 지방에 살면서 내가 일하는 동네에 왔으니 잠깐 내 생각이 나서 아무 이유없이 연락해본 거지만, 나는 신경질이 났다. 아, 진짜. 몇개의 형식적인 문자들을 주고 받다가 그가 점심을 함께 하자고 했다. 나는 곤란하다고 했다. 그리고 잘 가라고 했다. 그런데 제기랄, 그는 나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는가 보다. 갑자기 카카오톡으로 말을 건다. 아이 씨양. 대답하지 않고 그를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카카오톡에는 당연히 그의 이름이 뜨지 않는다. 나는 저장해두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대화 내용만 지웠다. 별 거 아닌 일인데 왜이렇게 신경질이 나지?
- 게다가 어제, 내가 귀걸이를 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귀를 잡아당겼다. 나도 모르게 우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파서. 귀 뜯어지는 줄 알았네. ㅠㅠ